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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하 4장 왜 다윗의 편에 서는가? 2014. 6. 1


사무엘하 3장에서 아브넬이 하나님의 뜻을 이미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을 다윗에게로 돌리지 않고 이스보셋을 세워 왕으로 세운 것은 자신의 욕망을 위하여 행한 일입니다. 그런데 사울의 첩 리스바의 일로 사이가 틀어지자 그제야 이스라엘을 다윗에게 돌리고자 하였습니다. 이러한 아브넬을 다윗은 받아들였습니다만 요압이 사적인 복수심으로 아브넬을 살해합니다. 비록 요압에 의하여 살해당하지만 아브넬이 다윗 편에 서려고 한 것은 자신의 이해관계로 다윗의 편에 서려고 한 것입니다.


4:1~3. 아브넬의 죽음의 소식을 들은 이스보셋은 손의 맥이 풀렸고 온 이스라엘은 놀랐습니다. 사울의 아들에게 군 지휘관 두 사람이 형제인데 바아나와 레갑입니다. 이 사람들은 브에롯 사람들입니다. 브에롯은 기브온 족속이 여호수아에게 항복할 때에 속한 네 성읍중의 한 성읍입니다(수9:17). 이들이 베냐민 지파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4. 갑자기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의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므비보셋은 사울과 요나단이 전쟁에서 죽을 때에 유모가 데리고 도망가다가 아이를 떨어뜨려 두 발이 다 절게 되었습니다. 이 이야기의 등장은 이제 사울의 혈통에서 왕이 될 만 한 자가 없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렇게 됨으로 온 이스라엘이 다윗에게로 돌아오게 되는 것이 5장의 내용입니다. 그런데 그 틈 사이에 레갑과 바아나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5~8. 레갑과 바아나가 이스보셋의 집에 이르니 그가 침상에서 낮잠을 자고 있습니다. 이 두 사람이 이스보셋의 목을 베어 마하나임에서 헤브론까지 밤새도록 달려서 다윗에게 가져옵니다. 그리고서 하는 말이 왕의 생명을 해하려고 하던 원수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의 머리가 여기 있다고 하면서 여호와께서 오늘 우리 주 되신 왕의 원수를 사울과 그의 자손에게 갚으셨다고 합니다. 이들의 행위는 다윗에게 투항하면서 이스보셋의 머리를 가져왔기에 어떤 보상을 바랐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사울에 대한 원망이 들어 있을 수 있습니다. 이들이 기브온 족속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사울이 이스라엘의 민족적인 열정으로 이미 언약으로 편입된 기브온 사람들을 죽인 일이 있습니다. 이 일로 인하여 다윗 시대에 삼년 기근이 왔습니다(21:1). 자기들의 종족을 죽인 사울체제하에 어쩔 수 없이 살아가다가 이제 아브넬까지 죽고 나자 개인적인 복수는 물론이거니와 다윗으로부터 보상을 바라면서 이스보셋의 머리를 들고 온 것입니다.


그동안 다윗 주변에 몰려온 자들이 어떤 자들입니까? 사울이 살아있는 동안은 환난 당하고 빚지고 원통한 자들이 어쩔 수 없이 다윗에게로 피하여 왔습니다(삼상22:2). 이러한 자들 가운데서도 자기들의 의를 자랑하는 자들이 나왔습니다. 시글락에서 아모리 사람들을 추격할 때에 낙오병들에게 아무 것도 주지 말고 가족만 돌려주고 쫓아버리자고 한 자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자기들이 다윗에게 피하여 올 때의 형편을 잊어버리고 자기들이 다윗을 따라 힘들지만 전투에 끝까지 함께 했다는 그 공로를 가지고 있기에 이런 말을 한 것입니다.


이제는 사울이 죽고 아브넬과 이스보셋 마저 죽고 나자 본격적으로 사람들이 다윗에게로 옵니다. 그 이유는 대세가 어디로 흐르는지 알았기 때문입니다. 말로서는 여호와 하나님을 들먹이지만 자기 살기 위하여 다윗 편에 서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빈손으로 오지 않고 무언가 다윗에게 도움이 될 만 한 선물을 가지고 오려고 자기들이 섬기든 왕의 목을 베어서 들고 왔습니다. 이것이 사람들의 본성입니다.


