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성설교 다운로드] 

사무엘상 26장 내가 범죄 하였도다! 2014. 3. 16


사무엘상 24장과 같은 상황이 반복됩니다. 사울이 다윗을 추격하다가 오히려 다윗의 손에 넘겨져서 자신의 옷자락이 배이고 나서 자신이 잘못했으며 다윗이 의롭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다시 다윗을 추격합니다. 사울의 이러한 마음은 자신도 자신을 어쩔 수가 없는 모습니다.


신명기 4:9절입니다. “오직 너는 스스로 삼가며 네 마음을 힘써 지키라 그리하여 네가 눈으로 본 그 일을 잊어버리지 말라 네가 생존하는 날 동안에 그 일들이 네 마음에서 떠나지 않도록 조심하라 너는 그 일들을 네 아들들과 네 손자들에게 알게 하라”율법을 주시면서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과 시내산을 지나 광야를 지나고 난 후에 너희가 무엇을 목격하였는지 기억하고 네 마음으로 힘써 지키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마음을 지키지 못함이 약속의 땅에서 드러납니다. 그러한 모습이 사울을 통하여 보여주고 있습니다. 자신도 자기의 마음을 어떻게 할 수가 없습니다.


잠언 4:23절입니다.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생명의 근원이 마음인데 이 마음을 지킬 능력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울이 다윗을 추격하다가 자신의 잘못을 알고 다윗을 의롭다고 하였지만 다시 다윗을 추격하고 있습니다.


1~5. 십 사람들이 다윗이 광야 앞 하길라 산에 숨었다는 정보를 사울에게 전합니다. 사울이 삼천의 군사를 끌고 다윗을 추격합니다. 다윗이 정탐꾼을 통하여 사울이 온 것을 알고 다윗이 사울의 진영 가까이 와서 봅니다. 사울이 진영 가운데 누웠고 군사들을 그를 둘러 진을 치고 있습니다.


6~12. 다윗이 헷 사람 아히멜렉과 아비새에게 누가 나와 함께 사울의 진영에 갈 것이냐고 묻습니다. 아비새가 같이 가겠다고 하여 사울의 진영에 두 사람이 갑니다. 사울이 진영가운데 누웠고 창은 머리 곁 땅에 꽂혀 있고 백성들이 그 곁에 누워 자고 있습니다. 진영 한 복판 왕의 자리에까지 왔지만 모두 다 자고 있습니다. 삼천의 군대가 출동하였습니다. 불침번이 보초를 서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모두가 다 잠에 골아 떨어졌습니다. 그 이유는 여호와께서 그들로 깊이 잠들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아비새가 다윗에게 말합니다. 이것은 여호와께서 당신의 원수를 당신의 손에 넘겨주었습니다. 그러므로 아비새가 다윗에게 청하기를 내가 창으로 그를 찔러서 단번에 땅에 꽂게 하여 달라고 합니다. 두 번 찌를 것도 없다고 합니다. 절호의 찬스인데 다윗보고 죽이라고 하지 않고 아비새 자신이 죽이겠다고 합니다. 다윗이 전에 사울을 살려준 것을 알기에 이렇게 말하였지만 다윗은 죽이지 말라고 합니다. 여호와의 살아계심을 두고 맹세하기를 여호와께서 치시면 그가 죽거나 전장에서 말할 것이라고 하면서 자신이 복수를 하지 않습니다. 25장에서 자신의 사적인 복수를 하나님께서 아비가일을 통하여 막으신 것이기에 더더욱 사울에게 자신이 직접 보복하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창과 물병만 들고 가자고 합니다. 이 창을 다윗을 죽이려 한 창이며 다윗을 편든 요나단을 죽이려고 한 창입니다.


13~16. 다윗이 건너편 산꼭대기로 가서 아브넬을 부릅니다. 네가 이스라엘의 용사인데 왜 왕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하느냐고 하면서 네가 마땅히 죽을 자라고 합니다. 왕의 창과 머리 곁의 물병이 어디 있는지 보라고 합니다. 이 말을 내가 단창에 너의 왕을 죽일 수 있었는데 너는 그 왕을 보호하지 못한 불충이라고 합니다. 다윗은 끝까지 기름부음 받은 왕을 여호와의 손에 맡기고 있습니다. 내가 칼을 휘두를 수 있는 모든 상황이 완벽하게 주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로 다 잠들게 하였습니다. 이런 절호의 기회가 왔음에도 자신이 칼을 휘두르지 않는 이런 다윗이 답답해 보이지 않습니까? 왜 이렇게 하는 것입니까? 결론에서 봅니다.


