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하 4:1~22 놋 바다 2017. 7. 2

 

1 솔로몬이 또 놋으로 제단을 만들었으니 길이가 이십 규빗이요 너비가 이십 규빗이요 높이가 십 규빗이며 2 또 놋을 부어 바다를 만들었으니 지름이 십 규빗이요 그 모양이 둥글며 그 높이는 다섯 규빗이요 주위는 삼십 규빗 길이의 줄을 두를 만하며 3 그 가장자리 아래에는 돌아가며 1)소 형상이 있는데 각 규빗에 1)소가 열 마리씩 있어서 바다 주위에 둘렸으니 그 1)소는 바다를 부어 만들 때에 두 줄로 부어 만들었으며 4 그 바다를 놋쇠 황소 열두 마리가 받쳤으니 세 마리는 북쪽을 향하였고 세 마리는 서쪽을 향하였고 세 마리는 남쪽을 향하였고 세 마리는 동쪽을 향하였으며 바다를 그 위에 놓았고 1)소의 엉덩이는 다 안으로 향하였으며 5 바다의 두께는 한 손 너비만 하고 그 둘레는 잔 둘레와 같이 백합화의 모양으로 만들었으니 그 바다에는 삼천 밧을 담겠으며 6 또 물두멍 열 개를 만들어 다섯 개는 오른쪽에 두고 다섯 개는 왼쪽에 두어 씻게 하되 번제에 속한 물건을 거기서 씻게 하였으며 그 바다는 제사장들이 씻기 위한 것이더라.

 

역대하 4장은 성전 안의 기구들을 만든 내용입니다. 제일 많은 분량이 놋 바다입니다. 그래서 제일 마지막으로 보겠습니다. 먼저 1절은 놋 제단입니다. 길이 단위가 규빗으로 나오는데 한 규빗은 약 45Cm~50Cm로 보면 됩니다. 길이와 너비가 이십 규빗이니 약 9~10미터의 크기이며 높이가 십규빗 입니다. 이 놋 제단은 성전의 뜰에서 번제를 드리는 제단입니다. 이러한 제단은 성전이 없는 이 시대는 제단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주의 제단에 나온다는 표현은 구약적인 개념입니다.

 

토요일 노회의 목사님 아들 결혼식이 있어서 부산의 포도원교회를 다녀왔습니다. 기도를 하는 분이 선교사라고 하였는데 목사를 호칭하기를 대제사장의 권위로 선포되는 말씀이라고 하였습니다. 마틴 루터가 만민 제사장이라는 말을 했습니다. 가톨릭의 사제 제도가 성경적이지 않다고 개혁한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2:9절에서 모든 성도가 다 왕 같은 제사장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목사를 대제사장이라고 호칭한다는 것은 아직도 구약적인 개념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입니다.

 

히브리서 9:1~10절입니다. “1 첫 언약에도 섬기는 예법과 세상에 속한 성소가 있더라 2 예비한 첫 장막이 있고 그 안에 등잔대와 상과 진설병이 있으니 이는 성소라 일컫고 3 또 둘째 휘장 뒤에 있는 장막을 지성소라 일컫나니 4 )금 향로와 사면을 금으로 싼 언약궤가 있고 그 안에 만나를 담은 금 항아리와 아론의 싹난 지팡이와 언약의 판들이 있고 5 그 위에 속죄소를 덮는 영광의 그룹들이 있으니 이것들에 관하여는 이제 낱낱이 말할 수 없노라 6 이 모든 것을 이같이 예비하였으니 제사장들이 항상 첫 장막에 들어가 섬기는 예식을 행하고 7 오직 둘째 장막은 대제사장이 홀로 일 년에 한 번 들어가되 자기와 백성의 허물을 위하여 드리는 피 없이는 아니하나니 8 성령이 이로써 보이신 것은 첫 장막이 서 있을 동안에는 성소에 들어가는 길이 아직 나타나지 아니한 것이라 9 이 장막은 현재까지의 비유니 이에 따라 드리는 예물과 제사는 섬기는 자를 그 양심상 온전하게 할 수 없나니 10 이런 것은 먹고 마시는 것과 여러 가지 씻는 것과 함께 육체의 예법일 뿐이며 개혁할 때까지 맡겨 둔 것이니라

