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14:26~45 내 귀에 들린 대로 2020. 8. 9

 

26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7 나를 원망하는 이 악한 회중에게 내가 어느 때까지 참으랴 이스라엘 자손이 나를 향하여 원망하는 바 그 원망하는 말을 내가 들었노라 28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내 삶을 두고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29 너희 시체가 이 광야에 엎드러질 것이라 너희 중에서 이십 세 이상으로서 계수된 자 곧 나를 원망한 자 전부가 30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 외에는 내가 1)맹세하여 너희에게 살게 하리라 한 땅에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

 

73일 공개 신앙상담 란에 오늘 본문에 관한 질문이 있어서 그대로 옮깁니다.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내 삶을 두고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민수기 14:28” 목사님 설교 중에서 찾아보려고 하니 민수기 10장 까지 밖에 없어서 질문 드려 봅니다. 이 구절을 기도회에서 "내 귀에 들린 대로 행하리라" 말씀 하셨으니 열심히 기도하자고 하는데 정말 우리가 말한 대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잖아요? 그런데도 사람들에게 기도 응답을 세뇌 시키는 구절처럼 인용을 하는데 구약의 말씀을 오늘의 시대에는 어떻게 받아들이는 게 맞는가요? 초대 교회 성도들이 형장에서 죽어갈 때 그들이 기도 안했겠습니까? 그들의 기도는 외면하시고 형장에 죽도록, 박해 받도록 놓아두신 게 300년가량이잖아요? 그런데 그들의 기도는 표면적으로는 응답이 안 되는 것처럼 보이는데 오늘날 교회는 왜 다 응답되니 긍정적으로 말하고 긍정적으로 기도하라 하는지 잘 이해가 안갑니다.

 

제가 이렇게 답했습니다. 기도는 인간의 본능이기에 기도하지 않는 인간이 없습니다. 그런데 성경에서의 기도는 자기부인입니다.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되기를 원하는 것이 예수님의 기도입니다. 그런데 민수기 14:28절의 말씀 한 구절로 말한 대로 이루어진다고 하면서 주문처럼 사용하는 것은 성경을 주술로 바꾼 겁니다. 적어도 그 문맥을 보면 26~38절입니다. 말한 대로 이루어진다는 내용은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말한 자들은 그 말대로 광야에서 다 죽었다는 말입니다. 우리의 말대로 이루어진다고 하면 우리는 저주를 받을 일 외에는 없습니다. 우리 마음의 생각과 계획이 항상 악하기 때문입니다. 내일 오후 민수기 11:1~3절 말씀인데 원망한다고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살라버립니다. 나의 말대로 안 되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아는 사람이라면 그런 말로 주문 외우듯 자기 소원 아뢰라는 말을 하지는 못할 겁니다. 그런데 그런 말에 따라가는 사람도 그 안의 욕심으로 인한 겁니다.

 

본문 26~30절을 봅니다. “봉독 여호와 하나님께서 나를 원망하는 이 악한 회중에게 내가 어느 때까지 참아야 하느냐고 말씀하십니다. 출애굽 과정을 통하여 어떻게 원망하였는지 지난주에 살펴보았습니다. 그 원망의 정점이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않았습니다.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차라리 광야에서 죽는 것이 낫겠다고 한 그 말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광야에서 죽이십니다. 이 말씀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한다고 하신 말씀입니다. 그래서 이십 세 이상 된 자 중에 갈렙과 여호수아와 외에는 하나님께서 맹세로 약속한 땅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십니다. 엄중한 심판의 말씀인 너희가 말한 그대로 내가 이루겠다는 말씀을 자기가 원하는 것을 기도하면 들어주겠다는 식으로 성경을 해석하고 적용하였다면 인간의 탐심을 부추긴 해석이 됩니다.

 

그러므로 너희 말이 내게 들린 대로 내가 행하겠다는 말씀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않고 멸시한 자들에 대한 심판의 말씀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의 신음소리를 들으십니다. 출애굽기 6:5절입니다. 이제 애굽 사람이 종으로 삼은 이스라엘 자손의 신음 소리를 내가 듣고 나의 언약을 기억하노라여호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언약하신 때가 되었기에 애굽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노예로 삼가 강제노역을 시킵니다. 그러므로 그 신음 소기를 들으시고 언약을 이루어 내십니다.

 

그러나 신음 소리를 듣지 않으시기도 합니다. 시편 22:1절입니다.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 하여 돕지 아니하시오며 내 신음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이 시편은 다윗의 시편이지만 이 부르짖음을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하십니다. 예수님은 죄가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아들의 부르짖음을 하나님께서 들어주시지 않으시고 버리십니다. 그런데 그 버리심이 오히려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는 버림입니다. 이것이 십자가의 신비이며 역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말하고 원하는 대로 이루어 주시는 분이 아니라 아버지 뜻대로 이루십니다.

