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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하 12:1~21 교훈하는 날 동안에 2016. 7. 31

 

1 예후의 제 칠년에 요아스가 왕이 되어 예루살렘에서 사십 년간 통치하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시비아라 브엘세바 사람이더라 2 요아스는 제사장 여호야다가 그를 교훈하는 모든 날 동안에는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으되 3 다만 산당들을 제거하지 아니하였으므로 백성이 여전히 산당에서 제사하며 분향하였더라

 

요아스는 아달랴에 의하여 죽임을 당할 뻔 했는데 여호야다의 아내 요아스의 고모가 요아스와 그 유모를 자기 침실에 숨겨 죽음에서 피하게 합니다. 그리고 한 살 때부터 여호야다 제사장의 손에 의하여 성전에서 길러졌습니다. 어려서부터 여호야다의 말을 들었습니다. 마치 아버지와 같고 스승님과 같습니다. 그런 여호야다의 교훈을 받아 자랐고 왕이 되었지만 여호야다의 교훈을 받았습니다. 일곱 살 왕이 무엇을 알겠습니까? 그런데 요아스가 한 가지 잘 한 일이 성전을 수리한 것이지만 여호야다가 죽자 그 본색이 드러납니다.

 

오늘 본문 1~3절을 봅니다. 북 이스라엘 예후가 왕이 된 칠년에 요아스가 남 유다의 왕이 되어 사십 년을 통치합니다. 그의 어머니는 브엘세바 사람 시비아입니다. 브엘세바는 아브라함과 아비멜렉이 맹세한 우물이 있는 곳이라서 맹세의 우물이라는 뜻입니다. 야곱과 이삭도 다 관련이 있는 장소입니다. 이곳 출신의 시비아가 요아스의 어머니임을 밝힘으로 아달랴와 다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처럼 왕의 등극 공식에서 그 어머니를 언급하는 이유는 어머니의 영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요아스의 아버지 아하시야가 왕이 되었을 때를 봅니다.

 

역대하 22:2~4절입니다. “2 아하시야가 왕이 될 때에 나이가 사십이 세라 예루살렘에서 일 년 동안 다스리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아달랴요 오므리의 손녀더라 3 아하시야도 아합의 집 길로 행하였으니 이는 그의 어머니가 꾀어 악을 행하게 하였음이라 4 그의 아버지가 죽은 후에 그가 패망하게 하는 아합의 집의 가르침을 따라 여호와 보시기에 아합의 집 같이 악을 행하였더라아하시야의 어머니가 지난주에 본 아달랴입니다. 오므리의 손녀이며 아합과 이세벨의 딸이 아달랴입니다. 이 아달랴가 아하시야를 꾀었다고 합니다. 그 결과 아합의 집을 따라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한 것입니다.

 

지난주 성경학교를 하면서 아이들에게 물었습니다. 옛 사람과 새 사람에 대하여 공부하면서 여러분의 어머니가 텔레비전 보는 시간보다 말씀보고 기도하며 찬양하는 시간이 많은 사람 손들라고 했습니다. 한 가정은 텔레비전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비교를 할 수는 없었습니다만 우리가 어떤 부모들입니까? 성경교육은 가정에서 하는 것입니다. 일주일에 교회 한번 보내는 것으로 다했다고 착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아이들의 상태가 어떤지 교육관 벽에 글들을 보시기 바랍니다. 아이들은 솔직하게 기록하여 놓았습니다.

 

다시 본문 1~3절을 보시면 요아스에 대하여 평가하기를 제사장 여호야다가 교훈하는 모든 날 동안에는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기는 하였지만 다만 산당을 제거하지 않았기에 여전히 백성들이 그곳에서 제사하며 분향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의 산당은 성전이 지어지기 전에 여호와께 제사와 분향을 드리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산당은 이방종교화 되기 마련입니다. 이방의 종교들도 자신들의 신들에게 제사를 드리고 분향을 합니다. 그러므로 산당을 제거하지 않으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우상숭배로 기울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본문 4~6절입니다. “4 요아스가 제사장들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성전에 거룩하게 하여 드리는 모든 은 곧 사람이 통용하는 은이나 각 사람의 몸값으로 드리는 은이나 자원하여 여호와의 성전에 드리는 모든 은을 5 제사장들이 각각 아는 자에게서 받아들여 성전의 어느 곳이든지 파손된 것을 보거든 그것으로 수리하라 하였으나 6 요아스 왕 제 이십삼 년에 이르도록 제사장들이 성전의 파손한 데를 수리하지 아니하였는지라

 

요아스가 성전에 드리는 것으로 성전을 수리하라고 하였는데 제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제사장들이 각각 아는 자들에게 받아서 성전의 파손된 곳을 수리하라고 하였지만 무언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솔로몬이 성전을 지은 지 약 120년이 지났습니다. 그리고 아달랴는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는 자였기에 성전을 돌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퇴락한 곳을 수리하라고 요아스가 말했지만 왕이 된지 23년이 되어도 제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요아스는 자신이 6년 동안 숨어 지내던 곳이 성전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다시 명령을 내립니다.

