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하 12장     당신이 그 사람이라    2014. 8. 3

12:1~6. 여호와 하나님께서 범죄 한 다윗에게 나단 선지자를 보내십니다. 나단 선지자가 다윗의 범죄를 비유로 고발합니다. 부자와 가난한 사람의 비유를 말하면서 부자는 양과 소가 심히 많지만 가난한 자는 암양 새끼 한 마리뿐인데 그의 자식과 함께 먹고 마시며 그의 품에 누우므로 딸처럼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부자 집에 손님이 왔는데 이 부자가 가난한 집이 양의 새끼를 빼앗아 자기에게 온 사람을 대접하였다고 합니다. 이 말을 들은 다윗이 분노하면서 여호와의 살아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이 일을 행한 그 사람은 마땅히 죽을 자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양을 빼앗거나 훔친 것은 사형이 아니라 네 배로 갚으면 됩니다(출22:1). 그런데 다윗은 자기도 모르게 자기 자신에게 사형언도를 내립니다. 다윗은 율법도 알고 있지만 자신의 죄를 모릅니다. 그러므로 자기의 죄를 아는 자가 은혜를 입은 자입니다. 죄를 모르는 자는 죄의 용서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7~9. 나단이 다윗에게 말합니다. 죽어 마땅한 그 사람이 바로 당신이라고 합니다. 이 말을 들은 다윗의 반응은 두 가지 일 수 있습니다. 나단을 죽이든지 아니면 회개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윗이 회개를 하였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당신이 바로 그 사람이라고 하면서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베풀어 주신 은혜를 말씀하십니다. 목동인 다윗을 임금으로 세우신 모든 것을 말씀하시면서 네게 무언가 부족하였을 것 같으면 이것저것을 더 주었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여호와의 말씀을 업신여기고 우리아를 암몬 자손의 칼로 죽이고 그 아내를 빼앗았느냐고 책망을 합니다. 

여기서 다윗에게만 부족함이 없게 하셨을까요?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부족함이 없게 하신 걸까요?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부족함이 없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부족함을 느끼는 것입니까? 그 이유는 상대적인 빈곤이나 상대적인 박탈감으로 인한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가 있는 자는 부족하지 않다고 고백합니다. 시편 23편에서 여호와는 나의 목자 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다고 합니다. 이 시편이 다윗의 시편입니다. 그렇다면 이 고백은 범죄 이전일까요? 이후일까요? 그것은 잘 모르지만 다윗의 이러한 고백은 성령의 감동으로 여호와만이 자신의 목자임을 증거 하는 내용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무언가 부족하였다면 이것저것을 더 주셨을 겁니다. 그런데 지금 나의 형편을 이렇게 하신 것은 그것이 가장 적절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육체의 가시를 빼달라고 세 번이나 간구하였지만 하나님은 네 은혜가 네게 족하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고후12:9). 그래서 바울사도는 어떠한 형편에 있든지 자족함을 배웠다고 합니다(빌4:11). 자족에 대한 디모데전서의 말씀을 봅니다. 

디모데전서 6:3~10절입니다. “3 누구든지 다른 교훈을 하며 바른 말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관한 교훈을 따르지 아니하면 4 그는 교만하여 아무 것도 알지 못하고 변론과 언쟁을 좋아하는 자니 이로써 투기와 분쟁과 비방과 악한 생각이 나며 5 마음이 부패하여지고 진리를 잃어 버려 경건을 이익의 방도로 생각하는 자들의 다툼이 일어나느니라 6  그러나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은 큰 이익이 되느니라 7 우리가 세상에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8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9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10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이런 말씀에 진정으로 아멘이 되십니까? 아직 안 되신다면 앞으로 이 말씀이 아멘이 되는 삶이 되도록 하나님께서 이루어 가십니다. 다윗의 하나님의 우리의 하나님이라면 우리에게도 예수 그리스도로만 만족하도록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10~12. 여호와의 말씀을 업신여긴 것은 곧 여호와를 업신여긴 것입니다. 여호와를 업신여긴 행위가 우리의 아내를 빼앗아 네 아내로 삼았기에 여호와께서 다윗의 집에 재앙을 내리신다고 하십니다. 그 재앙의 내용들은 다윗의 집안에 칼이 영원토록 떠나지 않을 것이며 다윗의 아내가 백주에 네 이웃에게 주어 동침하게 할 것이라고 합니다. 다윗은 은밀히 행하였으니 다윗이 벌을 받는 것은 온 이스라엘 앞에 백주에 이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하십니다. 이 책망을 들은 다윗의 고백을 봅니다. 

13~15. 다윗이 나단에게 말합니다.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다고 합니다. 나단이 다윗에게 말하기를 여호와께서도 당신의 죄를 사하셨나니 당신이 죽지 않을 것이라고 합니다. 이 일로 인하여 여호와의 원수가 크게 비방할 거리를 얻었기에 당신이 낳은 아이가 반드시 죽을 것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다윗이 용서를 받았다고 했는데 왜 앞에서 말한 칼이 떠나지 않을 것이며 자신의 아내가 백주에 온 이스라엘 앞에서 동침하는 것을 보도록 하시는 것입니까? 이것이 무슨 용서입니까? 이런 의문이 듭니다. 이 의문에 대하여 한마디로 말씀을 드리면 용서를 받았기에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용서를 받지 않았다면 그 죄를 드러내지도 않습니다. 죄를 드러냄으로 용서가 현실이 됩니다. 병을 자랑하라고 합니다. 그러면 치유방법이 나온다는 말을 합니다. 그런데 병도 죄도 드러내기를 꺼려합니다. 그 이유는 사람들의 손가락질과 수군거림이 싫은 것입니다. 그러나 정말 용서 받은 자라면 자신의 죄가 까발려지는 것이 용서임을 압니다. 어두움이 빛으로 인하여 드러나는 것이 구원이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잔인해 보이기까지 한 처방이지만 이 길만이 생명의 길입니다. 

