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하 23:21~30 요시야의 언약갱신(3) 2017. 2. 5

 

21 왕이 뭇 백성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이 언약 책에 기록된 대로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유월절을 지키라 하매 22 사사가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시대부터 이스라엘 여러 왕의 시대와 유다 여러 왕의 시대에 이렇게 유월절을 지킨 일이 없었더니 23 요시야 왕 열여덟째 해에 예루살렘에서 여호와 앞에 이 유월절을 지켰더라

 

요시야 왕의 언약갱신을 세 번째로 봅니다. 요시야 왕이 8세에 왕이 되고 16세에 비로소 다윗의 하나님을 찾았다고 합니다. 20세에 유다 전 지역과 북 이스라엘까지 우상을 다 부수어 버립니다. 26세에 성전을 수리하다가 율법 책을 발견합니다. 율법 책을 서기관이 읽을 때에 왕이 그의 옷을 찢습니다. 마음이 부드러워지고 겸비하였습니다. 그 율법의 뜻을 여 선지자 훌다에게 물으니 그 율법의 저주대로 임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우상을 제거하여 오던 개혁에 더욱 박차를 가하여 성전에 있는 우상들까지 다 제거하여 버립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게 된 것은 요시야가 태어나기 3백 년 전에 이미 선지자의 예언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23:16절에서는 하나님의 사람이 전한 여호와의 말씀대로 되었더라고 합니다. 성경은 결코 사람에게 영광을 돌리는 일이 없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신의 언약대로 이루어내셨다는 것을 분명하게 밝힙니다.

 

오늘 본문 21~23절입니다. 율법 책을 발견하였는데 무슨 책이라고 합니까? 언약 책이라고 합니다. 23:2절에서도 언약 책이라고 합니다. 그냥 율법 책이라고 하지 않고 언약 책이라고 기록한 차이가 무엇이겠습니까? 여호와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율법을 주신 것은 언약을 이루시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의 조문으로만 받아들이면 단 한 사람도 율법으로 의에 이를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율법을 주신 것도 여호와의 언약, 그 영원한 언약을 이루시기 위한 것입니다. 그 영원한 언약은 하나님의 아들의 희생입니다. 이 언약을 보여주시기 위하여 역사 속에서 여러 가지 언약들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의 책을 문자적인 율법으로만 받으면 모든 사람이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그 율법을 여호와의 언약으로 보면 살게 됩니다.

 

요시야 왕이 뭇 백성에게 명령하기를 이 언약 책에 기록된 대로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유월절을 지키라고 합니다. 율법 책에 수많은 법조문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절기와 규례와 법도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요시야 왕은 언약갱신을 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지키라고 하는 내용이 유월절입니다. 얼마나 철두철미하게 유월절을 지켰는지 사사시대로부터 여러 왕들의 시대에까지 이렇게 유월절을 지킨 일이 없었다고 합니다. 요시야 왕이 율법 책 곧 언약의 책을 발견한 때가 26세인데 이때에 여호와 앞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유월절을 지켰다고 합니다. 유월절을 지키는 것이 자기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여호와를 위한 것이라고 합니다.

 

유월절은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430년을 살다가 하나님의 언약을 따라 출애굽한 날 밤입니다. 여호와의 밤에 유월절 어린 양의 피를 바른 집안에는 죽음의 천사가 넘어갔지만 유월절 어린 양의 피가 없는 집안은 애굽인은 물론이거니와 이스라엘 백성이라도 어린 양의 피가 없으면 장자와 짐승의 처음 태어난 수컷이 다 죽임을 당하는 날입니다. 유월절 어린 양의 피를 바른 자들은 누구든지 사는 것입니다. 유월절을 지킨 것은 결국 자기들이 사는 길입니다. 그런데 유월절을 너희를 위하여 지키라고 하지 않고 여호와 하나님을 위하여 지키라고 합니다. 이런 말씀을 보면 요시야 왕은 유월절의 의미를 제대로 알았다는 말입니다. 여호와께서 자기를 위하여 일하시는 그 언약의 절정이 유월절임을 안 것입니다. 여호와의 모든 언약은 이 유월절이 핵심입니다.