 

오늘 본문의 성전기구들을 말하면서 이런 것들은 비유이며 개혁할 때 까지 맡겨진 육체의 예법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첫 언약에 속한 이런 성전과 모든 기구들과 제도들은 언제까지 있는 것입니까? 이 모든 것들의 완성 자이신 그리스도가 오시기까지입니다. 그러면 구약의 이런 육체의 예법이며 그림자라고 하는 것들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것입니다.

 

이어지는 11~15절입니다. “11 그리스도께서는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것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12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13 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를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하게 하여 거룩하게 하거든 14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 15 이로 말미암아 그는 새 언약의 중보자시니 이는 첫 언약 때에 범한 죄에서 속량하려고 죽으사 부르심을 입은 자로 하여금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구약의 성전과 그 기구들을 통하여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것이 분명합니다. 구약의 성막이나 성전은 손으로 만든 것들입니다. 그런데 이 창조에 속하지 않는 더 크고 온전한 장막에는 사람의 손으로 만들 수도 없고 짐승의 피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영원하신 성령으로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의 양심을 깨끗하게 하셔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새 언약의 중보입니다. 첫 언약 때에 범한 죄에서 속량하시기 위하여 죽으심으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이런 자들의 섬김은 어떤 것일까요?

 

히브리서 13:8~16절입니다. “8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9 여러 가지 다른 교훈에 끌리지 말라 마음은 은혜로써 굳게 함이 아름답고 음식으로써 할 것이 아니니 음식으로 말미암아 행한 자는 유익을 얻지 못하였느니라 10 우리에게 제단이 있는데 장막에서 섬기는 자들은 그 제단에서 먹을 권한이 없나니 11 이는 죄를 위한 짐승의 피는 대제사장이 가지고 성소에 들어가고 그 육체는 영문 밖에서 불사름이라 12 그러므로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하게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 13 그런즉 우리도 그의 치욕을 짊어지고 영문 밖으로 그에게 나아가자 14 우리가 여기에는 영구한 도성이 없으므로 장차 올 것을 찾나니 15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송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언하는 입술의 열매니라 16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누어 주기를 잊지 말라 하나님은 이 같은 제사를 기뻐하시느니라

 

예수로 말미암아 찬송과 선을 행함과 나누어 주는 것이 제사라고 합니다. 표현은 제사라고 하였지만 이것이 성도의 예배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예배라는 것은 우리가 신에게 제사를 드리는 방식으로 이해를 하면 안 됩니다. 그렇게 온갖 제사를 드리던 자들이 그 그림자를 붙들게 됨으로 실체가 되시는 예수님을 배척하게 된 것입니다. 바울사도는 빌립보 교회가 자신에게 보낸 연보를 받고서 자신이 선물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너희에게 유익하도록 풍성한 열매를 구한다고 하면서 이런 것이 향기로운 제물이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는 것입니다(4:18). 즉 성도의 교통이 향기로운 제물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된 것은 그리드께서 먼저 자신을 하나님께 향기로운 제물로 드림으로(5:2) 우리를 구속하셨기에 그리스도의 사랑이 나타나는 것을 구약적인 표현으로 향기로운 제물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본문 7~22절입니다. “7 또 규례대로 금으로 등잔대 열 개를 만들어 내전 안에 두었으니 왼쪽에 다섯 개요 오른쪽에 다섯 개이며 8 또 상 열 개를 만들어 내전 안에 두었으니 왼쪽에 다섯 개요 오른쪽에 다섯 개이며 또 금으로 대접 백 개를 만들었고 9 또 제사장의 뜰과 큰 뜰과 뜰 문을 만들고 그 문짝에 놋을 입혔고 10 그 바다는 성전 오른쪽 동남방에 두었더라 11 후람이 또 솥과 부삽과 대접을 만들었더라 이와 같이 후람이 솔로몬 왕을 위하여 하나님의 성전에서 할 일을 마쳤으니 12 곧 기둥 둘과 그 기둥 꼭대기의 공 같은 머리 둘과 또 기둥 꼭대기의 공 같은 기둥 머리를 가리는 그물 둘과 13 또 그 그물들을 위하여 만든 각 그물에 두 줄씩으로 기둥 위의 공 같은 두 머리를 가리는 석류 사백 개와 14 또 받침과 받침 위의 물두멍과 15 2)한 바다와 그 바다 아래에 소 열두 마리와 16 솥과 부삽과 고기 갈고리와 여호와의 전의 모든 그릇들이라 후람의 아버지가 솔로몬 왕을 위하여 빛나는 놋으로 만들 때에 17 왕이 요단 평지에서 숙곳과 스레다 사이의 진흙에 그것들을 부어 내었더라 18 이와 같이 솔로몬이 이 모든 기구를 매우 많이 만들었으므로 그 놋 무게를 능히 측량할 수 없었더라 19 솔로몬이 또 하나님의 전의 모든 기구를 만들었으니 곧 금 제단과 진설병 상들과 20 지성소 앞에서 규례대로 불을 켤 순금 등잔대와 그 등잔이며 21 또 순수한 금으로 만든 꽃과 등잔과 부젓가락이며 22 또 순금으로 만든 불집게와 주발과 숟가락과 불 옮기는 그릇이며 또 성전 문 곧 지성소의 문과 내전의 문을 금으로 입혔더라

