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29:12~40 초막절(수장절) 2021. 6. 27

 

12 일곱째 달 열다섯째 날에는 너희가 성회로 모일 것이요 아무 일도 하지 말 것이며 이레 동안 여호와 앞에 절기를 지킬 것이라 13 너희 번제로 여호와께 향기로운 화제를 드리되 수송아지 열세 마리와 숫양 두 마리와 일 년 된 숫양 열네 마리를 다 흠 없는 것으로 드릴 것이며 14 그 소제로는 고운 가루에 기름을 섞어서 수송아지 열세 마리에는 각기 십분의 삼이요 숫양 두 마리에는 각기 십분의 이요 15 어린 양 열네 마리에는 각기 십분의 일을 드릴 것이며 16 상번제와 그 소제와 그 전제 외에 숫염소 한 마리를 속죄제로 드릴 것이니라

 

오늘 보는 초막절은 마지막 절기입니다. 처음 절기의 시작은 유월절과 연결되는 무교절이며 그다음은 초실절, 칠칠절, 나팔절, 대속죄일, 초막절입니다. 삼대 절기로 말하면 유월절 칠칠절 초막절입니다. 오늘 본문의 초막절은 가을 수확을 저장하는 때라서 수장(收藏)절이라고도 합니다(23:16, 34:22).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 시키신 후 시내산에서 이러한 절기를 지키라고 하신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약속의 땅에 들어가서 무엇을 기억하며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말씀하시기 위함입니다.

 

유월절은 어린 양의 피로 구원받아 나왔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무교절은 출애굽 시에 발효되지 않은 밀가루 반죽을 메고 나온 것도 있지만 더 중요한 내용은 어린 양의 피를 바르게 유지하라는 겁니다. 처음 익을 열매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여줍니다. 오순절은 처음 익은 열매이신 예수님께서 그 성령을 자기 백성에게 보내주십니다. 그러자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고 복음을 전하기 시작합니다. 이것이 나팔을 부는 겁니다. 나팔을 부는 이유는 회개하라는 겁니다. 그래서 속죄를 받게 되면 안식일 중의 안식일, 곧 참된 안식을 맛보는 겁니다. 이러한 추수를 마무리하여 저장하기에 수장절이며 또한 초막절입니다.

 

초막절에 관하여 레위기 23:39~44절을 먼저 봅니다. “39 너희가 토지 소산 거두기를 마치거든 일곱째 달 열닷샛날부터 이레 동안 여호와의 절기를 지키되 첫날에도 안식하고 여덟째 날에도 안식할 것이요 40 첫날에는 너희가 아름다운 나무 실과와 종려나무 가지와 무성한 나뭇가지와 시내 버들을 취하여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이레 동안 즐거워할 것이라 41 너희는 매년 이레 동안 여호와께 이 절기를 지킬지니 너희 대대의 영원한 규례라 너희는 일곱째 달에 이를 지킬지니라 42 너희는 이레 동안 초막에 거주하되 이스라엘에서 난 자는 다 초막에 거주할지니 43 이는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때에 초막에 거주하게 한 줄을 너희 대대로 알게 함이니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44 모세는 이와 같이 여호와의 절기를 이스라엘 자손에게 공포하였더라

 

레위기의 초막절은 곡식을 거두어들이는 말씀도 있지만(39), 이레 동안 초막에 거주하는 이유는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때에 초막에 거주한 줄을 너희 대대로 알게 하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이스라엘의 절기가 유월절로 시작이 되고 초막절로 마무리가 됩니다. 그러면 초막절에 다시 유월절을 기억하게 하는 겁니다. 약속의 땅에 들어가서 집을 짓고 살아도 일주일간 초막을 지어서 집 밖에 살게 함으로 유월절을 기억하게 한 이유는 초막절도 떠날 생각을 하고 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초막절은 복음의 나팔이 땅끝까지 다 불어지면 하나님의 백성을 다 구원하심으로 하나님의 처소가 완성됩니다. 그 처소가 완성되면 성도들은 이 세상이 아니라 새 하늘과 새 땅의 백성으로 영원히 주와 함께 살게 됩니다. 이날을 기다리며 사는 자들이 성령이 임한 자들입니다. 구약에서도 그리스도의 영이 임한 자들은 이 땅에서 외국인과 나그네로 살면서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초막을 지어 살면서 영원한 거처를 만드시기 위하여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하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직도 초막절을 지키고 있기에 예수님을 믿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복음을 듣고 믿는 자들이 그리스도의 몸이 되며 그리스도의 신부가 됩니다. 다른 말로 하나님의 거처가 되는 겁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이라는 초막에서 영원한 거처를 사모하며 사는 일이 초막절의 정신입니다.