 

요한복음 1:29~33절입니다. “29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30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는 사람이 있는데 나보다 앞선 것은 그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31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내가 와서 물로 세례를 베푸는 것은 그를 이스라엘에 나타내려 함이라 하니라 32 요한이 또 증언하여 이르되 내가 보매 성령이 비둘기 같이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그의 위에 머물렀더라 33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나를 보내어 물로 세례를 베풀라 하신 그이가 나에게 말씀하시되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는 이인 줄 알라 하셨기에 34 내가 보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언하였노라 하니라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가 세례요한입니다. 구약의 모든 내용이 세례 요한의 손가락으로 모아져서 예수님을 가리키면서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고 합니다. 자신이 증거 하는 것은 성령의 지시로 그렇게 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도 합니다. 그러므로 구약 전체를 통하여 하나님의 어린 양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율법을 통하여 보여주셨습니다. 유월절 어린 양만이 아니라 제사장들이 제사를 드릴 때에도 정결한 짐승들의 희생제사가 드려졌습니다. 이러한 희생의 제사를 통하여 율법의 저주에서 속량 받을 수 있는 길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을 지켜서 의에 이르는 것이 아니라 율법으로 죄를 깨닫게 되고 그 죄를 대속할 하나님의 어린 양을 믿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희생의 제사조차 율법의 조문으로만 보았습니다.

 

마태복음 26:1~5절입니다. “1 예수께서 이 말씀을 다 마치시고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2 너희가 아는 바와 같이 이틀이 지나면 유월절이라 인자가 십자가에 못 박히기 위하여 팔리리라 하시더라 3 그 때에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이 가야바라 하는 대제사장의 관정에 모여 4 예수를 흉계로 잡아 죽이려고 의논하되 5 말하기를 민란이 날까 하노니 명절에는 하지 말자 하더라

 

예수님께서 언제 십자가에 못 박히기 위하여 팔린다고 하셨습니까? 유월절입니다. 그런데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은 가야바라 하는 대제사장의 관정에 모여서 예수를 흉계로 잡아 죽일 의논을 합니다. 그런데 이들은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명절 곧 유월절에 예수를 잡아 죽이면 민란이 일어날 것이니 명절에는 하지 말자고 의논을 합니다. 우리가 몇 주 전에 본 가이사의 것과 하나님의 것에서 대제사장은 자기들에게 가이사 외에는 왕이 없다고 한 사람입니다. 이런 자들이 만왕의 왕을 죽이려고 흉계를 꾸밉니다. 그런데 유월절에 죽이지 않기로 결의를 하였지만 예수님은 유월절에 십자가에 못 박히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예수님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스스로 유월절 양이 되셔서 십자가로 가신 것입니다. 이것만이 하나님이 받으시는 희생의 제물이며, 하나님의 영원한 언약의 작정이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예수님을 향하여 이는 내 기뻐하는 자요 내 사랑하는 자라고 하셨습니다(3:17,17:5). 이러한 유월절 어린 양으로 오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고 하셨습니다(19:30). 하나님의 모든 언약의 완성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은 유월절 어린 양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유월절 어린 양의 피, 곧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 안에 있는 자만이 하나님이 받으시는 백성입니다.

 

