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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하 2:1~3:1 헤브론으로! 2014. 5. 18


2:1. 사울이 죽었습니다. 다윗은 이미 사무엘로부터 기름부음을 받은 자입니다. 그러면 온 이스라엘에 자신이 기름부음 받은 자임을 알리고 왕으로 등극하면 됩니다. 그런데 다윗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다윗이 여호와께 유다의 한 성읍으로 올라가도 되느냐고 묻습니다. 올라가라는 응답을 받습니다. 다윗이 어디로 가야할지 다시 물었을 때에 여호와께서 헤브론으로 가라고 하십니다. 다윗이 무엇이나 이렇게 물었다는 것은 범사에 기도하였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기도란 나의 뜻을 이루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묻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헤브론으로 가라고 하셨는데 헤브론이 어떤 곳인지 상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헤브론은 아브라함이 롯과 헤어지고 난 후에 거주한 곳입니다. 롯은 그 지역의 도시들에 머무르면서 소돔에까지 이르게 됩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여호와께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고 하시면서 이 땅을 너희 후손에게 주시겠다고 하신 후에 장막을 옮긴 곳이 헤브론입니다. 이곳에서 거주하면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았습니다(창13:14~18). 그리고 아브라함이 사라의 무덤을 마련하기 위하여 마므레 앞 막벨라 굴과 그 밭을 구입하였습니다. 마므레가 바로 헤브론입니다(창23:19). 이곳에 아브라함과 이삭과 리브가와 야곱과 레아가 다 묻히는 곳입니다. 이삭과 야곱의 무덤만 되는 곳이 아니라 이삭과 야곱도 헤브론을 중심으로 살았습니다(창35:27, 37:14).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약속하신 땅의 중심으로 올라가게 하십니다.


여호수아 14:11~15절입니다.“11 모세가 나를 보내던 날과 같이 오늘도 내가 여전히 강건하니 내 힘이 그 때나 지금이나 같아서 싸움에나 출입에 감당할 수 있으니 12 그 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지금 내게 주소서 당신도 그 날에 들으셨거니와 그 곳에는 아낙 사람이 있고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할지라도 여호와께서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들을 쫓아내리이다 하니 13 여호수아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을 위하여 축복하고 헤브론을 그에게 주어 기업을 삼게 하매 14 헤브론이 그니스 사람 여분네의 아들 갈렙의 기업이 되어 오늘까지 이르렀으니 이는 그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온전히 좇았음이라 15 헤브론의 옛 이름은 기럇 아르바라 아르바는 아낙 사람 가운데에서 가장 큰 사람이었더라 그리고 그 땅에 전쟁이 그쳤더라”


그나스 사람 여분네의 아들 갈렙은 유다지파에 편입된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약속의 땅을 믿음으로 들어갔습니다. 이런 믿음이 있었다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임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헤브론을 정복하였을 때에 그 땅에 전쟁이 그쳤다고 합니다. 아직 정복을 하려면 까마득합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서 약속하신 그 땅을 다 차지하기 까지는 약 5백년이라는 세월이 더 지나서 다윗 때에 다 정복하게 됩니다. 그런데 갈렙이 헤브론을 정복함으로 전쟁이 그쳤다고 하는 것은 이미 승리의 깃발이 세워졌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헤브론은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 믿음으로 차지한 땅입니다. 다윗을 하나님께서 이곳으로 가게 하시는 것은 하나님께서 자기 약속을 이루어내시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2~3. 다윗의 두 아내 이스르엘 여인 아히노암과 갈멜 사람 나발의 아내였던 아비가일을 데리고 헤브론으로 갑니다. 나발이 갈렙의 후손입니다만 나발은 다윗의 무시하였습니다. 그런데 나발의 아내는 다윗의 사적인 복수를 막아 나선 지혜로운 여인이었습니다. 나발이 죽고 나자 다윗에게로 시집와서 다윗과 함께 헤브론으로 갑니다. 이들만이 아니라 다윗의 추종자들과 가족들이 다 함께 헤브론으로 갑니다.


