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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상 23장 다윗의 피난처 2014. 2. 23


비둘기가 알을 낳고 부화하고 성장하여 날아가는 동안 화분에는 비둘기 똥으로 가득하였습니다. 똥이 너무 많아서 나무가 비둘기 똥으로 죽을 것을 염려한 분도 있었습니다. 비둘기가 날아가고 나서 화분의 똥을 거의 다 걷어내었습니다. 아주 조금만 남겨두고 마사토를 깔아두었습니다. 그런데 그 똥이 영양분이 되어 침엽수 잎이 아주 싱싱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몇 종류의 풀씨가 싹을 틔우고 나왔습니다. 이것을 본 어느 집사님이 짐승은 이렇게 보은을 하는데 머리 검은 짐승은 거두어주면 앙갚음을 한다는 말을 하였습니다. 이런 말들은 우리의 일상 속에서 인간의 죄가 어떠함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도 그러한 모습이 나옵니다.


먼저 다윗이 사울의 추격이 피하여 도망 다닌 곳을 지도로 표시하여 보겠습니다. 다윗이 라마 나욧에서 피하여 놉 땅으로 갔습니다. 그곳에서 아히멜렉 제사장에게서 떡과 칼을 받아 블레셋의 가드 왕 아기스에게로 갔다가 미친 체 하여 살아나서 간 곳이 아둘람 굴입니다. 아둘람에서 다윗의 가족들과 환난 당한 모든 자와 빚진 모든 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들이 다윗에게 와서 약 400명이 됩니다. 이들을 데리고 모압 미스베로 갑니다.모압은 다윗의 증조모 출신지역이기도 하지만 유대 광야와 사해 바다건너편에 있기에 사울의 추격을 피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선지자 갓이 다윗에게 모압의 요새를 떠나 유다지역으로 들어가게 합니다. 유다지역의 헤렛 수풀에 이릅니다. 이때 그일라 사람들이 블레셋의 공격 받는 것을 구원하여 낸 후에 십 황무지로 들어갑니다. 십 황무지에서 사울의 추격으로 목숨이 경각에 달릴 지경이 됩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피한 곳이 엔게디 요새입니다.


23:1~5. 다윗이 사울을 피하여 도망 다니는 중에 블레셋 사람들이 그일라를 쳐서 타작마당을 탈취하였다고 하는 소식을 듣습니다. 다윗이 여호와께 블레셋사람을 칠 것인지 묻습니다. 여호와께서 블레셋을 치고 그일라를 구하라고 합니다. 그런데 다윗을 따르는 자들이 유다에 있기도 두려운데 블레셋을 공격하려고 갈 수 없다고 반대를 합니다. 자신이 기댈 언덕도 없어서 이리저리 유랑하는 신세에 어떻게 남을 돕는가 하는 말이 당연하게 들립니다. 다윗이 다시 여호와께 묻습니다. 여호와께서 그일라로 내려가라고 합니다. 블레셋 사람을 다윗의 손에 넘겨주신다고 하셨습니다. 다윗이 사람들을 인솔하여 그일라로 가서 블레셋 사람들을 크게 쳐서 죽이고 그들의 가축을 끌어오고 그일라를 구원합니다.


6~13. 아히멜렉의 아들 아비멜렉이 사울이 제사장을 죽일 때에 다윗으로 피하여 오면서 에봇을 가져옵니다. 제사장의 에봇에는 판결을 하는 우림과 둠밈이 있습니다. 이것으로 여호와의 뜻을 알아보는 것입니다. 다윗이 그일라에 들어갔다는 정보를 받은 사울이 문과 문빗장이 있는 성읍에 들어갔으니 갇혔다고 하면서 백성의 모든 군사를 소집하여 다윗과 그의 사람이 있는 그일라를 포위하려고 합니다. 이때 다윗이 아비멜렉에게 에봇을 가져오게 하여 하나님의 뜻을 묻습니다. 사울이 그일라로 내려오겠는지 물으니 내려온다고 합니다. 그러면 그일라 사람들이 자신을 사울에게 넘겨줄 것인지 물으니 그렇다고 합니다. 다윗이 그일라를 떠납니다.