히브리서 9:1~10절입니다. “1 첫 언약에도 섬기는 예법과 세상에 속한 성소가 있더라 2 예비한 첫 장막이 있고 그 안에 등잔대와 상과 진설병이 있으니 이는 성소라 일컫고 3 또 둘째 휘장 뒤에 있는 장막을 지성소라 일컫나니 4 )금 향로와 사면을 금으로 싼 언약궤가 있고 그 안에 만나를 담은 금 항아리와 아론의 싹난 지팡이와 언약의 돌 판들이 있고 5 그 위에 속죄소를 덮는 영광의 그룹들이 있으니 이것들에 관하여는 이제 낱낱이 말할 수 없노라 6 이 모든 것을 이같이 예비하였으니 제사장들이 항상 첫 장막에 들어가 섬기는 예식을 행하고 7 오직 둘째 장막은 대제사장이 홀로 일 년에 한 번 들어가되 자기와 백성의 허물을 위하여 드리는 피 없이는 아니하나니 8 성령이 이로써 보이신 것은 첫 장막이 서 있을 동안에는 성소에 들어가는 길이 아직 나타나지 아니한 것이라 9 이 장막은 현재까지의 비유니 이에 따라 드리는 예물과 제사는 섬기는 자를 그 양심상 온전하게 할 수 없나니 10 이런 것은 먹고 마시는 것과 여러 가지 씻는 것과 함께 육체의 예법일 뿐이며 개혁할 때까지 맡겨 둔 것이니라첫 언약이라는 율법에서의 모든 예법과 성소는 육체의 예법일 뿐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개혁할 때까지 맡겨 둔 것이라고 합니다. 참된 개혁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십니다.

 

이어지는 11~22절입니다. “11 그리스도께서는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것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12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13 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를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하게 하여 거룩하게 하거든 14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 15 이로 말미암아 그는 새 언약의 중보자시니 이는 첫 언약 때에 범한 죄에서 속량하려고 죽으사 부르심을 입은 자로 하여금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16 1)유언은 1)유언한 자가 죽어야 되나니 17 1)유언은 그 사람이 죽은 후에야 유효한즉 1)유언한 자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효력이 없느니라 18 이러므로 첫 언약도 피 없이 세운 것이 아니니 19 모세가 율법대로 모든 계명을 온 백성에게 말한 후에 송아지와 염소의 피 및 물과 붉은 양털과 우슬초를 취하여 그 두루마리와 온 백성에게 뿌리며 20 이르되 )이는 하나님이 너희에게 명하신 언약의 피라 하고 21 또한 이와 같이 피를 장막과 섬기는 일에 쓰는 모든 그릇에 뿌렸느니라 22 율법을 따라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하게 되나니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각주 1)의 유언이라는 말이 헬라어로 언약입니다. 이 처음 언약도 피로 체결되었습니다. 그러므로 피 흘림이 없이는 사함이 없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주는 그림자입니다.

 

이어지는 23~28절입니다. “23 그러므로 하늘에 있는 것들의 모형은 이런 것들로써 정결하게 할 필요가 있었으나 하늘에 있는 그것들은 이런 것들보다 더 좋은 제물로 할지니라 24 그리스도께서는 참 것의 그림자인 손으로 만든 성소에 들어가지 아니하시고 바로 그 하늘에 들어가사 이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시고 25 대제사장이 해마다 다른 것의 피로써 성소에 들어가는 것 같이 자주 자기를 드리려고 아니하실지니 26 그리하면 그가 세상을 창조한 때부터 자주 고난을 받았어야 할 것이로되 이제 자기를 단번에 제물로 드려 죄를 없이 하시려고 세상 끝에 나타나셨느니라 27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28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이 말씀들을 다 설명하려면 시간이 부족합니다. 오래 전에 히브리서 설교를 참고하여 보시기 바랍니다. 다만 오늘 이렇게 읽기만 하여도 언약의 완성이 무엇인지 아주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열왕기하 23:24~25절입니다. “24 요시야가 또 유다 땅과 예루살렘에 보이는 신접한 자와 점쟁이와 드라빔과 우상과 모든 가증한 것을 다 제거하였으니 이는 대제사장 힐기야가 여호와의 성전에서 발견한 책에 기록된 율법의 말씀을 이루려 함이라 25 요시야와 같이 마음을 다하며 뜻을 다하며 힘을 다하여 모세의 모든 율법을 따라 여호와께로 돌이킨 왕은 요시야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그와 같은 자가 없었더라

 

