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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상 29장 떠밀려 가는 인생 2014. 4. 13


지난주에 답답한 사울이 어디로 가는지를 보았습니다. 자신이 쫓아 버린 무당을 찾아가는 사울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모습을 보면서 선악간의 판단을 자기 나름대로 합니다. 하나님께서 금하시는 그런 일을 왜 했는가? 사람이 답답하면 그럴 수도 있겠다! 여러 가지 자기 기준에서 보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 상황에 서게 되었을 때에 우리인들 무당을 찾아가지 않겠습니까? 오늘 본문에서 보려고 하는 다윗도 자신의 의도와 달리 다른 사람들에 의하여 블레셋 군대에서 밀려나게 됩니다. 그래서 떠밀려 가는 인생입니다. 한 사람은 몰락의 길로 한 사람의 왕의 길로 떠 밀려갑니다. 이렇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자기 말씀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볼 때에 눈에 보이는 것은 무엇이 채워져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우리 눈으로 보이지 않는 부분은 빈 공간으로 봅니다. 그러나 비어있는 공간으로 보이는 곳도 공기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런데 공기가 없는 우주는 텅 비어 있을까요? 과학자들은 우리가 알 수 없는 물질들로 채워져 있다고 보는 자들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지구든 우주든 간에 보이는 것이나 보이지 않는 것이나 간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창조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모든 것들은 다 말씀대로 유지되고 말씀대로 결론 내려집니다. 그래서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간다고 합니다(롬11:36).


시편 19:1~6절입니다. “1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2 날은 날에게 말하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하니 3 언어도 없고 말씀도 없으며 들리는 소리도 없으나 4 그의 소리가 온 땅에 통하고 그의 말씀이 세상 끝까지 이르도다 하나님이 해를 위하여 하늘에 장막을 베푸셨도다 5 해는 그의 신방에서 나오는 신랑과 같고 그의 길을 달리기 기뻐하는 장사 같아서 6 하늘 이 끝에서 나와서 하늘 저 끝까지 운행함이여 그의 열기에서 피할 자가 없도다”해의 열기에서 피할 자가 없는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에서 피할 자가 없습니다.


28:1~2절입니다. “1 그 때에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과 싸우려고 군대를 모집한지라 아기스가 다윗에게 이르되 너는 밝히 알라 너와 네 사람들이 나와 함께 나가서 군대에 참가할 것이니라 2 다윗이 아기스에게 이르되 그러면 당신의 종이 행할 바를 아시리이다 하니 아기스가 다윗에게 이르되 그러면 내가 너를 영원히 내 머리 지키는 자를 삼으리라 하니라” 블레셋이 이스라엘과 싸우기 위하여 군대를 모집하였습니다. 다윗도 아기스 왕의 명으로 이 싸움에 참가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막간으로 사울이 무당을 찾아가는 장면이 나오고 나서 다시 블레셋이 이스라엘과의 전투소집의 장면이 연결되는 것이 오늘 본문입니다.


29:1~2. 블레셋 사람들이 그들의 군대를 아벡에 모았고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스라엘에 있는 샘 곁에 진을 쳤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의 수령들이 수백 수천씩 인솔하여 나아가고 다윗과 그의 사람들은 아기스와 함께 그 뒤에 나아갑니다. 이것은 전투 전에 열병식과 같습니다.


3~5. 블레셋 방백들이 다윗을 보고서 이 히브리 사람들이 무엇을 하려느냐고 합니다. 이들은 다윗은 전쟁에 함께 갈 수 없다고 말합니다. 이 말을 들은 아기스 왕이 다윗을 변호합니다. 이 사람은 이스라엘의 왕 사울의 신하이지만 나에게 망명하여 온 후로 오늘까지 그의 허물을 보지 못하였다고 합니다. 다윗이 이스라엘의 변방을 공격한 것으로 알고 있기에 이렇게 말합니다. 어떻든 아기스 왕이 다윗을 변호하고 나섭니다.


