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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상 30장 동일한 분배 2014. 4. 20


1~6. 다윗이 블레셋에 망명하였다가 이스라엘을 공격하여야 하는 위기에 처하였을 때에 하나님은 블레셋 방백들의 마음을 움직여서 다윗이 거처하든 시글락으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3일 만에 돌아왔는데 시글락은 아말렉 사람들에 의하여 불살라졌고 사람들은 다 사로잡혀 갔습니다. 다윗과 함께한 사람들 600명이 떠난 시글락은 여자와 노인들과 유아들만 있었기에 이들의 공격을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다윗과 그와 함께 한 사람들이 시글락의 황폐함을 보고 울 기력이 없을 정도로 울었습니다. 다윗의 아내들도 사로잡혀 갔습니다. 백성들이 자녀들 때문에 마음이 슬퍼서 다윗을 돌로 치자고 합니다. 이때 다윗이 크게 다급하였지만 그의 하나님 여호와를 힘입고 용기를 얻었습니다.


다윗에게 피하여 온 사람들이 사울의 체제에서 환난당하고 빚지고 마음이 원통한 자들입니다. 이들이 다윗을 따라 이곳저곳을 유리하며 다니지만 자신과 가족들이 다윗으로 인하여 보호를 받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자녀들이 포로로 잡혀간 것을 보고 다윗을 돌로 치자고 합니다. 이런 사건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시고자 하시는 것입니까? 물에 빠진 사람 건져주니 내 보따리 내 놓으라는 식입니다. 이런 모습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이며 또한 우리의 모습입니다.


세월호 사건을 통하여 자기 자녀들을 잃은 부모들의 원망들을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국가가 백성의 재산과 생명을 지켜준다며 세금을 내었습니다. 그런데 자신들의 자녀를 잃게 되자 모든 원망들을 정부에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정부를 누가 선택하였습니까? 자기들이 선택하였습니다. 정부가 백성들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줄 자로 여긴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정부라도 모든 재난을 다 막을 수는 없습니다. 물론 시스템 자체가 아직 후진국 수준이라서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고칠 수가 있고 좀 더 나아질 수 있습니다. 또 그렇게 만들어가는 일에 앞장설 정부를 선택하기도 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재난이 없을 수가 없습니다. 난리와 난리의 소문은 이 땅이 있을 동안 계속됩니다. 이런 세상에서 우리의 생명을 어디에 맡겨야 하겠습니까?


7~10. 다윗이 크게 다급하였지만 그의 하나님 여호와를 힘입고 용기를 얻었다고 합니다. 아히멜렉의 아들 아비아달 제사장에게 에봇을 가져오게 합니다. 다윗이 여호와께 이 군대를 추격하면 따라 잡을 수 있고 이길 수 있는지 묻습니다. 여호와의 대답이 반드시 따라잡고 도로 찾을 수 있다고 하십니다. 다윗이 따라잡고 도로 찾을 수 있는 것을 왜 하나님은 아말렉 군대에 의하여 이들의 가족과 소유가 다 빼앗기도록 하신 것입니까? 다윗과 함께한 자들의 실상을 드러냅니다. 동시에 다윗에게 약속하신 왕으로 세우실 것을 이루시기 위한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하여 이 일을 행하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만사는 우리 중심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는 것이 중심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로 통일시키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엡1:10). 다윗과 육백 명이 추격하다가 피곤하여 뒤처진 이백 명을 브솔 시내에 머무르게 하고서 사백 명을 데리고 계속하여 추격하여 갑니다.


11~15. 추격 중에 애굽 사람 하나를 만납니다. 아말렉 사람의 종이었는데 병이 들자 사흘 전에 버려짐을 당하였고 사흘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하여 죽기 직전의 사람이었는데 다윗이 먹을 것을 주어 정신을 차리게 합니다. 이 사람이 다윗에게 말하기를 시글락도 이들이 공격하였다는 말을 듣습니다. 그러자 다윗이 그 군대로 인도하겠느냐고 물으니 이 사람이 자신을 죽이지도 않고 그 주인에게 돌리지 않겠다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하면 인도하겠다고 합니다. 당연히 약속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병이 들고 주인에게 버림을 당한 것이 우연입니까? 결코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인도하기 위하여 미리 그렇게 일하신 것입니다. 이런 말씀에 여러분은 동의가 되는지 모르지만 성경은 모든 만물이 다 하나님의 다스림에서 벗어 날수 없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이 우연한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의하여 일어나는 필연입니다.