요시야가 16세에 여호와 하나님을 찾았고 20세부터 온 유다의 이스라엘의 우상을 부수어 버리고 산당을 제거하였습니다. 그리고 26세에 성전을 수리하다가 언약 책을 발견하고 엄청난 개혁을 합니다. 그 중심은 유월절을 지킨 것입니다. 율법의 조문을 따라 지킨 정도가 아니라 언약의 의미를 알고 지킨 것입니다. 그래서 유월절은 그렇게 지킨 사람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성전 청결 후에도 계속하여 예루살렘에서 신접한 자와 점쟁이와 드라빔 우상과 모든 가증한 것을 다 제거하였습니다. 이렇게 한 것은 성전에서 발견된 율법의 말씀을 이루려고 하였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열심이었는지 요시야와 같이 마음을 당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모세의 모든 율법을 따라 여호와께로 돌이킨 왕은 요시야 전에도 후에도 없었다고 합니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는 것은 모든 율법의 핵심강령입니다. 요시야가 여호와의 율법을 이렇게 잘 지켰습니다. 성경에서 이렇게 말한 사람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요시야는 이제 어떤 복을 받게 되겠습니까? 장수하고 부귀와 영광이 극에 달하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여호와 말씀에 순종을 하면 하나님이 복을 주신다고 하시는데 요시야만큼 여호와의 말씀에 순종한 사람이 어디에 있습니까? 그런데 요시야 왕이 31세에 죽습니다. 율법 책을 발견하고 유월절을 지킨 것이 26세입니다. 그 후로도 계속 율법을 철두철미하게 지켰습니다. 그런데 31세에 전쟁에서 죽임을 당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26~27절입니다. “26 그러나 여호와께서 유다를 향하여 내리신 그 크게 타오르는 진노를 돌이키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므낫세가 여호와를 격노하게 한 그 모든 격노 때문이라 27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이스라엘을 물리친 것 같이 유다도 내 앞에서 물리치며 내가 택한 이 성 예루살렘과 내 이름을 거기에 두리라 한 이 성전을 버리리라 하셨더라

 

요시야처럼 완벽하여 율법을 지켰지만 여호와께서 유다를 향하여 내리신 그 크게 타오르는 진노를 돌이키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는 므낫세가 여호와를 격노하게 한 그 모든 격노 때문이라고 합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물리친 것 같이 유다도 물리칠 것이라고 하십니다. 북이스라엘은 앗수르에 멸망하였습니다. 남 유다는 바벨론에 멸망할 것입니다. 그렇게 하심으로 여호와께서 예루살렘과 여호와의 이름을 둘 것이라고 한 이 성전을 버리겠다고 하셨습니다. 이러한 여호와의 결정에 요시야의 개혁으로도 돌이킬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요시야가 여호와의 이러한 뜻을 다 알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여호와의 뜻을 거역하다가 전쟁터에서 죽임을 당합니다. 이런 내용은 결국 두 가지를 보여줍니다. 인간이 율법을 지킨 그 의로는 하나님의 의의 기준에 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결국 앞에서 살펴본 대로 유월절 어린 양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이 아니면 그 어느 누구도 의에 이를 수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요시야가 여호와의 뜻을 어떻게 거역하는가 하면 자신이 개혁하여 이루어놓은 유다를 자신의 힘으로 지키려고 한 것입니다.

 

이 내용이 아주 중요합니다. 우리 늘푸른 교회가 무언가 개혁을 하였다고 해서 이 교회는 바른 교회라고 지키려고 한다면 이 교회가 진리의 기준이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이단이라고 합니다. 자기 교회만이 바르고 자기 교회만이 구원이 있다고 주장하는 곳이 이단들의 특징입니다. 새누리 당에서 바르게 하겠다고 나간 정당이 바른 정당 이라고 하는 이름을 붙였습니다만 무늬만 바꾼다고 바르게 되겠습니까? 요시야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개혁을 하였습니다만 하나님은 예루살렘과 성전을 버리신다고 합니다. 그러면 늘푸른 교회는 무엇을 전하는 곳입니까?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이 주와 그리스도임을 증언합니다. 우리의 그 어떤 율법적인 행위로도 의에 이를 수가 없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인하여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다는 것을 증거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지난주에 보려고 하였던 종교개혁의 삼대 원리입니다. 오직 성경, 오직 은혜, 오직 믿음입니다. 그러면 요시야가 왜 그렇게 일찍 죽임을 당합니까?

