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5:1~4 진영 밖으로 2020. 2. 9

 

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모든 나병 환자와 유출증이 있는 자와 주검으로 부정하게 된 자를 다 진영 밖으로 내보내되 3 남녀를 막론하고 다 진영 밖으로 내보내어 그들이 진영을 더럽히게 하지 말라 내가 그 진영 가운데에 거하느니라 하시매 4 이스라엘 자손이 그같이 행하여 그들을 진영 밖으로 내보냈으니 곧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신 대로 이스라엘 자손이 행하였더라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부정한 자를 진영 밖으로 내보내라고 합니다. 부정한 자의 규례는 레위기에서 상세하게 나오는 것을 이미 보았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대표적인 부정한 자에 대하여 나병, 유출 증, 주검으로 부정하게 된 자를 말합니다. 나병은 악성 피부병을 포함합니다. 유출 증은 몸에서 비정상적인 액체가 나옴을 말합니다. 이 두 종류도 심하면 다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 그러므로 주검에 접촉이 된 자를 부정하다고 하는 것은 죽음이 죄로 인하여 왔기 때문에 부정한 것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부정한 자들을 진 밖으로 나가게 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거룩하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어린 양의 피로 구속한 백성들과 함께 거하시기 위하여 출애굽 시킨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그 진영에 함께 하시기에 부정한 자들을 진 밖으로 내보라고 합니다. 물론 진 밖에서 정결하게 된다면 제사장이 정함을 확인하고 진 안으로 들어오게 함을 레위기에서 봤습니다. 오늘은 민수기에서 진영 밖으로 끌어내는 내용과 신약에서 몇 곳을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민수기 15:36절입니다. “32 이스라엘 자손이 광야에 거류할 때에 안식일에 어떤 사람이 나무하는 것을 발견한지라 33 그 나무하는 자를 발견한 자들이 그를 모세와 아론과 온 회중 앞으로 끌어왔으나 34 어떻게 처치할는지 지시하심을 받지 못한 고로 가두었더니 35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그 사람을 반드시 죽일지니 온 회중이 진영 밖에서 돌로 그를 칠지니라 36 온 회중이 곧 그를 진영 밖으로 끌어내고 돌로 그를 쳐 죽여서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하니라

 

안식일에 나무 한 사람을 발견하여 모세와 아론과 온 회중 앞에 끌어 왔습니다. 안식일에 일하지 말라고 명하였는데도 이렇게 한 자에 대하여 어떻게 처치할 것인지 구체적인 지시가 없기에 가두어 두었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시기를 그 사람을 반드시 죽이되 온 회중이 진영 밖에서 돌로 치라고 합니다. 그 명대로 하였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왜 이렇게 하신 것입니까? 안식일은 그림자로서 안식의 주인이신 예수님을 계시합니다. 그러므로 안식일에 일을 하였다는 것은 자기 죽음으로 우리에게 안식을 주시는 예수님을 믿지 않음으로 이런 자들은 죽는다는 것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율법을 문자대로 적용하면 사람을 살리는 것이 아니라 죽이는 것임을 율법주의자들을 통하여 보았습니다. 이 율법을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내용으로 보지 않으면 안식일에 온갖 규례를 정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안식을 얻지 못하게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이러한 자들 앞에서 일부러 안식일에 병자를 고쳐주십니다. 안식이 무엇인지 시위를 하신 것입니다. 38년 된 환자가 베데스다 자비의 집에서 자비 없이 살아가는데 예수님께서 그를 고쳐주신 날이 안식일입니다. 그런데 이런 예수님을 누가 죽이려고 합니까? 율법을 문자대로 지킨다는 자들이 죽이려고 모의하여 살해하였습니다.

