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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상 8:27   무엇이 성전인가?     2015. 3. 8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한 것은 다윗 언약을 따라 건축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지어 놓고서도 자신이 지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허락하신 것을 주의 손으로 이루었다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8:24). 그리고 이러한 성전을 건축한 이유는 앞에서도 보았습니다만 하나님의 언약궤를 두기 위한 것입니다(6:19). 하나님의 언약궤를 둔다는 것은 하나님이 언약의 하나님임을 이스라엘이 기억하여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성전을 보시는 이유는 그 안에 하나님의 이름을 두셨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두셨다는 것은 하나님의 일하심은 언약을 하시고 그 언약을 이루어내시는 분으로서의 하나님입니다. 그러므로 성전을 건축한 것은 하나님의 이름을 위한 것이라고 합니다(5:5). 그러므로 수많은 신들과 다른 참된 하나님은 언약하시고 언약하신 바를 이루어내시는 스스로 계신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을 성전을 통하여 계시하십니다. 

본문 27절입니다. “하나님이 참으로 땅에 거하시리이까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를 용납하지 못하겠거든 하물며 내가 건축한 이 성전이오리이까” 사람들은 신을 위하여 신전을 지을 때에 그 신이 자신이 지은 신전에 들어와 계시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솔로몬은 사람의 손으로 지은 건물에는 하나님이 거하실 수 없다고 합니다. 물론 8:13절은 자신이 주를 위하여 계실 처소를 건축하였다고 하면서 주께서 영원히 계실 처소라고 하지만 그러나 오늘 본문과 함께 보면 주님이 계시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이름을 두신 곳으로 봐야 합니다. 그래서 주의 이름을 위하여 건축한 것이며 그 이름은 언약을 통하여 나타내시기에 언약궤를 성전의 가장 중심자리인 지성소에 두는 것입니다. 이러한 성전의 기능들이 어떻게 성경에서 전개 되는지 보겠습니다. 

이사야 66:1~4절입니다. “1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판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지으랴 내가 안식할 처소가 어디랴 2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 손이 이 모든 것을 지었으므로 그들이 생겼느니라 무릇 마음이 가난하고 심령에 통회하며 내 말을 듣고 떠는 자 그 사람은 내가 돌보려니와 3 소를 잡아 드리는 것은 살인함과 다름이 없이 하고 어린 양으로 제사 드리는 것은 개의 목을 꺾음과 다름이 없이 하며 드리는 예물은 돼지의 피와 다름이 없이 하고 분향하는 것은 우상을 찬송함과 다름이 없이 행하는 그들은 자기의 길을 택하며 그들의 마음은 가증한 것을 기뻐한즉 4 나 또한 유혹을 그들에게 택하여 주며 그들이 무서워하는 것을 그들에게 임하게 하리니 이는 내가 불러도 대답하는 자가 없으며 내가 말하여도 그들이 듣지 않고 오직 나의 목전에서 악을 행하며 내가 기뻐하지 아니하는 것을 택하였음이라 하시니라” 

하나님을 위하여 처소를 지을 수도 없는 자들이 성전을 지어놓고 제사를 지내며 기뻐하는 것이 우상숭배라고 합니다. 그래서 소를 잡아 드리는 것이 살인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소를 잡아 드리는 제사의 뜻을 모르면 그 소를 잡아 드리는 것이 살인과 다름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이러한 일들이 우상숭배이기에 하나님께서 심판하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마음이 가난하고 심령에 통회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떠는 자를 하나님이 돌보신다고 하십니다. 이 말씀을 표준 새번역으로 다시 봅니다.  

“1 주께서 말씀하신다.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 받침대다. 그러니 너희가 어떻게 내가 살 집을 짓겠으며, 어느 곳에다가 나를 쉬게 하겠느냐?" 2 주님의 말씀이시다. "나의 손이 이 모든 것을 지었으며, 이 모든 것이 나의 것이다. 겸손한 사람, 회개하는 사람, 나를 경외하고 복종하는 사람, 바로 이런 사람을 내가 좋아한다." 3 소를 죽여 제물로 바치는 자는 사람을 쳐죽이는 자와 같다. 양을 잡아 희생제물로 바치는 자는 개의 목을 부러뜨리는 자와 같다. 부어 드리는 제물을 바치는 자는 돼지의 피를 바치는 자와 같다. 분향을 드리는 자는 우상을 찬미하는 자와 같다. "이러한 제사장들은 나의 뜻을 묻지 않고 제 뜻대로 한 자들이다. 오히려 가증한 우상숭배를 즐겼다. 가증한 우상들을 진정으로 좋아하였다. 4 그러기에, 나도 나의 뜻대로, 그들을 혹독하게 다루어, 그들이 겁내는 것을 그들에게 들이닥치게 하겠다. 내가 그렇게 불렀으나, 그들이 응답하지 않았으며, 내가 그렇게 말하였으나, 그들이 듣지 않았으며, 오히려 내가 보는 데서 악한 일을 하며, 내가 좋아하지 않는 일을 골라 하였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성전을 우상의 신전으로 바꾸어버렸다는 책망입니다. 