우리나라의 근대사를 보아도 일제 강점기 때에 친일 한 사람들이 해방이 되어 미군정이 들어섰을 때에 얼른 미군 편에 섰습니다. 그러면서도 자신들은 나라를 위하여 한 일이라고 합니다. 자신의 권력과 이익을 따라 움직인 자들은 이 땅에서 지금도 잘 살아남아 있습니다. 오히려 나라를 위하여 자신을 희생하며 독립운동을 한 사람들은 그들의 재산까지 바쳤기에 그 후손들이 가난하게 살고 있음을 우리들이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어느 나라이건 세상의 나라들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이런 문제들을 안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다윗을 왕으로 세우심으로 하나님의 언약을 보여주는 나라는 이런 자들이 설 자리가 없음을 보여줍니다. 다윗의 자질이나 훌륭함으로 사울의 왕관을 가져온 아말렉 소년을 죽인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기름 부으심이 임하였기에 다윗이 그렇게 행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언약의 나라가 어떠함을 보여주는 역할을 다윗이 합니다. 그러므로 다윗 편에 오면서 자기들의 이해득실을 따라 오는 자들과 자기들의 공로를 들고 오는 자들을 다윗이 환영하는 것이 아니라 죽여 버린다는 사실입니다. 세상의 나라와 세상의 회사들과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줍니다. 레갑과 바아나가 아무리 주의 이름을 들먹이며 다윗을 자신의 주로 고백하여도 다윗은 이들을 죽여 버립니다.


9~12. 레갑과 바아나에게 다윗이 말합니다. 내 생명을 여러 환난 가운데서 건지신 여호와께서 살아계심을 두고 맹세합니다. 이 말은 다윗이 자신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는 것은 자신의 권모술수로 되는 것이 아님을 안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전에 사울의 죽음을 전한 자가 다윗에게 좋은 소식을 전하는 줄 알고 왔지만 그를 죽여 버렸다고 합니다. 하물며 악인이 의인을 그의 집 침상에서 죽인 것이겠느냐고 하면서 피 흘린 죄를 이 땅에서 없애야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두 사람을 죽이고 수족을 베어 헤브론 못 가아 달아 버립니다. 그리고 이스보셋의 머리는 헤브론에서 아브넬의 무덤가에 매장합니다.


오늘 제목이 왜 다윗의 편에 서는가? 입니다. 다윗의 편에 서려고 하는 자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거론하면서 나오지만 사울치하에서는 다윗의 편에 서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이미 살펴보았습니다만 다윗이 언제 죽을지 모를 정도로 사울의 추격을 피하여 이곳저곳으로 유리하며 도망 다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사울이 죽고 다윗이 이스라엘 전체의 왕으로 등극할 것이 가시화되기에 앞 다투어 다윗의 편에 서려고 합니다.


그렇다면 오늘 이 땅에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편에 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물론 기독교가 많은 욕을 얻어먹고 있지만 그래도 그 수가 어마어마합니다. 이 많은 사람들이 무엇 때문에 예수님을 믿는다고 예수님의 편에 서려고 나왔겠습니까? 예수님을 믿고 따른다는 것이 어떤 것이지 알고 따라 나선 것입니까? 여러분은 왜 기독교라는 종교를 택하였습니까? 과연 십자가 지신 예수님을 따르기 위하여 오셨습니까?


누가복음 14:25~35절입니다. “25 수많은 무리가 함께 갈새 예수께서 돌이키사 이르시되 26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 27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28 너희 중의 누가 망대를 세우고자 할진대 자기의 가진 것이 준공하기까지에 족할는지 먼저 앉아 그 비용을 계산하지 아니하겠느냐 29 그렇게 아니하여 그 기초만 쌓고 능히 이루지 못하면 보는 자가 다 비웃어 30 이르되 이 사람이 공사를 시작하고 능히 이루지 못하였다 하리라 31 또 어떤 임금이 다른 임금과 싸우러 갈 때에 먼저 앉아 일만 명으로써 저 이만 명을 거느리고 오는 자를 대적할 수 있을까 헤아리지 아니하겠느냐 32 만일 못할 터이면 그가 아직 멀리 있을 때에 사신을 보내어 화친을 청할지니라 33 이와 같이 너희 중의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34 소금이 좋은 것이나 소금도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35 땅에도, 거름에도 쓸 데 없어 내버리느니라 들을 귀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하시니라”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이 이런 것입니다. 그런데 과연 누가 스스로 이 길을 가겠습니까? 그러므로 교회는 줄기차게 이런 말씀을 전해야 합니다. 그러면 다윗 편에 서기 위하여 무언가 들고 오려고 한 자들은 다 나가떨어지게 됩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주님의 편에 서는 자가 있다면 이것은 주님께서 하신 일입니다. 그러므로 지금이라도 잘 계산해 보시고 왜 내가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지 도대체 무엇을 위하는지 계산해보시기 바랍니다. 지금이라도 안 되겠다고 싶으면 돌아서시는 것이 낫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 것은 나의 소유라는 것이 다 버려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버릴 능력이 없기에 주님께서 나의 소유라는 모든 것을 친히 차압해 가십니다. 이러한 주님 편에 서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