 

민수기 19:1~10절입니다. “1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 여호와께서 명령하시는 법의 율례를 이제 이르노니 이스라엘 자손에게 일러서 온전하여 흠이 없고 아직 멍에 메지 아니한 붉은 암송아지를 네게로 끌어오게 하고 3 너는 그것을 제사장 엘르아살에게 줄 것이요 그는 그것을 진영 밖으로 끌어내어서 자기 목전에서 잡게 할 것이며 4 제사장 엘르아살은 손가락에 그 피를 찍고 그 피를 회막 앞을 향하여 일곱 번 뿌리고 5 그 암소를 자기 목전에서 불사르게 하되 그 가죽과 고기와 피와 똥을 불사르게 하고 6 동시에 제사장은 백향목과 우슬초와 홍색 실을 가져다가 암송아지를 사르는 불 가운데에 던질 것이며 7 제사장은 자기의 옷을 빨고 물로 몸을 씻은 후에 진영에 들어갈 것이라 그는 저녁까지 부정하리라 8 송아지를 불사른 자도 자기의 옷을 물로 빨고 물로 그 몸을 씻을 것이라 그도 저녁까지 부정하리라 9 이에 정결한 자가 암송아지의 재를 거두어 진영 밖 정한 곳에 둘지니 이것은 이스라엘 자손 회중을 위하여 간직하였다가 부정을 씻는 물을 위해 간직할지니 그것은 속죄제니라 10 암송아지의 재를 거둔 자도 자기의 옷을 빨 것이며 저녁까지 부정하리라 이는 이스라엘 자손과 그중에 거류하는 외인에게 영원한 율례니라

 

부정한 자는 진영 밖으로 내 보내야 하는데 그들이 정결하게 되면 진영 안으로 들어와야 합니다. 그런데 그냥 들어올 수가 없습니다. 정결하게 하는 이 물로 씻어야 합니다. 정결하게 하는 물을 만드는 재료가 멍에 메지 아니한 붉은 암송아지를 진영 밖으로 끌고 가서 잡습니다. 피는 회막을 향하여 일곱 번 뿌리고 백향목과 우슬초와 홍색 실을 함께 태워서 재를 만들어 진영 밖 정결한 곳에 두게 합니다. 진영 안에서 부정한 자는 진영 밖으로 나가야 하고 일정한 기간을 지나 들어오게 될 때에 이 물로 씻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정한 자가 진영 밖으로 나갔지만 들어올 수 있는 길은 암송아지의 재와 백향목과 우슬초와 홍색 실을 함께 태운 그 잿물에 씻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 본문을 볼 때에 상세히 보도록 하고 오늘은 전체적으로 부정한 자가 진영 밖으로 나가야 함을 보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에덴동산에 아담과 하와를 통하여 돌보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시고 사람이 돌보는 이 일을 통하여 하나님과 사람이 함께 살게 됩니다. 그런데 인간이 타락함으로 에덴동산에서 추방이 됩니다. 생명나무로 가는 길이 막혔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이삭과 야곱의 열두 아들로 이스라엘 백성을 만드시고 출애굽 시키셔서 하나님과 함께 하는 일을 맡기십니다. 제가 요즈음 창세기 1:1절로 몇 곳의 모임에서 나누는데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이 무엇인지 성경 전체를 통하여 살펴보고 있습니다. 그 목적은 하나님의 아들의 희생으로 구속한 백성들을 하나님의 자기의 처소를 삼는다는 것을 전합니다. 설교시간에 종종 이런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약 30년 전에 볼프일과 성령이라는 책이 최근에 출판이 되었는데 이와 비슷한 말을 하기에 인용합니다. [창세기 2장에서 두 번째 창조 기사에서 세상은 자연적 과정을 창조하시는 하나님과 동산에서 일하고 돌보는인간 사이의 협력으로 존재하게 된다(2:5,15). 바로 그런 세상, 곧 하나님과 인간의 협력 활동을 통해 존재하게 되는 세상의 창조 목표는 하나님이 거하실 장소가 되는 것이다. 우리가 이것을 알 수 있는 이유는 부분적으로, 히브리 성경의 다른 부분에서 일하고 지키다’-더 낫게는 섬기고 보살피다’-라는 표현이 성막에서 레위인이 하는 일을 묘사하기 때문이다(3:7~8, 8:6, 18:5~6). 인류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역사 전체가 땅 위에 하나님의 집을 세우는 것을 지향한다고 해석한다면(21:3), 그리고 만약 에덴동산을 그러한 목표의 원형 이미지로 본다면, 성경 전통에서도 인간의 일은 세상을 형성하는 동력이라는 결론이 따라 온다. 즉 누적되는 인류의 일에 부여된 목적은 세상이 하나님과 인간 그리고 창조세계 전체 공동체의 단일한 집이 되도록 돕는 것이다. 맞다. 성경 전통에서 하나님의 집은 하나님으로부터 온다. 창세기에서는 하나님이 동산을 심으시는 창조주이시고(2:8), 요한 계시록에서는 새 예루살렘이 위로부터 내려온다(21:2). 그럼에도 인간의 일은 여전히 필수적이다. 인간의 일이 없다면, 하나님과 피조물의 집으로서의 세상도 없다.]

