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상 1:5~31   여디디야     2014. 11. 23

지난주에 열왕기상 1:1~5절과 함께 열왕기 서론을 살펴보았습니다. 이제 다윗은 늙어서 이불이 아니라 젊고 아리따운 처녀를 품어도 몸이 회복되지 않는 쇠약한 자가 되었습니다. 왕이 이렇게 되기 전에 왕위를 물려주어야 하는데 그렇게도 하지 못할 정도로 늙어버렸습니다. 이 틈을 타서 아도니야의 반역이 일어납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언약은 자기 약속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그 왕위가 영원하리라는 언약을 나단 선지자를 통하여 주셨습니다(삼하7:1~14). 그러므로 언약을 받은 사람은 늙고 죽어도 하나님의 언약은 영원합니다. 

왕상 1:5~10절입니다. “5 그 때에 학깃의 아들 아도니야가 스스로 높여서 이르기를 내가 왕이 되리라 하고 자기를 위하여 병거와 기병과 호위병 오십 명을 준비하니 6 그는 압살롬 다음에 태어난 자요 용모가 심히 준수한 자라 그의 아버지가 네가 어찌하여 그리 하였느냐고 하는 말로 한 번도 그를 섭섭하게 한 일이 없었더라 
7 아도니야가 스루야의 아들 요압과 제사장 아비아달과 모의하니 그들이 따르고 도우나 8 제사장 사독과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와 선지자 나단과 시므이와 레이와 다윗의 용사들은 아도니야와 같이 하지 아니하였더라 9 아도니야가 에느로겔 근방 소헬렛 바위 곁에서 양과 소와 살찐 송아지를 잡고 왕자 곧 자기의 모든 동생과 왕의 신하 된 유다 모든 사람을 다 청하였으나 10 선지자 나단과 브나야와 용사들과 자기 동생 솔로몬은 청하지 아니하였더라“

학깃의 아들 아도니야는 헤브론에서 낳은 아들입니다. 압살롬의 반역과 죽음으로 왕위계승 서열 1위라고 자타가 인정하는 아들입니다. 그래서 아도니야는 스스로 높여서 자신이 왕이 되리라고 하면서 병거와 기병과 호위병 오십 명을 준비합니다. 이러한 아도니야의 용모가 심히 준수하다고 합니다. 그런데 다윗이 아도니야에게 한 번도 말로 그를 섭섭하게 한 일이 없다고 합니다. 알아서 잘 처신하였기에 섭섭하게 한 일이 없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백성들에게도 인기가 있었기에 수많은 반역에서 끝까지 충성한 요압장군마저 아도니야 편에 서고 제사장 아비아달도 함께 한 것입니다. 또한 이런 자들을 설득할 정치적인 능력도 있는 자가 아도니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언약의 나라는 스스로 왕이 되려는 이런 자나, 외적인 조건으로 세워지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다음 주에 장로와 권사를 세우기로 하였습니다. 한 주간 이 말씀을 잘 묵상하여 보시고 과연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세우시기를 원하실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혈육의 문제가 아닙니다. 인간적인 호불호의 문제가 아닙니다. 사람들에게 얼마나 인기가 있느냐 없느냐는 문제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어떤지를 아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다른 말로 믿음의 비밀을 가진 자라고 말합니다(딤전3:9). 믿음의 비밀을 가진 자란 자신이 정말 저주 받아 마땅한 자인데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용서를 받는다는 믿음의 사람이어야 합니다. 이러한 자는 자신의 죄와 그 용서를 알기에 긍휼이 나올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스스로 자신을 높이는 아도니야와 같은 자가 된다면 그리스도의 몸을 무너뜨리는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아도니야가 자신을 왕으로 추대하기 위하여 불러 모은 자들이 있습니다. 정치하는 자들은 늘 이렇게 편 가르기를 합니다. 특히 이 작은 대한민국도 아직도 편 가르기로 득을 보는 정치가들입니다. ‘우리가 남이가’하는 말로 지역구의 표를 얻습니다. 이러한 세상의 정치적인 모습이 아도니야에게서 나옵니다. 이러한 아도니야의 모의에 많은 사람들이 초청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모임이에 함께 하지 못한 자들이 있습니다. 정치하는 자들은 자기편이 될지 안 될지를 너무나 잘 압니다. 그래서 나단과 사독과 브나야와 다윗의 용사들과 솔로몬을 청하지 않고 자기들만 모여서 아도니야를 왕으로 추대하는 잔치가 열리고 있습니다. 아도니야는 다윗이 솔로몬을 왕으로 세울 것이라는 것을 감지하였을 것입니다. 다윗이 공식적으로 후계자로 선정하지 않았지만 이미 나단과 밧세바가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들을 따돌리고 자신이 스스로 왕이 되려고 한 것입니다.  

