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5:5~10 오분의 일을 더하여 2020. 2. 16

 

5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6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라 남자나 여자나 사람들이 범하는 죄를 범하여 여호와께 거역함으로 죄를 지으면 7 그 지은 죄를 자복하고 그 죄 값을 온전히 갚되 오분의 일을 더하여 그가 죄를 지었던 그 사람에게 돌려줄 것이요 8 만일 죄 값을 받을 만한 친척이 없으면 그 죄 값을 여호와께 드려 제사장에게로 돌릴 것이니 이는 그를 위하여 속죄할 속죄의 숫양과 함께 돌릴 것이니라 9 이스라엘 자손이 거제로 제사장에게 가져오는 모든 성물은 그의 것이 될 것이라 10 각 사람이 구별한 물건은 그의 것이 되나니 누구든지 제사장에게 주는 것은 그의 것이 되느니라

 

지난주에 서울의 어느 교회 목사님이 저의 설교 집을 구할 수 있느냐고 연락이 왔습니다. 홈페이지 강해원고를 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합동 측 목사라고 해서 톡으로 몇 번 주고받은 내용 중에 그 목사님이 창세기 1:1절부터 요한계시록 끝까지 예수 그리스도를 찾고자 애쓰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참 반가운 말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오늘 본문에서 그리스도가 보입니까? 아무리 살펴보아도 예수 그리스도가 보이지 않습니다. 오분의 일이란 단어를 성경에서 찾아보니 다섯 번째 라는 뜻도 있고 그냥 오라는 뜻도 있습니다. 그래서 한글 개역성경의 오분의 일을 다 찾아보기로 하였습니다.

 

창세기 41:34절입니다. 바로께서는 또 이같이 행하사 나라 안에 감독관들을 두어 그 일곱 해 풍년에 애굽 땅의 오분의 일을 거두되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되어 칠년 동안 풍년에 애굽 땅의 곡식 오분의 일을 거두어 저장해 두게 합니다. 그리고 일곱 해 흉년에 곡식을 팔면서 추수의 오분의 일을 세금으로 받는 내용입니다. 이런 내용이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것입니까? 다음의 말씀도 봅니다.

 

47:18~20절입니다. “18 그 해가 다 가고 새 해가 되매 무리가 요셉에게 와서 그에게 말하되 우리가 주께 숨기지 아니하나이다 우리의 돈이 다하였고 우리의 가축 떼가 주께로 돌아갔사오니 주께 낼 것이 아무것도 남지 아니하고 우리의 몸과 토지뿐이라 19 우리가 어찌 우리의 토지와 함께 주의 목전에 죽으리이까 우리 몸과 우리 토지를 먹을 것을 주고 사소서 우리가 토지와 함께 바로의 종이 되리니 우리에게 종자를 주시면 우리가 살고 죽지 아니하며 토지도 황폐하게 되지 아니하리이다 20 그러므로 요셉이 애굽의 모든 토지를 다 사서 바로에게 바치니 애굽의 모든 사람들이 기근에 시달려 각기 토지를 팔았음이라 땅이 바로의 소유가 되니라일곱 해 흉년이 계속되자 돈으로 곡식을 사고, 다음에는 가축 떼로 곡식을 사고, 그 다음에는 몸과 토지뿐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몸과 토지를 사 달라고 합니다. 바로의 종이 되겠다고 합니다. 그래서 요셉이 토지제도로 개혁하여 오분의 일을 세금으로 내게 합니다.

 

창세기 47:23~26절입니다. “23 요셉이 백성에게 이르되 오늘 내가 바로를 위하여 너희 몸과 너희 토지를 샀노라 여기 종자가 있으니 너희는 그 땅에 뿌리라 24 추수의 오분의 일을 바로에게 상납하고 오분의 사는 너희가 가져서 토지의 종자로도 삼고 너희의 양식으로도 삼고 너희 가족과 어린 아이의 양식으로도 삼으라 25 그들이 이르되 주께서 우리를 살리셨사오니 우리가 주께 은혜를 입고 바로의 종이 되겠나이다 26 요셉이 애굽 토지법을 세우매 그 오분의 일이 바로에게 상납되나 제사장의 토지는 바로의 소유가 되지 아니하여 오늘날까지 이르니라요셉의 이러한 처분에 은혜를 입었다고 말합니다. 굶어죽어야 하는 지경인데 오분의 일만 세금을 내고 오분의 사를 양식으로 삼고 살아가는 것이 은혜입니다. 요셉의 너그럽게 그들을 대하였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오분의 일만 내게 한 것은 은혜라는 말입니다.