 

저는 이 사람의 논지를 다 받아들이지는 않습니다. 인간의 일이 없다면, 하나님과 피조물의 집으로서의 세상도 없다는 말은 인간의 역할을 너무 높인 것입니다. 오히려 인간은 망치고 하나님은 이루신다는 헤셀의 표현이 더 좋습니다. 그러나 인용한 이유는 에덴동산의 지킴과 돌봄, 섬기고 보살핌을 성막에서 레위인들이 하는 일로 본 것이 탁월합니다. 그러므로 성막을 통하여 레위인들이 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정함과 부정함을 구별해야 합니다. 부정함이 진영 안에 있다면 진영 밖으로 내 보내야 합니다. 그리고 정하게 되었다면 진영 안으로 들어오는데 암송아지가 진영 밖에서 몽땅 태워지고 거기에 백향목과 우슬초와 붉은 실을 함께 태운 재로 씻어야 정하게 됩니다. 이런 것도 다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줍니다.

 

성막과 성전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하신다고 레위인들에게 잘 지키고 돌보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에덴동산에서 실패한 아담과 하와처럼, 역시 성막과 성전도 섬기며 돌보는 일에 실패합니다. 그래서 성전을 도적의 소굴을 삼았다는 말은 예레미야 선지자가 말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전을 무너뜨리라고 하셨습니다. 도적이 소굴이 되어 있기 때문에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삼일 만에 일으키겠다고 하신 것은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로 예수님이 성전이 되십니다. 그런데 이 참된 성전이신 예수님을 누가 부정하다고 쫓아냅니까? 제사장과 레위인들과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과 백성의 장로들이 예수님을 쫓아냅니다. 자신들은 의롭다고, 율법과 성전을 지킨다고 하면서 예수님을 영문 밖으로 쫓아내어 버린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정한 자들이 정결한 분을 쫓아내어 버린 것입니다.

 

히브리서 13:11~15절입니다. “11 이는 죄를 위한 짐승의 피는 대제사장이 가지고 성소에 들어가고 그 육체는 영문 밖에서 불사름이라 12 그러므로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하게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 13 그런즉 우리도 그의 치욕을 짊어지고 영문 밖으로 그에게 나아가자 14 우리가 여기에는 영구한 도성이 없으므로 장차 올 것을 찾나니 15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송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언하는 입술의 열매니라

 

영문 밖에서 불사르는 짐승은 속죄제로 드려지는 짐승과 오늘 찾아본 붉은 암송아지입니다. 레위기에서 본 아사셀 염소도 영문 밖 무인지경으로 보내는 염소입니다. 이렇게 영문 밖에서 죽는 짐승들이 영문 밖에서 죽으시는 예수님의 이야기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분이십니다(13:8). 그렇다면 오늘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어디로 가야 합니까?

 

영문 안으로 가는 자들이 아닙니다. 영문 안이란 예수님 당시에 예루살렘 성전이 있는 곳입니다. 그런 곳에서 예수님을 배척하고 영문 밖으로 몰아내어 죽였습니다. 그런데도 오늘날 이 땅의 교인들이 모인 교회라는 곳에서는 영문 밖으로 갈 생각을 하지 않고 영문 안에서 바벨탑을 세우려고 합니다. 여기는 영구한 도성이 없습니다. 장차 올 것을 찾는데 그 나라가 예수님의 희생으로 만들어 낸 새 하늘과 새 땅입니다. 그 날이 임할 때 까지 성도는 이 땅에서 나그네와 외국인으로 살아갑니다. 이렇게 말하면 세상의 일에 소홀할 것이 아니냐고 할 것입니다. 제발 소홀해 지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거의 다가 땅에 속한 일로 사느니 죽느니 합니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바이러스로 온 세상의 벌벌 떠는데,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신 그 분께서 보이는 하늘과 땅을 불사른다는 말씀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성경의 이 말씀을 믿으신다면 이 세상을 가볍게 살아갈 것입니다. 이 은혜가 임하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