 

성전의 모든 기구들을 하나하나 다 설명을 해도 됩니다만 히브리서는 다 말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 모든 것들이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그림자 역할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새 언약을 완성하신 그리스도가 임하심으로 이런 것이 무엇을 보여주려고 하였는지 증거 한 것입니다. 이 모든 기구들을 다 살펴보지 않고 앞에서 놋 제단에 대하여 말씀을 드리면서 제단이라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 구약의 성전의 기구들이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히브리서는 통하여 확인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이 모든 기구들을 다 말씀드릴 수는 없고 그 중에 놋 바다에 대하여서만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본문 2~6절입니다. 놋으로 바다를 만들었습니다. 물두멍은 열 개가 따로 있습니다. 그런데 물두멍보다 훨씬 큰 놋으로 만든 큰 물 대야입니다. 받침은 동서남북으로 놋으로 만든 소가 세 마리 씩 열두 마리가 받침이고 그 위에 지름이 십 규빗이며 높이가 다섯 규빗 둘레가 삼십 규빗을 두를 만한 크기입니다. 두께가 한 손 넓이만합니다. 이정도 크기를 유지하려면 두께도 두꺼워야 합니다. 이렇게 큰 놋으로 만든 물통을 만들어 이름을 바다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바다는 넓고 깊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바다를 넓고 크다는 의미로 보는 것입니다. 요세푸스도 그렇게 봤습니다.

 

성경에서 바다는 가장 많이 사용되는 의미가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바다입니다. 이런 바다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이며 시적으로는 교만의 세력으로도 말합니다. 이런 의미의 바다 외에 하늘 바다도 있습니다. 창세기에서 아랫물과 윗물로 나누시고 그 사이를 궁창 곧 하늘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궁창위에 바다가 있는 것입니다(1:7). 시내산 앞에서 백성의 장로들이 하나님 앞에서 먹을 때에 그 발 앞이 청옥을 편듯하고 하늘같이 청명하더라고 합니다(24:10). 에스겔서는 수정 같은 궁창이 나옵니다(1:22). 요한계시록에는 수정 같은 유리바다가 보좌 앞에 있습니다(4:6). 출애굽기와 에스겔서와 연결이 됩니다. 그런데 이 수정 같은 유리바다가 불이 섞여있습니다(15:2).

