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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상 24장 심판은 주님께! 2014. 3. 2


다윗이 사울에게 잡히기 직전에 블레셋이 이스라엘을 공격함으로 다윗이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블레셋이 마침 그 시간에 공격하여 온 것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다윗을 사울의 손에 넘겨주시지 않으셨기에 일어난 일입니다. 그 틈을 이용하여 다윗은 엔게디로 피신하여 갑니다. 엔게디는 사해 바다 근처의 천연요새들이 많은 곳이라서 이곳에 피하였습니다. 그런데 블레셋을 물리치고 난 사울은 다시 다윗을 추격하여 왔습니다.


24:1~7. 사울이 3천명을 동원하여 다윗을 추격합니다. 엔게디의 들염소 바위를 지나 길 가 양의 우리에 이르러 보니 근처에 굴이 있어 사울이 용변을 보기위하여 그 굴로 들어갑니다. 그런데 그 굴 깊은 곳에 다윗이 숨어 있습니다. 다윗의 부하들이 다윗에게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다윗에게 원수를 넘겨주신다고 하셨는데 바로 오늘이 그날이라고 하면서 사울을 죽이자고 합니다. 그런데 다윗은 그런 사람들의 말을 막으며 사울의 겉옷 자락만 조금 베어냅니다. 그런데 그 겉옷 자락 자른 것도 마음이 찔렸습니다. 그 이유는 여호와의 기름 부으신 자이기에 내 주를 치는 것을 주께서 금하신다고 합니다. 다윗은 사울을 자신의 주라고 합니다.


8~15. 사울이 나간 후에 다윗도 굴에서 나가 사울의 뒤에서 외쳐 부릅니다. 사울이 돌아볼 때에 다윗이 엎드려 절하고 말합니다. 다윗이 왕을 해하려 한다는 사람들의 말을 듣지 말라고 합니다. 사울의 신복들 중에 그런 말로 다윗을 모함하는 자들이 있었기에 이런 말을 합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런 의도가 전혀 없다는 것을 사울의 옷자락만 벤 것으로 입증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나와 왕 사이를 판단하서 여호와께서 나를 위하여 왕에게 보복하시려니와 내 손으로는 왕을 해하지 않겠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속담을 인용하여 악은 안인에게서 나기에 자신이 왕을 해하지 않은 것은 자신이 악인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러면서 다윗은 자신을 죽은 개와 벼룩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자존심만 상해도 사람을 죽이고 싶은데 정말 죽음의 위기에서 사울을 해치지 않은 다윗의 모습은 우리가 본 받아야할 모습이라고 보십니까? 대부분 그렇게 누구를 본받자고 합니다. 그러면 나중에 간음하고 살인한 다윗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런 모습은 본받지 말아야 한다는 말을 합니다. 이렇게 성경을 보는 것이 바로 윤리도덕의 교과서처럼 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보아야합니까?


시편 142편1~5절을 봅니다. 1 내가 소리 내어 여호와께 부르짖으며 소리 내어 여호와께 간구하는도다 2 내가 내 원통함을 그 앞에 토하며 내 우환을 그 앞에 진술하는도다 3 내 심령이 속에서 상할 때에도 주께서 내 길을 아셨나이다 나의 행하는 길에 저희가 나를 잡으려고 올무를 숨겼나이다 4 내 우편을 살펴보소서 나를 아는 자도 없고 피난처도 없고 내 영혼을 돌아보는 자도 없나이다 5 여호와여 내가 주께 부르짖어 말하기를 주는 나의 피난처시요 생존 세계에서 나의 분깃이시라 하였나이다”표제어가 다윗이 굴에 있을 때로 되어있습니다. 주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가 아무른 도움이 없습니다. 그래서 오직 주님의 도우심만 구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다윗이 사울을 해하지 않은 것은 모든 심판을 주님께 맡기고 자신은 죽은 개나 벼룩 같은 자임을 인정하는 것이 주의 기름 부으심 받은 자의 모습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시편 22편 6~8절입니다. “6 나는 벌레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훼방거리요 백성의 조롱거리니이다 7 나를 보는 자는 다 비웃으며 입술을 비쭉이고 머리를 흔들며 말하되 8 저가 여호와께 의탁하니 구원하실걸, 저를 기뻐하시니 건지실걸 하나이다” 다윗이 자신을 죽은 개와 벼룩으로 말하는데 시편 22편에서는 자신이 벌레요 사람이 아니라고 합니다.다윗의 시편으로 그리스도의 고난을 미리 보여주고 있습니다. 두 시편이 다 고난 중에 여호와만 의뢰하는 것입니다. 주님께 모든 심판을 맡깁니다. 다윗의 말을 들은 사울의 반응을 봅니다.


