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18:21~32 레위인의 몫 2020. 12. 6

 

21 내가 이스라엘의 십일조를 레위 자손에게 기업으로 다 주어서 그들이 하는 일 곧 회막에서 하는 일을 갚나니 22 이 후로는 이스라엘 자손이 회막에 가까이하지 말 것이라 죄값으로 죽을까 하노라 23 그러나 레위인은 회막에서 봉사하며 자기들의 죄를 담당할 것이요 이스라엘 자손 중에는 기업이 없을 것이니 이는 너희 대대에 영원한 율례라 24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거제로 드리는 십일조를 레위인에게 기업으로 주었으므로 내가 그들에 대하여 말하기를 이스라엘 자손 중에 기업이 없을 것이라 하였노라

 

지난주에 제사장의 몫에 대하여 살펴보았습니다. 제사장은 땅에 관하여 기업이 없는 사람입니다. 땅에 기업이 없는 대신에 여호와가 그들의 몫, 그들의 기업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여호와의 일이라는 제사장의 일을 하기에 그 일을 하기 위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이 십 분의 일을 레위인에게 드리고 레위인들은 그 받은 것의 십 분의 일을 제사장에게 돌리는 겁니다. 이렇게 함으로 이스라엘 백성들 전체가 십 분의 일에 함유되는 것입니다. 그 십 분의 일의 최종 지점은 여호와께 드려집니다.

 

본문 21~24절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 전체의 십일조를 레위 자손에게 줍니다. 그것이 회막일을 하는 일에 몫이 됩니다. 회막의 일을 함으로 다른 지파들처럼 땅에 대한 기업은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회막에 가까이 하지 못합니다. 회막에 가까이하면 그들의 죗값으로 인하여 죽게 됩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십일조를 레위인에게 하는 이유는 회막의 일을 레위인들이 맡아서 함으로 자기들의 죗값으로 죽지 않는 일을 하게 합니다. 그러므로 십일조는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십일조의 개념과 다릅니다. 단지 수입의 십일조를 드리자는 정도가 아니라 죄의 문제입니다.

 

본문 25~32절입니다. “25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6 너는 레위인에게 말하여 그에게 이르라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받아 너희에게 기업으로 준 십일조를 너희가 그들에게서 받을 때에 그 십일조의 십일조를 거제로 여호와께 드릴 것이라 27 내가 너희의 거제물을 타작 마당에서 드리는 곡물과 포도즙 틀에서 드리는 즙 같이 여기리니 28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에게서 받는 모든 것의 십일조 중에서 여호와께 거제로 드리고 여호와께 드린 그 거제물은 제사장 아론에게로 돌리되 29 너희가 받은 모든 헌물 중에서 너희는 그 아름다운 것 곧 거룩하게 한 부분을 가져다가 여호와께 거제로 드릴지니라 30 이러므로 너는 그들에게 이르라 너희가 그 중에서 아름다운 것을 가져다가 드리고 남은 것은 너희 레위인에게는 타작 마당의 소출과 포도즙 틀의 소출 같이 되리니 31 너희와 너희의 권속이 어디서든지 이것을 먹을 수 있음은 이는 회막에서 일한 너희의 보수임이니라 32 너희가 그 중 아름다운 것을 받들어 드린즉 이로 말미암아 죄를 담당하지 아니할 것이라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의 성물을 더럽히지 말라 그리하여야 죽지 아니하리라

 