 

요한계시록 15:1~3절입니다. “1 또 하늘에 크고 이상한 다른 1)이적을 보매 일곱 천사가 일곱 재앙을 가졌으니 곧 마지막 재앙이라 하나님의 진노가 이것으로 마치리로다 2 또 내가 보니 불이 섞인 유리 바다 같은 것이 있고 짐승과 그의 우상과 그의 이름의 수를 이기고 벗어난 자들이 유리 바다 가에 서서 하나님의 거문고를 가지고 3 하나님의 종 모세의 노래, 어린 양의 노래를 불러 이르되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시여 하시는 일이 크고 놀라우시도다 2)만국의 왕이시여 주의 길이 의롭고 참되시도다

 

요한계시록은 출애굽의 과정과 연결하여 보시면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 애굽에서 어린 양의 피로 빠져 나오듯이 요한계시록은 이 세상으로부터 별세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변화산에서 모세와 엘리야와 함께 별세를 의논 하셨습니다. 그 별세라는 단어가 헬라어로 엑서더스출애굽이라는 단어입니다. 요한계시록을 출애굽기와 연결하여 보면 출애굽의 마지막 재앙이 무엇입니까? 장자의 죽음이 마지막 재앙입니다. 그 마지막 재앙을 받지 않는 길은 오직 어린 양의 피를 문 인방과 문설주에 바르는 것입니다. 그리고 홍해를 건넌 후에 모세가 찬양을 합니다. 이 노래를 요한계시록에서 어린 양의 노래라고 합니다.

 

그러면 지금 요한계시록의 이 말씀은 출애굽의 홍해를 건넌 것처럼 세상이라는 바다를 건넌 것입니다. 마치 요단강을 건너가듯이 바다를 건넌 것입니다. 그런데 이 바다에 불이 섞여 있습니다. 이런 이미지는 심판을 말합니다. 이러한 심판의 바다를 건너서 모세의 노래 어린 양의 노래를 부릅니다. 그 내용은 주 하나님 전능하신 이시여 하시는 일이 크고 놀라우시도다 만국의 왕이시여 주의 길이 의롭고 참되다고 찬양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역사 속에서 불과 같은 시험을 당합니다. 6월 구역교제에서 본 것처럼 연단을 당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역사가 불이 섞인 바다와 같습니다. 이 환난의 바다를 건너야 모세의 노래 어린 양의 노래를 부릅니다. 이 바다를 어떻게 건너갈 수 있습니까?

 

오늘 본문 6절입니다. 또 물두멍 열 개를 만들어 다섯 개는 오른쪽에 두고 다섯 개는 왼쪽에 두어 씻게 하되 번제에 속한 물건을 거기서 씻게 하였으며 그 바다는 제사장들이 씻기 위한 것이더라물두멍은 번제에 속한 물건을 씻습니다. 그런데 그 놋 바다는 제사장들이 씻기 위한 것입니다. 제사장들도 씻지 않고 성소에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출애굽기 30:17~21절입니다. “17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18 너는 물두멍을 놋으로 만들고 그 받침도 놋으로 만들어 씻게 하되 그것을 회막과 제단 사이에 두고 그 속에 물을 담으라 19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그 두멍에서 수족을 씻되 20 그들이 회막에 들어갈 때에 물로 씻어 죽기를 면할 것이요 제단에 가까이 가서 그 직분을 행하여 여호와 앞에 화제를 사를 때에도 그리 할지니라 21 이와 같이 그들이 그 수족을 씻어 죽기를 면할지니 이는 그와 그의 자손이 대대로 영원히 지킬 규례니라

 

제사장들이 수족을 씻지 않고 회막에 들어가면 죽습니다. 여호와의 회막에 봉사하는 일을 하는데도 씻지 않으면 죽임을 당합니다. 그러므로 놋 바다를 이렇게 크게 만들고 제사장들로 하여금 씻게 한 것은 우리가 씻김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해 주십니다. 이 놋 바다도 지난주에 야긴과 보아스가 부수어져서 바벨론에 약탈당하듯이 이 놋 바다도 깨뜨려져서 바벨론에 약탈당합니다. 그러므로 놋 바다는 한량없이 씻음을 받아야 함을 보여주는 그림자 역할입니다.

