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성설교 바로듣기]  [음성설교 다운받기]

열왕기상 7:1~12   성전과 왕궁      2015. 2. 15

열왕기상 5장에서 성전건축을 준비하여 열왕기상 8장의 봉헌까지 전부 성전의 건축과 그 기구들에 대한 내용입니다. 그런데 그 중간에 왕궁을 건축한 내용이 오늘 본문인 7:1~12절입니다. 성전을 7년 정도 건축하였는데 솔로몬의 왕궁은 13년 걸립니다. 왕궁을 오랫동안 크게 지은 것은 8절에서 그가 장가든 바로의 딸을 위하여서도 집을 지어야 했고 다른 왕비들을 위하여서도 지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가지고 성전을 위하여 7년 걸렸는데 자기 왕궁을 위하여 13년이 걸렸기에 솔로몬이 곧 타락하여 우상숭배에 빠졌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물론 그러한 요소를 내포하고는 있습니다만 일차적으로는 성전의 제사 기능과 왕궁의 왕의 기능이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보아야 합니다. 그래서 12절을 보시면 왕궁의 주랑이 마치 성전 안뜰과 주랑에 놓은 것과 같다고 합니다. 주랑(柱廊)은 기둥이 있는 복도를 말합니다. 성전과 왕궁의 장소도 같이 붙어있는 구역입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성전과 왕궁의 기능을 보겠습니다. 

본문 1~7절입니다. “1 솔로몬이 자기의 왕궁을 십삼 년 동안 건축하여 그 전부를 준공하니라 2 그가 레바논 나무로 왕궁을 지었으니 길이가 백 규빗이요 너비가 오십 규빗이요 높이가 삼십 규빗이라 백향목 기둥이 네 줄이요 기둥 위에 백향목 들보가 있으며 3 기둥 위에 있는 들보 사십 오개를 백향목으로 덮었는데 들보는 한 줄에 열다섯이요 4 또 창틀이 세 줄로 있는데 창과 창이 세 층으로 서로 마주 대하였고 5 모든 문과 문설주를 다 큰 나무로 네모지게 만들었는데 창과 창이 세 층으로 서로 마주 대하였으며 6 또 기둥을 세워 주랑을 지었으니 길이가 오십 규빗이요 너비가 삼십 규빗이며 또 기둥 앞에 한 주랑이 있고 또 그 앞에 기둥과 섬돌이 있으며 7 또 심판하기 위하여 보좌의 주랑 곧 재판하는 주랑을 짓고 온 마루를 백향목으로 덮었고”

성전이 완공되고 나서 왕궁을 지었습니다. 요세푸스에 의하면 성전과 왕궁은 같은 구역 안에 마주보고 있었다고 합니다. 왕의 중요한 기능이 재판입니다. 그래서 7절을 보시면 심판하기 위하여 보좌의 주랑 곧 재판하는 주랑을 지었다고 합니다. 보좌란 왕이 앉는 자리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영원한 왕위를 허락하셨기에 그 아들 솔로몬도 그 왕의 보좌에 앉아 재판을 하려고 왕궁에 재판하는 주랑을 지은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솔로몬에서 무엇을 원하는지 물었을 때에 솔로몬이 구한 것은 이 많은 백성을 재판할 수 있도록 듣는 마음을 주셔서 선악을 분별하게 하여 달라고 하였습니다(왕상3:5~9). 그래서 왕궁에 재판석을 만든 것입니다. 

본문 8~12절입니다. “8 솔로몬이 거처할 왕궁은 그 주랑 뒤 다른 뜰에 있으니 그 양식이 동일하며 솔로몬이 또 그가 장가 든 바로의 딸을 위하여 집을 지었는데 이 주랑과 같더라 9 이 집들은 안팎을 모두 귀하고 다듬은 돌로 지었으니 크기대로 톱으로 켠 것이라 그 초석에서 처마까지와 외면에서 큰 뜰에 이르기까지 다 그러하니 10 그 초석은 귀하고 큰 돌 곧 십 규빗 되는 돌과 여덟 규빗 되는 돌이라 11 그 위에는 크기대로 다듬은 귀한 돌도 있고 백향목도 있으며 12 또 큰 뜰 주위에는 다듬은 돌 세 켜와 백향목 두꺼운 판자 한 켜를 놓았으니 마치 여호와의 성전 안뜰과 주랑에 놓은 것 같더라”

왕궁에 여호와의 백성들을 위하여 재판 석을 만들었지만 자신이 결혼한 바로의 딸을 위하여서도 집을 지었습니다. 솔로몬의 이런 모습은 여호와의 언약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정략적인 결혼으로 자기의 왕궁을 지키고자 하였기에 이러한 모습들이 결국 우상숭배와 나라의 분열로 이어집니다. 

