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더 4:1~17 다른 데로 말미암아 2018. 9. 9

 

14 이 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버지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 하니 15 에스더가 모르드개에게 회답하여 이르되 16 당신은 가서 수산에 있는 유다인을 다 모으고 나를 위하여 금식하되 밤낮 삼 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 나도 나의 시녀와 더불어 이렇게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 하니라 17 모르드개가 가서 에스더가 명령한 대로 다 행하니라

 

에스더서에서 가장 유명한 구절이 나오는 본문입니다.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 이 말씀으로 우리가 특별히 헌신을 해야 할 때에 이 때를 위함이라고 하는 식의 말을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죽으면 죽으리라는 내용입니다. 신사참배 반대운동을 한 안이숙 씨의 간증문인 죽으면 죽으리라는 책도 상당히 유명합니다. 이런 내용은 많이 들어보셨을 겁니다. 저는 다른 데로 말미암아에 주목하려고 합니다. 이 말은 하나님의 구원은 하나님이 하신다는 겁니다.

 

본문 1~2절입니다. “봉독 하만이 아하수에로 왕의 도장으로 인친 조서가 전국에 알려진 것입니다. 그 내용은 제비를 뽑은 1213일에 모든 유대인들을 남녀노소불문하고 다 진멸하고 그들의 재산을 탈취해도 좋다는 조서입니다. 이 조서로 인하여 모르드개와 유다인들이 크게 애통하여 금식하며 울며 부르짖고 굵은 베 옷을 입고 재에 누운 자가 많았습니다. 굵은 베옷을 입고 재에 눕는 것은 극심한 슬픔의 표현이며 또한 회개하는 모습입니다. 모르드개가 이렇게 하면서 왕궁 앞에 있습니다. 왕궁에는 굵은 베옷을 입고는 들어갈 수 없기에 그 앞에서 통곡하고 있습니다.

 

4~8절입니다. 에스더의 시녀와 내시가 모르드개의 일을 전하니 왕후가 매우 근심하여 입을 의복을 모르드개에게 보내어 그 굵은 베 옷을 벗기고자 하나 모르드개가 받지 아니합니다. 에스더가 왕의 어명으로 내시 하닥을 불러 명령합니다. 모르드개에게 가서 무슨 일인지 알아보라고 합니다. 하닥이 모르드개에게 말하자 모르드개가 하닥에게 자초지종을 말하고 그 조서의 초본까지 주어 에스더에게 알립니다. 그러면서 하닥에게 부탁하기를 에스더가 왕에게 나아가 자기 민족을 구원할 수 있도록 아하수에로 왕에게 간절히 말하라고 합니다.

 

9~11절입니다. 하닥이 돌아와 모르드개의 말을 에스더에게 알리매 에스더가 하닥에게 이르되 너는 모르드개에게 전하기를 왕의 신하들과 왕의 각 지방 백성이 다 알거니와 남녀를 막론하고 부름을 받지 아니하고 안뜰에 들어가서 왕에게 나가면 오직 죽이는 법이요 왕이 그 자에게 금 규를 내밀어야 살 것이라 이제 내가 부름을 입어 왕에게 나가지 못한 지가 이미 삼십 일이라고 전하게 합니다. 아하수에로 왕은 국사에 바빴던지 애정이 식었는지 삼십일 동안 왕의 부름이 없었습니다. 니다. 그러므로 왕의 허락 없이 나가면 죽임을 당합니다. 다만 왕이 왕의 규()를 내 밀면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이 말을 하닥이 모르드개에게 전합니다. 그때에 모르드개가 한 말을 봅니다.

 

13절을 봅니다. 모르드개가 그를 시켜 에스더에게 회답하되 너는 왕궁에 있으니 모든 유다인 중에 홀로 목숨을 건질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말라고 합니다. 1213일 하루 동안 유대인들을 진멸하고 재산을 탈취하라고 하였기에 왕궁에 에스더를 누가 감히 죽일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모든 유다인 중에 에스더는 목숨을 건질 수 있다는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에스더는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다고 하여도 왕 앞에 나가면 죽임을 당한다는 사실은 전한 것입니다.

