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하 14장    왕의 입맞춤      2014. 8. 17

사무엘하 14장은 압살롬이 암논을 살해하고 그술로 도망하여 3년이 지난 시점입니다. 다윗 왕의 마음이 압살롬을 향하여 간절합니다. 암논은 이미 죽었기에 왕이 위로를 받은 것을 지난주에 보았습니다. 이제 다윗의 마음이 압살롬에게로 향하는 것을 요압이 보고 드고아의 한 지혜로운 여인에게 할 말을 넣어줍니다. 할 말을 넣어주었다는 것은 왕이 압살롬을 향한 마음이 있으니 왕의 마음을 움직여 압살롬을 돌아오게 하라고 합니다. 이 이야기 속에 가장 중심적인 역할을 하는 사람은 이름 없는 드고아의 한 지혜로운 여인입니다. 이 여인을 등장시켜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 일에 있어서 왕인 다윗과 아들 압살롬과 군대장관 요압이 들러리로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경을 볼 때에 주인공처럼 보인다고 해서 그 사람의 업적이나 덕행을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과연 무엇을 계시하고자 하시는지에 마음을 두고 보아야 합니다. 

14:1~3. 다윗의 마음이 압살롬에게 향하는 줄 알고 요압이 압살롬을 데리고 오기 위하여 지혜로운 여인에게 상주처럼 상복을 입고 왕에게 말하라고 보냅니다. 말을 넣어주었다고 해서 토씨 하나까지 말한 것이 아닙니다. 핵심만 말하고 다윗 왕의 마음을 돌려서 압살롬을 돌아오게 하기 위한 말을 지혜롭게 전하게 됩니다. 

4~7. 여인이 다윗에게 아뢸 때에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간구합니다. 그 내용은 자신이 과부이며 두 아들이 있는데 아들 둘이 들판에서 싸우다가 말리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한 아이가 다른 아이를 죽였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온 족속이 일어나 동생을 죽인 자를 내 놓으라고 합니다. 이러한 자는 율법에 의하면 죽여야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법대로 하면 자신의 남편 씨가 끊어진다고 합니다. 

8. 다윗이 이 말을 듣고 여인에게 집으로 돌아가라고 합니다. 너를 위하여 명령을 내리겠다고 합니다. 이것은 다윗 자신에게 하는 말인데 아직 알아듣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보거나 설교를 들어도 자기 자신에게 하는 말인 줄 알아듣지 못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다윗도 왕으로서 백성들 사이에 그러한 일이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명령을 내리겠다고 합니다. 이것은 구체적은 언급은 없지만 비록 살인자이지만 하나 뿐인 아들로 남편의 대를 이어야 할 자식을 죽이지 못하게 하겠다는 명령으로 보입니다. 

9~11. 다윗이 이 말에 여인이 다시 간구합니다. 자신의 아들을 왕이 살려준다면 살인자를 살려주는 것이기에 왕과 왕위에 허물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러한 허물을 자기와 자기 아버지의 집으로 돌리겠다고 합니다. 그러자 왕이 누구든지 네게 말하는 자를 내게로 데려오라고 합니다. 그가 다시는 너를 건드리지 못하게 하겠다고 합니다. 여인이 왕에게 여호와를 기억하사 원수 갚는 자가 더 죽이지 못하게 하여달라고 합니다. 다윗이 여호와의 살아계심을 두고 맹세하면서 네 아들의 머리카락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겠다고 합니다. 

12~13. “12 여인이 이르되 청하건대 당신의 여종을 용납하여 한 말씀을 내 주 왕께 여쭙게 하옵소서 하니 그가 이르되 말하라 하니라 13 여인이 이르되 그러면 어찌하여 왕께서 하나님의 백성에게 대하여 이 같은 생각을 하셨나이까 이 말씀을 하심으로 왕께서 죄 있는 사람 같이 되심은 그 내쫓긴 자를 왕께서 집으로 돌아오게 하지 아니하심이니이다” 

여인이 다윗에게 돌 직구를 날입니다. 어찌하여 왕께서 하나님의 백성에게 대하여 이 같은 생각을 하셨는가 합니다. 왕이 살인자를 살려주겠다고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하고서는 왜 자기의 백성 곧 자기의 아들을 돌아오게 하지 않았느냐고 말합니다. 여기서 지혜로운 여인이 하는 이야기가 마치 나단이 다윗에게 비유로 말하면서 다윗의 죄를 책망한 내용과 비슷합니다. 나단이 부자와 가나한 자의 양의 비유로 그 죄를 말하고 나서 그런 자가 받을 벌을 말하였을 때에 바로 당신이 그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여인은 다윗에게서 비록 살인자 이지만 여호와의 이름으로 그를 보호하겠다는 말을 듣고 나서 왜 내 쫓긴 자를 왕께서 집으로 돌아오게 하지 않느냐고 말합니다.  