다윗은 사울에게 쫓겨 다니지만 여호와의 기름부음을 받은 왕으로서 이스라엘 백성을 적으로부터 구하여 내었습니다. 그런데 다윗으로부터 구원을 받은 그일라 사람들은 사울이 내려와서 자기 성을 포위하면 다윗을 사울에게 넘겨줄 것이라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일라 사람들이 다윗에게 은혜를 입을 때는 좋았지만 사울이 내려오게 되면 다윗을 사울에게 넘겨줄 것이라는 말씀을 듣고 그곳을 피하여 십 황무지로 떠나게 됩니다. 그러자 사울이 다윗 추적하기를 그칩니다. 다윗이 그일라 성을 떠날 때의 마음이 어떠하였을까요? 자신은 목숨을 걸고 그일라 성 사람들을 블레셋의 손에서 구원하여 주었는데 이들은 사울이 오면 다윗을 넘겨줄 것을 여호와 하나님께 물어서 답을 얻었습니다. 이런 모습이 바로 그리스도의 영이 임하여 그리스도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14. “다윗이 광야의 요새에도 있었고 또 십 광야 산골에도 머물렀으므로 사울이 매일 찾되 하나님이 그를 그의 손에 넘기지 아니하시니라” 사울이 다윗을 매일 찾습니다. 사울의 전 백성의 군대를 다 동원하면 얼마든지 다윗을 체포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다윗이 사울에게 잡히지 않았던 이유는 다윗의 전략이 뛰어나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다윗을 사울의 손에 넘기지 아니하신 것입니다. 다윗을 사울의 손에 넘기지 않았기에 사울이 다윗을 잡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15~18. 사울은 다윗을 죽이려고 하는데 그 아들 요나단은 십 광야 수풀에 있는 다윗을 찾아옵니다. 요나단이 다윗에게 와서 하나님을 힘 있게 의지하게 하였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요나단이 다윗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면서 사울의 손이 다윗에게 미치지 못할 것이며 다윗은 이스라엘의 왕이 되고 자신은 그 다음이 될 것을 사울도 안다고 합니다. 그리고 두 사람이 여호와 앞에서 언약하고 다윗은 수풀에 머물고 요나단은 자기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사울이 다윗이 왕이 될 것을 알지만 다윗을 죽이려고 하는 그 마음은 자신도 어찌할 수가 없습니다. 사울에게 임한 악령이 이렇게 몰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악령을 보내신 분이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이러한 상황을 만드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왜 여호와의 기름부음 받은 다윗을 이런 방식으로 몰아가시는 것입니까? 나중에 결론부분에서 보도록 하겠습니다.


19~23. 십 사람들이 기브아에 있는 사울에게 다윗이 자기들이 사는 곳에 들어왔다고 보고를 합니다. 이 보고를 한 사람들이 사울이 자기들의 땅에 오면 다윗을 넘겨주겠다고 합니다. 사울이 너희가 나를 긍휼히 여겼으니 여호와께 복 받기를 원한다고 합니다. 그리도 사울보다 먼저 내려가서 다윗이 어디에 숨어있는지 정탐하고 보고 하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기름 부음이 다윗에게로 옮겨졌음에도 불구하고 사울에게 충성하는 자들이 나옵니다. 이들에게 사울은 여호와의 이름으로 복을 빌어줍니다. 이러한 복이 과연 임할까요? 사울에게 악령이 임하여 있는데도 여호와의 복을 빌어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도 복을 빌어주는 것에 대하여 좋아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러한 복이 과연 복인지 다윗과 함께 쫓겨 다니는 것이 복인지 분별하셔야 합니다.


히브리서 11:24~26절입니다. “24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하고 25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26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모세의 이러한 행위들이 믿음으로 인한 것입니다. 믿음이 주체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는 것 즉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 받는 것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습니다.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고 합니다. 이 상이 도대체 무엇일까요? 이 상이 영원한 생명입니다. 그래서 의의 면류관 생명의 면류관 영광의 면류관이라는 것은 다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인하여 주어지는 의와 생명과 영광을 말합니다. 이러한 의와 생명과 영광을 위한 길이 모세가 간 길이며 다윗이 간 길이며 구름같이 허다한 증인들이 간 길입니다.


24~28. 십 사람들이 사울보다 먼저 내려와서 다윗이 있는 곳을 알고 사울에게 보고합니다. 다윗이 광야 남쪽 마온 광야 아라바에 있습니다. 사울이 이곳까지 왔습니다. 사울이 거의 근접하여 다윗을 추격합니다. 다윗이 다급하게 도망갑니다. 사울과 그의 사람들이 다윗을 에워싸고 잡으려고 합니다. 일촉즉발의 위기가 닥쳤습니다. 그런데 이때 전령이 급하게 사울에게 와서는 블레셋이 공격하여 들어왔다는 소식을 듣고 다윗 추격을 멈추고 블레셋 사람들을 치기 위하여 갔습니다. 그래서 그곳 이름을 ‘셀라하마느곳’이라고 합니다. 이 말은 분리하는 바위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사울의 손에 넘기지 않도록 하시기 위하여 블레셋 까지 움직이신 것입니다. 그런데 정말 이렇게 다윗을 몰아붙이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시편 18:1~6절입니다. “1 나의 힘이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2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내가 그 안에 피할 나의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 3 내가 찬송 받으실 여호와께 아뢰리니 내 원수들에게서 구원을 얻으리로다 4 사망의 줄이 나를 얽고 불의의 창수가 나를 두렵게 하였으며 5 스올의 줄이 나를 두르고 사망의 올무가 내게 이르렀도다 6 내가 환난 중에서 여호와께 아뢰며 나의 하나님께 부르짖었더니 그가 그의 성전에서 내 소리를 들으심이여 그의 앞에서 나의 부르짖음이 그의 귀에 들렸도다”