 

14~17절입니다. 함께 읽은 본문입니다. 이 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버지 집은 멸망할 것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네 아버지 집이란 모르드개 자신의 집이 포함됩니다. 에스더와 모르드개가 사촌간이니 너나 내가 죽임을 당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하여도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구원하실 것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한 번도 드러나지 않지만 가장 강력하게 하나님의 일하심을 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네가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이 때가 아닌지 어떻게 알겠느냐고 했을 때에 에스더는 모든 유다민족에게 삼일 금식을 하도록 하고 자신도 금식한 후에 왕에게 나가겠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죽으면 죽으리라고 하고 나갑니다. 모르드개는 에스더의 말한 대로 다 행합니다.

 

우리는 에스더의 결론을 이미 알고 보기에 긴장감이 덜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현장에 들어가서 모르드개가 되고 에스더가 되고 유다 민족이 되었다고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아직은 결말을 모릅니다. 하루 동안이지만 유다 민족이 다 진멸될 조서가 내려졌습니다. 모든 비 유대인들이 유대인들을 다 죽이고 재산을 탈취해도 된다는 변개할 수 없는 왕의 조서가 내린 것입니다. 이런 결정이 지난주에 본 대로 자기 보기에 좋은 대로 행하는 일이 이런 모양입니다.

 

이럴 때에 우리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입니다. 그런데 모르드개가 하는 말은 에스더 네가 아니라도 다른 데로 말미암아 구원을 하실 것이라는 믿음입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이름이 언급이 없더라도 가장 강력한 하나님의 구원하심에 대한 믿음의 고백입니다. 물론 모르드개의 이런 믿음이 은혜의 선물입니다. 우리가 이런 믿음이 있다면 우리의 개인사가 요란하고 세상이 요란하여도 사람을 의지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네가 아니라도 하나님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구원하신다는 믿음이 있다면 사람에게 비굴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에스더도 모르드개의 말을 듣고 목숨을 걸고 왕에게 나아가지만 에스더의 태도도 죽으면 죽으리라는 것입니다. 이런 모습이 믿음입니다.

 

시편33:6~12절입니다. “6 여호와의 말씀으로 하늘이 지음이 되었으며 그 만상을 그의 입 기운으로 이루었도다 7 그가 바닷물을 모아 무더기 같이 쌓으시며 깊은 물을 곳간에 두시도다 8 온 땅은 여호와를 두려워하며 세상의 모든 거민들은 그를 경외할지어다 9 그가 말씀하시매 이루어졌으며 명령하시매 견고히 섰도다 10 여호와께서 나라들의 계획을 폐하시며 민족들의 사상을 무효하게 하시도다 11 여호와의 계획은 영원히 서고 그의 생각은 대대에 이르리로다 12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은 나라 곧 하나님의 기업으로 선택된 백성은 복이 있도다

 

여호와의 말씀의 능력은 천지를 창조하시고 보존하시고 움직일 뿐 아니라 모든 나라의 계획을 폐하시며 민족들의 사상을 무효하게 하십니다. 여호와의 계획만 영원히 서고 그의 생각이 대대에 이릅니다. 지금 모르드개의 신앙이 시편 33편의 내용입니다. 아하수에로 왕의 마음을 돌이키고 잠이 오지 않게 하시고 궁중 일기를 읽게 하셔서 하만의 계획을 폐하시는 것입니다. 이런 신앙은 그야 말로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믿음이며 이런 믿음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을 삼은 나라 곧 하나님의 기업으로 선택된 백성이 복입니다. 12절을 다시 보면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은 나라라는 말이 사람이 선택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이어서 하나님의 기업으로 선택된 백성은 복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동인(動因)은 하나님의 선택이 먼저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선택으로 인하여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을 수 있는 것입니다.

 

13~17절입니다. “13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굽어보사 모든 인생을 살피심이여 14 곧 그가 거하시는 곳에서 세상의 모든 거민들을 굽어살피시는도다 15 그는 그들 모두의 마음을 지으시며 그들이 하는 일을 굽어살피시는 이로다 16 많은 군대로 구원 얻은 왕이 없으며 용사가 힘이 세어도 스스로 구원하지 못하는도다 17 구원하는 데에 군마는 헛되며 군대가 많다 하여도 능히 구하지 못하는도다

 

우리는 무엇으로 구원을 얻는 다고 생각을 합니까? 구원하는 데에 군마가 많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스라엘이 멸망한 것은 말과 병거가 없어서 망한 것이 아닙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온 것은 그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말과 병거를 의지하였기에 멸망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서 에스더 왕후의 힘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네가 거절하면 하나님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구원을 하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이어지는 내용을 보면 여호와를 경외하고 그 인자하심을 바라는 자를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어떤 구원을 바라보고 있습니까? 내가 생각하는 구원이 이런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가난하다면 부자 되게 하여주는 구원을 생각합니다. 병이 들었다면 병을 고쳐주시는 구원을 생각합니다. 내 삶의 형편에서 구원을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시편에서 본대로 사람들은 말과 병거를 구원하는 힘으로 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것들을 육체라고 합니다. 육체를 의지한 구원이 어떤 모습인지 알려주시면서 그런 도움을 청하거나 주는 자가 다 망한다고 합니다.