이러한 위기에 하나님은 자신의 선지자를 통하여 일하십니다. 이스라엘의 왕보다 높은 자가 선지자입니다. 높다는 말은 세상의 직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왕을 세우고 폐하는 일을 선지자가 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왕이 이런 선지자를 죽일 수 있습니다. 사무엘이 사울을 왕으로 세우고 나서 사울이 하나님의 말씀을 버림으로 하나님께서도 사울을 버리십니다. 그리고 다윗에게 기름을 부으라고 사무엘에게 말씀하실 때에 사울이 자신을 죽이면 어떻게 하느냐는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선지자는 목숨을 걸고 왕을 세우기도 하고 폐하기도 하고 왕의 잘못을 지적합니다. 그래서 나단도 다윗의 간음과 살인을 책망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나단 선지자가 아도니야의 반역을 보고서 하나님의 언약의 나라는 이런 모습이 아님을 알기에 밧세바에게 말하여 다윗에게 가라고합니다. 그리고 자신도 따라 들어가서 왕에게 말합니다. 

11~14절입니다. “11 나단이 솔로몬의 어머니 밧세바에게 말하여 이르되 학깃의 아들 아도니야가 왕이 되었음을 듣지 못하였나이까 우리 주 다윗은 알지 못하시나이다 12 이제 내게 당신의 생명과 당신의 아들 솔로몬의 생명을 구할 계책을 말하도록 허락하소서 13 당신은 다윗 왕 앞에 들어가서 아뢰기를 내 주 왕이여 전에 왕이 여종에게 맹세하여 이르시기를 네 아들 솔로몬이 반드시 나를 이어 왕이 되어 내 왕위에 앉으리라 하지 아니하셨나이까 그런데 아도니야가 무슨 이유로 왕이 되었나이까 하소서 14 당신이 거기서 왕과 말씀하실 때에 나도 뒤이어 들어가서 당신의 말씀을 확증하리이다”

밧세바가 다윗에게 솔로몬이 나를 이어 왕이 되리라고 맹세하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사무엘서에서 명시적으로 드러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밧세바와 나단은 알고 있는 내용이지만 이것을 어디서 추적해 볼 수 있는가 하면 이미 앞에서 본 사무엘하 7장의 나단의 신탁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근거는 다윗이 밧세바와의 사이에 태어난 아이가 병들어 죽어갈 때에 아무리 기도하여도 하나님께서 들어주시지 않았습니다. 다윗의 자기 죄로 인하여 죽은 아들입니다. 이것이 바로 다윗이 받은 은혜입니다. 그 죄와 용서를 보여주는 자식이 바로 솔로몬입니다. 

사무엘하 12:24~25절입니다. “24 다윗이 그의 아내 밧세바를 위로하고 그에게 들어가 그와 동침하였더니 그가 아들을 낳으매 그의 이름을 솔로몬이라 하니라 여호와께서 그를 사랑하사 25 선지자 나단을 보내 그의 이름을 1)여디디야라 하시니 이는 여호와께서 사랑하셨기 때문이더라” 솔로몬이라는 이름이 우리가 흔히 말하는 샬롬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다시 이름을 하나 더 주십니다. ‘여디디야’ 는 여호와와 사랑을 받는다는 합성어입니다. 여기서 사랑을 받는다는 단어만 한 곳을 찾아봅니다. 