여호와가 나의 힘이 되려면 내가 믿던 모든 것들이 끊어져야 여호와를 나의 힘이라고 그래서 주를 사랑한다고 고백하게 됩니다. 사망의 줄, 불의의 창수, 스올의 줄, 사망의 올무가 자기를 두르고 있기에 여호와만이 자신의 반석이며 요새시며 바위와 방패와 구원의 뿔이며 산성이라고 찬양하게 됩니다. 물론 여호와께서 건져주셨기에 이런 찬송을 하지만 건져주시는데 겨우 목숨만 부지할 정도로 몰아붙이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다윗은 주님만을 의지하게 됩니다. 금요일 성경공부 하는 분 중에 어떤 분이 자신이 이제 아무른 계획을 세울 수 조차 없다고 합니다. 얼마나 자신이 예측한 것보다 더 낮추시는지 도대체 바닥을 가늠할 수가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그런 와중에도 잠시 며칠의 여유가 있으면 다른 생각을 하더라는 것을 말했습니다. 우리는 숨 쉴 틈만 있어도 다른 생각하는 자들입니다.


욥기 7:16~20절입니다. “16 내가 생명을 싫어하고 영원히 살기를 원하지 아니하오니 나를 놓으소서 내 날은 헛 것이니이다 17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크게 만드사 그에게 마음을 두시고 18 아침마다 권징하시며 순간마다 단련하시나이까 19 주께서 내게서 눈을 돌이키지 아니하시며 내가 침을 삼킬 동안도 나를 놓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리이까 20 사람을 감찰하시는 이여 내가 범죄하였던들 주께 무슨 해가 되오리이까 어찌하여 나를 당신의 과녁으로 삼으셔서 내게 무거운 짐이 되게 하셨나이까” 사람이 무엇이라고 침 삼킬 동안도 나를 놓지 아니하시냐는 탄식입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결국 자신이 아무것도 아님을 알게 하시고 오직 죽이시기도 하시고 살리시기도 하시는 분이 누구신지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사무엘상 2:1~10절입니다. “1 한나가 기도하여 이르되 내 마음이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내 뿔이 여호와로 말미암아 높아졌으며 내 입이 내 원수들을 향하여 크게 열렸으니 이는 내가 주의 구원으로 말미암아 기뻐함이니이다 2 여호와와 같이 거룩하신 이가 없으시니 이는 주 밖에 다른 이가 없고 우리 하나님 같은 반석도 없으심이니이다 3 심히 교만한 말을 다시 하지 말 것이며 오만한 말을 너희의 입에서 내지 말지어다 여호와는 지식의 하나님이시라 행동을 달아 보시느니라 4 용사의 활은 꺾이고 넘어진 자는 힘으로 띠를 띠도다 5 풍족하던 자들은 양식을 위하여 품을 팔고 주리던 자들은 다시 주리지 아니하도다 전에 임신하지 못하던 자는 일곱을 낳았고 많은 자녀를 둔 자는 쇠약하도다 6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스올에 내리게도 하시고 거기에서 올리기도 하시는도다 7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 8 가난한 자를 진토에서 일으키시며 빈궁한 자를 거름더미에서 올리사 귀족들과 함께 앉게 하시며 영광의 자리를 차지하게 하시는도다 땅의 기둥들은 여호와의 것이라 여호와께서 세계를 그것들 위에 세우셨도다 9 그가 그의 거룩한 자들의 발을 지키실 것이요 악인들을 흑암 중에서 잠잠하게 하시리니 힘으로는 이길 사람이 없음이로다 10 여호와를 대적하는 자는 산산이 깨어질 것이라 하늘에서 우레로 그들을 치시리로다 여호와께서 땅 끝까지 심판을 내리시고 자기 왕에게 힘을 주시며 자기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의 뿔을 높이시리로다 하니라”


한나의 찬양이 사무엘상하 전체를 통하여 확증되고 있습니다. 사무엘 상하만이 아니라 성경전체가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택하신 성도란 날마다 깨어지면서 여호와의 기름부음 받은 그리스도를 의지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 가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