레위인이 이스라엘 백성들 전체에서 십일조를 받지만 레위인은 그 중의 십일조를 제사장 아론에게 돌리게 합니다. 레위인들이 받은 것이 백성들의 십일조인데 백성들도 십일조는 가장 아름다운 것으로 처음 것으로 드리듯이 레위인들도 그들이 받은 것 중에 가장 아름다운 것으로 제사장에게 돌립니다. 32절에 보면 레위인도 그렇게 하는 것이 죄를 담당하지 않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드린 성물을 더럽히지 말라고 합니다. 레위인들이 십 분의 일을 제사장에게 돌리지 않는 것이 성물을 더럽히는 것이며 그렇게 하는 일을 죽는 일이라고 합니다. 제사장도 여호와께 온전히 드려지는 제물은 자기가 먹지 못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십일조에 관한 내용은 백성들의 십일조는 레위인에게, 레위인의 십일조는 제사장에게, 제사장의 십일조는 항목은 없지만, 제사장도 여호와께 온전히 태워드리는 제물은 손대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지난주와 오늘 본문에서 십일조는 속죄의 길을 보여주는 통로가 됩니다. 그러므로 이 율법이 제정되는 것은 유월절을 통하여 출애굽하고 난 이후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규례입니다. 유월절에서 어린 양의 피가 있는 집안의 사람이나 짐승이나 처음 태어난 수컷이 살아남았습니다. 그 처음 것은 다 여호와의 것이 됩니다. 사람은 레위인이 대신하고 짐승은 속죄의 제물로 드려야 합니다. 이것이 십일조가 율법에 자리 잡은 근본 이유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의 십일조를 보면 속죄가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십일조를 드림이 처음 것을 드림으로 처음 것의 희생으로 용서를 받고 살아간다는 것을 분명히 하는 것이 율법에서 십일조에 관한 내용입니다. 물론 신명기 14장에서 매년 십일조 외에 삼 년마다 십일조가 나오고 그것을 기업이 없는 레위인과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를 함께 돌보게 한 내용도 있습니다. 이 내용은 중앙 성소에 십일조를 드리게 함으로 지방에 있는 레위인들의 문제를 함께 해결하기 위함도 있습니다. 신명기 14장에는 속죄의 개념이 성소의 일로 말하기에 포함은 합니다만 드러나는 십일조의 개념은 땅에 기업이 없는 레위인과 가난한 자들과 함께 나누어 먹게 하는 뜻이 강합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에 애굽에 있었을 때 나그네로 있었음을 기억하게 하는 장치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긍휼을 잊지 않게 합니다. 그러므로 율법에서 십일조는 속죄만이 아니라 가난한 자를 돌봄도 있습니다.

 

그런데 속죄나 긍휼과 상관이 없는 십일조가 있는데 그것은 율법 이전에 나온 십일조입니다. 율법이 주어지기 전에 십 분의 일의 내용은 아브라함과 야곱에게서만 나옵니다. 그런데 야곱은 형 에서를 피하여 외삼촌 집으로 도망가는 중에 꿈에 하나님의 약속을 받고 나서 조건부로 성전도 짓고 십 분의 일도 드리겠다고 하였지만 그렇게 한 내용이 없기에 야곱은 보지 않고 아브라함에 관한 내용만 봅니다.

 

창세기 14:17~20절입니다. “17 아브람이 그돌라오멜과 그와 함께 한 왕들을 쳐부수고 돌아올 때에 소돔 왕이 사웨 골짜기 곧 왕의 골짜기로 나와 그를 영접하였고 18 살렘 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으니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더라 19 그가 아브람에게 축복하여 이르되 천지의 주재이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 20 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하매 아브람이 그 얻은 것에서 십분의 일을 멜기세덱에게 주었더라

 

아브람이 조카 롯이 잡혀갔다는 소식을 듣고 318명의 사병과 동행한 아넬과 에스골과 마므레가 있습니다. 이들의 사병들이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지만 소돔과 고모라 성을 공격한 엘람 왕 그돌라오멜과 고임 왕 디달과 시날 왕 아므라벨과 엘라살 왕 아리옥 네 왕을 이긴 것은 하나님의 도우심 외에는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이 네 왕이 소돔과 고모라 지역의 다섯 왕을 이긴 자들입니다. 그런데 이들을 추격하여 아브람이 대승을 하고 자기 조카와 가족들을 구하여 올 뿐 아니라 모든 전리품을 가지고 돌아오고 있습니다. 이때 소돔의 왕이 아브람을 영접하는데 살렘의 왕 멜기세덱도 아브람을 축복합니다.

 

멜기세덱의 축복을 다시 봅니다. “18 살렘 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으니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더라 19 그가 아브람에게 축복하여 이르되 천지의 주재이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 20 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하매 아브람이 그 얻은 것에서 십 분의 일을 멜기세덱에게 주었더라아브람의 승리는 천지의 주재이신 하나님의 축복임을 멜기세덱을 통하여 알고 나자 멜기세덱에게 전리품의 십 분의 일을 드립니다. 여기서는 속죄나 긍휼의 개념보다 전쟁에서 승리한 감사에 대한 예물로 십 분의 일을 드립니다.

