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성설교 다운로드] 

사무엘상 27장 사람의 생각과 주님의 뜻 2014. 3. 23


27:1~4. 다윗이 사울을 두 번이나 살려주자 사울은 자신이 범죄 하였다고 하고 다윗을 추격하지 않고 돌아갑니다. 그런데 다윗은 마음이 놓이지를 않습니다. 사울의 변덕스러운 모습을 보았기에 언제 다시 자신을 공격하려고 올지 모르기에 블레셋 사람들의 땅으로 피하여 가기로 합니다. 그런데 이런 결정을 하나님께 물어보지 않고 자기 마음에 생각한 대로 행동합니다. 그것이 최상의 길이라고 생각하여 600명과 그의 가족들까지 함께 가드 왕 아기스에게로 갑니다. 전에 아기스에게 갔다가 미친 체 하여 살아남은 곳이 다시 망명을 갑니다. 600명과 그 가족들이 함께 하였다면 상당한 무리입니다. 이들을 이끌고 이스라엘 땅에서는 이제 더 이상 피할 곳도 없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아내인 아히노암과 아비가일도 함께 망명길에 나섭니다. 이 소식을 들은 사울이 다시는 다윗을 수색하지 않습니다. 이로서 다윗의 의도는 성공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 볼 문제는 다윗이 하나님께 무엇을 물어가면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행동하는 사람인데 왜 하나님께 물어보지도 않고 그 마음에 생각한 대로 행동하였을까요? 이 문제에 대하여 성경은 선악간의 말을 하지 않고 침묵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30장에 보면 자기의 가족들이 아말렉 사람들에게 사로잡혀 가고 재산이 약탈 되는 것으로 다윗이 잘못한 것에 대한 벌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기회로 오히려 아말렉 사람들을 공격하여 사람도 재산도 다 되찾아 옵니다. 이 일로 인하여 아말렉 사람들을 크게 무찌르게 되었기에 그 말도 옳다고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다윗의 이런 행동을 어떻게 보아야 합니까?


이러한 문제는 오늘 우리들에게도 늘 부닥치는 문제입니다. 원범이가 일 년간 호주에 워킹홀리데이로 갔습니다. 저에게 묻기를 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지 가지 않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지 물었습니다. 그래서 너의 마음은 어떠냐고 물으니 가고 싶다고 하였습니다. 저의 답변은 가든지 가지 않든지 상관없이 예수님을 믿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이런 질문이 부닥칠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정하여 놓았다고 하는 말씀을 가지고 내가 무엇을 하는 일을 일일이 물어보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려고 합니다. 그러면 아침에 무엇을 먹을지 이것도 물어보아야 합니까? 점심은 자장면을 먹을지 국밥을 먹을지 물어보아야 합니까?


이런 문제를 ‘아디아포라’라는 말을 합니다. 헬라어로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뜻입니다. 이런 말이 신학적인 용어로도 사용되는 이유는 성경에서 명시적으로 하라거나 하지 말라고 언급되지 않은 여러 가지 문화와 의식에 관한 문제들입니다. 특히 유대교의 전통과 복음 사이에서 이런 문제가 대두 되었습니다. 날과 달과 절기의 문제, 할례의 문제, 정결규례와 같은 것들이 문제가 되었습니다. 다시 율법의 행위로 돌아가게 하는 것에 대하여는 바울은 분명하게 아니라고 합니다. 그런데 음식의 문제 같은 경우에 자신은 아무 음식이나 먹을 수 있지만 연약한 형제를 위하여 평생 고기를 먹지 않겠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이런 문제는 자기의 유익을 위하여 행하지 말고 이웃의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하여 하라고 합니다.


그러나 지금 다윗이 블레셋으로 망명한 것은 이래도 되고 저래도 되는 식으로 볼 수는 없습니다. 이스라엘의 기름부음 받은 자가 블레셋에 망명하여 자기와 자기를 따르는 자를 보호하려고 한 것은 자신이 살기 위한 선택입니다. 그런데 이 부분에 대하여 성경이 어떤 판단을 내리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성경이 가는 곳 까지 가는 것입니다. 저는 이런 부분은 이렇게 봅니다. 물론 중요한 일에 하나님의 뜻을 물어서 결정하고 가는 다윗의 모습을 볼 수 있지만 이런 부분은 자기 마음의 생각대로 행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 일을 통하여서도 하나님은 자기의 일을 하신다는 사실입니다.