시편 60:5절을 봅니다. “주께서 사랑하시는 자를 건지시기 위하여 주의 오른손으로 구원하시고 응답하소서” 이 시편의 전후를 보시면 여호와께서 버려 흩으시고 분노하셔서 찢으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제는 구원하여 달라고 하는데 그 구원의 반등이 주께서 사랑하시는 자를 건지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구원은 헛것이기에 하나님만 의지하여 대적을 친다는 내용입니다. 즉 하나님의 사랑은 죄와 그 용서를 함께 담아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윗에게 이런 아들이 왕이 됨을 통하여 늘 입방아에 오르게 됩니다. 간음하고 살인한 다윗이 그 죄로 인하여 한 아들이 죽고 나서 그 밧세바에게서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왕이 세워졌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슨 이야기인지 아시지요! 마태복음에서 본 예수님의 족보에서 우리아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이 나왔다는 그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왕은 죄와 용서를 보여주는 그런 왕으로 세우시는 것이지 온갖 세상의 이력을 다 갖춘 아도니야와 같은 왕이 될 수 없음을 나단 선지자는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오늘날 성도가 이런 선지자의 시각들이 필요합니다. 이것이 바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달라고 기도한 바울의 기도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왕을 세우는 이야기가 옛날의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오늘 우리의 이야기입니다. 이러한 해석을 해 놓고 다음의 본문을 읽으면 하나님의 일하심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보여 질 것입니다. 

15~21절입니다. “15 밧세바가 이에 침실에 들어가 왕에게 이르니 왕이 심히 늙었으므로 수넴 여자 아비삭이 시중들었더라 16 밧세바가 몸을 굽혀 왕께 절하니 왕이 이르되 어찌 됨이냐 17 그가 왕께 대답하되 내 주여 왕이 전에 왕의 하나님 여호와를 가리켜 여종에게 맹세하시기를 네 아들 솔로몬이 반드시 나를 이어 왕이 되어 내 왕위에 앉으리라 하셨거늘 18 이제 아도니야가 왕이 되었어도 내 주 왕은 알지 못하시나이다 19 그가 수소와 살찐 송아지와 양을 많이 잡고 왕의 모든 아들과 제사장 아비아달과 군사령관 요압을 청하였으나 왕의 종 솔로몬은 청하지 아니하였나이다 20 내 주 왕이여 온 이스라엘이 왕에게 다 주목하고 누가 내 주 왕을 이어 그 왕위에 앉을지를 공포하시기를 기다리나이다 21 그렇지 아니하면 내 주 왕께서 그의 조상들과 함께 잘 때에 나와 내 아들 솔로몬은 죄인이 되리이다” 밧세바가 나단 선지자의 말대로 다윗에게 말합니다.  

이어서 나단 선지자가 다윗 왕에게 말합니다. 22~27절입니다. “22 밧세바가 왕과 말할 때에 선지자 나단이 들어온지라 23 어떤 사람이 왕께 말하여 이르되 선지자 나단이 여기 있나이다 하니 그가 왕 앞에 들어와서 얼굴을 땅에 대고 왕께 절하고 24 이르되 내 주 왕께서 이르시기를 아도니야가 나를 이어 왕이 되어 내 왕위에 앉으리라 하셨나이까 25 그가 오늘 내려가서 수소와 살찐 송아지와 양을 많이 잡고 왕의 모든 아들과 군사령관들과 제사장 아비아달을 청하였는데 그들이 아도니야 앞에서 먹고 마시며 아도니야 왕은 만세수를 하옵소서 하였나이다 26 그러나 왕의 종 나와 제사장 사독과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와 왕의 종 솔로몬은 청하지 아니하였사오니 27 이것이 내 주 왕께서 정하신 일이니이까 그런데 왕께서 내 주 왕을 이어 그 왕위에 앉을 자를 종에게 알게 하지 아니하셨나이다” 나단의 이 말에 다윗 왕이 명령을 내립니다. 

28~31절입니다. “28 다윗 왕이 명령하여 이르되 밧세바를 내 앞으로 부르라 하매 그가 왕의 앞으로 들어가 그 앞에 서는지라 29 왕이 이르되 내 생명을 모든 환난에서 구하신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라30 내가 이전에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가리켜 네게 맹세하여 이르기를 네 아들 솔로몬이 반드시 나를 이어 왕이 되고 나를 대신하여 내 왕위에 앉으리라 하였으니 내가 오늘 그대로 행하리라 31 밧세바가 얼굴을 땅에 대고 절하며 내 주 다윗 왕은 만세수를 하옵소서 하니라” 

나단의 말을 들은 다윗 왕이 다시 밧세바를 불러서 자신이 밧세바에게 맹세한 네 아들 솔로몬이 반드시 나를 이어 왕이 되고 나를 대신하여 내 왕위에 앉으리라고 한 그 맹세를 그대로 행하리라고 합니다. 이렇게 맹세할 때에 다윗이 하는 말이 내 생명을 모든 환난에서 구하신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한다고 합니다. 다윗이 수많은 환난을 당하였습니다.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지 않았다면 평범하게 일생을 마쳤을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 기름부음으로 왕이 되어 사울에게 쫓겨 다니고 수많은 전쟁을 치러야 했습니다. 