열왕기상 11:1~5절입니다. “1 솔로몬 왕이 바로의 딸 외에 이방의 많은 여인을 사랑하였으니 곧 모압과 암몬과 에돔과 시돈과 헷 여인이라 2 여호와께서 일찍이 이 여러 백성에 대하여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그들과 서로 통혼하지 말며 그들도 너희와 서로 통혼하게 하지 말라 그들이 반드시 너희의 마음을 돌려 그들의 신들을 따르게 하리라 하셨으나 솔로몬이 그들을 사랑하였더라 3 왕은 후궁이 칠백 명이요 첩이 삼백 명이라 그의 여인들이 왕의 마음을 돌아서게 하였더라 4 솔로몬의 나이가 많을 때에 그의 여인들이 그의 마음을 돌려 다른 신들을 따르게 하였으므로 왕의 마음이 그의 아버지 다윗의 마음과 같지 아니하여 그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 온전하지 못하였으니 5 이는 시돈 사람의 여신 아스다롯을 따르고 암몬 사람의 가증한 밀곰을 따름이라” 이러한 솔로몬의 모습은 열왕기상 11장을 볼 때에 자세히 보기로 하고 오늘은 성전과 왕궁을 통하여 성전의 제사장 직분과 왕궁의 왕 직분을 보려고 합니다. 이 두 직분이 다 기름부음을 받기에 메시아 곧 그리스도의 역할을 합니다. 구약의 기름부음을 받는 직분이 제사장과 왕과 선지자입니다. 

열왕기상 5장에서 8장까지 성전의 건축과 그 기구들을 만드는 것이 주를 이루는데 그 가운데 왕궁의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왕 같은 제사장을 말하고자 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제사장과 왕이 별개의 직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물론 왕이 제사를 지내는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왕은 성전의 기능이 제대로 발휘되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서 다윗은 온갖 성전의 규례들을 정하여주었습니다. 제사장들의 반차와 레위 지파들의 성전 봉사 조직과 찬양대를 조직하고 성전에 소용되는 물품들을 어떻게 공급하게 할지를 역대 상 23장부터 상세하게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왕과 제사장이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성전도 우상숭배로 인하여 파괴됩니다. 바벨론에 의하여 성전이 파괴되고 백성들은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이 때 하나님은 에스겔을 통하여 새로운 성전에 대한 환상을 보여주십니다. 에스겔서의 가장 중심 내용이 새로운 성전입니다. 이 성전이 완성되면 그 성전을 중심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새롭게 땅을 차지하게 됩니다. 가장 중심에 성전이 있고 바로 양 옆으로 왕의 땅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에스겔 45장에서도 성전과 왕궁이 긴밀하게 연결되어 나옵니다. 이렇게 완성된 성전에서 생명수가 나오는 것이 에스겔 47장입니다. 그러므로 왕 같은 제사장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생명을 공급받고 사는 것을 구약에서는 그림자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 성전과 왕궁을 통하여 제사장과 왕의 기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솔로몬의 그 화려한 성전과 화려한 왕궁의 모습으로 메시아가 오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구약의 성전과 왕궁은 하나님의 영원한 영광을 보여주는 그림자 역할이며 실체는 이 역사 속에서 그러한 영광의 모습으로 보여주지 않습니다. 여기서 신앙의 내용들이 나누어집니다. 이 세상에서 솔로몬의 영광을 구할 것인지 아니면 십자가의 언약 완성을 구할 것인지 나누어지는 분기점이 됩니다. 구약에서는 분명하게 솔로몬의 성전과 왕궁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이 어떠함을 그림자로 보여준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구약의 계시는 신약과 대비됩니다. 구약의 물질의 복과 자식의 많음을 복으로 여기지만 신약에서는 팔복부터 시작합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복의 차이점을 알지 못하면 오늘날도 번영신학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6:28~30절입니다. “28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29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들의 백합화 보다 못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솔로몬이 성전에 세운 야긴과 보아스라는 기둥에 이 백합화 모양을 새겨둡니다. 이것은 다음 주에 보겠습니다만 솔로몬의 영광이 들풀 하나만 못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참된 영광을 보는 눈이 없다면 솔로몬의 영광에 매몰되는 것입니다. 참된 영광이 이 세상에 나타났을 때에 사람들은 솔로몬의 영광을 바라보았기에 영원한 참된 영광을 버려버린 것입니다. 이것이 버림받은 모퉁이 돌입니다. 

