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하 24장   다윗의 인구조사    2014. 11. 9 

24:1절을 봅니다. “여호와께서 다시 이스라엘을 향하여 진노하사 그들을 치시려고 다윗을 격동시키사 가서 이스라엘과 유다의 인구를 조사하라 하신지라” 다윗이 인구 조사를 한 것은 누가 시킨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시키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 일로 하나님께서 재앙을 내리신다는 이 말씀에 대하여 여러분은 어떤 마음이 드십니까? 하나님이 이럴 수가 있는가? 하나님은 완전히 자기 마음대로구나! 이런 마음이 들지 않습니까? 반면에 하나님은 자기 마음대로 하실 수 있는 분이신데 우리가 무슨 말을 하겠는가? 처분대로 하소서! 이런 자도 있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전자에 속합니까? 후자에 속합니까?  

다른 번역으로 보겠습니다. 표준 새 번역.“주께서 다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셔서, 백성을 치시려고, 다윗을 부추기셨다. "너는 이스라엘과 유다의 인구를 조사하여라."”공동번역. “야훼께서 다시 이스라엘에 진노를 내리실 일이 있어 다윗에게 이스라엘과 유다의 병적을 조사할 마음을 품게 하셨다.” 다른 번역을 보아도 여호와께서 다윗을 부추기셨고 인구조사 할 마음을 품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다윗에게 이런 마음을 주셔서 인구조사하게 하신 것은 여호와께서 다시 이스라엘을 향하여 진노하셨기 때문입니다. 여호와의 진노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드러나지는 않습니다. 이스라엘의 죄악인지 왕의 죄악인지 모르지만 진노하실 일이 있습니다. 그 진노의 내용은 드러나지 않지만 이 사건의 전개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무엇을 원하시는지를 보여주십니다. 

2~9. 왕이 요압에게 이스라엘 전체의 인구를 조사하여 자신에게 보고하라고 합니다. 요압이 왕에게 인구 조사를 하지 말도록 간청합니다. 그 이유는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백배나 더하게 하셔서 왕의 눈으로 보게 하시기를 원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왜 이런 일을 하려고 하느냐고 말립니다. 그러나 왕이 요압과 군 사령관들을 재촉하자 하는 수 없이 9개월 20일 동안 인구를 조사하여 보고하니 곧 이스라엘에서 칼을 빼는 담대한 자가 팔십만 명이요 유다 사람이 오십만 명이었더라고 합니다. 이 숫자는 전쟁터에 나갈 수 있는 숫자입니다. 이런 보고를 받자 말자 이것이 죄인 줄 알고 자신의 죄를 사하여 달라고 합니다. 

10. “다윗이 백성을 조사한 후에 그의 마음에 자책하고 다윗이 여호와께 아뢰되 내가 이 일을 행함으로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여호와여 이제 간구하옵나니 종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내가 심히 미련하게 행하였나이다 하니라” 인구 조사 마친 후에 자책이 일어난 것입니다. 다윗이 인구조사를 하고 싶은 마음이 이미 있었습니다. 자기의 힘을 과시하고 싶었고 이스라엘도 이러한 힘을 원한 것입니다. 그런데 요압이 말린 것은 이런 것이 죄임을 알게 하는 장치이지만 그러나 인간의 욕망은 바른 말을 경청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인구 조사를 역대기에서는 사탄이 충동하였다고 합니다(대상 21:1). 다윗이 사탄의 충동을 받아들인 것을 하나님께서는 그대로 두셔서 이들의 죄가 무엇인지 알게 하시고 그런 죄로 인하여 재앙이 내리는 것이 무엇인지 보여주시면서 그런 죄를 속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보여주시는 것이 본 장의 전체 내용입니다. 

출애굽기 30:11~16절입니다. “1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12 네가 이스라엘 자손의 수효를 조사할 때에 조사 받은 각 사람은 그들을 계수할 때에 자기의 생명의 속전을 여호와께 드릴지니 이는 그들을 계수할 때에 그들 중에 질병이 없게 하려 함이라 13 무릇 계수 중에 드는 자마다 성소의 세겔로 반 세겔을 낼지니 한 세겔은 이십 게라라 그 반 세겔을 여호와께 드릴지며 14 계수 중에 드는 모든 자 곧 스무 살 이상 된 자가 여호와께 드리되 15 너희의 생명을 대속하기 위하여 여호와께 드릴 때에 부자라고 반 세겔에서 더 내지 말고 가난한 자라고 덜 내지 말지며 16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서 속전을 취하여 회막 봉사에 쓰라 이것이 여호와 앞에서 이스라엘 자손의 기념이 되어서 너희의 생명을 대속하리라”   