그러자 블레셋 방백들이 다윗을 왕이 정한 그 처소로 돌려보내라고 합니다. 그와 전쟁에 함께 갈 수가 없다고 합니다. 그가 자기 주와 다시 화합하기 위하여 우리의 머리를 베어 가서 그렇게 하지 않겠느냐고 합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춤추며 노래한 사울이 죽은 자는 천천이며 다윗은 만만이라고 노래한 그 다윗이기에 돌려보내라고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전쟁에 나가지 않을 태세입니다. 이들이 이렇게 말한 근거들은 충분하게 있습니다. 전에 블레셋과 이스라엘의 전투에서 블레셋에 속하여 블레셋의 용병으로 끌려온 히브리인들이 전세가 이스라엘에게 유리하게 돌아가자 블레셋을 배반하여 그들을 적이 된 적이 있습니다(삼상14:21). 그리고 다윗을 향한 이 노래가 나온 것도 블레셋 거인 골리앗을 물리치고 대승을 거둔 후에 나온 노래입니다. 또 사울이 다윗을 죽이기 위하여 자기 사위가 되려면 블레셋 사람의 포피 백 개를 원하였는데 다윗은 그 기한이 되기도 전에 포피 이백을 베어갔습니다(삼상 18:27). 이러한 사실을 아는 블레셋의 방백들이 반대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6~7. 아기스 왕에 다윗에게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살아계심을 두고 맹세한다고 합니다. 이것은 다윗의 하나님을 말하는 것이기에 아기스가 다윗에게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최상의 예우입니다. 네가 정직하여 내게 온 날부터 오늘까지 네게 악이 있음을 보지 못하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나와 함께 전쟁에 나아가면 좋겠지만 방백들이 반대하기에 너는 평안히 너의 있던 곳으로 돌아가라고 합니다. 아기스는 다윗을 데리고 가서 이스라엘과 싸우게 되면 더욱 확실하게 자신의 부하가 될 것으로 여겼지만 왕의 권위를 이겨버릴 정도로 방백들의 태도가 강경하였습니다. 만약 방백들이 반대하지 않았거나 반대하더라도 아기스 왕이 강하게 밀어붙이면 전쟁에 나갈 수도 있게 될 상황입니다. 이렇게 되면 이스라엘의 기름부음 받은 왕이 이스라엘을 공격해야 하는 진퇴양난의 위기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블레셋의 방백들이 적극적으로 다윗을 막아 나섭니다.


8~11. 다윗이 그 말을 듣고 좋다고 떠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아기스에게 충성하듯이 내가 오늘까지 당신 앞에서 무엇을 잘못하였다고 내 주 왕의 원수와 싸우지 못하게 하시느냐고 합니다. 그러자 아기스 왕은 다시 다윗을 보고 네가 하나님의 전령과 같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전령이란 하나님의 천사을 말합니다. 다윗을 보고 하나님의 천사와 같이 선한 것을 내가 알지만 블레셋 사람들의 방백들이 반대하니 전쟁에 나가지 말고 네가 있던 곳으로 가라고 합니다. 다윗은 아주 당당하게 그 전쟁에서 빠지게 됩니다.

만약 다윗이 이 전쟁에 나갔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사울이 이 전투에서 죽습니다. 그러면 다윗은 이스라엘 백성들 전체의 왕으로 세워질 수가 없게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자기 언약에 신실하시기에 블레셋 방백들의 마음을 움직여서라도 다윗을 그 전투에서 빼내어 주십니다. 이것을 저는 떠 밀려가는 인생이라고 표현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떠 밀려가는 것은 말씀에 의하여 떠밀려 가는 것이기에 온 우주만물에 주의 말씀이 충만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걸음이 우리에게 달린 것이 아니라 주님의 손에 달린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잠언16:9.“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

잠언19:21. “사람의 마음에는 많은 계획이 있어도 오직 여호와의 뜻만이 완전히 서리라”

렘10:23. “여호와여 내가 알거니와 사람의 길이 자신에게 있지 아니하니 걸음을 지도함이 걷는 자에게 있지 아니하니이다”

고전10:13.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요21:18~23 “18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모든 사람들은 자기의 뜻대로 가는 것이 아니라 떠미시는 분에 의하여 떠밀려 갑니다. 그러나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이루시기 위하여(응하게 하시려고, 요13:18, 15:25, 17:12, 18:9,32, 19:24,28,36 행13:27,29) 스스로 십자가로 걸어가셨습니다(요10:18). 그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고 하시고 그 영혼을 넘겨주신 자들은(요19:30) 이제 자기의 뜻대로 걸어갈 수 없는 자가 되었습니다. 주의 영이 임하지 않으면 이 세상의 신에 의하여 떠밀려 갑니다. 모든 자가 다 이 길로 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창세전에 택한 주의 백성들에게 주의 영을 넘겨주심으로 인하여 이제 우리도 십자가로 떠밀려 갑니다. 도망칠 수도 없는 길입니다. 이 길이 영원한 생명의 길입니다. 예수님이 들리심으로 우리를 떠밀 뿐 아니라 이끌어 가십니다(요12:32). 이렇게 주의 말씀(곧 영-요6:63)에 떠밀려 가는 자가 성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