 

이사야 31:1~3절입니다. “1 도움을 구하러 애굽으로 내려가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그들은 말을 의지하며 병거의 많음과 마병의 심히 강함을 의지하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앙모하지 아니하며 여호와를 구하지 아니하나니 2 여호와께서도 지혜로우신즉 재앙을 내리실 것이라 그의 말씀들을 변하게 하지 아니하시고 일어나사 악행하는 자들의 집을 치시며 행악을 돕는 자들을 치시리니 3 애굽은 사람이요 신이 아니며 그들의 말들은 육체요 영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그의 손을 펴시면 돕는 자도 넘어지며 도움을 받는 자도 엎드러져서 다 함께 멸망하리라

 

바벨론이 쳐들어오면 유다 백성들이 애굽으로 도움을 구하려고 갑니다. 이것이 여호와를 의지하지 않는 모습입니다. 그러므로 도움이 되지 않는 것에 도움을 구하면 돕는 자도 넘어지며 도움을 받는 자도 엎드려질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애굽이 미약하게 되는 것은 이스라엘의 의지가 되지 못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위기를 당하면 항상 어떤 사람과 능력 있는 자를 의지합니다. 네가 아니면 이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 모르드개는 능력 있는 왕후 에스더 네가 아니라도 다른 데로 말미암아 구원을 하실 것이라고 합니다. 이 말을 들은 에스더는 삼일 금식을 명하고 자신도 금식하면서 죽으면 죽으리라고 합니다. 자신이 왕에게 나아갈 때에 왕이 왕의 홀을 내밀지 않으면 자신이 죽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금식하고 죽으며 죽으리라고 간 그 결단과 결심 때문에 유다의 구원이 일어났다고 한다면 이것은 다시 다른 데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으리라는 내용이 안 됩니다. 이것은 구원을 예측할 수가 있는 구원이 되는 것입니다. 살려고 하면 죽을 것이고 죽으려고 하면 살 것이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전혀 예측할 수 없는 방식으로 하나님은 일하시는 것입니다.

 

로마서 3:19~25절입니다. “19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2)심판 아래에 있게 하려 함이라 20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21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22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25 이 예수를 하나님이 3)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율법의 행위로 의롭다 함을 받는 길이 아닌 전혀 다른 데로 말미암아 오는 구원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피로써 화목제물을 세우시는 방식입니다. 이것은 그 어느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방식입니다. 어떤 유대인도 이런 방식의 구원을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 자랑하고 알기를 원한다고 하는 바울조차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는 율법의 의로서 예수 믿는 자를 잡아 죽이는 것이 하나님의 영광이라고 생각하고 행동한 사람입니다. 이랬던 자가 이런 복음을 전하는 것은 바울과 유대인들이 전혀 알지 못한 다른 데로 말미암아 일어난 구원입니다. 이러한 구원은 천사들도 알지 못하여 살펴본 내용입니다(벧전1:12)

 

고린도전서 1:18~24절입니다. “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19 기록된 바 )내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 하였으니 20 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냐 선비가 어디 있느냐 이 세대에 변론가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하게 하신 것이 아니냐 21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22 유대인은 2)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23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24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누가 십자가가 구원이 될 것으로 믿었겠습니까? 제자들조차 예수님의 십자가의 길을 가로막고 나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십자가의 도는 표적을 구하는 유대인들에게는 저주 받은 죽음이기에 거리끼는 것이며, 지혜를 구하는 헬라인들에게는 미련하고 어리석은 십자가입니다. 그러나 구원을 받는 자들에게는 이 십자가가 하나님의 능력이며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이것을 믿는 것은 인간의 예측을 벗어나는 하나님의 은혜이기에 다른 데로 말미암아 구원이 일어나는 모습입니다. 그러므로 죽음으로 죽음을 이기시는 길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뿐입니다(2:14~15). 이러한 구원은 인간도 천사도 전혀 예측 못한 다른 데로 말미암아 일어나는 낯선 구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