 

시편 110:1~7절입니다. “1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들로 네 발판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오른쪽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2 여호와께서 시온에서부터 1)주의 권능의 규를 내보내시리니 주는 원수들 중에서 다스리소서 3 주의 권능의 날에 주의 백성이 거룩한 옷을 입고 즐거이 헌신하니 새벽 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이 주께 나오는도다 4 여호와는 맹세하고 변하지 아니하시리라 이르시기를 너는 멜기세덱의 서열을 따라 영원한 제사장이라 하셨도다 5 주의 오른쪽에 계신 주께서 그의 노하시는 날에 왕들을 쳐서 깨뜨리실 것이라 6 뭇 나라를 심판하여 시체로 가득하게 하시고 여러 나라의 머리를 쳐서 깨뜨리시며 7 길 가의 시냇물을 마시므로 그의 머리를 드시리로다

 

아브람을 축복한 멜기세덱이 다윗의 시편에 등장합니다. 다윗이 성령의 감동으로 그리스도를 주라고 고백하였다는 말씀을 예수님께서 하십니다(22:41~46, 12:35-37; 20:41-44). 다윗이 여기서도 그리스도의 승리를 말하면서 멜기세덱을 언급합니다. 그런데 멜기세덱을 말하면서 다윗이 주라고 부른 그리스도가 멜기세덱의 서열을 따른 영원한 제사장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다윗이 성령의 감동으로 그리스도라고 고백한 그 주님이 멜기세덱의 서열을 따른 영원한 제사장이라는 말씀은 이 멜기세덱이 아브람을 축복한 그 멜기세덱입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과 다윗이 다 멜기세덱을 말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5:6~12절입니다. “6 또한 이와 같이 다른 데서 말씀하시되 ㄴ)네가 영원히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제사장이라 하셨으니 7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건하심으로 말미암아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8 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9 온전하게 되셨은즉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10 하나님께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대제사장이라 칭하심을 받으셨느니라 12 멜기세덱에 관하여는 우리가 할 말이 많으나 너희가 듣는 것이 둔하므로 설명하기 어려우니라

 

시편 110편을 인용하여 예수님이 멜기세덱의 서열을 따른 영원한 대제사장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멜기세덱에 대하여 할 말이 많으나 너희가 듣는 것이 둔하므로 설명하기 어렵다고 합니다. 멜기세덱을 알면 대제사장과 십일조의 개념도 다 해결이 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단단한 식물을 먹어야 한다고 하면서 6장에서 완전한 데로 나아가라고 합니다. 그 완전함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인데 그 십자가로 이루신 일이 멜기세덱의 서열을 따른 영원한 대제사장이 예수 그리스도라고 증거 합니다.

 

히브리서 6:19~20절이니다. “19 우리가 이 소망을 가지고 있는 것은 영혼의 닻 같아서 튼튼하고 견고하여 휘장 안에 들어 가나니 20 그리로 앞서 가신 예수께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영원히 대제사장이 되어 우리를 위하여 들어 가셨느니라바로 앞에서 하나님은 자기보다 높으신 분이 없기에 자기에게 약속하십니다. 그 약속을 신실하게 이루어내심을 말씀하면서 예수께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어 우리를 위하여 들어가셨다고 합니다. 그 들어가신 일이 휘장이 찢어지는 일 곧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고 하실 때에 성소와 지성소 사이의 휘장이 찢어진 일입니다. 이로 인하여 하늘 성소로 들어가신 예수님을 따라 성도도 그 길로 가는 겁니다. 이것을 멜기세덱이 미리 보여주었다는 말입니다.