이 전쟁은 자신의 야망을 위한 전쟁이 아니라 여호와의 전쟁이었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언약하신 그 땅을 차지하기 위한 전쟁이었습니다. 그러한 모든 환난만이 아니라 더욱 큰 환난은 간음과 살인을 통한 환난이었습니다. 그 환난에서 건져주신 것은 다윗 대신에 죽은 희생자가 있었습니다. 그 희생자란 여호와의 충성된 군인인 우리야이며 또한 밧세바 다윗사이에 태어난 아들입니다. 이 보다 더한 환난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 환난에서 구하여 내신 증표가 바로 여디디야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자가 왕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환난에서 구원하여 주신 그 화평의 왕을 바라본 것이 다윗입니다. 

시편 110:1~7절입니다. “1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들로 네 발판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오른쪽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2 여호와께서 시온에서부터 주의 권능의 규를 내보내시리니 주는 원수들 중에서 다스리소서 3 주의 권능의 날에 주의 백성이 거룩한 옷을 입고 즐거이 헌신하니 새벽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이 주께 나오는도다 4 여호와는 맹세하고 변하지 아니하시리라 이르시기를 너는 멜기세덱의 서열을 따라 영원한 제사장이라 하셨도다 5 주의 오른쪽에 계신 주께서 그의 노하시는 날에 왕들을 쳐서 깨뜨리실 것이라 6 뭇 나라를 심판하여 시체로 가득하게 하시고 여러 나라의 머리를 쳐서 깨뜨리시며 7 길 가의 시냇물을 마시므로 그의 머리를 드시리로다” 다윗이 성령의 감동으로 주님을 찬양한 내용입니다. 여호와의 맹세를 이루어내시는 분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오신 영원한 왕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영원한 왕입니다. 

마태복음 3:13~17절입니다. “13 이 때에 예수께서 갈릴리로부터 요단강에 이르러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려 하시니 14 요한이 말려 이르되 내가 당신에게서 1)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 15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하시니 이에 요한이 허락하는지라 16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17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누가 하나님의 사랑하시는 아들인지 분명하여 졌습니다. 

마태복음 17:1~8절입니다. “1 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2 그들 앞에서 변형되사 그 얼굴이 해 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 3 그 때에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와 더불어 말하는 것이 그들에게 보이거늘 4 베드로가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만일 주께서 원하시면 내가 여기서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님을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리이다 5 말할 때에 홀연히 빛난 구름이 그들을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시는지라 6 제자들이 듣고 엎드려 심히 두려워하니 7 예수께서 나아와 그들에게 손을 대시며 이르시되 일어나라 두려워하지 말라 하시니 8 제자들이 눈을 들고 보매 오직 예수 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아니하더라” 

마태복음 22:41~46절입니다. “41 바리새인들이 모였을 때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물으시되 42 너희는 그리스도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누구의 자손이냐 대답하되 다윗의 자손이니이다 43 이르시되 그러면 다윗이 성령에 감동되어 어찌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여 말하되 44 주께서 내 주께 이르시되 내가 네 원수를 네 발 아래에 둘 때까지 내 우편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하였느냐 45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였은즉 어찌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 하시니 46 한 마디도 능히 대답하는 자가 없고 그 날부터 감히 그에게 묻는 자도 없더라”

이 마지막 날 곧 이천년 전에 하나님의 사랑하시는 아들이 확정이 되었습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수많은 아도니야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스스로 왕이 되고자 스스로 자신을 높이고자 하는 자들은 산산이 깨어질 것입니다. 이런 내용은 다음 주에 보겠습니다만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여디디야는 자신의 죄와 용서를 철저하게 알게 하시는 순간에 주어진 이름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오직 자기 아들의 희생 안에 있는 자들에게만 해당되는 사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