17~20. 사울이 다윗의 음성을 알아듣고서는 내 아들이라고 부릅니다. 다윗은 내 주 왕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면서 다윗이 내가 무엇을 하였다고 이렇게 추격하느냐고 합니다. 만일 왕을 충동하여 나를 해하려 하는 이가 여호와시면 여호와께서 제물을 받으시기를 원한다고 합니다. 다윗이 악하여 여호와께서 다윗을 죽이시기 위하여 사울을 충동한 것이라면 자신이 죽어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히려 사울이 죽음의 위기를 두 번이나 겪은 것은 하나님의 충동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그렇게 충동한 것이라면 그 사람은 여호와 앞에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 사람이 저주를 받으라는 이유는 여호와의 백성을 여호와의 기업에서 살게 하지 못하고 이방의 땅에 가서 다른 신을 섬기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자신의 피를 땅에 흐르지 말게 하여 달라고 하면서 자신을 메추라기나 벼룩 같은 자라고 합니다.


21~25. 사울이 다윗에게 말합니다. 내가 범죄 하였도다. 24장에서는 다윗이 의롭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자신이 범죄 하였다고 고백합니다. 다윗이 자신의 생명을 귀하게 여겼기에 내가 다시는 너를 헤하지 않겠다고 하면서 자신이 어리석은 일을 행하였고 대단히 잘못되었다고 합니다. 다윗이 대답하여 창을 가져가게 합니다. 그리고 여호와께서 왕을 내 손에 넘겨주셨지만 내가 왕을 헤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내가 왕의 생명을 중하게 여긴 것처럼 여호와께서 내 생명을 중하게 여기셔서 모든 환난에서 구하여 주시기를 바란다고 합니다. 사울이 다윗에게 내 아들 다윗아 네게 복이 있을 것이라고 하면서 네가 큰일을 행할 것이며 반드시 승리를 얻을 것이라고 합니다. 각자 자기의 길로 돌아갑니다. 이 후로 다시는 사울이 다윗을 추격하지 않습니다.


다윗이 사울에게 직접 보복하지 않고 사울을 살려줌을 통하여 사울이 자신의 죄를 알게 됩니다. 우리는 언제 자기의 죄를 알게 됩니까? 세상에서 말하는 죄가 아닌 성경에서 말하는 죄를 언제 알게 됩니까? 성령이 임하면 알게 되는 죄가 있습니다. 이 죄는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이 죄입니다. 다른 모든 죄는 용서 받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믿는 자는 용서를 받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용서가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이 죄입니다. 그런데 이런 죄를 언제 알게 됩니까?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고 하다가 오히려 다윗이 사울을 살려주었을 때에 죄를 아는 것처럼 우리가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다가 예수님의 용서를 받아야 죄를 압니다. 예수님을 죽이려고 마음을 먹은 것 자체가 이미 죽은 것이나 다름없기에 이미 죽인 것입니다. 그것도 수도 없이 죽인 것입니다. 사울이 기름부음 받은 다윗을 죽이려고 쫓아다니면서 그 마음으로 다윗을 죽이려고 한 것이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그 마음이 행동으로 나와서 죽이려고 하였지만 오히려 다윗이 자신을 살려주는 형국이 되었습니다. 이제야 자신의 죄를 알게 됩니다.


요셉의 형들이 언제 죄를 알게 됩니까? 자신들이 죽이려 하였다가 노예로 팔아버린 요셉의 용서를 받고서 자신들이 죄인임을 알게 됩니다. 물론 요셉이 여러 가지 시험을 할 때에 자신들의 죄를 깨닫고 두려워하지만 그 죄를 완전히 용서 받은 것은 요셉의 정체를 드러내었을 때에 용서를 받았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두려워하였습니다. 야곱이 죽었을 때에 다시 용서를 요셉에게 구합니다. 이때 요셉이 하는 말입니다.


창세기 50:15~21절입니다. “15 요셉의 형제들이 그들의 아버지가 죽었음을 보고 말하되 요셉이 혹시 우리를 미워하여 우리가 그에게 행한 모든 악을 다 갚지나 아니할까 하고 16 요셉에게 말을 전하여 이르되 당신의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명령하여 이르시기를 17 너희는 이같이 요셉에게 이르라 네 형들이 네게 악을 행하였을지라도 이제 바라건대 그들의 허물과 죄를 용서하라 하셨나니 당신 아버지의 하나님의 종들인 우리 죄를 이제 용서하소서 하매 요셉이 그들이 그에게 하는 말을 들을 때에 울었더라 18 그의 형들이 또 친히 와서 요셉의 앞에 엎드려 이르되 우리는 당신의 종들이니이다 19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20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21 당신들은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더라”용서를 받았기에 자신들의 죄를 아는 것입니다.


로마서 5:8절입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회개보다 용서가 먼저입니다. 나는 그를 죽였는데 그는 나를 용서 하신 것입니다. 이 사실 앞에 부닥치면 그제야 자신이 범죄 한 자임을 고백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주의 오래 참으심이 우리의 구원이 됩니다(딤전1:16. 벧후 3:15). 이 은혜가 임하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