예레미야 7:1~15절입니다. “봉독” 여호와의 성전이라는 곳으로 예배하려고 오는 자들을 향하여 예레미야 선지자는 이곳이 성전이라고 하는 거짓말을 믿지 말라고 합니다. 평소의 삶은 온갖 죄악을 저지르면서 여호와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성전에 와서 제사를 지내며 우리가 구원을 받았다고 하는 짓은 도둑의 소굴로 만든 것이라고 합니다. 오늘날도 수백억 수천억의 건물을 성전이라고 지어놓고 그곳에 와서 예배한다고 하는 자들의 자세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우리는 그런 건물이 없으니 상관이 없다고 생각합니까? 우리의 마음상태가 이사야서의 말씀과 예레미야서의 말씀과 같다면 건물이 크고 작고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라 다 도둑의 소굴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성전의 기능이 무엇인지 말씀을 통하여 바르게 알지 못하면 오늘도 우상숭배 하는 곳이 예배당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이사야 시대나 예레미야 시대에 성전이 실제로 있었고 그곳에서 제사를 드리고 있는데 선지자들이 이런 말씀을 전한 것은 그들의 평소 마음이 세상의 종교성과 같다는 말씀입니다. 

사도행전 17:22~25절입니다. “22 바울이 아레오바고 가운데 서서 말하되 아덴 사람들아 너희를 보니 범사에 종교심이 많도다 23 내가 두루 다니며 너희가 위하는 것들을 보다가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긴 단도 보았으니 그런즉 너희가 알지 못하고 위하는 그것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 24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25 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이심이라” 종교성으로 만든 신전이 즐비한 그리스도 아테네에서 바울이 전한 복음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손에 지은 전에 계시지 않으시고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지 않는다고 합니다. 오히려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분이십니다. 이것을 알아듣고 하나님의 섬김을 받는 자들이 성전입니다.  

마태복음 12:5~8절입니다. “5 또 안식일에 제사장들이 성전 안에서 안식을 범하여도 죄가 없음을 너희가 율법에서 읽지 못하였느냐 6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성전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 7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을 너희가 알았더라면 무죄한 자를 정죄하지 아니하였으리라 8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하시니라” 안식일 논쟁에서 예수님은 자신이 성전보다 크시다고 하시고 안식일의 주인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성전이나 안식일은 다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합니다.

요한복음 2:19~22절입니다. “19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20 유대인들이 이르되 이 성전은 사십육 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 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냐 하더라 21 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22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야 제자들이 이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 성경과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믿었더라” 성전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을 쫓아내신 후에 예수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건물 성전이 아닌 예수님의 자기 육체가 성전임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만 성전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임하면 그 사람도 그리스도의 몸 된 성전이 됩니다. 이 성전을 만드시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언약을 다 이루시고 그 다 이루신 의를 자기 백성에게 선물로 넘겨주십니다. 이것을 주의 영을 넘겨주셨다고 합니다. 

요한복음 19:31절입니다.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 여기서 영혼이 떠나가신 것이 아니라 영혼을 넘겨주셨다는 말씀입니다. 이 영혼이 헬라어로 프뉴마(πνευμα) 라고 합니다. 이 프뉴마를 영혼 또는 영으로 번역합니다. 이 영을 예수님의 말이라고도 합니다. 

요한복음 6:63절입니다.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ρηματα)이 영(πνευμα)이요 생명이라” 예수님의 말이 영입니다. 

고린도 후서 3:6절입니다. “그가 또한 우리를 새 언약의 일꾼 되기에 만족하게 하셨으니 율법 조문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영으로 함이니 율법 조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이니라” 예수님의 말이 율법조문(γραμμα)으로 들어오면 죽이는 것이지만 영(πνευμα)으로 들어오면 산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이 임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죄와 사망의 법으로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생명의 성령의 법으로 들어오는 것입니다.

로마서 7:4절입니다. “그러므로 내 형제들아 너희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였으니 이는 다른 이 곧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이에게 가서 우리가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라”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으로 인하여 율법에 대하여 죽었습니다. 이제는 죄와 사망의 법에서 생명의 성령의 법으로 해방이 된 것입니다. 이러한 자들이 그리스도의 몸 된 성전입니다.  

로마서 8:1~17절입니다. “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3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4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5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6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7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8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9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10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말미암아 죽은 것이나 영은 의로 말미암아 살아 있는 것이니라 11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12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13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14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15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16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17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육신과 영을 대비합니다. 육신이 연약하여 율법의 요구를 이루지 못합니다. 그런데도 계속하여 육신의 요구가 나옵니다. 이렇게만 가면 그것이 사망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은 십자가로 완성하신 그 영을 넘겨주심으로 육신의 일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영의 일을 생각합니다. 영의 일이란 율법 외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를 믿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것이 성전입니다. 

요한복음 14:10~11절입니다.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은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서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로 말미암아 나를 믿으라” 14:20절입니다.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17:21절입니다.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는 예수님만이 아버지의 집인 성전이었습니다. 예수님만이 아버지와 하나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십자가로 하나님의 언약을 완성하신 후로는 아버지께서 예수님께 주신 자들에게도 그 영을 부어주셔서 성전이 됩니다. 이런 성전은 예수 그리스도가 내 안에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게 됩니다. 이것이 아버지가 예수님 안에 예수님이 아버지 안에 우리가 그 안에 하나가 되는 것이 성전입니다.  이러한 성전은 결코 사람이 만들어 낼 수가 없고 하나님의 언약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이루셨기에 일어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성전이란 하나님의 자기 집 만들기입니다. 하나님아버지가 영원히 그 아들과 그 아들의 피로 구속한 자들과 함께 하는 것이 성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