베드로전서 2:4~8절입니다. “4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께 나아가 5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6 성경에 기록되었으되 ㄱ)보라 내가 택한 보배로운 모퉁잇돌을 시온에 두노니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7 그러므로 믿는 너희에게는 보배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ㄴ)건축자들이 버린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고 8 또한 ㄷ)부딪치는 돌과 걸려 넘어지게 하는 바위가 되었다 하였느니라 그들이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므로 넘어지나니 이는 그들을 이렇게 정하신 것이라”

다윗과 솔로몬 시대의 영광을 구하던 이스라엘백성들이었습니다. 이런 모습은 제자들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보여주실 표적은 요나의 표적뿐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메시아는 사람들이 걸려 넘어지는 돌이었습니다. 사람들이 아무른 쓸모가 없다고 버린 돌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버림받은 모퉁이 돌에 붙는 자들이 나옵니다. 이것이 기이한 일입니다. 이것이 주께서 하신 일입니다. 시편 118:22~23절입니다. “22 건축자의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23 이는 여호와의 행하신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한 바로다” 그러므로 이 버린바 된 돌을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습니다(사28:16). 그리고 걸려 넘어지게 하는 돌은 이사야 8:14절입니다. 이렇게 버림받는 돌을 믿는 자가 있고 버리는 자가 있습니다. 이렇게 되는 것은 사람의 선택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렇게 정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성전을 헐라고 하시고 자신이 3일 만에 일으키겠다고 하셨습니다(요2:19). 예수님께서 에스겔 선지자를 통하여 예언된 그 성전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생명수가 되십니다(요 6:55, 계21:6, 22:1). 그러므로 생명수가 하나님과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온다는 것은 왕 같은 제사장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그 배에서 생수가 강같이 흘러나옵니다. 그것은 성령을 말합니다(요7:37~39). 예수님이 제사장의 역할을 감당하시고 또한 보좌에 앉으셨기에 왕의 역할을 감당하시는 것이 결국 구약의 성전의 제사장 기능과 왕궁의 왕의 기능을 다 이루신 것입니다. 이제는 그 다 이루심을 자기 백성에게 넘겨주십니다.

베드로전서 2:9~10절입니다. “9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10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 왕 같은 제사장입니다. 왕과 제사장을 함께 묶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가 이 세상에서 왕 같은 제사장들로서 하나님의 거룩한 나라이며 그의 소유된 백성들입니다. 이러한 왕 같은 제사장들은 예수님께서 가신 그 길을 증언할 뿐 아니라 그 길로 가게 됩니다. 

고린도후서 2:14~17절입니다. “14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15 우리는 구원 받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16 이 사람에게는 사망으로부터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저 사람에게는 생명으로부터 생명에 이르는 냄새라 누가 이 일을 감당하리요 17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곧 순전함으로 하나님께 받은 것 같이 하나님 앞에서와 그리스도 안에서 말하노라” 

버림받은 모퉁이 돌이 어떤 사람에게는 믿어서 보배로운 돌이 되지만 어떤 사람은 걸려 넘어지는 돌이 됩니다. 이것이 십자가의 복음이라는 것입니다. 바울이 복음을 전함으로 나타나는 현상이 위와 같습니다. 같은 복음인데 어떤 사람에게는 사망으로 보이고 어떤 사람에게는 생명으로 보이는 것입니다. 이것이 새 언약의 직분입니다(고후3장). 새 언약이 직분이 얼마나 영광스러운지 몇 절만 봅니다. 

고린도후서 3:15~18절입니다. “15 오늘까지 모세의 글을 읽을 때에 수건이 그 마음을 덮었도다 16 그러나 언제든지 주께로 돌아가면 그 수건이 벗겨지리라 17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느니라 18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 구약의 성전과 왕과 선지자의 역할을 다 이루신 자리가 십자가이며 그 십자가에서 다 이루신 의를 자기 백성에게 넘겨주시면 새 언약의 일꾼이 됩니다. 이런 자가 왕 같은 제사장입니다. 왕인데 십자가에 죽는 제사장의 모습으로 나타는 것입니다. 세상은 왕이 왜 그렇게 죽는 모습이냐고 조롱하지만 이것이 이 역사 속에서 보여주는 하나님의 유일한 영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