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하 21장    잘못된 열심    2014. 10. 12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언약을 따라 하나님께서 열심히 일하심으로 이루어내시는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이러한 특징을 사울과 다윗을 통하여 계시하고 있는 것이 사무엘서입니다. 사울은 백성들이 원하여 세운 왕입니다. 백성들의 요구를 들어주다가 하나님의 언약을 배반하는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왕입니다. 다윗에게도 사람의 꾀들이 사울 못지않게 나타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신의 언약으로 만들어내실 나라가 어떤 나라인지를 이 두 왕의 모습을 통하여 알려주십니다. 

21:1. 다윗 시대에 연속 삼년 기근이 왔습니다. 약속의 땅에 기근이 왔다는 것은 하나님의 언약을 배반하였기 때문입니다. 신명기 28:23~24. “23 네 머리 위의 하늘은 놋이 되고 네 아래의 땅은 철이 될 것이며 24 여호와께서 비 대신에 티끌과 모래를 네 땅에 내리시리니 그것들이 하늘에서 네 위에 내려 마침내 너를 멸하리라”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다 지키지 못하면 여러 가지 재앙중의 하나가 비가 오지 않음으로 기근이 일어납니다. 삼년 동안 기근이 일어남을 보고 다윗이 여호와께 기도하니 여호와께서 알려주십니다. 기근의 이유는 사울과 피를 흘린 그의 집으로 인하였다고 하시면서 사울이 기브온 사람을 죽였다고 합니다.  

2. 기브온 사람은 아모리 사람으로 진멸의 대상이었습니다. 여호수아 9장을 보면 이들이 이스라엘을 대적하기 위한 가나안 연맹에 가입하지 않고 이스라엘에 화친을 요청하기 위하여 아주 멀리서 온 것처럼 위장하여 왔습니다. 여호와의 이름을 듣고 왔기에 자기들과 화친을 하자고 합니다. 그래서 여호수아가 화친 조약을 맺었는데 삼일 후에 가까이 있는 부족임을 알고 그들에게 왜 그랬느냐고 하자 그들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행하시는 전쟁에서 죽지 않기 위하여 그렇게 하였지만 이제 우리가 당신을 속였기에 처분대로 하라고 합니다. 그러자 그들을 하나님의 집을 위하여 물을 긷고 장작을 패는 종으로 삼았습니다. 이들이 비록 속여서 화친을 맺었지만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하여 받았기에 이들을 치지 못하게 하여 그들이 이스라엘의 백성가운데 거하게 되었습니다. 이들이 단지 종으로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다윗의 용사에 들어가는 자도 있었고(대상12:4)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와서는 성벽을 재건하는 일에도 앞장 선 자들이 있습니다(느3:7). 그런데 이들을 사울이 유다 족속을 위한 잘못된 열정으로 학살하였습니다. 

3~4. 다윗이 기브온 족속을 불러서 묻습니다. 내가 어떻게 속죄하여야 너희가 여호와의 기업을 위하여 복을 빌겠느냐고 합니다. 약속의 땅은 억울한 피를 흘리면 저주를 받게 됩니다. 억울한 피만이 아니라 가난한 소작농이 품삯을 받지 못하여 하늘을 향하여 호소하여도 그렇게 한 자가 벌을 받게 됩니다. 이러한 약속의 땅에서 억울한 피를 흘린 것으로 인하여 삼년간 비가 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다윗이 기브온 족속들에게 물으니 이들은 은금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사람을 죽이는 것도 자기들의 권한이 없다고 합니다. 그러자 다윗이 너희가 원하는 대로 해 주겠다고 합니다. 

5~6. 기브온 족속이 다윗 왕께 말하기를 우리를 학살하였고 우리를 멸하여 이스라엘 영토 내에 머물지 못하게 하려고 모해한 사람의 자손 일곱을 달라고 합니다. 그들을 여호와 앞에서 목매어 달겠다고 합니다. 왕이 내어 주겠다고 합니다. 여기서 기브온 족속을 통하여 나온 말을 통하여 하나님은 언약의 나라가 어떤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진멸당해 마땅한 기브온 족속이지만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하고 받아들여졌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들을 해치고 이스라엘의 영토 곧 약속의 땅에 머물지 못하게 하려고 학살한 사울과 같은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는 말씀입니다. 

7~9. 다윗의 사울의 집안에서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은 요나단과 언약했기에 그들에게 내어주지 않고 사울의 자녀들 중 일곱 명을 내어 줍니다. 사울이 기브온 족속 일곱 명만 죽인 것은 아닐 것입니다. 학살을 했으니 많은 자들을 죽였지만 일곱이라는 숫자를 요구합니다. 사울방식의 하나님의 나라 세우는 일은 아님을 보여줍니다. 그러므로 사울 집안의 일곱 명을 기브온 족속이 죽입니다. 그 날이 보리 추수를 하는 첫날이라고 합니다. 사울의 잘못된 열정이 이스라엘 전체를 곤란하게 하였습니다. 사울은 하나님의 나라를 언약중심으로 보지 않고 혈과 육의 나라로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의 혈과 육으로 세워지는 나라가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과 하나님의 일하심으로만 이루어지는 나라임을 알지 못하였기에 하나님의 언약과 반대되는 일을 한 것입니다. 사울과 같은 방식이 아님을 보여주시기 위하여 삼년 기근을 통하여 알게 하십니다. 