 

본문 17~34절입니다. 한 이레 동안 드리는 제물에 무슨 차이가 있는지 보시기 바랍니다. “봉독 첫째 날부터 일곱째 날까지 다른 제물은 차이가 없는데 수송아지의 숫자가 달라집니다. 첫날에 열세 마리로 시작하여 마지막 이렛날에는 일곱 마리입니다. 왜 이렇게 변하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럴 때 생각은 그냥 상상이 아니라 계시를 의존한 생각이라고 해서 계시 의존 사색이라고 합니다. 생각을 해 보니 카운트 다운해서 절기 마지막 날에 7이라는 숫자를 맞추기 위함입니다. 이것은 구약의 모든 제사와 제물과 절기들이 점점 줄어들어 7로 완성함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봅니다.

 

본문 35~40절입니다. “35 여덟째 날에는 장엄한 대회로 모일 것이요 아무 일도 하지 말 것이며 36 번제로 여호와께 향기로운 화제를 드리되 수송아지 한 마리와 숫양 한 마리와 일 년 되고 흠 없는 숫양 일곱 마리를 드릴 것이며 37 그 소제와 전제는 수송아지와 숫양과 어린 양의 수효를 따라 규례대로 할 것이며 38 상번제와 그 소제와 그 전제 외에 숫염소 한 마리를 속죄제로 드릴 것이니라 39 너희가 이 절기를 당하거든 여호와께 이같이 드릴지니 이는 너희의 서원제나 낙헌제로 드리는 번제, 소제, 전제, 화목제 외에 드릴 것이니라 40 모세가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모든 일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니라

 

초막절 일곱째 날의 일곱 마리가 팔 일째는 한 마리입니다. 민수기는 숫자를 헤아리는 내용이 많습니다. 레위기는 이런 제물의 숫자 없이 말씀하는데 민수기는 상세하게 숫자가 다 나옵니다. 이 숫자를 종합해 보면 칠로 완성함이 결국 하나로 완성됨을 보여줍니다. 창세기의 천지창조가 7일로 완성이 됩니다. 그러면 그다음 날은 8일인데 7로 완성한 날의 연속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천지창조 목적이 하나님의 안식입니다(2:3), 하나님의 안식은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완성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출애굽 한 후 홍해 바다 건너서 모세가 찬양한 내용은 하나님께서 자기의 처소를 삼기 위하여 구원하였다고 찬양합니다(15:17). 그리고 시편에서 유일한 모세의 노래라고 되어 있는 90편은 여호와 하나님이 영원부터 영원까지 우리의 거처라고 찬송합니다(90:1~2). 초막절의 완성은 하나님의 처소가 완성됩니다.

 

스가랴 14:16~19절입니다. “16 예루살렘을 치러 왔던 이방 나라들 중에 남은 자가 해마다 올라와서 그 왕 만군의 여호와께 경배하며 초막절을 지킬 것이라 17 땅에 있는 족속들 중에 그 왕 만군의 여호와께 경배하러 예루살렘에 올라오지 아니하는 자들에게는 비를 내리지 아니하실 것인즉 18 만일 애굽 족속이 올라오지 아니할 때에는 비 내림이 있지 아니하리니 여호와께서 초막절을 지키러 올라오지 아니하는 이방 나라들의 사람을 치시는 재앙을 그에게 내리실 것이라 19 애굽 사람이나 이방 나라 사람이나 초막절을 지키러 올라오지 아니하는 자가 받을 벌이 그러하니라