처음 인구 조사는 출애굽기입니다. 여호와께서 명하여 인구를 조사하라고 하시는데 20세 이상 조사를 하는데 그 들은 동일하게 대속을 위한 속전을 바치게 합니다. 그 속전은 회막 봉사를 위하여 사용되는데 그 속전으로 생명을 대속한다고 합니다. 인구를 조사하는데 왜 속전을 드려야 합니까? 저는 이 말씀을 보면서 인간은 존재만으로도 죄라는 것입니다. 타락한 인간은 존재만으로도 죄인이기에 생명의 속전을 바치지 않으면 살 수가 없는 자들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런 인간의 수를 헤아려 자기의 힘으로 삼으려고 하는 것이 바로 죄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처음 인구 조사를 명하시면서 단 한 사람도 예외 없이 빈부의 차별이 없이 동일한 속전을 내게 한 것은 어떤 인간도 그 존재자체로 의로운 자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모두가 속죄를 받아야 합니다. 

민수기 1:1~4절입니다. “1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나온 후 둘째 해 둘째 달 첫째 날에 여호와께서 시내 광야 회막에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회중 각 남자의 수를 그들의 종족과 조상의 가문에 따라 그 명수대로 계수할지니 3 이스라엘 중 이십 세 이상으로 싸움에 나갈 만한 모든 자를 너와 아론은 그 진영별로 계수하되 4 각 지파의 각 조상의 가문의 우두머리 한 사람씩을 너희와 함께 하게 하라” 

민수기는 말 그대로 인구를 조사한 내용입니다. 출애굽 한 수를 조사하니 603500명입니다. 이들이 광야 40년을 지난 후에 이 계수에 들어간 자 중에 남은 자는 2명뿐이었습니다. 그리고 20세 이하의 자손들이 자라서 601730명이 됩니다(민26:51). 처음 인구 계수에 들어간 자 중에 약속의 땅에 들어간 자가 단 2명입니다. 모세조차 탈락이 된 것은 오늘 오전에 보았습니다. 인간의 수나 힘으로 들어갈 수 없는 나라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온유한 자 곧 자신의 힘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의 약속만 신뢰하는 자를 말합니다. 그런데 다윗과 이스라엘은 자신들의 힘을 과시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이런 모습을 그대로 두시자 다윗은 인구를 조사한 것입니다. 이것은 자기의 힘을 의지하고자 함이기에 온유하지 못한 것입니다.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도 늘 인구를 조사합니다. 어떤 모임을 가지면 우선 휘 둘러보고 사람의 수를 봅니다. 경기도 모임에서 서울의 유명한 교회에 나가는 분들의 이야기입니다. 저의 설교를 들어보라고 아는 사람들에게 권하였다고 합니다. 그러자 어디에 있는 교회냐고 묻더랍니다. 그러자 창원이라고 하니 창원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오겠느냐는 표정이더라고 합니다. 그리고 다시 묻는 것이 몇 명이 모이냐고 묻더랍니다. 그러자 백 명 조금 넘는 것 같더라고 말하자 완전 무시하는 태도라고 하였습니다. 그 교회는 한국에서 존경받는 목사로 수천 명이 출석하는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숫자를 힘과 진리로 여기는지 보여주는 단면입니다. 

오늘 우리도 이런 식의 마음을 다 가지고 있습니다. 존재만으로도 저주를 받아 마땅하기에 속전을 바쳐야 하는 인생들이 숫자의 힘을 믿는다는 말입니다. 이사야 2:22절을 보시면 인생의 호흡은 그 코에 있기에 수에 칠 가치조차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사람의 수를 힘으로 여기고 그 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것을 죄라고 합니다. 여호와의 전쟁에 사람의 수나 말과 병거가 아무 소용이 없음을 이스라엘을 통하여 보여주셨지만 다윗 왕도 인구를 조사한 것은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신뢰를 하지 못한 것입니다. 