 

에스겔 36:16~20절입니다. “16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17 인자야 이스라엘 족속이 그들의 고국 땅에 거주할 때에 그들의 행위로 그 땅을 더럽혔나니 나 보기에 그 행위가 월경 중에 있는 여인의 부정함과 같았느니라 18 그들이 땅 위에 피를 쏟았으며 그 우상들로 말미암아 자신들을 더럽혔으므로 내가 분노를 그들 위에 쏟아 19 그들을 그 행위대로 심판하여 각국에 흩으며 여러 나라에 헤쳤더니 20 그들이 이른바 그 여러 나라에서 내 거룩한 이름이 그들로 말미암아 더러워졌나니 곧 사람들이 그들을 가리켜 이르기를 이들은 여호와의 백성이라도 여호와의 땅에서 떠난 자라 하였음이라

 

성전에 놋 바다가 있었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땅을 더럽혔습니다. 온갖 부정함과 우상숭배로 땅을 더럽게 하였기에 그 땅이 백성을 토하여 내어버립니다. 이들의 죄악으로 나라가 망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방 나라에서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무능하여 나라가 망한 것으로 생각한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힌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자기의 이름을 아낀 것입니다.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이스라엘을 구원하여 내십니다. 자기 이름을 위하여 우리를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이어지는 21~28절입니다. “21 그러나 이스라엘 족속이 들어간 그 여러 나라에서 더럽힌 내 거룩한 이름을 내가 아꼈노라 22 그러므로 너는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이스라엘 족속아 내가 이렇게 행함은 너희를 위함이 아니요 너희가 들어간 그 여러 나라에서 더럽힌 나의 거룩한 이름을 위함이라 23 여러 나라 가운데에서 더럽혀진 이름 곧 너희가 그들 가운데에서 더럽힌 나의 큰 이름을 내가 거룩하게 할지라 내가 그들의 눈 앞에서 너희로 말미암아 나의 거룩함을 나타내리니 내가 여호와인 줄을 여러 나라 사람이 알리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24 내가 너희를 여러 나라 가운데에서 인도하여 내고 여러 민족 가운데에서 모아 데리고 고국 땅에 들어가서 25 맑은 물을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하게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 숭배에서 너희를 정결하게 할 것이며 26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1)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2)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27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28 내가 너희 조상들에게 준 땅에서 너희가 거주하면서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라

 

놋 바다로 씻을 수 없는 죄악들을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기 이름을 위하여 씻어 주십니다. 이것이 새 언약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우리를 씻으시는 것입니다. 그 용서가 한량이 없습니다. 그 긍휼과 자비가 무궁하십니다. 놋 바다는 상징일 뿐입니다. 정말 하늘을 두루마리 삼고 바다를 먹물 삼아도 다 기록할 수 없는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입니다. 이것이 십자가의 사랑입니다.

 

에베소서 5:25~27절입니다. “25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26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27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라

 

놋 바다의 그 물로 제사장들이 씻어야 성막이나 성전에서 봉사를 할 수 있습니다. 만약 씻지 않으면 죽임을 당합니다. 그러한 연약한 제사장들이 아니라 새 언약을 이루시기 위하여 죄를 알지도 못하신 분을 죄로 삼으셔서 십자가에 내어주신 사랑이 바다처럼 한량없는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의 뜻을 따라 스스로 자기 목숨을 십자가에 내어놓으신 그 순종만이 우리를 씻어 거룩하게 하시는 일입니다. 이렇게 하여 우리를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 티나 주름 잡힌 것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세우신 것이 십자가로 다 이루셨기에 오늘 이 역사 속에서 성도는 그 보혈의 능력으로 환난의 바다를 건너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1:1절입니다.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혼돈이나 교만의 세력이 바다가 새 하늘과 새 땅에는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더 이상 옛 언약에 속한 놋 바다와 같은 것도 없습니다. 그 이유는 십자가로 완성하신 어린 양이신 그 신랑과 영원히 함께 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