4. 헤브론에서 유다 사람들이 다윗에게 기름 부어 유다 족속의 왕으로 삼습니다. 다윗은 이미 사무엘로부터 기름 부음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때는 비밀리에 기름부음을 받았습니다. 이제는 헤브론에서 유다 족속의 왕으로 공식적인 기름부음을 받습니다. 이 헤브론에서 칠년 육 개월을 지난 후에 예루살렘으로 가서 이스라엘 전체의 왕으로 다시 기름부음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자기 뜻을 이루어가고 계십니다. 이 일에 다윗의 편에 서는 자들과 다윗을 대적하는 편으로 나누어집니다. 이러한 일들도 장차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어질 일들을 미리 보여주고 있습니다. 누가 다윗과 함께 하는지 대적하는지를 보면서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자와 대적하는 자와 다윗 편에 있으면서도 자신의 사욕을 채우는 자들이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는지를 볼 수 있습니다.


5~7. 사울의 시신을 블레셋에서 수습하여 와서 장사를 지낸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에게 다윗이 전령을 보내어 사울에게 은혜를 베풀었기에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은혜와 진리를 베푸시를 원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자신도 이 선한 일을 갚겠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유다 족속이 자신에게 기름 부었다는 소식을 전함으로 자신이 어떠한 왕인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사울에 속한 모든 자들도 여호와의 은혜와 진리로 들어오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이것은 단지 다윗의 정치적인 야망으로 해석하는 사람도 있기는 합니다만 다윗에게 기름 부으신 하나님께서 이렇게 이끌어 가고 계십니다. 나를 죽이려고 한 자와 그를 따르는 자들에게 은혜와 진리를 빌어주겠습니까? 이러한 모습이 십자가의 사랑이며 이 사랑을 받은 스데반의 모습들이 기름부음 즉 성령의 일입니다.


8~11. 다윗이 헤브론에서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았는데 사울의 군 사령관 아브넬은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을 데리고 마하나임으로 건너가 온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웁니다. 마하나님은 요단강 동편입니다. 사울의 근거지는 여부스인데 이곳에서 요단동편으로 옮기면서 유다지파와 대항하기 위한 결집으로 보입니다. 한 나라에 왕이 둘이 되었습니다. 아브넬은 다윗이 왕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사무엘하 3:9~10절입니다.“9 여호와께서 다윗에게 맹세하신 대로 내가 이루게 하지 아니하면 하나님이 아브넬에게 벌 위에 벌을 내리심이 마땅하니라 10 그 맹세는 곧 이 나라를 사울의 집에서 다윗에게 옮겨서 그의 왕위를 단에서 브엘세바까지 이스라엘과 유다에 세우리라 하신 것이니라 하매”그런데도 이스보셋을 왕으로 추대한 것은 자신이 권력을 가지고 싶었던 것입니다. 이스보셋은 아브넬이 사울의 첩을 취하였다고 한마디 하였다가 아브넬이 이 말을 하자 이스보셋은 두려워서 한말도 못합니다. 그리스도가 누구인지 알면서도 그리스도를 따르지 않는 그 속성들을 아브넬을 통하여 볼 수가 있습니다.


12~17. 한 나라의 두 왕이 있다는 말은 전쟁이 일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아브넬과 이스보셋의 신복들이 마하나님에서 기브온에 이르고 요압과 다윗의 신복들도 기브온 못가에 이르러 싸우게 됩니다. 전면전 이전에 각 진영에서 12명씩 대표를 뽑아서 싸움이 일어났는데 24명이 다 죽습니다. 고대의 부조에 새겨진 그림을 보면 머리카락을 잡고 칼로 옆구리를 찌르는 장면이 있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다 죽고 나자 이제 전면적인 붙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사람들이 다윗의 신복들 앞에서 패하게 되었습니다.