 

오늘 오전 아마겟돈 전쟁과 연결되는 말씀입니다. 스가랴 11장에 은 삼십에 팔리는 내용과 스가랴 12장에 유다와 예루살렘을 공격하려고 열방에서 말을 타고 온 자들이 오히려 심판을 받는 내용입니다. 그 심판의 날에 구원을 받는 일도 일어나는데 구원받는 자들은 그 찌른 자를 보고 독자와 장자를 잃은 것처럼 애통합니다. 그런데 그런 애통함이 므깃도의 하다드림몬에 있었던 애통과 같다고 합니다. 요시야 왕이 죽던 곳이 므깃도입니다. 요시야는 여호와께서 도와주신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죽음을 보고 자신이 찌른 것임을 알고 애통해하는 자들이 어떤 자들인지 사도행전 2장에서 봤습니다.

 

방금 읽은 스가랴 14장을 보면 이방 나라들이 예루살렘을 치러 왔다가 심판을 받습니다. 그 이방 나라들 가운데 남은 자들이 여호와를 경배하려고 초막절을 지키려 예루살렘으로 온다고 합니다. 초막절을 지키려고 오지 않는 자들에게는 비를 내리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런 말씀을 가지고 한국의 자생적인 이단들은 자기들이 초막절을 지킨다고 하면서 초막절이 다른 말로 장막절이니 장막성전이라고 합니다. 유재열, 신천지의 이만희, 하나님의 교회에서 이런 절기를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교회 홍보지에 크리스마스를 지키는 교인을 보고 태양신을 섬기는 우상 숭배자라고 합니다. 그것도 교회사의 자료를 인용합니다. 그러면서 자기들은 7대 절기를 지킨다고 합니다. 절기가 무엇을 말하는지 모르는 자들입니다.

 

스가랴 14:16~19절을 다시 봅니다. “봉독 여호와를 경배하려고 초막절에 예루살렘으로 오지 않는 자들에게 비를 내리지 않으신다고 합니다. 이것이 그들이 받을 벌이라고 합니다. 비가 내리지 않으면 기근으로 죽습니다. 그러나 이 비는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말함이 아니라 생명의 말씀을 말합니다. 아모스 선지자는 먹을 양식이 없어서 주림이 아니고 마실 물이 없어서 기갈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한 주림과 기갈이라고 합니다(8:11).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초막절에 실로암 연못에서 물을 길어와서 초막절 내내 성전에서 붓는다고 합니다. 초막절 규례에는 없지만, 초막절을 지키지 않으면 비가 오지 않는다는 말씀으로 인하여 자기들은 초막절을 지키니 비를 주시라는 기원이기도 합니다.


요한복음 7:37~39절입니다. “37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38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39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않으셨으므로 성령이 아직 그들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이 명절 끝날 곧 큰 날이 무슨 명절입니까?

 

요한복음 7:2절입니다. 유대인의 명절인 초막절이 가까운지라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니 갈릴리에서 다니십니다. 그러자 예수의 형제들이 유대로 가라고 합니다. 스스로 나타내려고 하는데 왜 시골에 있느냐는 겁니다. 예수의 형제들이 예수님을 스스로 자신을 나타내는 자로 본 겁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자기의 때가 아니라고 하신 후에 조용하게 그 명절에 예루살렘으로 가십니다. 그리고 초막절 마지막 날 그 큰 날에 물을 붓는 행사를 하는 그날에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고 합니다. 나를 믿는 자는 그 배에서 생수가 강처럼 흐른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초막절을 지키지 않으면 비를 내리지 않겠다는 스갸라서의 말씀은 예수님 자신이 초막절을 완성하여 생명수를 주신다고 합니다.

