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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설교]   [동영상설교]

여호수아 8장 2012. 7. 15

 

아이성의 재공격. 처음 아이성 공격의 실패는 아간의 범죄로 인한 것이었습니다. 한 사람의 범죄로 민족 전체가 고통당한 것입니다. 이 아간을 제거하고서 다시 아이성을 공격합니다. 아이성 공격실패의 직접적인 원인은 아간이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상태도 패인의 원인이었음을 보았습니다. 한 번의 승리로 교만하여 자신의 힘으로 이길 수 있다는 생각에 대한 심판이 아이성의 패배였습니다.

 

8:1~2절입니다.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합니다. 처음 여리고 성을 공격할 때 주신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이기에 나의 수나 힘을 의지하고 상대를 보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아이성에서는 동일한 진멸전쟁이지만 탈취한 물건과 짐승은 가지도록 합니다. 그리고 작전지시를 하나님께서 내리십니다. 처음에 자기들의 힘으로 이길 수 있다고 해서 간 숫자의 10배가 넘는 숫자를 보내며 아주 치밀한 작전을 사용합니다. 이것은 사람의 계획과 방법과는 전혀 다르게 일하시는 하나님임을 보여주십니다. 그러므로 사건 사건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으면 안 되도록 조치하십니다.

 

8:3~29절 여호와의 지시대로 적을 진멸합니다. 아이성 사람들이 성문을 열어둔 채로 이스라엘을 공격하여 나온 것은 전날에 이겼다는 교만과 오늘 또 이스라엘이 패하는 것을 보고서 자신감을 얻어 달려 나온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교만으로 전쟁에서 졌는데 이제는 아이성 사람들이 교만한 것입니다. 교만은 언제나 패망의 앞잡이가 됩니다(잠16:18, 18:12.) 결국 완전히 진멸 당하게 되었습니다. 왕은 사로잡혔다가 나무에 달아 죽이고서 저녁에 돌무덤을 만들어버립니다. 나무에 단 채로 밤에 두지 않은 것은 신명기의 법대로 행한 것입니다.

 

신명기 21:22~23절입니다. “22 사람이 만일 죽을죄를 범하므로 네가 그를 죽여 나무 위에 달거든 23 그 시체를 나무 위에 밤새도록 두지 말고 그 날에 장사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을 더럽히지 말라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음이니라” 진멸당하여 죽은 아이성의 왕과 같은 죽음을 누가 당하였습니까? 지난주에도 보았던 대로 예수님께서 우리가 대신 진멸당할 벌을 받으신 자리가 십자가입니다. 그 나무에 달려 저주 받아 죽은 죽음이(갈3:13) 어떻게 연결이 되는지 바로 이어지는 말씀에서 나옵니다.

 

8:30~35절 에발산과 그리심산. 배경을 이해하기 위하여 신명기 27:1~8절을 봅니다. “1 모세와 이스라엘 장로들이 백성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령하는 이 명령을 너희는 다 지킬지니라 2 너희가 요단을 건너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 들어가는 날에 큰 돌들을 세우고 석회를 바르라 3 요단을 건넌 후에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그 위에 기록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네가 들어가기를 네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말씀하신 대로 하리라 4 너희가 요단을 건너거든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령하는 이 돌들을 에발 산에 세우고 그 위에 석회를 바를 것이며 5 또 거기서 네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 곧 돌단을 쌓되 그것에 쇠 연장을 대지 말지니라 6 너는 다듬지 않은 돌로 네 하나님 여호와의 제단을 쌓고 그 위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 번제를 드릴 것이며 7 또 화목제를 드리고 거기에서 먹으며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하라 8 너는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그 돌들 위에 분명하고 정확하게 기록할지니라”

 

모세의 명령대로 여호수아가 그대로 행합니다. 여기서 주목해 볼 말씀은 제단이 쌓아진 장소입니다. 그리고 철 연장으로 다듬지 않은 돌로 제단을 쌓은 것입니다. 우리는 축복을 좋아합니다. 만약 우리에게 축복이 선포되는 그리심산과 저주가 선포되는 에발산 중에 선택하여 서라고 하면 다들 그리심산으로 달려갈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제단이 에발산에 세워졌다는 것입니다. 그리심 산에서는 순종하면 복을 받는다는 곳이기에 희생의 제물을 드릴 제단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에발산은 불순종하면 저주를 받는다고 선포되는 곳이기에 늘 제단이 필요한 곳이 됩니다.

 

계속되는 신명기 27장의 말씀에서 저주의 내용만 선포됩니다. 에발산에 선 사람들이 이 선포에 아멘을 해야 합니다. 지금 여호수아가 백성들을 양편으로 나누어 세우고는 율법의 말씀들을 돌에 기록하고 또 선포합니다. 저주가 쏟아지는 에발산에 제단이 있다는 것은 저주를 누가 대신 받아야 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러면 축복의 말씀은 어디에 나옵니까?

 

신명기 28:1~14절까지 봅니다. “봉독” 이런 복을 받기 위하여 선행조건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모든 명령과 규례를 다 지켜 행하여야 합니다. 만약 하나라도 어기면 복이 아니라 저주를 받게 됩니다. 그 내용이 신명기 28:15~68절입니다. “봉독” 우리가 복을 받을 것인지 저주를 받을 것인지 자명하여집니다. 어떤 인간도 자신의 행위로 복을 받을 자가 없다는 것을 복과 저주의 선포의 말씀을 통하여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스스로 율법의 행위로 의롭게 되려거나 복을 받으려고 한다면 그 사람은 저주아래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스스로 복을 받기 위하여 온갖 정성을 바치려고 합니다. 그것이 단을 철 연장으로 다듬는 것입니다. 제단을 쌓을 때 철로 된 연장으로 다듬지 못하게 하신 것은 인간의 기교를 받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말씀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온갖 축복받는 비결들을 쏟아내고 있는 한국교회의 현실을 보면 복을 받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저주를 받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스스로 율법을 지켜서 복을 받으려고 한 행위 즉 그리심산에 서려고 한 자들의 결과가 어떠하였습니까? 대신 저주받은 자로 오신 예수님을 배척한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이 저주를 받았다고 여기는 세리와 창기와 죄인들과 이방인들에게는 예수님의 대신 저주 받으심이 복된 소식이 되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3:10~14절입니다. “10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에 있나니 기록된 바 ㄷ)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모든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신 27:26) 11 또 하나님 앞에서 아무도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이는 ㄹ)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하였음이라(합 2:4) 12 율법은 믿음에서 난 것이 아니니 ㅁ)율법을 행하는 자는 그 가운데서 살리라 하였느니라(레 18:5) 13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ㅂ)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신 21:23) 14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

 

에발산에 쏟아지는 그 저주의 선포에 아멘 하는 사람들이 복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 에발산에 제단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제단은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대신 저주 받으심으로 그것도 나무에 달려죽은 저주로 인하여 예수님을 믿는 자는 영원한 저주를 받지 않게 됩니다. 이것이 복음의 소식입니다. 자기 솜씨 발휘하여 복을 받으려고 하지 말고 대신 저주 받으신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영원한 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