5~7. 다윗이 아기스에게 말하기를 내가 당신께 은혜를 입었다면 지방 성읍 가운데 한 곳을 주어 살게 하여 달라고 합니다. 왕에게 땅을 하사 받는다는 것은 주종의 관계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이 왕도에 함께 살 수가 없기에 변방의 한 성읍을 하사해 달라고 합니다. 그래서 아기스가 준 성읍이 시글락인데 이 시글락이 오늘까지 유다 왕에게 속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면 이 기록이 이미 많을 세월이 지나서 유다 왕에게 편입된 시점에 기록한 것입니다. 다윗이 블레셋 사람들의 지방에 산 날이 일 년 사 개월입니다. 아기스 왕이 다윗에게 그 성읍을 허락한 것은 사울과 다윗의 관계도 알았겠지만 그 지역을 통하여 블레셋의 변방을 지키게 하기 위한 목적도 있는 것입니다. 다윗은 다윗대로 아기스는 아기스대로 머리를 쓰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만이 이루어집니다.


여호수아 15:31절에서는 시글락이 유다 자손의 기업으로 주어집니다. 여호수아 19:5절에서는 시므온 지파의 유업으로 주어집니다. 그런데 같은 시글락이 왜 두 지파에게 주어지는 것입니까? 그 이유는 그 경계가 접하여 질 때에 그렇게 됩니다. 이미 여호수아를 통하여 정복하려고 한 땅들이지만 사사시대 이후로 아직 정복하지 못한 땅들이 다윗에게 주어지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다윗이나 아기스가 생각하지도 못한 결과가 나오는 것을 통하여 하나님의 언약은 하나님께서 이루어가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사람대로 일하지만 하나님은 자기 뜻대로 그 일들을 이루어내십니다. 이런 일들이 우리의 일상에도 늘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감지를 잘 못할 뿐입니다. 감지를 못하는 이유는 늘 자기 중심적인 생각에 사로잡혀 있게에 그러하기도 합니다.


8~12. 다윗이 시글락에 살면서 주변 지역을 공격하여 약탈하고 진멸합니다. 이러한 지역 역시 여호수아로 하여금 진멸하도록 한 지역들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이런 지역을 공격하면서 진멸을 한 이유가 아기스 왕에게 블레셋 지역을 공격한다는 말을 듣지 않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래서 원래 이스라엘 지역이 차지하여야 할 땅을 공격하여 전리품을 챙겨오면서 아기스 왕에게도 마땅히 공납을 해야 합니다. 그 때에 아기스 왕이 어디를 공격하였느냐고 물을 때에 유다 네겝과 여라무엘 사람의 네겝과 겐 사람의 네겝이라고 대답합니다. 아기스는 블레셋의 변방을 공격하였으니 자신의 국경이 든든해졌다고 여기며 더구나 유다를 공격하였다고 하는 말을 듣고서는 이제 다윗이 영원히 자신의 부하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지역들이 다 누구에게 약속된 땅입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약속된 땅입니다. 더구나 아말렉을 공격하여 진멸한 것은 사울이 아각왕을 살려온 모습과 대조되기도 합니다. 아말렉은 출애굽한 이스라엘을 가장 먼저 공격한 민족입니다. 그래서 이들을 천하에서 멸하라고 합니다.


출애굽기 17:14절입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책에 기록하여 기념하게 하고 여호수아의 귀에 외워 들리라 내가 아말렉을 없이하여 천하에서 기억도 못 하게 하리라”이러한 말씀이 지금 다윗을 통하여 성취가 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도 이미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입니다.


창세기 15:17~21절입니다. “17 해가 져서 어둘 때에 연기 나는 풀무가 보이며 타는 횃불이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더라 18 그 날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으로 더불어 언약을 세워 가라사대 내가 이 땅을 애굽강에서부터 그 큰 강 유브라데까지 네 자손에게 주노니 19 곧 겐 족속과 그니스 족속과 갓몬 족속과 20 헷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르바 족속과 21 아모리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과 여부스 족속의 땅이니라 하셨더라”