 

히브리서 7:1~10절입니다. “1 이 멜기세덱은 살렘 왕이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라 여러 왕을 쳐서 죽이고 돌아오는 아브라함을 만나 복을 빈 자라 2 아브라함이 모든 것의 십분의 일을 그에게 나누어 주니라 그 이름을 해석하면 먼저는 의의 왕이요 그 다음은 살렘 왕이니 곧 평강의 왕이요 3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어 하나님의 아들과 닮아서 항상 제사장으로 있느니라 4 이 사람이 얼마나 높은가를 생각해 보라 조상 아브라함도 노략물 중 십분의 일을 그에게 주었느니라 5 레위의 아들들 가운데 제사장의 직분을 받은 자들은 율법을 따라 아브라함의 허리에서 난 자라도 자기 형제인 백성에게서 십분의 일을 취하라는 명령을 받았으나 6 레위 족보에 들지 아니한 멜기세덱은 아브라함에게서 십분의 일을 취하고 약속을 받은 그를 위하여 복을 빌었나니 7 논란의 여지 없이 낮은 자가 높은 자에게서 축복을 받느니라 8 또 여기는 죽을 자들이 십분의 일을 받으나 저기는 산다고 증거를 얻은 자가 받았느니라 9 또한 십분의 일을 받는 레위도 아브라함으로 말미암아 십분의 일을 바쳤다고 할 수 있나니 10 이는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을 만날 때에 레위는 이미 자기 조상의 허리에 있었음이라

 

이스라엘 백성들 전체의 십일조를 레위인이 받습니다. 그 레위인이 받은 십일조의 십일조는 제사장이 받습니다. 제사장도 여호와께 드려지는 온전한 제물은 여호와께 제물로 드립니다. 그런데 제사장도 레위인입니다. 이러한 레위인이 아브라함의 허리에 속하여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드린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일조의 계통을 따라 올라가면 결국 아브라함에게서 멜기세덱에게로 연결이 됩니다. 그런데 이 멜기세댁과 같은 분이 예수 그리스도라고 증거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심을 말씀하시는데 가장 놀라운 내용이 무엇입니까? 멜기세덱은 아브라함에게 십 분의 일을 받는데,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을 모두 다 주시는 겁니다. 이것이 처음 것의 희생으로 드려지는 십일조의 내용입니다.

11~28절입니다. 봉독 율법으로 제사 지내는 레위 직분은 임시적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히 계시므로 그 제사장 직분도 갈리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시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대제사장은 우리에게 합당하니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고 죄인에게서 떠나 계시고 하늘보다 높이 되신 분입니다. 그는 저 대제사장들이 먼저 자기 죄를 위하고 다음에 백성의 죄를 위하여 날마다 제사 드리는 것과 같이 할 필요가 없으니 이는 그가 단번에 자기를 드려 이루셨기 때문입니다.

 

이런 말씀을 드리면 당장 나오는 질문이 십일조를 해야 합니까? 하지 말아야 합니까? 이런 질문을 합니다. 이런 질문이 나오는 분은 설교를 다시 듣거나 인용한 성경을 다시 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처음 것의 희생으로 자신을 드려서 우리를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나의 것이 없는 자가 됩니다. 나는 전부 주님의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충만이란 자신의 재물을 자신의 것이라고 하지 않는 것입니다(4:32). 그러므로 성령이 임한 자들은 율법의 조문을 따라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자원과 감사와 기쁨으로 연보 하면 됩니다(고후8~9).

 

레위인이 백성들에게 십일조를 받습니다. 십일조는 처음 것의 희생을 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십일조에 포함되어 레위인에게 들어갑니다. 레위인은 그들이 받은 십일조의 십일조를 제사장에게 돌립니다. 제사장도 레위 지파이기에 레위 지파가 아브람의 허리에 있을 때, 아브람이 멜기세덱에게 십 분의 일을 드립니다. 이 멜기세덱의 서열을 따라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서 받으시는 것은 아니라 오히려 자기 자신을 우리에게 주심으로 우리를 자기의 몸으로 삼으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우리가 주님의 것이 되는 겁니다. 나의 전부가 주님의 것이며 나의 것은 하나도 없음을 확인하는 과정이 신앙생활입니다. 토요일 청소 후에 잠시 나누는 시간에 어느 권사님이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자신이 활발한 사람이었는데 일 년 반을 꼼짝도 할 수 없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때 깨달은 것이 자기가 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주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만유라고 합니다. 만유란 전부입니다. 믿음의 여정이란 십자가 지신 예수님이 나의 전부라는 고백을 하는 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