사무엘상 14:6절입니다. “요나단이 자기의 무기를 든 소년에게 이르되 우리가 이 할례 받지 않은 자들에게로 건너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일하실까 하노라 여호와의 구원은 사람이 많고 적음에 달리지 아니하였느니라”  사무엘상 17:47절입니다.“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에게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 요나단과 다윗의 신앙고백이 이러합니다. 이런 고백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런데 이런 은혜를 베풀지 않으시고 그대로 내 버려두시면 인간들은 바로 사람의 힘을 의지할 수밖에 없는 자들이 됩니다. 

이사야 31:1~3절입니다. “1 도움을 구하러 애굽으로 내려가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그들은 말을 의지하며 병거의 많음과 마병의 심히 강함을 의지하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앙모하지 아니하며 여호와를 구하지 아니하나니 2 여호와께서도 지혜로우신즉 재앙을 내리실 것이라 그의 말씀들을 변하게 하지 아니하시고 일어나사 악행하는 자들의 집을 치시며 행악을 돕는 자들을 치시리니 3 애굽은 사람이요 신이 아니며 그들의 말들은 육체요 영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그의 손을 펴시면 돕는 자도 넘어지며 도움을 받는 자도 엎드러져서 다 함께 멸망하리라”우리가 늘 이러한 자들이기에 하나님은 자기의 백성들을 사랑하셔서 힘을 빼도록 조치하십니다. 그렇게 힘이 빠져서 주님만 의지하게 되는 자를 온유한 자라고 합니다. 

10~17. 인구 조사를 마치고 보고를 받자 말자 다윗이 자신의 죄를 알게 됩니다. 인구 조사를 한 것이 여호와께 큰 죄를 범한 것이라고 합니다. 이 고백이 나오는 이유를 찾아본 것이 출애굽기와 민수기와 이사야서에서 인간들이 무엇을 의지하는지를 본 것입니다. 다윗이 심히 미련하게 행하였다는 고백을 할 때에 갓 선지자를 통하여 세 가지 재앙 중에 하나를 택하라고 합니다. 7년 기근, 3개월 대적에게 쫓기는 것, 3일 전염병입니다. 다윗이 여호와는 자비 하시니 여호와의 존에 빠지기를 원한다고 하면서 3일 전염병을 택합니다. 그러자 무려 7만 명이 죽었습니다. 이 때 여호와께서 천사의 손을 멈추게 하십니다. 그 멈춘 자리가 여부스 사람 아라우나의 타작마당입니다. 다윗이 천사를 보고 여호와께 아뢰기를 자신이 범죄 하였고 악을 행하였는데 이 양 무리가 무엇을 행하였느냐고 하면서 주의 손으로 나와 내 아버지의 집을 치라고 합니다. 이런 모습이 회개입니다. 자신이 죽어야 마땅하다는 것을 아는 것이 회개입니다. 이때 갓 선지자가 여호와의 말씀을 전합니다. 

18~25. 이때 갓 선지자가 다윗에게 여부스 사람 아라우나의 타작마당에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으라고 합니다. 아라우나나 왕이 오는 것을 보고 놀라서 맞이합니다. 다윗이 그 타작마당을 사서 여호와께 제단을 쌓아 백성에게 내리는 재앙을 그치게 하려고 한다고 합니다. 그러자 아라우나가 다윗에게 이 모든 것을 다 드릴테니 그렇게 하라고 하자 다윗은 값을 지불하고 그 타작마당과 소를 사서 번제와 화목제를 드립니다. 이에 여호와께서 그 땅을 위한 기도를 들으시며 이스라엘에게 내린 재앙이 그쳤다고 합니다. 

우리가 이 땅에 발 딛고 사는 한 우리는 늘 힘을 추구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러한 힘을 추구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이름을 부른다면 이것이야 말로 재앙을 부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윗을 통하여 인구조사를 하게 하시고 그런 충동을 받은 다윗이나 이스라엘 백성들이나 오늘 우리들이나 간에 무엇이 죄가 되는지를 보여주시는 것이 다윗의 인구조사입니다. 아라우나의 타작마당에 솔로몬의 성전이 세워집니다. 이 산이 모리아 산으로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친 곳입니다. 이러한 성전은 곳 예수 그리스도께서 번제와 화목제물이 되심을 보여주시는 계시의 사건이며 장소가 됩니다. 

로마서 3:23~26절입니다. “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25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26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 

요한일서 4:9~11절입니다. “9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11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우리의 재앙을 대신 받으신 화목제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받은 것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것이며 이 사랑을 나누는 것이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 사랑으로 풍성하여 지기를 소원하면서 사무엘 상하를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