 

레위기 5:16절입니다. 성물에 대한 잘못을 보상하되 그것에 오분의 일을 더하여 제사장에게 줄 것이요 제사장은 그 속건제의 숫양으로 그를 위하여 속죄한즉 그가 사함을 받으리라레위기에서 본 내용입니다. 성물에 대한 보상으로 오분의 일만 내는 것이 아니라 원래의 성물에 오분의 일을 더합니다.

 

레위기 6:5, 22:14, 27:13, 15, 19, 27, 31절입니다. 우리가 레위기를 볼 때에 이미 본 내용이라서 성경구절을 찾아보았습니다. 여기서 전부 오분의 일을 더하라고 합니다. 왜 그렇게 하는 것입니까?

 

오늘 본문을 새 번역으로 봅니다. “6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일러라. 남자나 여자를 가릴 것 없이, 남에게 어떤 잘못이든지 저질러서 그 일로 주를 배신하였을 때에, 그런 사람은 자기의 잘못을 깨닫는 대로, 7 자기가 저지른 잘못을 고백하고, 피해자에게 본래의 값에다가 오분의 일을 더 얹어서 갚아야 한다. 8 그 피해자에게 대신 보상을 받을 근친이 없으면, 그 배상액은 죄를 속량하려고 바치는 속죄양과 함께 주님께로 돌아가, 제사장의 몫이 된다. 9 또한 이스라엘 자손이 바치는 거룩한 제물 가운데서, 흔들어서 바치는 것도 모두 제사장의 몫이 된다. 10 각자가 가지고 온 거룩한 제물은 가져 온 그 사람의 것이다. 그러나 그가 일단 그것을 어떤 제사장에게 주었으면, 그것은 제사장의 것이다."”

 

이웃에게 손해를 입혔다면 그 일이 주를 배신한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사람과의 관계에서 잘못한 것이 주님께 대하여 죄를 지은 것이라는 말입니다. 시편 51편에서 다윗은 내가 주께만 범죄 하였다고 합니다(51:4). 간음하고 살인한 죄가 왜 주께만 범죄 하였다고 하는 것입니까? 이웃에 대하여 간음하고 살인한 죄가 주님께 지은 죄라는 고백입니다. 그렇다고 이웃에게 잘못한 것이 아니라는 말이 아닙니다. 그 정도로 죄란 하나님과의 관계성을 말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6절에서 이웃에게 잘못한 것이 곧 여호와께 범죄 함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죄를 깨닫게 되면 그 이웃에게 오분의 일을 더하여 배상하라고 합니다. 손해를 백만 원 입혔다면 백 이십 만원을 배상하는 겁니다.

 

오늘 우리가 이 말씀대로 이웃에게 어떤 손해를 끼친 일에 대하여 오분의 일을 더하여 배상을 하면 상대가 왜 그렇게 하느냐고 물을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이라고 대답을 할까요?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라고 했다고 대답을 해야 합니다.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가 왜 그렇게 하라고 한 것이냐고 또 묻게 되면 무엇이라고 답을 하겠습니까? 내가 당신께 손해를 입힌 것이 당신께만 손해를 입힌 것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께 죄를 지은 것이기에 이렇게 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런 분 보셨습니까?

 

2007년도에 나온 밀양이라는 영화를 생각해 봅시다. 이 영화의 원작은 이청준의 소설 벌레 이야기입니다. 주인공의 아들이 유괴되어 죽게 됩니다. 범인은 잡혀서 교도소로 갑니다. 고통 중에 있던 여주인공이 전도를 받아 교회를 나갑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은혜를 받은 것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열심히 전도도 하고 기도도 하다가 자기 아들을 죽인 범인을 용서해야겠다고 교도소에 면회를 갑니다. 그런데 범인이 자기도 하나님을 믿고 용서를 받아 평안하게 지낸다고 한 것입니다. 여기에 화가 난 것입니다. 내가 용서 안했는데 누가 용서 했는가 하는 반발심으로 구역장 장로를 유혹하고, 예배를 방해하는 일을 합니다. 이 범인이 정말로 회개하고 용서를 받은 사람이라면 피해자에게 어떤 말을 해야 하였을까요?