 

7~16절입니다. “7 요아스 왕이 대제사장 여호야다와 제사장들을 불러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성전의 파손한 데를 수리하지 아니하였느냐 이제부터는 너희가 아는 사람에게서 은을 받지 말고 그들이 성전의 파손한 데를 위하여 드리게 하라 8 제사장들이 다시는 백성에게 은을 받지도 아니하고 성전 파손한 것을 수리하지도 아니하기로 동의하니라 9 제사장 여호야다가 한 궤를 가져다가 그것의 뚜껑에 구멍을 뚫어 여호와의 전문 어귀 오른쪽 곧 제단 옆에 두매 여호와의 성전에 가져 오는 모든 은을 다 문을 지키는 제사장들이 그 궤에 넣더라 10 이에 그 궤 가운데 은이 많은 것을 보면 왕의 서기와 대제사장이 올라와서 여호와의 성전에 있는 대로 그 은을 계산하여 봉하고 11 그 달아본 은을 일하는 자 곧 여호와의 성전을 맡은 자의 손에 넘기면 그들은 또 여호와의 성전을 수리하는 목수와 건축하는 자들에게 주고 12 또 미장이와 석수에게 주고 또 여호와의 성전 파손한 데를 수리할 재목과 다듬은 돌을 사게 하며 그 성전을 수리할 모든 물건을 위하여 쓰게 하였으되 13 여호와의 성전에 드린 그 은으로 그 성전의 은 대접이나 불집게나 주발이나 나팔이나 아무 금 그릇이나 은그릇도 만들지 아니하고 14 그 은을 일하는 자에게 주어 그것으로 여호와의 성전을 수리하게 하였으며 15 또 그 은을 받아 일꾼에게 주는 사람들과 회계하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그들이 성실히 일을 하였음이라 16 속건제의 은과 속죄제의 은은 여호와의 성전에 드리지 아니하고 제사장에게 돌렸더라

 

성전 수리가 제대로 되었습니다. 성전 수리에 들어갈 돈과 제사장에게 돌아갈 것이 구별되었습니다. 그리고 수리를 맡아서 책임을 진 자들이 아주 정직하고 성실하게 일함으로 은을 받아 일꾼에서 주는 사람들과 회계를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렇게 성전의 수리가 잘 진행이 되었으면 하나님께서 복을 주셔야 하실 텐데 갑자지 적이 쳐들어오게 됩니다. 그러자 요아스가 어떻게 하였습니까?

 

17~21절입니다. “17 그 때에 아람 왕 하사엘이 올라와서 가드를 쳐서 점령하고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오고자 하므로 18 유다의 왕 요아스가 그의 조상들 유다 왕 여호사밧과 여호람과 아하시야가 구별하여 드린 모든 성물과 자기가 구별하여 드린 성물과 여호와의 성전 곳간과 왕궁에 있는 금을 다 가져다가 아람 왕 하사엘에게 보냈더니 하사엘이 예루살렘에서 떠나갔더라 19 요아스의 남은 사적과 그가 행한 모든 일은 유다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20 요아스의 신복들이 일어나 반역하여 실라로 내려가는 길 가의 밀로 궁에서 그를 죽였고 21 그를 쳐서 죽인 신복은 시므앗의 아들 요사갈과 소멜의 아들 여호사바드였더라 그는 다윗 성에 그의 조상들과 함께 장사되고 그의 아들 아마샤가 그를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요아스가 정말 여호와를 사랑하여 성전을 수리하게 한 것이 아닌 것을 보게 됩니다. 여호야다가 살아있는 동안 여호야다의 교훈을 받았기에 그런 일을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람 왕 하사엘이 가드를 쳐서 점령하고 예루살렘으로 올라오니 유다의 왕 요아스는 여호와의 성전과 왕궁의 금을 다 가져다가 아람 왕 하사엘에게 바침으로 하사엘이 예루살렘에서 떠나갔습니다. 그리고 그 남은 행적은 역대지략에 기록이 되었고 그의 죽음은 신하들의 반역에 의하여 죽임을 당합니다. 그렇게 죽인 신복의 이름들이 나옵니다. 그런데 요아스를 죽인 이유가 분명하지 않습니다. 그 내용들을 역대하에서 찾아보겠습니다.

