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하 9장  죽은 개 같은 나    2014. 7. 13
          
사무엘서가 역사서일까요? 예언서일까요? 유대인들이 볼 때에 예언서로 봅니다. 단지 세상의 역사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유대인들의 구약 분류는 크게 율법서(토라)와 예언서(느비임)와 성문서(크투빔)으로 나눕니다. 이 단어들의 머리글자를 합하여 ‘타낙’우리 말로 ‘정경’이라고 합니다. 이 분류로 나누면 율법서는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입니다. 예언서는 초기 예언서와 후기 예언서로 나누는데 초기 예언서는 여호수아, 사사기와 룻기, 사무엘서, 열왕기 이며 후기 예언서는 이사야, 예레미야와 예레미야 애가, 에스겔, 12소 예언서 이렇게 구분합니다. 그리고 성문서로는 시편, 욥기, 잠언서, 전도서, 아가서, 에스라와 느헤미야, 다니엘, 역대기로 분류합니다. 이렇게 하면 히브리어의 자음 22자와 같게 됩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역사가 기록된 것은 단지 역사를 기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예언을 담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9:1. 다윗이 사울의 집안의 남은 자를 찾습니다. 그 이유는 요나단으로 말미암아 그 사람에게 은총을 베풀기 위함입니다. 요나단과의 언약을 사무엘상 20:14~117절에서 봅니다. “14 너는 내가 사는 날 동안에 여호와의 인자하심을 내게 베풀어서 나를 죽지 않게 할 뿐 아니라 15 여호와께서 너 다윗의 대적들을 지면에서 다 끊어 버리신 때에도 너는 네 인자함을 내 집에서 영원히 끊어 버리지 말라 하고 16 이에 요나단이 다윗의 집과 언약하기를 여호와께서는 다윗의 대적들을 치실지어다 하니라 17 다윗에 대한 요나단의 사랑이 그를 다시 맹세하게 하였으니 이는 자기 생명을 사랑함 같이 그를 사랑함이었더라” 요나단과 다윗의 이 언약으로 인자 곧 은총을 베풀려고 합니다. 인자와 은총은 둘 다 ‘헤세드’입니다. 

세상의 나라는 왕으로 등극하면 반역의 씨를 말려버립니다. 그래서 구족(九族)을 멸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권력을 잡은 자는 반대 세력을 진멸합니다. 그런데 다윗은 요나단과의 언약을 토대로 사울 집안의 사람들을 찾아서 은총을 베풀려고 합니다. 이 은총을 입은 자는 자신이 죽어 마땅한 자임을 아는 자들입니다. 그런데 이런 자들은 다윗은 모든 것을 회복시켜주면서 왕의 식탁에서 먹게 합니다. 이것이 은총입니다. 

2~5. 사울의 집안에 시바라는 종이 다윗 앞으로 부름을 받아 사울의 집에 남은 자가 있는지를 묻습니다. 시바가 다윗 왕에게 아뢰기를 요나단의 아들 하나가 있는데 다리를 저는 자라고 합니다. 다리는 저는 이유는 길보아 전투 때 사울과 요나단이 함께 전사합니다. 이때 유모가 므비보셋을 안고 도망가다가 떨어뜨려 두 다리를 다 절게 되었습니다(삼하 4:4). 왕이 그를 어디에 있느냐고 묻자 로드발 암미엘의 아들 마길의 집에 있다고 합니다. 다윗이 사람을 보내어 므비보셋을 데려 옵니다. 

6~7. 사울의 손자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이 다윗에 엎드려 절합니다. 다윗이 므비보셋을 부르자 당신의 종이 여기에 있다고 말합니다. 다윗이 무서워하지 말라고 합니다. 므비보셋은 다윗의 의중을 아직 모릅니다. 그러므로 자신을 죽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였기에 무서워 떨었습니다. 이것을 보고 다윗이 무서워하지 말라고 하면서 네 아버지 요나단으로 인하여 은총을 베풀겠다고 하면서 사울의 모든 밭을 므비보셋에게 도로 줄뿐 아니라 항상 자신의 상에서 떡을 먹게 합니다. 이것은 왕의 가족으로 대우합니다. 적의 아들로서 죽어 마땅한 자인데 왕의 가족으로 대우를 받게 되었을 때에 므비보셋의 자기 인식이 어떠합니까?