14. “우리는 필경 죽으리니 땅에 쏟아진 물을 다시 담지 못함 같을 것이오나 하나님은 생명을 빼앗지 아니하시고 방책을 베푸사 내쫓긴 자가 하나님께 버린 자가 되지 아니하게 하시나이다” 이 말씀의 ‘우리’ 안에 다윗도 들어가고 우리도 포함이 됩니다. 우리는 필경 죽습니다. 죽는 이유는 죄로 인하여 죽습니다. 죄의 삯이 사망이기 때문입니다(롬6:23). 마치 땅에 쏟아진 물을 다시 담지 못하는 것처럼 죽음은 사람이 어떻게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생명을 빼앗지 아니하시고 방책을 베풀어서 내 쫓긴 자가 하나님께 버린 자가 되지 아니하게 하신다고 합니다. 

이 여인의 이야기는 창세기 4장의 가인과 아벨의 이야기에서 아벨을 살인한 가인이 다른 자들에게 죽임을 당할 까 두려워할 때에 하나님께서 가인에게 표를 주셔서 막아 주신 것과 비슷합니다. 비록 살인자 이지만 하나님께서 돌보신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하물며 하나님의 은총을 입어 간음과 살인의 죄를 용서 받은 당신이 왜 당신의 아들을 불러들이지 않느냐는 말입니다. 이것은 다윗의 죄를 들추어내는 동시에 하나님의 자비를 알려주는 내용입니다. 그렇다고 가인이 구원받았느냐는 그런 이야기가 아닙니다. 다윗도 근본적으로는 가인과 다를 바 없는 자이지만 오직 하나님의 일방적인 은총으로 구원을 받았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다윗의 구원은 다윗의 훌륭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긍휼을 보여주는 구원입니다. 이 여인이 다시 다윗 왕에게 고합니다. 

15~17. “15 이제 내가 와서 내 주 왕께 이 말씀을 여쭙는 것은 백성들이 나를 두렵게 하므로 당신의 여종이 스스로 말하기를 내가 왕께 여쭈오면 혹시 종이 청하는 것을 왕께서 시행하실 것이라 16  왕께서 들으시고 나와 내 아들을 함께 하나님의 기업에서 끊을 자의 손으로부터 주의 종을 구원하시리라 함이니이다 17 당신의 여종이 또 스스로 말하기를 내 주 왕의 말씀이 나의 위로가 되기를 원한다 하였사오니 이는 내 주 왕께서 하나님의 사자 같이 선과 악을 분간하심이니이다 원하건대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왕과 같이 계시옵소서” 

다윗에게 최종적인 결정을 하도록 말합니다. 왕이 들으시고 구원하여 달라는 말과 왕의 말씀이 여인에게 위로가 되기를 원하며 왕이 하나님의 사자 같이 선과 악을 분간한다고 하면서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왕과 같이 계셔달라고 합니다. 지혜로운 여인의 말을 지금까지 듣고서는 다윗이 이제야 무슨 말인지 알아듣습니다.  

18~20. 왕이 여인에게 요압이 함께 하였느냐고 묻자 여인이 그렇다고 대답을 합니다. 요압이 이 일의 형편을 바꾸려고 이렇게 하였다고 합니다. 형편을 바꾼다는 것은 요압이 다윗 왕에게 충성하고자 다윗의 마음을 간파하고 압살롬을 돌아오게 하려고 이런 일을 했지만 그러나 하나님은 지혜로운 한 여인을 통하여 다윗의 죄를 고발하면서 네게 용서 받은 자임을 알고 압살롬에 대하여서도 그렇게 하라는 말씀입니다. 압살롬의 비록 아들이지만 살인자를 용납하는 것은 왕으로서 권위의 문제가 있기도 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미 지혜로운 여인과의 이야기를 통하여 법을 넘어서는 여호와의 뜻을 말해 버린 것입니다. 이제 그 여호와의 마음을 전해야 합니다. 

