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상 10:1~12:40 다윗의 용사들 2017. 4. 9

 

지난주 역대상 족보를 통하여 하나님의 언약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통하여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살펴 보았습니다.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와서 그들의 족보를 돌아보면서 아담으로 시작하여 아브라함의 후손과 오늘 볼 다윗으로 연결됩니다. 다윗으로 시작하기 전에 사울이 먼저 언급이 됩니다. 우리가 이미 사무엘서와 열왕기를 보았기에 역대기는 간략하게 봅니다.

 

역대상 9:35~44절까지 사울의 족보를 언급합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10:1~14절은 사울의 죽음과 다윗이 왕위를 이은 이야기를 간략하게 서술합니다. 여기서 사울의 왕 됨을 다시 살펴보겠습니다. 사무엘이 마지막 사사입니다. 사무엘에게 이스라엘 백성들이 왕을 요구하였습니다. 사무엘이 많이 섭섭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아뢰니 하나님께서 응답하시기를 이스라엘 백성들이 너를 버린 것이 아니라 나를 버린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삼상8:7).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렇게 요구한 것은 사무엘의 아들들도 사사의 자격이 없음을 보았을 뿐 아니라 다른 이방나라는 상비군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상비군이 없습니다. 그래서 왕을 세우고 상비군을 두면 자기들의 나라가 든든할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이러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왕을 세우면 세금을 더 내야 한다고 말하여도 왕을 요구하였습니다. 왕을 세우면 백성들이 부담해야 할 내용을 사무엘이 여호와의 말씀으로 전하였습니다. 왕과 상비군을 세우고 유지하려면 얼마나 많은 세금이 들어가야 하는지도 백성들에게 알렸습니다. 기존의 십일조만이 아니라 왕을 세우고 상비군을 준비함으로 십일조를 더 내야 합니다(삼상8:17). 이뿐 아니라 왕을 세우면 나라가 위기에 처하여 여호와께 기도하여도 들어주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그래도 왕을 세워야 한다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주장하였기에 세워진 왕이 사울입니다. 사울은 백성들보다 머리 하나가 더 큰 사람이었기에 백성들이 환호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사울이 여호와의 말씀을 지키지 않음으로 폐하여 버립니다. 이러한 왕의 모습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습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다윗을 소년 다윗을 왕으로 세우십니다. 오늘 본문을 문학적인 구조로 보면 이렇습니다.

 

A. 다윗이 헤브론에서 왕이 됨(11:1~3)

B. 예루살렘 정복(11:4~9)

C. 헤브론에서 다윗의 지지한 용사 목록(11:10~47)

D. 시글락에서 다윗을 도운 사람들(12:1~7)

E. 광야에서 다윗을 도운 갓 사람들(12:8~15)

E’. 광야에서 다윗을 도운 유다와 베냐민 사람들(12:16~18)

D’. 시글락에서 다윗을 도운 므낫세 사람들(12:19~22)

C’. 헤브론에서 다윗을 지지한 지파별 병력 목록(12:23~37)

A’. 다윗이 헤브론에서 왕이 된 것을 축하함(12:38~40)

 

이러한 구조들이 성경에 많이 나옵니다. 꼭 완벽하게 맞는 것은 아닙니다. 오늘 구조도 B’ 가 빠져있습니다. 이러한 동심원 구조를 보고 연구한 여러 학자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러한 구조를 통하여 다윗이 광야에 있을 때에 다윗을 도운 사람들에게 주목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중심자리입니다.