16~20. 그 사람이 다윗을 인도하여 아말렉 사람들을 추격하여 따라 갔습니다. 그들이 블레셋 땅과 유다 땅에서 크게 약탈하였습니다. 지금 블레셋과 이스라엘은 전쟁에 돌입하였기에 지방의 약탈에 대하여는 손쓸 틈이 없습니다. 그러니 이들이 탈취하여 가도 아무도 추격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먹고 마시며 춤추었습니다. 온 땅에 편만하였다는 말은 경비로 세우지 않고 자신들의 승리를 마음껏 즐기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때 다윗이 새벽부터 기습하여 그 다음날 저녁 까지 공격하니 낙타를 타고 도망간 소년 사백 명 외에는 피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아말렉 사람들이 빼앗아 간 모든 것을 도로 찾고 그의 두 아내도 찾고 한 사람도 잃어버리지 않고 다 찾게 되었습니다. 그 뿐 아니라 그들이 노략한 모든 전리품들도 다 다윗의 것이 되었습니다.


21~25. 다윗이 대승을 하고 돌아오는데 낙오병들이 마중을 합니다. 이때 다윗과 함께 간 사백 명 중에 악한 자와 불량배들이 우리와 함께 가지 않은 자들은 전리품을 줄 필요가 없다고 하면서 그들의 가족만 돌려주어 떠나게 하라고 합니다. 다윗이 이렇게 하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여호와께서 붙여주신 전쟁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악한 자와 불량배들은 피곤하여 전쟁에 참여하지 못한 자들에게 전리품을 주지 말자고 합니다. 이런 모습이 바로 자기 의라는 것입니다. 자기들은 목숨 걸로 싸웠는데 가만히 앉아 있다가 자기들과 함께 전리품을 받는다는 것은 공평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들의 말이 틀렸습니까? 아닙니다. 합당한 말입니다. 전쟁에 나가는데 피곤하지 않는 자들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런데 자기들은 그 피곤을 무릅쓰고 죽을 각오로 전쟁에 나갔으니 자기들의 공로를 주장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런데 다윗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여호와께서 붙여주신 전쟁이기에 전장에 나간 자라 소유물 곁에 있었던 자나 분깃이 동일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을 이스라엘의 율례와 규례로 삼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의 방식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은 다윗이 말한 이 율례와 규례가 통하는 나라입니까? 전혀 아닙니다. 악한 자와 불량배들이 말한 나라입니다. 자기 능력이 안 되는 자는 굶어죽으라는 세상입니다. 이런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하여서는 어떻게 하든지 경쟁하여 자기의 소유를 확보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세상에 우리가 내 몰리다 보니 우리나 우리의 자녀들은 경쟁하기에 바쁩니다. 어른들이나 아이들이나 스트레스가 가득합니다. 건드리기만 하면 폭발할 지경입니다. 이것이 자본주의라는 나라의 실상입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을 믿는다는 사람들이 자본주의가 마치 성경적인 것처럼 말합니다. 그러니 교회마저 자본주의 속성에 붙잡혀 있습니다.


그러면 공산주의를 하자는 말이냐고 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공산주의는 이미 이 역사 속에서 망했습니다. 공산주의가 망한 가장 큰 이유는 인간의 탐심을 간과한 것입니다. 이들은 인간도 물질로 보았기에 사회의 제도를 고치면 공평한 세상이 될 줄로 알았습니다. 그런데 인간의 제도로 공편한 사회를 결코 만들 수 없습니다. 공동생산 공동분배를 하려고 하니 능력 있는 자들이 열심을 내지 않습니다. 내가 힘껏 노력해도 내 것이 되지 않기에 대충한 것입니다. 그래서 망한 것입니다. 그런데 자본주의는 자기의 능력대로 가져가는 것입니다. 오늘날 자본주의의 승리를 말하지만 이것을 말하는 사람이 오늘 본문에서 악한 자와 불량한 자들이라는 말입니다. 여호와의 붙여주신 전쟁의 의미를 모르는 자들, 하나님의 은혜를 모르는 자들이 악한 자며 불량한 자들입니다. 그러고 보니 우리 모두는 다 이 악한 자들이며 불량한 자들입니다. 이런 세상을 그대로 고정시키고 죽지 않게 하고 불을 붙여 버리면 지옥이 됩니다.


다윗이 말한 전쟁에 참여한 자나 전쟁에 참여하지 않은 자가 동일한 분배를 말한 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전쟁이 붙여주신 전쟁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능력으로 이긴 것이 아니기에 자기의 것이라고 주장할 수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우리가 사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알고 내 것을 내 것이라고 주장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사람의 제도나 법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주의 성령으로만 됩니다. 정말 성령이 충만하게 되면 자기의 소유를 자기의 것이라고 하지 않는 일이 일어납니다.