 

31~32절입니다. “봉독 너희가 사로잡히겠다고 말하던 너희의 유아들은 내가 인도하여 들이리니 그들은 너희가 싫어하던 땅을 보겠지만 너희의 시체는 이 광야에 엎드러질 것이라고 합니다. 20세 이상의 성인들이 열 명의 정탐꾼의 말을 듣고 여호와의 약속을 불신하고 원망하면서 자기들의 어린 자식까지 다 죽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그들은 약속의 땅에 들여놓겠다고 하십니다. 이것도 역설입니다. 성인들이 자기의 힘으로 갈 수 없다고 하면서 연약한 유아들이 더욱 들어갈 수 없기에 다 죽겠다고 하였는데 오히려 그들은 들어가게 하신다고 합니다. 여기서도 복음이 있습니다. 천국은 어린 아이 같아야 들어간다는 말씀은 사람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들어감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33~35절입니다. “봉독 이십 세 이상은 40년 동안 광야에서 죽임을 당하고 이십 세 이하는 광야에서 40년을 방황하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방황의 각주에 목자라고 되어 있습니다. 광야에서 양을 치면서 약속의 땅에 들어갈 때까지 40년을 나그네로 지내야 합니다. 40년을 통하여 여호와께서 싫어하시면 어떻게 되는지 알게 하십니다. 여호와께서 싫어하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지 못할 분으로 여기는 것을 싫어하십니다.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자신의 뜻에 맞게 자기 백성을 이끌어 가시는데 사람들은 이미 죄인들이기에 자기의 뜻에 합당하지 않다고 원망하며 불평합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말한 대로 하나님께서 이루어주신다면 단 한 사람도 약속의 땅에 들어갈 자가 없습니다. 그러면 갈렙과 여호수아는 어떻게 들어갑니까? 믿음으로 들어갑니다. 그러므로 믿음이 은혜의 선물입니다.

 

36~38절입니다. “36 모세의 보냄을 받고 땅을 정탐하고 돌아와서 그 땅을 악평하여 온 회중이 모세를 원망하게 한 사람 37 곧 그 땅에 대하여 악평한 자들은 여호와 앞에서 재앙으로 죽었고 38 그 땅을 정탐하러 갔던 사람들 중에서 오직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은 생존하니라정탐 꾼 중에 열 명은 광야 40년 보내기 전에 먼저 죽습니다. 여호와 앞에서 재앙으로 죽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싫어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이러한 사건으로 다 보여주신 겁니다.

 

39~45절입니다. “봉독 여호와께서 모세를 통하여 40년 간 광야에서 죽을 것이라는 말씀을 듣고서는 백성들이 크게 슬퍼합니다.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산꼭대기로 올라가며 이르되 보소서 우리가 여기 있다고 하면서 여호와께서 허락하신 곳으로 올라가겠다고 합니다. 믿음으로 들어가라고 하셨을 때에는 못 들어간다고 하다가 이제 광야에서 40년간 죽으라고 하니 범죄 하였다고 하면서 약속의 땅에 들어가겠다고 합니다. 이것이 불순종이라고 모세가 말해도 듣지 않습니다. 여호와께서 너희 중에 계시지 않으니 패배할 것이라고 하여도 듣지 않고 올라가서 공격하러 갔습니다. 여호와의 언약궤와 모세는 진영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여호와의 언약은 광야로 들어가서 죽어야 한다는 자들에게 함께 하는 겁니다.

 

예레미야 24장을 보면 예레미야 선지자가 환상을 봅니다. 환상의 내용은 여호와의 성전 앞에 놓인 무화과 광주리 두 개인데 하나는 극히 좋은 무화과 이고 하나는 사람이 먹을 수도 없는 극히 나쁜 무화과입니다. 이것으로 하나님께서 알려주신 내용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자들이 좋은 무화과라고 합니다. 그런데 포로로 잡혀가지 않고 독립운동하려고 애굽을 의지하거나 다른 힘을 가지려고 하는 자들이 극히 나쁜 무화과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에서 광야 40년 동안 죽어 나가야 하는 것이 순종입니다. 그런데 자신들이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겠다고 한 것이 범죄라고 하면서 이제 들어가겠다고 합니다. 이것이 분순종이기에 가나안인이 내려와 그들을 무찌르고 호르마까지 이르렀다고 합니다.

 

저는 이 모습을 보면서 인간이 하나님의 뜻을 참으로 모른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하라는 것은 하지 않고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은 타락한 인간의 실상입니다. 이러한 인간의 실상을 무엇을 하라는 말씀과 하지 말라는 율법의 말씀으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인간도 율법의 행위로는 약속의 땅에 들어갈 수 없음을 보여줍니다. 다른 말로 하면 구원을 받을 자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갈렙도 자기의 행위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들어가는 것이라고 성경이 밝히고 있습니다. 믿음이란 약속에 대한 믿음이기에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약속이 믿음을 생산하여 냅니다.