21~24. 왕이 요압에게 압살롬을 데려오게 합니다. 요압이 압살롬을 데리고 예루살렘에 왔지만 왕이 압살롬을 그의 집으로 가게하고 얼굴을 보지 않으려고 합니다. 압살롬은 돌아왔지만 왕의 얼굴을 보지 못하고 2년을 지냅니다. 왕은 아직 압살롬을 온전하게 용납할 수가 없다고 생각한 것으로 보입니다. 비록 지혜로운 여인을 통하여 여호와 하나님의 뜻이 어떠한지를 알았지만 왕의 위신을 생각하였는지 아니면 아버지로서 장남을 죽인 압살롬에 대한 미움이 남아있었는지 얼굴을 보지 않고 지냅니다. 이런 일들이 우리 가운데는 없습니까? 가족 관계나 교우의 관계나 목사와의 관계가 금이 가 있어서 얼굴도 보기 싫어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진리의 문제가 아니라 사적인 이해관계에 얽매어 원수처럼 얼굴도 보지 않고 지내는 사람들이 많을 것입니다. 이 지혜로운 여인의 말은 이 여인의 말이 아니라 지혜와 계시의 영으로 말한 것입니다. 

25~27. 압살롬의 아름다움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발바닥부터 정수리까지 흠이 없는 자라고 합니다. 그의 머리카락이 무겁다는 말은 머리털이 무성한 것입니다. 그리고 압살롬의 아들 셋과 딸 하나를 낳았는데 아들들의 이름이 없는 것으로 보아 어릴 때에 죽은 것으로 보입니다(삼상18:18). 그런데 딸의 이름은 다말이라고 하여 자기 누이의 이름을 기념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압살롬의 이 이 아름다움이 백성들의 인기를 얻게 됩니다. 이로 인하여 압살롬은 멸망의 길로 가게 됩니다. 나중에 압살롬의 머리카락이 나뭇가지에 걸려 요압의 창에 의하여 죽임을 당합니다(18:9). 머리카락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는 다윗의 말(14:11)과 달리 머리카락 때문에 나뭇가지에 걸려 죽임을 당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다윗을 반역한 결과이기도 합니다. 이 부분은 15장 이후에서 은총을 입은 자가 반역하는 것이 어떤지를 통하여 보도록 하겠습니다. 

28~32. 압살롬이 돌아온 지 2년이 되었지만 왕의 얼굴을 보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사람을 요압에게 두 번이나 보냈지만 요압이 오지 않자 요압의 밭에 불을 질러버립니다. 그제야 요압이 와서 왜 내 밭에 불을 질렀느냐고 하자 압살롬이 왕의 얼굴을 보지 못한다면 차라리 그술에 있는 것이 나았다고 합니다. 왜 나를 오게해 놓고서는 왕의 얼굴을 보지 모하게 하느냐고 하면서 만일 죄가 있으면 왕이 나를 죽이시는 것이 옳다고 합니다. 이 말을 듣고 요압이 왕에게 말하여 압살롬을 부릅니다. 압살롬이 다윗에게 나아와 그 앞에서 얼굴을 땅에 대어 절하니 왕이 압살롬과 입을 맞추었습니다. 

여기서 다윗은 다시 기름부음 받은 자의 역할을 합니다. 자신의 아들이지만 자신의 장남을 죽인 아들을 입을 맞추어 맞이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이유는 지혜로운 여인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그 말씀을 자신이 시행하겠다고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기 아들을 맞이합니다. 이것은 시편 2편12절을 생각나게 합니다. “그의 아들에게 입 맞추라 그렇지 아니하면 진노하심으로 너희가 길에서 망하리니 그의 진노가 급하심이라 여호와께 피하는 모든 사람은 다 복이 있도다”우리가 교회당에 들락거리는 것이 신앙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 분 앞에 굴복하는 것이 신앙입니다. 결국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 모든 것을 항복하게 되는 것이 성도의 여정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반항하고 반대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압살롬을 통하여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 아들에게 입 맞추는 것이 여호와께 피하는 복 있는 자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