 

28~30절입니다. “28 요시야의 남은 사적과 행한 모든 일은 유다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29 요시야 당시에 애굽의 왕 바로 느고가 앗수르 왕을 치고자 하여 유브라데 강으로 올라가므로 요시야 왕이 맞서 나갔더니 애굽 왕이 요시야를 므깃도에서 만났을 때에 죽인지라 30 신복들이 그의 시체를 병거에 싣고 므깃도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그의 무덤에 장사하니 백성들이 요시야의 아들 여호아하스를 데려다가 그에게 기름을 붓고 그의 아버지를 대신하여 왕으로 삼았더라

 

요시야가 애굽의 왕 바로느노가 앗수의 왕을 치려고 유브라데 강으로 올라갑니다. 요시야 왕이 이들을 맞서 나갔습니다. 애굽이 유브라데로 가려면 유다를 거쳐서 가야 합니다. 이것은 정명가도(征明假道)와 비슷합니다. 1592년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이 조선 정부에게 강요한 내용입니다. 일본군이 명을 침략하고자 하니 조선은 명으로 가는 길을 빌려달라는 하였습니다. 그러나 명나라까지 정복하려는 욕망은 있었겠지만 임진왜란은 조선을 식민지 삼으려고 한 것입니다. 그런데 애굽은 유다를 지배하려고 군대가 나온 것이 아니라 바벨론을 치기 위하여 올라온 것입니다. 이 당시 앗수르는 지는 제국이었고 바벨론이 떠오르는 신흥제국입니다. 오랫동안 제국이었던 애굽이 바벨론을 경계하지 않을 수가 없어서 공격하기 위하여 가는 길에 요시야가 나섭니다.

 

역대하 35:20~27절입니다. “20 이 모든 일 후 곧 요시야가 성전을 정돈하기를 마친 후에 애굽 왕 느고가 유브라데 강가의 갈그미스를 치러 올라왔으므로 요시야가 나가서 방비하였더니 21 느고가 요시야에게 사신을 보내어 이르되 유다 왕이여 내가 그대와 무슨 관계가 있느냐 내가 오늘 그대를 치려는 것이 아니요 나와 더불어 싸우는 족속을 치려는 것이라 하나님이 나에게 명령하사 속히 하라 하셨은즉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니 그대는 하나님을 거스르지 말라 그대를 멸하실까 하노라 하나 22 요시야가 몸을 돌이켜 떠나기를 싫어하고 오히려 변장하고 그와 싸우고자 하여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느고의 말을 듣지 아니하고 므깃도 골짜기에 이르러 싸울 때에 23 활 쏘는 자가 요시야 왕을 쏜지라 왕이 그의 신하들에게 이르되 내가 중상을 입었으니 나를 도와 나가게 하라 24 그 부하들이 그를 병거에서 내리게 하고 그의 버금 병거에 태워 예루살렘에 이른 후에 그가 죽으니 그의 조상들의 묘실에 장사되니라 온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들이 요시야를 슬퍼하고 25 예레미야는 그를 위하여 애가를 지었으며 모든 노래하는 남자들과 여자들은 요시야를 슬피 노래하니 이스라엘에 규례가 되어 오늘까지 이르렀으며 그 가사는 애가 중에 기록되었더라 26 요시야의 남은 사적과 여호와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행한 모든 선한 일과 27 그의 처음부터 끝까지의 행적은 이스라엘과 유다 열왕기에 기록되니라

 

