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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설교]   [동영상설교]

여호수아 7장 2012. 7. 8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정복은 거룩함과 비 거룩함의 전쟁입니다. 그러므로 승리의 요인은 군대의 수자나 무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특별히 이런 전쟁은 전멸(히,헤렘)전쟁입니다. 여호수아 6:18절을 새 번역으로 봅니다. “너희는, 전멸시켜서 바치는 희생 제물에 손을 댔다가 스스로 파멸당하는 일이 없도록 주의하여라. 너희가 전멸시켜서 바치는 그 제물을 가지면, 이스라엘 진은 너희 때문에 전멸할 것이다.” 여리고 성을 정복하기 전에 여호수아를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분명히 전하였습니다.

 

7:1~5. 아이 성에 정탐을 보낸 결과 그들의 보고는 믿음의 보고가 아니라 자신들의 자신감에 의한 보고였습니다. 아이는 작은 성이라서 약 2,3천명만 보내면 된다고 하였습니다. 여리고성의 승리가 자신의 실력이 아닌데도 자기들의 힘과 능력의 승리로 착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3천명을 보냈는데 오히려 36명이 죽고 쫓겨 왔습니다. 백성들의 마음이 녹아 물 같이 되었습니다. 이런 마음은 원래 가나안 원주민들이 마음이었는데(2:11) 이제는 이스라엘이 이런 마음이 되었다는 것은 하나님의 심판이 이스라엘을 향한 것입니다. 그 심판의 직접적인 원인은 아간이지만 또 하나의 이유라고 볼 수 있는 것이 여호와의 전쟁임을 잊은 것입니다.

 

7:6~9. 여호수아와 장로들의 항의. 여호수아가 옷을 찢고 장로들과 함께 언약궤 앞에서 땅에 엎드려 머리에 티끌을 뒤집어쓰고 저물도록 있다가 따집니다. 이유를 모르니 원망이 나옵니다. 어찌하여 이 백성을 요단을 건너 아모리 사람의 손에 넘겨 멸망시키려 하느냐고 합니다. 여리고성이 무너지고 여호수아의 이름이 두려운 이름이 되었지만 한 순간에 원망이 나온 것입니다. 그래서 요단강 저쪽에서 건너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합니다.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오지 않았으면 좋았겠다고 한 출애굽 1세대의 모습이 나옵니다. 여호수아는 여기서 하나님께 따집니다. 가나안 사람들이 우리를 둘러싸서 우리의 이름을 끊으려고 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주의 이름을 위하여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여호수아가 기대하는 바는 주의 이름을 위하여 일하실 것을 믿는 것입니다. 이것은 모세를 통하여 많이 봤기 때문입니다.

 

7:10~25. 여호와의 지시. 왜 엎드리고 있느냐고 하시면서 11절과 15절을 보시면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언약의 배반한 자가 있다고 하십니다. 바쳐진 물건을 도둑질한 자가 있다고 합니다. 그 바쳐진 물건을 너희 중에서 제거하지 않으면 다시는 너희와 함께 하지 않겠다고 합니다. 백성을 거룩하게 하여 내일을 준비하라고 합니다. 아침부터 지파별로 여호와 앞에서 제비뽑아 가려내게 하십니다. 결국 아간이 뽑혀 나옵니다. 여호수아가 여호와께 영광을 돌려 그 앞에 자복하라고 하니 순순히 자신의 범죄를 시인하고 물증이 나왔습니다. 그리하여 그에게 속한 모든 가족과 재산과 바쳐진 물건을 손댄 것까지 몽땅 돌로 치고 불살랐습니다. 그 돌무더기를 크게 쌓았습니다. 아간이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였기에 그곳 이름을 아골 골짜기, 괴로움의 골짜기로 불렀습니다.

 

여기서 아간의 죄가 무엇인지 보려고 합니다. 고대의 전쟁은 약탈 전쟁입니다. 전쟁에 목숨을 걸고 나가는 것은 전리품을 챙기려고 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가나안의 정복은 아브라함에게 언약하신 대로 죄악이 관영하여 전멸하는 전쟁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붙여주시는 전쟁입니다. 붙여주시는 전쟁에서 자신의 희생이나 공로를 챙기는 것이 아닙니다. 더구나 여리고 성은 첫 열매로서 온전히 바쳐져야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자신의 전리품을 따로 챙겼다는 것은 여호와의 전쟁의 의미를 모르는 자이기에 저주를 받습니다. 다음 전투부터는 전리품을 챙길 수 있습니다(8:2).

 

그러면 아간의 이런 범죄를 어떻게 보아야 합니까? 예수님의 십자가의 공로에 자신의 행위를 끼워 넣는 것이라고 봅니다. 예수님 홀로 하나님의 저주를 온전히 받아내십니다. 하나님의 전멸전쟁을 예수님께서 대신 받으신 자리가 십자가의 저주입니다(갈3:13). 그런데 이 십자가의 대신 저주받음의 자리에 자신의 공로를 주장하는 자가 바로 아간과 같은 자입니다. 예수님의 대신 저주받음을 무시하는 것이 아간이 받은 저주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십자가의 자리가 우리가 받을 저주임을 알고 믿는 자들에게는 아골 골짜기가 소망의 문이 됩니다(호2:15). 아골 골짜기의 돌무덤 속에 있어야 할 우리 대신 저주받으신 분으로 인한 소망만이 참 소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