8. 그가 절하여 이르되 이 종이 무엇이기에 왕께서 죽은 개 같은 나를 돌아보시느냐고 합니다. 므비보셋이 다윗의 은총을 입을 자격이 전혀 없음을 자신은 죽은 개와 같다고 합니다. 유대인들에게 개는 부정한 짐승입니다. 더구나 죽은 개라고 하는 것은 가장 부정한 자를 일컫는 말입니다. 저는 이러한 인식이 하나님과 원수 되었던 자가 하나님의 용서를 받았을 때의 인식이라고 봅니다. 다윗이 지금 하나님의 은총이 어떤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윗 자신도 사울에게 쫓겨 다닐 때에 자신을 죽은 개와 벼룩 같은 자라고 합니다(삼상 24:14). 

9~13. 왕이 시바에게 명하기를 사울과 그의 온 집에 속한 것은 다 네 주인의 아들에게 주었다고 합니다. 시바와 그 아들들과 종들은 므비보셋의 섬기게 하고 므비보셋은 왕의 상에서 먹도록 합니다. 므비보셋에게 미가라는 아들이 있습니다. 므비보셋이 항상 왕의 상에서 먹으므로 예루살렘에 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끝에 그는 두 발을 절었다고 합니다. 왕의 원수였던 사울의 손자일 뿐 아니라 두 다리까지 저는 자였기에 왕의 상에 참으로 어울리지 않는 자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요나단과의 언약을 따라 므비보셋을 항상 왕의 상에서 먹게 합니다. 이것은 다윗이 은혜를 갚을 줄 아는 그런 훌륭한 인간이라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장차 기름 부음 왕으로 자기 백성들에게 은총을 베푸실 그리스도를 보여주는 예언적인 행위입니다. 
 
마태복음 11:16~19절입니다. “16 이 세대를 무엇으로 비유할까 비유하건대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 제 동무를 불러 17 이르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슬피 울어도 너희가 가슴을 치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 18 요한이 와서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아니하매 그들이 말하기를 귀신이 들렸다 하더니 19 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 말하기를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하니 지혜는 그 2)행한 일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느니라” 

예수님의 식탁에 누가 함께 합니까? 세리와 죄인들입니다. 예수님을 의인을 부르시기 위하여 오신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시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예수님의 식탁에 참여되는 자들은 자신들이 죄인인줄 아는 자들입니다. 왕의 식탁에 참여한 므비보셋이 자신은 죽은 개와 같은 자라고 하였듯이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의 식탁에 참여하여 그의 살과 피를 먹는 자들은 자신이 하나님을 죽인 원수임을 압니다. 그러므로 인자가 온 것은 섬기려고 오신 것이 아니라 섬기려 하고 많은 사람을 대속하기 위하여 자기 몸을 주시기 위하여 오신 것입니다. 이러한 지혜를 아는 자는 그의 자녀들만이 압니다. 19절의 행한 일로 앞의 각주를 보면 그의 자녀들로 되어있습니다. 이러한 지혜는 하나님의 자녀들만이 압니다. 

마태복음 15:21~28절입니다. “21 예수께서 거기서 나가사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들어가시니 22 가나안 여자 하나가 그 지경에서 나와서 소리 질러 이르되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하게 귀신 들렸나이다 하되 23 예수는 한 말씀도 대답하지 아니하시니 제자들이 와서 청하여 말하되 그 여자가 우리 뒤에서 소리를 지르오니 그를 보내소서 2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하시니 25 여자가 와서 예수께 절하며 이르되 주여 저를 도우소서 26 대답하여 이르시되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27 여자가 이르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니 28 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 때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 

이 여자가 어떤 유대인들보다 믿음이 큰 자가 됩니다. 그 이유는 자신이 개와 같은 자로 인식하였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것이 은혜입니다. 자신이 주님 앞에 이러한 자임을 인식한 것이 은총을 입었기에 나오는 모습입니다. 사람들이 괴로운 이유는 자신이 사람들에게 정당한 인정을 받지 못한다는 것으로 괴로워합니다. 그런데 주님 앞에 나온 이 여인은 자신을 보고 개라고 말씀하시는 주님의 말씀에 옳다고 합니다. 이것이 가난한 심령입니다. 은총을 입은 심령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란 자신이 하나님의 과분한 사랑, 하나님의 자기 생명을 먹고 사는 자임을 아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모든 것은 다 은혜입니다. 도저히 받을 수 없는 죽은 개와 같은 자들이 그 영원한 사랑을 받아 사는 자들이 성도입니다. 

디모데전서 1:12~17절입니다. “12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13 내가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14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 15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16 그러나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체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17    영원하신 왕 곧 썩지 아니하고 보이지 아니하고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이 영원무궁하도록 있을지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