 

그런데 다윗의 시편을 오해하면 내가 하나님께만 범죄 하였기에 이웃에게 간음하고 살인한 것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는 것이 됩니다. 다윗은 그 사건으로 평생 배상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나단 선지자가 비유로 다윗을 책망하면서 양의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자 다윗이 율법대로 네 배를 갚아야 한다고 하였습니다(삼하12:6, 22:1). 그런데 다윗 왕의 말한 그대로 다윗의 아들 네 명이 죽임을 당합니다(삼상12:19, 13:28~29, 18:14~15, 왕상2:24~25). 하나님께서 용서 하셨는데 왜 이런 일이 있느냐는 질문을 많이 합니다. 그런 질문에는 나는 그런 재앙을 받고 싶지 않다는 속셈이 들어있는 질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다윗을 통하여 인간의 죄가 무엇인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충분히 계시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웃에게 배상을 하려고 하여도 배상을 받을 사람이 없으면 제사장에게로 돌리는 것입니다. 그것은 이웃에게 손해를 끼친 것이라도 6절에서 본 대로 여호와께 범죄 한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분의 일만 더하여 드리는 것이 아니라 숫양도 함께 속죄제로 드립니다. 왜 이런 율법을 주신 것일까요? 가장 중요한 것은 오늘 본문에서 본 것처럼 범죄란 우선적으로 하나님께 범죄 한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이웃과의 관계에서 손해를 끼치고 해를 입히는 것도 죄로 인하여 발생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악한 일들도 실상은 인간의 죄로 인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웃과의 배상에서 오분의 일이나 더하며 또 숫양의 희생을 드리게 함으로 죄에 대한 심각성과 그 속죄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9:1~10절입니다. “1 예수께서 여리고로 들어가 지나가시더라 2 삭개오라 이름하는 자가 있으니 세리장이요 또한 부자라 3 그가 예수께서 어떠한 사람인가 하여 보고자 하되 키가 작고 사람이 많아 할 수 없어 4 앞으로 달려가서 보기 위하여 돌 무화과나무에 올라가니 이는 예수께서 그리로 지나가시게 됨이러라 5 예수께서 그 곳에 이르사 쳐다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니 6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영접하거늘 7 뭇 사람이 보고 수군거려 이르되 저가 죄인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도다 하더라 8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 9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10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세리 삭개오가 이런 행위를 하였기에 구원을 받은 것이 결코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삭개오를 찾아가심이 구원이 주어진 것입니다. 그 구원을 입었기에 자기의 죄를 알고 배상을 하겠다고 합니다.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고 속여 빼앗는 것은 네 배로 갚겠다고 합니다. 네 배로 갚아야 하는 것은 출애굽기 22:1절의 내용입니다. 이런 율법을 지켜서 구원에 이르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구원이 임하게 되자 자신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그 죄를 알게 되고 그것을 배상하는 방식으로 삶이 나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0:10절입니다.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우리가 이 세상의 신이라는 도둑에게 속아서 살아왔습니다. 거짓 선생들에게 속았습니다. 세상에서 높아지고 성공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는 말에 속았습니다. 그 결국은 죽음과 멸망입니다. 이러한 곳에서 예수님은 자기 죽음으로 우리를 구원하여 내셨습니다. 생명을 얻고 생명의 풍성함을 얻게 하십니다. 이 생명을 얻은 자는 세상에 대하여 손해를 끼친 것에 오분의 일을 더하는 정도만 아니라 그렇지 않은 일에도 넉넉해 질 것입니다.

 

디모데전서 6:17~19절입니다. “17 네가 이 세대에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18 선한 일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부하고 나눠주기를 좋아하며 동정하는 자가 되게 하라 19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주님의 은혜가 넉넉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