 

역대하 24:12~14절입니다. “12 왕과 여호야다가 그 돈을 여호와의 전 감독자에게 주어 석수와 목수를 고용하여 여호와의 전을 보수하며 또 철공과 놋쇠공을 고용하여 여호와의 전을 수리하게 하였더니 13 기술자들이 맡아서 수리하는 공사가 점점 진척되므로 하나님의 전을 이전 모양대로 견고하게 하니라 14 공사를 마친 후에 그 남은 돈을 왕과 여호야다 앞으로 가져왔으므로 그것으로 여호와의 전에 쓸 그릇을 만들었으니 곧 섬겨 제사 드리는 그릇이며 또 숟가락과 금은 그릇들이라 여호야다가 세상에 사는 모든 날에 여호와의 전에 항상 번제를 드렸더라요아스의 성전 수리와 번제도 여호야다가 세상에 사는 동안 그렇게 하였습니다.

 

역대하 24:15~16절입니다. “15 여호야다가 나이가 많고 늙어서 죽으니 죽을 때에 백삼십 세라 16 무리가 다윗 성 여러 왕의 묘실 중에 장사하였으니 이는 그가 이스라엘과 하나님과 그의 성전에 대하여 선을 행하였음이더라

 

여호야다가 죽습니다. 무리들이 여호야다를 왕의 묘실 중에 장사합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과 그의 성전에 대하여 선을 행하였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요아스가 하나님과 그의 성전을 위한 선이 없었다는 말과 같은 것입니다. 다만 여호야다 제사장이 살아있는 동안 요아스가 그의 교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여호야다가 죽어버렸습니다. 그동안 왕이면서도 제대로 왕권을 휘둘러보지 못하였다는 억울함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완전히 정책을 바꾸어 버립니다.

 

17~19절입니다. “17 여호야다가 죽은 후에 유다 방백들이 와서 왕에게 절하매 왕이 그들의 말을 듣고 18 그의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의 전을 버리고 아세라 목상과 우상을 섬겼으므로 그 죄로 말미암아 진노가 유다와 예루살렘에 임하니라 19 그러나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선지자를 보내사 다시 여호와에게로 돌아오게 하려 하시매 선지자들이 그들에게 경고하였으나 듣지 아니하니라

 

여호야다가 죽고 나사 유다의 방백들이 왕에게 와서 절하며 청원을 합니다. 그 청원은 그의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의 전을 버리고 아세라 목상과 우상을 섬기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여호야다 살아있을 때 여호와를 섬기는 것보다 자기들에게 이익이 되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것입니다. 그러자 왕도 그들과 함께 우상숭배로 빠지게 됩니다. 이 죄로 인하여 유다와 예루살렘에 하나님의 진노가 임합니다. 그러나 그 진노 중에라도 여호와께서 선지자들을 보내십니다. 그러나 그 선지자들의 경고를 듣지 않았습니다.

 

20~22절입니다. “20 이에 하나님의 영이 제사장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를 감동시키시매 그가 백성 앞에 높이 서서 그들에게 이르되 하나님이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명령을 거역하여 스스로 형통하지 못하게 하느냐 하셨나니 너희가 여호와를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너희를 버리셨느니라 하나 21 무리가 함께 꾀하고 왕의 명령을 따라 그를 여호와의 전 뜰 안에서 돌로 쳐죽였더라 22 요아스 왕이 이와 같이 스가랴의 아버지 여호야다가 베푼 은혜를 기억하지 아니하고 그의 아들을 죽이니 그가 죽을 때에 이르되 여호와는 감찰하시고 신원하여 주옵소서 하니라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가 성령에 감동이 되어 백성들 앞에서 책망합니다. 그러자 무리가 왕의 명령을 따라 스가댜를 여호와의 전 뜰 안에도 돌로 쳐 죽였습니다. 요아스 왕의 이런 행적은 여호와를 버리는 일입니다. 더구나 스가랴의 아버지 여호야다가 베푼 은혜를 기억하지 않고 그의 아들을 죽여 버립니다. 여호야다가 아니었다면 죽을 목숨이었습니다. 그런데 여호야다로 인하여 살았고 왕이 되었는데 그 여호야다의 죽음으로 그 교훈이 끝나자말자 요아스는 이렇게 본색이 드러난 것입니다. 스가랴는 여호와께 신원하여 달라며 죽습니다.