사도행전 4:32절입니다. “믿는 무리가 한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자기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이것이 성령 충만의 결과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온갖 성령운동을 한다는 사람들이 많지만 정말 자기의 소유를 조금도 자기의 것이라고 하지 않는 자들이 있습니까?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결국 자기의 것이 하나도 자기의 것이 아님을 철저하게 만들어 내시고야 데리고 가십니다. 그래서 나는 없습니다. 주님이 전부입니다. 이 고백을 이 역사 속에서 받아내시는 분이 주님이십니다. 이것이 외부로는 환난으로 보이지만 실상은 질투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26~31. 다윗이 전리품을 유다 장로들에게도 보냅니다. 그 지역이 열 세 곳이나 됩니다. 평소에 다윗과 소통이 되는 지역들 입니다. 이런 모습으로 보고 다윗이 유대인들에게 환심을 사서 장차 왕으로 등극하는 일에 도움이 되기에 이렇게 하였다고 보기도 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어떻게 기록하고 있습니까? 26 절에서 여호와의 원수에게서 탈취한 것을 너희에게 선사한다고 합니다. 전쟁에 나가지도 않았던 자들까지 그 전리품을 받음으로 여호와의 전쟁이 어떠한 것인지를 보여주는 내용입니다.


마태복음 20:1~16절입니다. “1 천국은 마치 품꾼을 얻어 포도원에 들여보내려고 이른 아침에 나간 집 주인과 같으니 2 그가 하루 한 데나리온씩 품꾼들과 약속하여 포도원에 들여보내고 3 또 제삼시에 나가 보니 장터에 놀고 서 있는 사람들이 또 있는지라 4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내가 너희에게 상당하게 주리라 하니 그들이 가고 5 제육시와 제구시에 또 나가 그와 같이 하고 6 제십일시에도 나가 보니 서 있는 사람들이 또 있는지라 이르되 너희는 어찌하여 종일토록 놀고 여기 서 있느냐 7 이르되 우리를 품꾼으로 쓰는 이가 없음이니이다 이르되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하니라 8 저물매 포도원 주인이 청지기에게 이르되 품꾼들을 불러 나중 온 자로부터 시작하여 먼저 온 자까지 삯을 주라 하니 9 제십일시에 온 자들이 와서 한 데나리온씩을 받거늘 10 먼저 온 자들이 와서 더 받을 줄 알았더니 그들도 한 데나리온씩 받은지라 11 받은 후 집 주인을 원망하여 이르되 12 나중 온 이 사람들은 한 시간밖에 일하지 아니하였거늘 그들을 종일 수고하며 더위를 견딘 우리와 같게 하였나이다 13 주인이 그 중의 한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친구여 내가 네게 잘못한 것이 없노라 네가 나와 한 데나리온의 약속을 하지 아니하였느냐 14 네 것이나 가지고 가라 나중 온 이 사람에게 너와 같이 주는 것이 내 뜻이니라 15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 것이 아니냐 내가 선하므로 네가 악하게 보느냐 16 이와 같이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 이것이 천국입니다. 그런데 다윗과 함께 한 자들 중에 악한 자와 불량배들은 하나님의 선하심이 악하게 보이는 자들입니다.


로마서 4:1~8절입니다. “1 그런즉 육신으로 우리 조상인 아브라함이 무엇을 얻었다 하리요 2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 3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진바 되었느니라 4 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이 은혜로 여겨지지 아니하고 보수로 여겨지거니와 5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하지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6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복에 대하여 다윗이 말한 바 7 불법이 사함을 받고 죄가 가리어짐을 받는 사람들은 복이 있고 8 주께서 그 죄를 인정하지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으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홀로 여호와의 전쟁을 하십니다. 그 전쟁의 승리가 십자가입니다. 그 십자가로 다 이루심으로 우리에게 의롭다 함을 넘겨주십니다. 일을 안 한 정도가 아니라 악만 행한 자들인데 여호와의 전쟁을 승리하신 주님께서 값없이 은혜로 의롭다함을 받은 것이 하나님의 선하심입니다. 이 은혜를 입은 자는 결코 자기의 공로를 주장할 자가 없습니다. 목숨을 바쳐 순종하였을지라도 주님의 은혜가 이렇게 하였다는 고백이 나올 수밖에 없는 자들입니다. 이런 자들이 천국의 사람들입니다. 이 은혜가 우리에게도 임하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