 

만약에 오늘 우리가 말한 대로 응답을 해 주시는 전능하신 신이 있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 전능하신 신의 자리를 차지하였을 겁니다. 자신이 전능한 신이 되고 싶어 하는 것이 타락한 인간의 속성입니다. 선악과의 유혹이 너도 하나님처럼 되리라는 유혹입니다. 이런 인간의 타락한 속성으로 나오는 말이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말입니다. 지극한 정성을 바치면 하늘도 감동하여 소원을 이루어준다는 민간신앙이 뿌리 깊게 내려져 있는 이 민족에게 성경의 말씀이 들렸습니다. 전능하사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께 기도하면 들어주신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전에 소원을 아뢰는 그 내용으로 하나님이라고 이름만 바꾸어 자기 소원을 이루어 달라고 기도하기에 이런 구절도 내 귀에 들린 대로 이루어준다고 해석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말한 대로 이루어졌다면 하나님의 자리도 차지하였을 뿐만 아니라 이미 이 세상은 벌써 끝장났습니다. 자기의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세상이 탁 망했으면 좋겠다는 말을 한 두 번 하였습니까? 누가 탁 죽었으면 좋겠다는 말은 헤아릴 수도 없을 겁니다. 심지어 자기 자신이 죽고 싶다는 말대로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그대로 이루어주셨다면 여기 살아있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요? 그러므로 우리가 말한 대로 안 들어주심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자기 아들의 말만 들으십니다.

 

마태복음 3:16~17절입니다. “16 예수께서 1)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2)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17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신 장면입니다. 성령이 임하시고 하늘에서 음성이 납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며 내 기뻐하는 자라고 합니다. 이 내용을 출애굽과 비교하여 보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은 내 장자라고 불러내십니다(4:22). 유월절 어린 양의 피를 바르고 홍해를 건너 광야로 들어옵니다. 그런데 광야에서 모든 시험에 다 실패합니다. 그러므로 광야에서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

 

마태복음 4:1~11절입니다. “봉독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성령에 이끌려 마귀에게 시험 받기 위하여 광야로 가십니다. 광야에서 40일을 금식합니다. 오늘 본문의 40일과 40년이 연결됩니다. 40일 금식 후에 돌로 떡을 만들어 먹으라는 유혹과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는 유혹과 세상 영광을 준다는 유혹을 말씀으로 이기십니다. 이 세 가지 유혹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이 유혹에 넘어간 겁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유혹에 넘어간 겁니다. 이런 유혹에 넘어간 인간들의 말을 하나님께서 들어주시면 그것이 심판이 됩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이 유혹을 이길 자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유일하게 이 유혹을 이기신 예수님의 말씀만 하나님 아버지께서 들어주십니다.

 

요한복음 11:40~44절입니다. “40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시니 41 돌을 옮겨 놓으니 예수께서 눈을 들어 우러러 보시고 이르시되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42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그러나 이 말씀 하옵는 것은 둘러선 무리를 위함이니 곧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그들로 믿게 하려 함이니이다 43 이 말씀을 하시고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 부르시니 44 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 채로 나오는데 그 얼굴은 수건에 싸였더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 하시니라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수님의 말씀을 항상 들으십니다. 그러므로 죽은 나사로를 살리심을 통하여 예수님께서 부활과 생명이심을 증거 하셨습니다. 허물과 죄로 죽은 우리가 예수님을 믿음으로 죄 사함을 얻고 부활의 생명을 얻게 되는 것은 우리의 말을 들어주셨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의 말씀을 하나님 아버지께서 들어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다는 것은 이제 그 아들의 말씀을 들어야합니다(17:5, 5:39, 1:2). 이렇게 되도록 주님께서 일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 승천하셔서 성령을 보내주십니다. 성령이 임하여서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하여 주십니다. 우리는 무엇을 기도해야 할지도 알지 못합니다. 우리가 구하는 것은 거저 눈에 보이는 것들입니다. 그러나 믿음은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겁니다. 하나님의 깊은 속을 아시는 성령님께서 아버지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기도하여 주시기에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됩니다. 그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것이 하나님의 아들의 형상을 덧입는 것입니다(8:23~30). 이 일을 위하여 예수님도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서 기도하십니다(8:32). 삼위 하나님의 일하심으로 받은 것이 무엇입니까?

 

로마서 8:28~30절입니다. “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3)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29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30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우리가 말을 듣지 않으시고 성령과 성자의 간구를 들어주시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를 부르시고 의롭다 하시고 영화롭게 하셨습니다. 이 말씀이 믿어진다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서 일하신 어마 어마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이런 자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40년을 보내는 것처럼 광야와 같은 이 세상에서 나그네와 외국인으로 살면서 그 약속의 나라를 소망하면서 믿음으로 살아가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