10~14. 사울의 아들들이 처형을 당하자 이 시신을 매장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저주 받은 죽음이며 또한 전시를 하였기에 매장하지 못한 시체를 리스바가 몇 달 동안 지킵니다. 보리 베는 시기는 비가 오지 않습니다. 비가 오기까지 시신을 밤낮으로 지킵니다. 낮에는 새가 밤에는 들짐승이 해하지 못하도록 지키는 소식을 다윗이 듣고서 이들의 뼈와 사울과 요나단의 뼈까지 수습하여 사울의 아버지 기스의 묘에 장사합니다. 그 후에야 하나님이 그 땅을 위한 기도를 들으셨다고 합니다. 비가 왔다는 말입니다. 

15~17. 블레셋과의 전투에 다윗이 피곤할 때에 거인족의 아들이 다윗을 죽이려고 합니다. 이때 아비새가 다윗을 도와 그를 물리칩니다. 다윗의 추종자들이 다윗에게 이스라엘의 등불이 꺼지지 않도록 전쟁터에 나오지 못하게 합니다. 이러한 전쟁은 다윗의 후기에 일어난 일로 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다윗의 용맹과 지략과 힘에 있는 것이 아님을 또 보여줍니다. 사울의 방식도 하나님의 나라는 아니며 다윗의 능력도 아님을 보여줍니다. 

18~22. 또 다른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거인들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골리앗과 같은 거인들 네 명이 다윗의 부하들에 의하여 죽임을 당한 것을 보여줍니다. 다윗만이 골리앗을 물리친 것이 아니라 다윗의 신하들도 골리앗과 같은 거인들을 물리친 것은 여호와의 전쟁이 어떠하지를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사울과 같은 방식도 아니고 다윗과 같은 방식도 아닙니다. 그런데도 사울의 집안을 폐하시고 다윗의 집안을 세우신 것은 하나님의 약속으로 인한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를 다닌다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위한다고 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다고 하면서 사울과 같이 열심히 하는 자들이 너무 많습니다. 이러한 잘못된 열심들이 오히려 하나님의 나라를 가리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사람들의 힘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낼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의 힘들을 부인하면서 이루어집니다. 

로마서 10:1~7절입니다. “1 형제들아 내 마음에 원하는 바와 하나님께 구하는 바는 이스라엘을 위함이니 곧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함이라 2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니라 3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 4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 5 모세가 기록하되 율법으로 말미암는 의를 행하는 사람은 그 의로 살리라 하였거니와 6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는 이같이 말하되네 마음에 누가 하늘에 올라가겠느냐 하지 말라 하니 올라가겠느냐 함은 그리스도를 모셔 내리려는 것이요 7 혹은 누가 무저갱에 내려가겠느냐 하지 말라 하니 내려가겠느냐 함은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모셔 올리려는 것이라”

하나님께 열심은 있지만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기에 자기 의를 세우기 위하여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사울의 모습이라는 말씀입니다. 믿음의 의란 자기가 열심히 하나님의 일을 이루어내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모셔 내리는 것도 아니고 무저갱에 내려가서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모셔 올리는 것도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열심히 해도 이런 일을 할 수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라는 것이냐고 반문할 것입니다. 

8~15절입니다. “8  그러면 무엇을 말하느냐 말씀이 네게 가까워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다 하였으니 곧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이라 9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10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11 성경에 이르되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12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 분이신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그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 13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14 그런즉 그들이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15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 

말씀이 마음에 있다고 합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세워진 새 언약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마음에 들어오게 됨으로 예수님을 믿고 주의 이름을 부르게 됩니다. 주의 이름을 부른다는 말은 자신은 도저히 믿을 수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누구든지 주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많은 구약의 인용들이 있습니다. 이런 말씀들은 결국 주님께서 자기의 약속을 예수 그리스도로 이루어내신 결과가 복음을 전하게도 하시고 그 복음을 듣고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하게도 하십니다. 이런 자들은 결단코 자기의 행위를 내세우지 못하는 자들입니다. 그저 값없이 의롭다 함을 받은 은혜만 말할 뿐입니다. 이런 자들이 어떻게 사울처럼 편을 가르고 내칠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같은 신앙의 고백이 나오면 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로마서 15:4~7절입니다. “4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된 바는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우리로 하여금 인내로 또는 성경의 위로로 소망을 가지게 함이니라 5 이제 인내와 위로의 하나님이 너희로 그리스도 예수를 본받아 서로 뜻이 같게 하여 주사 6 한마음과 한 입으로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노라 7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심과 같이 너희도 서로 받으라” 전에 기록된 것이 구약입니다. 구약이 우리의 교훈이 됩니다. 사울이 하나님과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다는 잘못된 열심은 하나님서 받아주신 기브온 족을 학살하는 일을 한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진멸당해 마땅한 우리를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받아 주셨다면 같은 고백을 하는 자를 받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복음은 안다고 하는 자들이 어느새 재판관이 되어 있는 경우를 너무 많이 봅니다. 이곳은 복음을 제대로 전하는 곳이고 저곳은 어떻고 하면서 온갖 판단을 하면서 잘라내기도 하고 비판하기도 합니다. 물론 다른 복음을 전하면 당연히 분별하셔야 합니다. 그러나 자신이 전적인 죄인이라서 나오는 것이 죄 뿐이기에 전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거저 주시는 십자가의 공로로만 의롭다 함을 받는다면 우리가 어찌 받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하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나만 하나님을 위한다는 엘리야의 착각에 빠지지 마시고 오직 하나님의 거저 주시는 은혜만 사모하는 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