15~23. 다윗과 밧세바 사이에서 낳은 아이를 하나님께서 치십니다. 그러자 다윗이 금식하고 밤새도록 아이를 위하여 기도합니다. 그러나 이레 만이 아니가 죽자 다윗의 신하들이 아이가 죽은 것을 왕에게 고하지 않습니다. 아이가 아플 때에 금식한 왕이 죽었다면 더 상심이 될 것 같아서 아뢰지 않았는데 다윗이 신하들의 수군거림을 보고서 압니다. 그래서 아이가 죽었는지 묻자 그렇다고 하자 다윗은 씻고 음식을 차리게 하여 먹습니다. 신하들이 의아해 하자 다윗이 하는 말이 살아 있을 때는 혹시 여호와께서 나를 불쌍히 여기셔서 아이를 살려 주실까 하여 금식하였지만 이제 죽었으니 어찌 금식하겠느냐고 하면서 내가 그 아이에게로 가려니와 그 아이가 내게로 돌아오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결정을 받아들인 태도입니다. 우리는 이런 부분이 안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미 지나간 일을 아직도 마음에 칼처럼 품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결정임을 안다면 이제 벗어버리시기 바랍니다. 

24~25. 다윗이 밧세바를 위로하고 동침하니 다시 아들을 주셨습니다. 그의 이름을 솔로몬이라고 다윗이 짓습니다. 솔로몬은 아이의 죽음을 오히려 평강의 소식으로 받는 것입니다. 자신의 죄로 인하여 죽임을 당한 자가 우리아이기도 하지만 이 아이 이기도 합니다. 다윗 대신 죽은 자가 있기에 다윗은 평안을 누립니다. 그 이름이 솔로몬입니다. 하나님께서도 나단 선지자를 보내셔서 그 이름을 여디디야라는 이름을 주십니다. 그 뜻은 여호와께 사랑을 입음이라는 뜻입니다. 

26~31. 요압이 오랫동안 공략한 암몬의 랍바를 점령합니다. 그런데 그 결정적인 순간에 다윗이 공격하도록 하여 다윗의 이름으로 합니다. 요압이 그 이름을 가로채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이 그 성을 함락시키고 그 왕의 쓰던 보석 박힌 금 면류관을 씁니다. 이 두 가지 일을 통하여 다윗이 용서 받았음을 또한 보여주십니다. 

그런데 오늘 주목하려고 하는 것은 여호와의 택함을 입고 용서를 받는 자의 모습이 어떤 것인지 하는 것을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사무엘하 7장에서 영원한 언약을 체결하십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스스로 세우신 언약입니다. 이 언약의 신실함을 다윗에게 시행하고 있는 장면이 다윗을 신실하게 징계하시는 것입니다. 사람 막대기와 인생채찍을 사용하시는 것은 버림 받지 않은 증거입니다. 이것은 다윗의 자녀들만이 아니라 다윗 본인에게도 해당되는 것임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일들을 통하여 다윗의 죄가 백일하에 드러나는 것이 용서 받은 자의 모습입니다. 다윗은 이러한 일들로 통하여 자신의 어느 정도의 죄인인지를 알게 되고 그리하여 하나님의 일방적인 용서만이 그가 살길임을 알게 됩니다. 택함을 입은 자에게 임하는 복이 이런 복입니다. 이런 복을 누가 스스로 받으려고 하겠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이런 복을 자기 백성에게 주십니다. 우리의 죄가 말씀 앞에서 다 뽀록나게 하시는 것입니다. 

시편 51편을 봅니다. 

1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따라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 주의 많은 긍휼을 따라 내 죄악을 지워 주소서
2 나의 죄악을 말갛게 씻으시며 나의 죄를 깨끗이 제하소서 
3 무릇 나는 내 죄과를 아오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 
4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사오니 주께서 말씀하실 때에 의로우시다 하고 주께서 심판하실 때에 순전하시다 하리이다 
5 내가 죄악 중에서 출생하였음이여 어머니가 죄 중에서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6 보소서 주께서는 중심이 진실함을 원하시오니 1)내게 지혜를 은밀히 가르치시리이다 
7 우슬초로 나를 정결하게 하소서 내가 정하리이다 나의 죄를 씻어 주소서 내가 눈보다 희리이다 
8 내게 즐겁고 기쁜 소리를 들려 주시사 주께서 꺾으신 뼈들도 즐거워하게 하소서 
9 주의 얼굴을 내 죄에서 돌이키시고 내 모든 죄악을 지워 주소서 
10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2)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11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12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켜 주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 
13 그리하면 내가 범죄자에게 주의 도를 가르치리니 죄인들이 주께 돌아오리이다 
14 하나님이여 나의 구원의 하나님이여 피 흘린 죄에서 나를 건지소서 내 혀가 주의 의를 높이 노래하리이다 
15 주여 내 입술을 열어 주소서 내 입이 주를 찬송하여 전파하리이다 
16 주께서는 제사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드렸을 것이라 주는 번제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나이다 
17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 
18 주의 은택으로 시온에 선을 행하시고 예루살렘 성을 쌓으소서 
19 그 때에 주께서 의로운 제사와 번제와 온전한 번제를 기뻐하시리니 그 때에 그들이 수소를 주의 제단에 드리리이다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제사가 무엇인지 비로소 알았습니다.
당신이 바로 그 사람이라는 책망 앞에 
자신이 의인을 죽인 자임을 알고 애통하는 심령이 바로 하나님이 받으시는 상한 심령임을 압니다. 
이러한 은혜가 우리에게도 임하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