16~22. 사울이 다윗을 향하여 내 아들이라고 부르면서 소리 높여 웁니다. 자신은 다윗을 죽이려고 하였지만 다윗은 자신을 살려주었다는 것에 대하여 잠시 제 정신이 돌아왔습니다. 그래서 나는 너를 학대하였는데 너는 나를 선대하니 너는 나보다 의롭다고 합니다. 사람이 그의 원수를 만나면 평안히 가게 하겠느냐고 하면서 네가 오늘 내게 행한 일로 여호와께서 너에게 선으로 갚아 주시기를 원한다고 하면서 네가 반드시 왕이 될 것이며 이 나라가 네 손에 견고히 설 것을 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너는 내 후손을 끊지 말고 내 아버지의 집에서 내 이름을 멸하지 말라고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하라고 하자 다윗이 맹세합니다.


심판을 주님께 맡기고 자신이 심판을 하지 않음으로 사울이 제정신이 들어 자신의 죄인 됨을 알고 다윗에게 살려달라고 요청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내가 심판을 하고 싶습니다. 내 앞에서 나의 모든 원수들을 무릎 꿇리고 싶은 것입니다. 그런데 그 심판을 주님께 맡긴다는 것은 내가 주인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나는 죽은 개와 벼룩 같은 자임을 안다면 어떻게 감히 내가 상대를 심판할 수가 있으며 또 심판 해 달라는 청구를 하겠습니까? 모든 것을 주님의 처분에 맡길 수밖에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도 내가 심판을 집행하고 싶은 것은 자기 의가 있기에 그렇습니다. 그 자기 의라는 것이 예수님을 살해한 죄가 됩니다.


고린도후서 5:21절입니다.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우리가 받을 심판을 예수님께서 대신 받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의가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정말 하나님의 긍휼을 입은 자라면 정죄와 심판의 눈이 아니라 긍휼의 눈으로 봅니다.


야고보서 2:10~11절입니다. “10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에 거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 11 간음하지 말라 하신 이가 또한 살인하지 말라 하셨은즉 네가 비록 간음하지 아니하여도 살인하면 율법을 범한 자가 되느니라 12 너희는 자유의 율법대로 심판 받을 자처럼 말도 하고 행하기도 하라 13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으리라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주의 긍휼로 심판에 이르지 아니한 자들이 성도입니다. 그런데 긍휼이 없다면 그 사람은 긍휼이 없는 심판이 임할 것입니다. 이 말은 긍휼이라는 행함을 보태야 한다는 말이 아니라 긍휼을 입은 자라면 심판이 아니라 긍휼이 나온다는 말씀입니다.


야고보서 4:11~12절입니다. “11 ○형제들아 피차에 비방하지 말라 형제를 비방하는 자나 형제를 판단하는 자는 곧 율법을 비방하고 율법을 판단하는 것이라 네가 만일 율법을 판단하면 율법의 준행자가 아니요 재판자로다 12 입법자와 재판자는 오직 하나이시니 능히 구원하기도 하시며 멸하기도 하시느니라 너는 누구관대 이웃을 판단하느냐”형제에 대한 비방과 판단은 자신이 재판자의 자리에 서는 것입니다.


로마서 12:19~21절입니다. “19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20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21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원수 갚는 것을 주님께 맡기고 오히려 그들을 선대하라고 합니다.


베드로전서 2:19~25절입니다. 19 애매히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20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오직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21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 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22 저는 죄를 범치 아니하시고 그 입에 궤사도 없으시며 23 욕을 받으시되 대신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받으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자에게 부탁하시며 24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25 너희가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더니 이제는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 되신 이에게 돌아왔느니라” 주께로 돌아온 자의 모습이 이러합니다. 전에는 내가 주인이 되어 내 원수를 갚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주인이 따로 계시니 원수 갚은 것도 주님께 맡기게 됩니다. 자신의 주인 됨이 죽은 자의 모습입니다. 이 은혜가 우리에게 임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