 

23~27절입니다. “23 일주년 말에 아람 군대가 요아스를 치려고 올라와서 유다와 예루살렘에 이르러 백성 중에서 모든 방백들을 다 죽이고 노략한 물건을 다메섹 왕에게로 보내니라 24 아람 군대가 적은 무리로 왔으나 여호와께서 심히 큰 군대를 그들의 손에 넘기셨으니 이는 유다 사람들이 그들의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버렸음이라 이와 같이 아람 사람들이 요아스를 징벌하였더라 25 요아스가 크게 부상하매 적군이 그를 버리고 간 후에 그의 신하들이 제사장 여호야다의 아들들의 피로 말미암아 반역하여 그를 그의 침상에서 쳐죽인지라 다윗 성에 장사하였으나 왕들의 묘실에는 장사하지 아니하였더라 26 반역한 자들은 암몬 여인 시므앗의 아들 사밧과 모압 여인 시므릿의 아들 여호사밧이더라 27 요아스의 아들들의 사적과 요아스가 중대한 경책을 받은 것과 하나님의 전을 보수한 사적은 다 열왕기 주석에 기록되니라 그의 아들 아마샤가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스가랴가 죽고 일 년이 지난 연말에 아람 군대가 쳐 들어왔습니다. 요아스는 부상을 입고 그의 신복들에 의하여 죽임을 당합니다. 열왕기에서 요아스의 죽임당한 이유가 분명하지 않았는데 역대기에서는 그의 죽임 당한 이유를 밝히고 있습니다. 그의 신하들이 제사장 여호야다의 아들들의 피로 말미암아 반역하여 그를 침상에서 죽였습니다. 이러한 요아스의 죽음은 여호와의 교훈을 버린 것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을 버린 것입니다. 그러므로 요아스가 이런 죽임을 당하고 다윗 성에 묻히기는 하지만 왕의 묘실에 묻히지 못하였습니다. 이러한 여호와의 교훈을 버리고 여호와의 말씀을 전하는 자들을 죽인 역사가 이스라엘 역사입니다.

 

마태복음 23:29~36절입니다. “29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선지자들의 무덤을 만들고 의인들의 비석을 꾸미며 이르되 30 만일 우리가 조상 때에 있었더라면 우리는 그들이 선지자의 피를 흘리는 데 참여하지 아니하였으리라 하니 31 그러면 너희가 선지자를 죽인 자의 자손임을 스스로 증명함이로다 32 너희가 너희 조상의 분량을 채우라 33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 34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선지자들과 지혜 있는 자들과 서기관들을 보내매 너희가 그 중에서 더러는 죽이거나 십자가에 못 박고 그 중에서 더러는 너희 회당에서 채찍질하고 이 동네에서 저 동네로 따라다니며 박해하리라 35 그러므로 의인 아벨의 피로부터 성전과 제단 사이에서 너희가 죽인 바라갸의 아들 사가랴의 피까지 땅 위에서 흘린 의로운 피가 다 너희에게 돌아가리라 36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것이 다 이 세대에 돌아가리라

 

이스라엘의 역사가 여호와의 말씀으로 교훈하는 선지자를 죽였다는 것을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그 선지자들이 아벨로부터 사가랴 까지입니다. 성전과 제단 사이 곧 성전 뜰에서 죽임을 당한 사가랴를 바라갸의 아들이라고 합니다. 이것이 좀 난해 구절이기는 하지만 이스라엘은 할아버지와 아들과 그 손자의 계보를 말할 때에 아버지만 말하기도 하고 할아버지만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같은 아들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데 손자와 아들을 함께 말합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이 보는 구약 성경의 마지막 성경이 역대기입니다. 그러므로 구약 마지막 성경 역대기에 나오는 순교자 사가랴를 말한 것은 구약 성경 전체에서 여호와의 교훈을 전한 참 선지자들을 죽인 것이 이스라엘의 역사였으며 그 역사의 정점을 너희가 감당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일을 하는 자들이 율법을 다 지켜서 율법의 의로 흠이 없다고 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입니다. 그 사건이 십자가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하여 인간이 얼마나 하나님의 바른 교훈을 받지 않는지를 보여줍니다.