쪼개진 짐승사이로 횃불이 지나간 것은 하나님께서 그 언약을 홀로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이 언약 체결을 통하여 씨와 땅에 대한 언약을 체결하셨습니다. 씨란 하늘에 별처럼 많게 할 것이라고 하신 약속을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땅은 지금 다윗이 진멸하여 정복하고 있는 그 땅들이 다 포함되는 지역입니다. 결국 그 약속의 땅을 다 차지한 사람이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은 다윗입니다.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이 천년 만에 이루어집니다. 그 씨에 대한 약속은 이천년 만에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는 그 땅마저 그리스도 안인 새 하늘과 새 땅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자기 언약이 이루어지는 일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불신앙과 불순종으로 일관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출애굽기 6:8~9. “8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기로 맹세한 땅으로 너희를 인도하고 그 땅을 너희에게 주어 기업을 삼게 하리라 나는 여호와라 하셨다 하라 9 모세가 이와 같이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하나 그들이 마음의 상함과 가혹한 노역으로 말미암아 모세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더라”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신다고 언약하신 그 땅을 너희에게 주어 기업을 삼게 하겠다고 하십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자손들이 모세의 말을 듣지 않습니다. 그러면 그 땅을 안 주십니까? 결국 주시고야 맙니다. 10가지 재앙을 보내시고 애굽 사람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밀어내게 하여서라고 그 약속을 이루십니다.


출애굽기 11:1~3. “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기를 내가 이제 한 가지 재앙을 바로와 애굽에 내린 후에야 그가 너희를 여기서 보낼찌라 그가 너희를 보낼 때에는 여기서 정녕 다 쫓아내리니 2 백성에게 말하여 남녀로 각기 이웃들에게 은, 금패물을 구하게 하라 하시더니 3 여호와께서 그 백성으로 애굽 사람의 은혜를 받게 하셨고 또 그 사람 모세는 애굽 국에서 바로의 신하와 백성에게 심히 크게 뵈었더라”


출애굽기 12:35~36. "35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의 말대로 하여 애굽 사람에게 은금 패물과 의복을 구하매 36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에게 이스라엘 백성에게 은혜를 입히게 하사 그들이 구하는 대로 주게 하시므로 그들이 애굽 사람의 물품을 취하였더라" 


신명기 1:6~8. “5 모세가 요단 저편 모압 땅에서 이 율법 설명하기를 시작하였더라 일렀으되 6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호렙산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여 이르시기를 너희가 이 산에 거한지 오래니 7 방향을 돌려 진행하여 아모리 족속의 산지로 가고 그 근지 곳곳으로 가고 아라바와 산지와 평지와 남방과 해변과 가나안 족속의 땅과 레바논과 큰 강 유브라데까지 가라 하셨나니 8 여호와께서 너희의 열조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사 그들과 그 후손에게 주리라 하신 땅이 너희 앞에 있으니 들어가서 얻을찌니라”

다윗은 다윗대로, 사울을 사울대로, 아기스는 아기스대로 자기 생각대로 살아가지만 결국 아브라함과 모세를 통하여 주어진 말씀들이 이렇게 이루어지고 있는 현장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만이 온전히 서게 됩니다.


이사야 40:1~11. “1 너희의 하나님이 이르시되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2 너희는 예루살렘의 마음에 닿도록 말하며 그것에게 외치라 그 노역의 때가 끝났고 그 죄악이 사함을 받았느니라 그의 모든 죄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손에서 벌을 배나 받았느니라 할지니라 하시니라 3 외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하게 하라 4 골짜기마다 돋우어지며 산마다, 언덕마다 낮아지며 고르지 아니한 곳이 평탄하게 되며 험한 곳이 평지가 될 것이요 5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육체가 그것을 함께 보리라 이는 여호와의 입이 말씀하셨느니라 6 말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외치라 대답하되 내가 무엇이라 외치리이까 하니 이르되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의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과 같으니 7 풀은 마르고 꽃이 시듦은 여호와의 기운이 그 위에 붊이라 이 백성은 실로 풀이로다 8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 하라 9 아름다운 소식을 시온에 전하는 자여 너는 높은 산에 오르라 아름다운 소식을 예루살렘에 전하는 자여 너는 힘써 소리를 높이라 두려워하지 말고 소리를 높여 유다의 성읍들에게 이르기를 너희의 하나님을 보라 하라 10 보라 주 여호와께서 장차 강한 자로 임하실 것이요 친히 그의 팔로 다스리실 것이라 보라 상급이 그에게 있고 보응이 그의 앞에 있으며 11 그는 목자 같이 양 떼를 먹이시며 어린 양을 그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먹이는 암컷들을 온순히 인도하시리로다”인생은 풀이며 그 영광은 풀의 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영원히 서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베드로전서 1:23~25절입니다. “23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24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25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영원한 말씀 곧 복음만이 영원합니다. 이 복음이 우리에게 들려지고 믿어졌다면 그 사람도 주의 영원함에 포섭이 된 것입니다. 이것을 은혜라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