18~23. 아브넬의 군대가 패하여 도망가는 중에 다윗의 군사인 아사헬이 아브넬을 추격합니다. 아사헬의 발이 들 노루같이 빠르다고 합니다. 아사헬이 아브넬만 추격하자 아브넬이 네가 나를 추격하지 말고 다른 청년 하나를 붙잡으라고 합니다. 네가 나를 추격하면 내가 너를 죽일 수밖에 없는데 그러면 어떻게 네 형 요압을 보겠느냐고 합니다. 그런데도 아사헬은 끝까지 아브넬을 추격하다가 아브넬에 의하여 죽임을 당합니다. 아브넬을 추격하던 자들이 아사헬의 죽음 앞에 멈추어섭니다. 아사헬이 이렇게 아브넬을 추격한 것은 공명심이 있었을 것입니다. 또한 사울 때문에 늘 쫓겨 다녔던 일로 인한 복수심도 있었을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는데 그 일에 다윗 편에 있는 자이든지 이스보셋 편에 있는 자이든지 각자가 자기의 이익을 따라 움직이고 있습니다.


24~28. 요압이 계속 추격하여 저녁때가 되었습니다. 아브넬이 요압에게 말하기를 언제까지 칼이 영원히 사람을 상하겠느냐고 하면서 이런 일이 일어날 줄 몰랐느냐고 합니다. 그러자 요압은 네가 먼저 말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에 서로 휴전을 하고 각자의 길로 돌아갑니다. 그러나 이 사건으로 요압은 아브넬을 죽일 마음을 품고 있다가 나중에 다윗에게 투항하러 왔을 때에 죽여 버립니다(3:27).


29~3:1. 전투 이후의 결과를 보면 다윗의 신복은 20명이 죽었고 아브넬에 속한 자는 삼백 육십 명이 죽었습니다. 처음 벌어진 이 전투로 시작하여 다윗은 점점 강하여 가고 사울의 집은 점점 약하여져 갑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다윗을 기름 부어 왕으로 세우는 일을 통하여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행하십니다. 하나는 아브람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를 세우시기 위한 통로를 만들어가고 계십니다. 그래서 헤브론과 갈렙의 믿음으로 통하여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의 언약과 믿음으로 이루어짐을 보여줍니다. 물론 이 믿음이란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약속의 믿음으로 이루어지는 일에 이스라엘 백성들의 악함이 어떠한지도 드러 내십니다. 하나님의 약속이나 믿음과 상관없이 사람들은 자기들의 이익과 자기들의 사적인 감정으로 움직이는 모습을 다윗의 신하들이나 이스보셋의 신하들이나 같은 모습을 보입니다.


그러나 간혹 자신의 사욕을 따르지 않고 다윗의 편에 서는 자들이 나옵니다. 이들은 말 그대로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여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동일하게 다윗 편에 선다고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자기의 이익을 위하여 서는 자들이 있고 어떤 자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되는 자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다윗 편에 서는 자들은 다른 이해득실을 따지지 않고 오히려 다윗을 위하여 희생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이런 자는 그야 말고 극소수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성경을 보시면 나는 과연 지금 그리스도의 편에 있는지 그리스도를 대적하는지를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요한복음 3:16~21절입니다. “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17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18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19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20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21 진리를 따르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 하시니라”


니고데모가 율법선생이지만 예수님 앞에 서니 아직 거듭나지도 못한 사람이었습니다. 거듭난 사람은 자신이 얼마나 어두임인지를 아는 자들입니다. 이런 자들은 빛으로 오게 됩니다. 빛으로 나아올수록 자신의 더러움이 더 드러납니다. 그러므로 이런 일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안에서 내가 행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이루어진 일이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주의 영으로 성경을 보시면 성경을 통하여 우리의 악함과 비참함을 신약만이 아니라 구약을 통하여서도 보게 됩니다. 그러므로 언약을 따라 주어진 그 믿음의 결국이 예수님을 믿는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