 

역대상 11:1~3절입니다. “1 온 이스라엘이 헤브론에 모여 다윗을 보고 이르되 우리는 왕의 가까운 혈족이니이다 2 전에 곧 사울이 왕이 되었을 때에도 이스라엘을 거느리고 출입하게 한 자가 왕이시었고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도 왕에게 말씀하시기를 네가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며 내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가 되리라 하셨나이다 하니라 3 이에 이스라엘의 모든 장로가 헤브론에 있는 왕에게로 나아가니 헤브론에서 다윗이 그들과 여호와 앞에 언약을 맺으매 그들이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으니 여호와께서 사무엘을 통하여 전하신 말씀대로 되었더라

 

여기에 나오는 자들은 다윗이 광야에서 있을 때에 따라 나선 자들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다윗에게 와서는 하는 말이 전에 사울이 왕이었을 때에도 이스라엘을 거느리고 출입한 자가 다윗 왕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께서도 그렇게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이런 사실을 알고 있는데도 사울이 왕으로 있을 때는 다윗에게 오지 않았던 것입니다. 사울이 왕이었을 때에 다윗은 광야에서 오늘은 이 동굴 내일은 저 수풀에 숨어 다녀야 하였습니다. 이런 다윗에게 누가 따라다니겠습니까?

 

사무엘상 22:1~2절입니다. “1 그러므로 다윗이 그 곳을 떠나 아둘람 굴로 도망하매 그의 형제와 아버지의 온 집이 듣고 그리로 내려가서 그에게 이르렀고 2 환난 당한 모든 자와 빚진 모든 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가 다 그에게로 모였고 그는 그들의 우두머리가 되었는데 그와 함께 한 자가 사백 명 가량이었더라

 

사울에게서 여호와의 기름 부음이 떠났습니다. 다윗에게 기름부음이 임하였습니다. 그런데도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고 하니 아무도 다윗에게 갈 수가 없습니다. 가족들은 하는 수 없이 다윗에게 갑니다. 광야로 피하여 다니는 중에 다윗에게 오는 자들은 환난 당한 모든 자, 빚진 모든 자, 마음이 원통한 자가 다 그에게로 모인 것입니다. 주변에서 보면 조폭집단으로 보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나발과 같은 자는 이러한 다윗을 아주 무시하였습니다. 이것이 미련한 자의 모습임을 그의 아내 아비가일을 통하여 보여줍니다. 아비가일은 다윗이 누구인지 알아보고 그를 영접하였습니다. 다윗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기름을 부으시고 다윗에게 언약하신 대로 이루어내시는 모습입니다.

 

이제 동심원 구조대로 성경을 봅니다. 11:1~3절은 이미 보았습니다. 11:4~9절은 다윗이 헤브론을 차지하여 그곳에서 유다를 76개월을 다스립니다. 사울이 죽고 나서 예루살렘으로 옮겨서 온 이스라엘을 33년간 다스립니다. 사울이 죽자 사람들이 다윗에게 몰려듭니다. 물론 이렇게 된 것은 만군의 여호와께서 다윗과 함께 계신 결과입니다. 그러므로 11:3절에서 다윗이 왕이 된 것은 여호와께서 사무엘을 통하여 전하신 말씀대로 되었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자기 약속을 이루심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11:10~47절은 다윗을 도운 용사들의 목록들이 나옵니다만 이들은 광야에서부터 같이 다닌 용사들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용사들도 있습니다. 이들은 헤브론서 다윗이 이스라엘 전체의 왕이 될 때에 합류한 자들까지 포함이 됩니다. 그런데도 이들이 이렇게 다윗에게 모이게 된 것도 10절에서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 대하여 이르신 말씀대로 함이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계획들이 다윗의 지략과 용맹이 아닙니다. 12:1~7절은 시글락에서 다윗을 도운 자들입니다. 시글락에서 다윗을 도운 사람들은 베냐민 지파 사울의 동족인데도 다윗 편에 서는 것을 보여줍니다. 사울의 집안사람들도 다윗을 도운 것은 다윗언약을 중심으로 전개됨을 보여줍니다.