 

요한복음 4장에서 예수님은 사마리아 우물가의 여인에게도 생명수를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6장에서도 자신의 살과 피가 생명의 양식이며 생명의 음료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요한복음 7절에서 자기를 믿는 자는 그 배에서 생수가 강처럼 흐른다고 합니다. 이 일은 예수님께서 성령을 보내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십자가로 구약에 나오는 모든 생명수에 관한 내용을 예수님 자신이라고 초막절 마지막 날에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성령이 임하면 예수님이 생명임을 알고 믿게 됩니다.

 

골로새서 2:12~19절입니다. “12 너희가 1)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 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 13 또 범죄와 육체의 무할례로 죽었던 너희를 하나님이 그와 함께 살리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시고 14 우리를 거스르고 불리하게 하는 법조문으로 쓴 증서를 지우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15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2)무력화하여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셨느니라 16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초하루나 안식일을 이유로 누구든지 너희를 비판하지 못하게 하라 17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 18 아무도 꾸며낸 겸손과 천사 숭배를 이유로 너희를 정죄하지 못하게 하라 그가 그 본 것에 의지하여 그 육신의 생각을 따라 헛되이 과장하고 19 머리를 붙들지 아니하는지라 온몸이 머리로 말미암아 마디와 힘줄로 공급함을 받고 연합하여 하나님이 자라게 하시므로 자라느니라

 

예수님을 믿는다는 말은 예수님의 십자가로 모든 율법의 법조문을 지우고 제하여 버리고 십자가에 못 박아버린 것을 믿는 겁니다. 이런 자들은 먹고 마시는 것이나 절기나 초하루나 안식일에 매이지 않고 예수님께 매여 사는 자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 머리를 붙들고 사는 것입니다. 그 머리로부터 공급함을 받고 사는 자들은 한 몸으로 연합됩니다. 그 몸을 하나님이 자라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초막절도 예수님의 십자가로 완성되었기에 그 복음의 나팔을 듣고 믿는 자들은 하나님의 거처가 됩니다.

 

에베소서 2:20~22절입니다. “20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 21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22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유월절도 떠남이며 초막절도 떠남이어야 합니다. 사도들과 선지자들이 전한 예수 그리스도는 모퉁이 돌이 되었습니다. 그 돌에 붙어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성령 안에서 지어져 가는 자들이 성도입니다. 이러한 자들은 초막절에서 지내는 것처럼 그날을 사모하며 살아갑니다.

 

고린도후서 5:1~5절입니다. “1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느니라 2 참으로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노라 3 이렇게 입음은 우리가 벗은 자들로 발견되지 않으려 함이라 4 참으로 이 장막에 있는 우리가 짐 진 것 같이 탄식하는 것은 벗고자 함이 아니요 오히려 덧입고자 함이니 죽을 것이 생명에 삼킨 바 되게 하려 함이라 5 곧 이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에게 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라

 

우리 몸이 장막이라고 합니다. 무너질 초막과 같은 몸입니다. 초막을 짓고 이레 동안 지낸 후에 팔일째는 초막을 허물어 버립니다. 우리가 이 땅에 몸으로 사는 일은 탄식의 삶입니다. 탄식을 하면서 사람의 손으로 짓지 아니한 집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을 사모합니다. 이 집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후에 영광을 받으신 그 몸입니다. 이 말씀이 성령의 보증으로 믿어지는 사람은 어떻게 살겠습니까?

 

이어지는 6~10절입니다. “6 그러므로 우리가 항상 담대하여 몸으로 있을 때에는 주와 따로 있는 줄을 아노니 7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아니함이로라 8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있는 그것이라 9 그런즉 우리는 몸으로 있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를 힘쓰노라 10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 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이것이 믿음으로 사는 삶입니다.

 

골로새서 3:1~4절입니다. “1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2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3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음이라 4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중에 나타나리라이 말씀이 정말로 믿어지는 사람이라면 초막에 살 듯이 이 땅을 살아갈 것입니다(11:13~16, 13:12~16, 벧후1:13~21). 초막의 삶이 탄식의 삶일지라도(8:23) 그 영광의 소망이 탄식을 압도하는 은혜가 임하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