 

마음의 생각과 계획이 어려서부터 항상 악하다는 것이 흉악 범죄나 권력형 범죄나 지능형 범죄와 같은 것들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교훈을 항상 싫어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 착하다고 하는 사람일지라도 여호와의 교훈을 싫어하는 것이 사람의 마음의 생각과 계획이 어려서부터 항상 악하다는 것입니다(6:5, 8:21). 예레미야 22:21절입니다. 네가 평안할 때에 내가 네게 말하였으나 네 말이 나는 듣지 아니하리라 하였나니 네가 어려서부터 내 목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함이 네 습관이라

 

이런 말씀을 실감하려면 주일학교 교사를 해 보시면 됩니다. 아니면 유치부부터 모아놓은 주일학교에서 설교를 해 보시기 바랍니다. 정말 아이들이 영적인 교훈들을 얼마나 싫어하는지 보입니다. 어른들은 가면이라도 쓰지만 아이들은 싫은 것을 그대로 노골적으로 드러냅니다. 이런 아이들이 자라서 어른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본성도 여호와의 교훈 곧 진리의 말씀을 싫어하는 것이 본성입니다. 그러므로 거저 내 좋은 것만 한 두 개씩 챙겨가는 것이지 내가 싫어하는 말씀을 달게 받아 들이는 것이 우리에게 있습니까?

 

고린도전서 10:1~7절입니다. “1 형제들아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에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2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 3 다 같은 신령한 음식을 먹으며 4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그들을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5 그러나 그들의 다수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하셨으므로 그들이 광야에서 멸망을 받았느니라 6 이러한 일은 우리의 본보기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그들이 악을 즐겨 한 것 같이 즐겨 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 함이니 7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과 같이 너희는 우상 숭배하는 자가 되지 말라 기록된바 백성이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논다 함과 같으니라이런 이들이 본보기가 된다고 합니다.

 

이어지는 8~11절입니다. “8 그들 중의 어떤 사람들이 음행하다가 하루에 이만 삼천 명이 죽었나니 우리는 그들과 같이 음행하지 말자 9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주를 시험하다가 뱀에게 멸망하였나니 우리는 그들과 같이 시험하지 말자 10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그들과 같이 원망하지 말라 11 그들에게 일어난 이런 일은 본보기가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를 깨우치기 위하여 기록되었느니라

 

오늘 구약의 본문도 말세를 만난 우리들의 본보기가 되도록 기록되어 있다고 합니다. 바른 교훈을 버리면 어떤 심판을 받는지를 보여줍니다. 율법으로 통하여 인간의 죄가 어떠함을 보여줍니다. 그러므로 고린도전서의 계속 이어지는 말씀을 보시면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에 대한 말씀으로 연결이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무시하는 일에 대하여 교훈하는 말씀으로 연결이 됩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이러한 말씀으로 교훈을 받고 있다면 아직 소망이 있습니다. 그런데 말세에 이런 교훈마저 들리지 않는 시대가 옵니다.

 

디모데후서 3:12~16절입니다. “12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 13 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자들은 더욱 악하여져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나니 14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너는 네가 누구에게서 배운 것을 알며 15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17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모든 성경은 구원에 이르는 지혜와 더불어 교훈하고 책망하고 바르게 하고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한 말씀입니다. 그런데 때가 되면 이런 바른 교훈을 받아들이기 싫어한다고 합니다. 이것이 심판이 임박한 증거입니다.

 

디모데후서 4:1~8절입니다. “1 하나님 앞과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가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2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3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 4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리라 5 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신중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자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 6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7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8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 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여호야다의 바른 교훈이 있는 동안은 요시아가 그런대로 여호와 앞에서 살아갔습니다. 그런데 여호야다가 죽어 버리자 바로 본성이 드러납니다. 오늘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이 주어지고 있는 이때는 아직 소망이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기 귀에 좋은 말만 챙겨들으려고 합니다. 자기에게 부담되는 말은 버립니다. 이런 모습이 심판으로 가는 모습임을 아시고 무릇 말씀으로 사는 자는 고난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과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앞에서 엄히 명하는 사도의 서신은 곧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바른 말씀의 교훈을 따라 우리 주님 다시 오시는 그날까지 믿음의 경주를 잘 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을 정말로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주님의 재림을 사모하게 됩니다. 이러한 자들에게는 예수님이 그들의 의의 면류관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