갈그미스 전투에 대하여 인터넷 검색했습니다. BC612년 바벨론이 앗수르 수도 니느웨 성을 함락시켜 앗수르는 거의 몰락상태....바벨론이 근동북방지역에서 최강국으로 군림. BC609년 므깃도 전투 유다왕 요시야와 애굽왕 느고, 애굽왕 느고는 앗수르가 붕괴될 경우 애굽도 위태하게 될 것을 고려하여 앗수르왕 앗수르발리트 2세와 동맹을 맺고 바벨론의 남하를 공동 저지하고자 했다. 앗수르에 반감을 가지고 있었던 우다왕 요시야가 애굽 군대의 진로를 차단하고자 했다. 이때 크게 패했고 요시야 왕은 전사하게 되었다. 이로써 애굽의 내정간섭을 받게 되었다. 17대 유다왕 여호아하스가 폐위되고 제18대 여호야김이 등극하게 된 것이다. BC605년 갈그미스 전투, 애굽왕 느고가 갈그미스로 올라가서 앗수르 군대를 원조하여 일시 바벨론의 공격을 저지했다. 그리고 립나 성에 군대를 주둔시키고 계속해서 바벨론의 공격을 대비했다.(왕하 23:31-34). 그러다가 BC605년에 바벨론 느부갓네살 2세가 갈그미스 지역에 대한 대대적인 공격을 감행해서 앗수르와 애굽 군대를 완전히 전멸시켜 버렸다. (46:2-12에 잘나와 있다.) 결과 : 애굽은 더이상 팔레스틴과 시리아 지역에 대한 주도권을 완전히 상실하게 되었다.(왕하 24:7). 바벨론이 이 지역에서 최강국으로 군림하게 되었다.

 

이러한 세계사의 전쟁조차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일입니다. 그런데 요시야가 바로 왕 느고를 가로 막아 나선 것입니다. 이때 바로 왕이 요시야에게 사신을 보내서 자신이 이렇게 전쟁하러 가는 것은 유다를 해하려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도 요시야는 자신이 여호와를 위한다는 그 열정으로 유다 땅 근처로 애굽 군대가 가지 못하도록 가로막아 나섰습니다. 왕의 표시를 내지 않으려고 변장까지 하고 나갔습니다만 적군의 화살에 맞아 죽었습니다. 요시야가 죽었을 때에 온 유다와 예루살렘 백성들이 다 슬퍼하였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도 애가를 지어 불렀습니다. 온 민족의 영웅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요시야 왕이 여호와의 길을 가로 막아 나선 것입니다.

 

예루살렘이 장차 바벨론에 의하여 멸망하고 성전이 파괴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백성들은 포로로 잡혀가야 합니다. 이렇게 하심으로 하나님은 자신의 뜻을 또 이루어내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되기 위하여 애굽은 미약해야 하고 앗수르도 망해야 합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경영을 가로막고 나선 자가 마음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율법을 지켰다는 요시야 왕입니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을 위한다고 하는 열심들이 오히려 하나님을 배척하는 일들이 일어납니다. 제발 자신들의 주제를 알아야 합니다. 자신이 하나님을 위한다고 하고 진리를 위한다고 하는 것들이 얼마나 자기중심적인지 봐야 합니다. 하나님의 언약을 이루시는 일에 인간이 얼마나 방해가 되는지를 보셔야 합니다. 그러므로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여호와의 율법을 지킨 요시야 왕조차 이렇게 죽임을 당한 것입니다. 이러한 길로 가게 되는 자들이 성도들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세상에서 복을 받고 장수하며 부귀와 존귀와 영광을 누린다고 합니다. 그러면 요시야만큼 율법을 잘 지킨 사람이 이렇게 죽었습니다.

 

이런 길을 자기 부인의 길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스스로 자기를 부인할 수 있는 인간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자기의 뜻들이 죽여지는 그 과정이 성도의 길입니다. 그렇게 죽임 당하는 과정에서 하나님의 영원하신 언약이 그 사람 안에 담기게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오늘도 유월절 어린 양의 피로 자기 백성에게 언약을 갱신시키시는 모습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나는 날마다 죽는다고 한 것입니다. 언약의 갱신 안에 있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 아래 거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