 

12:8~15절은 광야에서 다윗을 도운 사람인데 갓 사람입니다. 이들은 요단 동편에 정착한 지파입니다. 요단강 동편은 르우벤과 갓과 므낫세지파 절반이 자리 잡았습니다. 그러므로 갓 지파의 사람들은 요단강을 건너와서 다윗을 도운 자들입니다. 12:16~18절은 광야에서 다윗을 도운 유다와 베냐민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광야를 중심으로 다윗과 함께 한 자들이 중심이 되어 동심원을 그리고 있습니다.

 

12:19~22절은 시글락에 있을 때에 므낫세 지파에서 다윗에게로 온 자들의 명단입니다. 시글락은 다윗이 블레셋에 잠시 망명하였을 때에 아기스 왕이 다윗의 일행이 살라고 한 땅입니다. 아기스 왕이 이스라엘을 공격하기 위하여 군대를 소집할 때에 다윗도 아기스와 함께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다른 군대장관이 다윗을 돌려보내라고 하여 시글락으로 돌아왔는데 아말렉에 자신들의 가족과 모든 재산까지 약탈당한 뒤였습니다. 환난당하고 빚지고 원통한 자들이 다윗에게 모여와서 살았는데 자기 가족들이 약탈당하고 나니 다윗을 돌로 치려고 합니다. 다윗이 크게 다급하였으나 하나님 여호와를 힘입어 용기를 얻었습니다. 그리고 아말렉을 추격하여 모든 사람과 재산을 도로 찾아옵니다. 여기서 중요한 내용이 있습니다. 추격하다가 뒤처진 200명을 브솔시냇가에 두고 400명이 추격하여 대승을 하고 돌아옵니다.

 

사무엘상 30:21~25절입니다. “21 다윗이 전에 피곤하여 능히 자기를 따르지 못하므로 브솔 시내에 머물게 한 이백 명에게 오매 그들이 다윗과 그와 함께 한 백성을 영접하러 나오는지라 다윗이 그 백성에게 이르러 문안하매 22 다윗과 함께 갔던 자들 가운데 악한 자와 불량배들이 다 이르되 그들이 우리와 함께 가지 아니하였은즉 우리가 도로 찾은 물건은 무엇이든지 그들에게 주지 말고 각자의 처자만 데리고 떠나가게 하라 하는지라 23 다윗이 이르되 나의 형제들아 여호와께서 우리를 보호하시고 우리를 치러 온 그 군대를 우리 손에 넘기셨은즉 그가 우리에게 주신 것을 너희가 이같이 못하리라 24 이 일에 누가 너희에게 듣겠느냐 전장에 내려갔던 자의 분깃이나 소유물 곁에 머물렀던 자의 분깃이 동일할지니 같이 분배할 것이니라 하고 25 그 날부터 다윗이 이것으로 이스라엘의 율례와 규례를 삼았더니 오늘까지 이르니라

 

누가 불량배입니까? 여호와께서 붙여주신 전쟁의 의미를 모르고 자신들의 공로를 주장하는 자들이 불량한 자들입니다. 이들이 낙오병들에게 가족만 주어서 쫓아내자고 합니다. 그러자 다윗은 여호와께서 그 군대를 우리에게 넘기셨기에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하고서 전투에 나간 자나 나가지 못한 자나 동일하게 그 전리품을 분배하도록 하였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놀라운 은혜의 내용입니까? 그런데 세상은 이렇게 못합니다. 그러면 난리가 납니다. 그런데 문제는 은혜를 전해야 하는 교회가 이런 불량배와 같은 이야기를 한다면 그런 교회는 불량한 교회입니다.

 

12:23~37절은 다시 헤브론에서 다윗을 지지한 각지파별 병력의 목록입니다. 이것도 23절을 보시면 여호와의 말씀대로 사울의 나라를 다윗에게 돌리고자 하였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38~40절입니다. 각 지파의 군사들이 다윗을 왕으로 삼은 헤브론에 모였습니다. 그곳에서 삼일 간 잔치를 합니다. 이로 인하여 이스라엘 가운데에 기쁨이 있었다고 합니다. 다윗을 왕으로 세움으로 기쁨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것은 사울왕의 모습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언약하신 바를 하나님께서 이루어내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용사들이 다윗에게 모여든 것은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언약하셨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왕이 되기 전에 가장 어려운 때는 광야입니다. 이러한 광야에서 다윗과 함께 한 자들을 중심으로 동심원 구조가 이루어지는 것이 단지 문학적인 기교가 아니라 다윗 언약에 대한 신실함을 보여줍니다. 어린 목동을 여호와께서 기름 부으시고 왕으로 세우시겠다고 하신 그 언약이 이루어짐으로 다윗을 중심으로 모인 군사들을 통하여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것도 광야에서 모인 무리들이 중심이 됩니다.

 

오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도 마찬가지입니다. 미련하고 어리석은 십자가에 누가 마음이 끌리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로 다 이루시고 그 영을 넘겨주셔야 십자가가 보이게 됩니다. 전에는 환난 당하고 빚지고 원통하면 하늘과 땅을 원망하던 자들이 주의 성령이 임하게 되면 그 풍랑으로 인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모이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모습이 나그네와 외국인과 같은 모습입니다.

 

히브리서 11:13~16절입니다. “13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였으니 14 그들이 이같이 말하는 것은 자기들이 본향 찾는 자임을 나타냄이라 15 그들이 나온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라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16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이 역사 속에서의 성도의 모습이 이렇습니다. 다윗을 따라 광야로 나서야 하는 것처럼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이 땅에서 외국인과 나그네로 살게 됩니다.

 

베드로전서 1:1~2절입니다. “1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는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진 나그네 2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이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성도는 흩어진 나그네입니다. 그런데 정처 없는 나그네가 아니라 분명한 목적이 있는 나그네입니다. 그 목적은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이 거룩하게 하심과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받은 나그네입니다. 이들은 어떤 환난 가운데서도 은혜와 평강을 맛보게 됩니다. 세상이 줄 수 없는 은혜와 평강입니다. 이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승리하신 만왕의 왕의 우리의 왕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역사 속에서는 다윗의 광야와 같은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그러면 그 완성의 자리는 어디입니까? 다윗이 왕으로 등극하였을 때에 전에도 지금도 우리를 거느리고 출입한 왕은 당신이라고 고백한 것처럼 우리의 영원한 왕을 찬송할 날은 언제입니까?

 

요한계시록 5:9~14절입니다. “9 그들이 새 노래를 불러 이르되 두루마리를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일찍이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에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10 그들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들을 삼으셨으니 그들이 땅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하더라 11 내가 또 보고 들으매 보좌와 생물들과 장로들을 둘러 선 많은 천사의 음성이 있으니 그 수가 만만이요 천천이라 12 큰 음성으로 이르되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은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하더라 13 내가 또 들으니 하늘 위에와 땅 위에와 땅 아래와 바다 위에와 또 그 가운데 모든 피조물이 이르되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 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권능을 세세토록 돌릴지어다 하니 14 네 생물이 이르되 아멘 하고 장로들은 엎드려 경배하더라

 

이 놀라운 찬양의 자리에 참여하게 되는 자들이 누구입니까? 일찍 죽임 당하신 어린 양이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린 자들입니다. 이들의 찬양은 보좌에 계신 이와 어린 양께 찬송을 돌리게 됩니다. 이 찬양의 자리에 참여하는 자들은 이 땅에서 나그네와 외국인으로 주님과 동행하는 자들입니다. 마치 다윗이 광야를 떠돌아다닐 때에 함께 한 무리들이 왕으로 등극하자 다윗의 용사들이 되는 것처럼 그렇게 성도는 이 세상을 살아가게 됩니다. 그러나 그 마지막 날에 주님의 왕 되심을 찬양하는 자리에 참여하게 됩니다. 오늘 우리는 어디로 누구와 동행하고 있습니까? (1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