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하 32:1~33 은혜를 보답할 수 있는가? 2017. 12. 31

 

24 그 때에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되었으므로 여호와께 기도하매 여호와께서 그에게 대답하시고 또 이적을 보이셨으나 25 히스기야가 마음이 교만하여 그 받은 은혜를 보답하지 아니하므로 진노가 그와 유다와 예루살렘에 내리게 되었더니 26 히스기야가 마음의 교만함을 뉘우치고 예루살렘 주민들도 그와 같이 하였으므로 여호와의 진노가 히스기야의 생전에는 그들에게 내리지 아니하니라

 

히스기야 왕에 대하여 이렇게 많은 분량이 기록되었다는 것은 히스기야 왕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계시하실 말씀이 많은 것입니다. 29장에서 히스기야가 왕이 되자말자 성전을 청결하게 하고 제사를 드리게 된 것은 히스기야의 공로가 아니라 여호와께서 예비하셨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30장에서는 유월절 제사를 드리는데 이미 앗수르에 망한 북 이스라엘의 백성들까지 초대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유월절의 초대에 비웃은 자들도 있었지만 남은 자는 유월절에 참여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31장에서는 제사장들의 생계대책을 세움으로 제사가 늘 있도록 하였습니다.

 

오늘 본문 32:1~8절입니다. 앗수의 왕 산헤립이 남 유다를 공격합니다. 히스기야는 물 근원을 막아 버리고 예루살렘 성으로 지하 수로를 뚫었습니다(대하20:20). 그리고 성벽과 망대를 정비하고 백성들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합니다. 우리와 함께 하시는 이가 그와 함께 하는 자보다 크다고 합니다. 그와 함께 하는 자는 육신의 팔이지만 우리와 함께 하시는 이는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하면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싸우실 것이라고 하자 백성들이 안심합니다.

 

9~19절입니다. 앗수르 왕 산헤립이 예루살렘 남쪽의 라기스 성읍을 치면서 그 신하들을 예루살렘에 보내어 히스기야 왕과 온 유대 백성들에게 말합니다. 히스기야가 여호와의 여러 산당들과 제단들을 제거하고 한 제단에만 예배하고 그 위에만 분향하라고 하지 않았느냐고 합니다. 그러나 산헤립은 그런 신들이 자신에게서 구원하여 낼 수 있겠느냐고 합니다. 앗수르가 수많은 나라를 정복하였지만 그 정복당한 나라의 신들이 자신의 손에서 구원하지 못하였다고 큰 소리 칩니다. 그들이 예루살렘의 하나님을 비방하기를 사람의 손으로 지은 세상 사람의 신들을 비방하듯 하였습니다.

 

20~23절입니다. 히스기야 왕이 선지자 이사야와 함께 기도합니다. 그러자 여호와께서 천사를 보내어 앗수르 왕의 군대를 멸하시니 하루 밤 사이에 죽은 자가 185천명입니다. 왕만 살아서 도망가서 자신의 신전에 경배할 때에 그의 아들이 그를 죽여 버립니다. 그런데 이렇게 된 것이 히스기야 왕과 이사야의 기도보다 근본적인 원인을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기록합니다.

 

이사야 37:35~36절입니다. “35 대저 내가 나를 위하며 내 종 다윗을 위하여 이 성을 보호하며 구원하리라 하셨나이다 하니라 36 여호와의 사자가 나가서 앗수르 진중에서 십팔만 오천 인을 쳤으므로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본즉 시체뿐이라여호와 하나님께서 자기를 위하여 일하신 것입니다. 자기를 위하여 일하셨다는 것은 언약을 따라 일하신 것이며 다윗에게 약속하신 일이 있기에 앗수르 군대를 물리치신 것입니다. 성경은 사람에게 영광을 돌리지 않습니다(115:1).

 

앗수르 대군이 하루아침에 진멸 당하자 그 전리품을 다 거두어들인 것입니다. 그리고 주변의 여러 사람들이 예루살렘에 와서 여호와께 예물을 드리고 보물을 히스기야 왕에게도 드림으로 히스기야가 모든 나라의 눈에 존귀하게 되었습니다. 인간은 이렇게 되었을 때에 그 실상이 드러납니다. 계속하여 은혜 안에 머무는지 아니면 그 은혜가 자신의 공로로 여기는지 드러나게 됩니다.

 

본문 24~26절입니다. 그 때에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되었습니다. 가장 영광스러운 때에 병들어 죽게 되자 면벽하여 기도함으로 15년 생명의 연장을 받은 것은 열왕기에서 보았습니다. 역대기는 그 내용을 간략하게 언급하면서 히스기야의 마음이 교만하여 그 받은 은혜를 보답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보답하지 않는 것이 무엇일까요? 은혜 받았는데 감사 헌금을 하지 않은 것입니까? 그래서 진노가 임한다면 우리는 얼마나 큰 진노를 받아야 합니까?

 

그 진노가 무엇인지를 드러나지 않지만 히스기야가 그 교만함을 뉘우치고 예루살렘 주민들도 그와 같이 하였으므로 히스기야의 생전에는 여호와의 진노가 내리지 않았습니다. 이 말씀을 듣고 히스기야 왕은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왕하20:19). 자기 생전에 진노가 내리지 않음을 감사한 것은 이기적인 모습이 아니라 자신이 늘 진노를 받아도 마땅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히스기야 왕이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하지 않았다는 것이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의 은혜를 자기의 공로로 이루어진 것으로 생각한 것이 교만이며 은혜를 보답하지 않는 모습입니다.

 

본문 27~31절을 봅니다. 히스기야의 생애를 요약합니다. 히스기야가 부와 영광이 지극하게 된 것은 하나님이 그에게 재산을 심히 많이 주셨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짐승의 떼를 위하여 성읍들을 세우고 수로를 지하로 끌어 들인 일들이 다 형통하였다고 합니다. 이럴 때에 바벨론 방백들이 히스기야에게 사신을 보내어 그 땅에서 나타난 이적을 물어보는 것입니다. 히스기야 왕이 병이 들었다가 고침 받은 징조로 해 그림자가 15도 뒤로 물러간 것은 다른 나라도 보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바벨론 사절단이 와서 그 이적을 물어봅니다.

 

본문 31절의 말씀을 보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히스기야를 떠났다고 합니다. 그래서 히스기야의 그 마음 중심에 있는 것을 알고자 하셔서 시험하시니 여지없이 자기 공로가 나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하지 않는 모습입니다. 그러므로 은혜를 은혜로 아는 것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셔야만 되는 것입니다. 이사야 37:1~8을 보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기의 이름으로 맹세하신 그 언약을 이루어내신 것을 히스기야는 자기의 공로인양 바벨론 사절단에게 보물 창고와 무기고를 다 열어 보여준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하지 않는 모습입니다.

 

본문 32~33절입니다. 히스기야 왕의 일들은 이사야의 묵시와 유다의 이스라엘의 열왕기에 기록이 되었다고 합니다. 역대기 기자는 이사야서와 열왕기를 잘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히스기야가 죽자 다윗 자손의 묘실 중에 높은 곳에 장사 지냄으로 그의 죽음에 경의를 표하였습니다. 그런데 오늘 히스기야의 마지막 내용에서 살펴보려고 한 것이 은혜에 대한 보답의 내용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보답은 감사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감사가 아니라 자기 자랑이 나오면 그것은 은혜에 대하여 보답하는 것이 아닙니다. 감사한다는 것은 감사 헌금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누가복음 17:11~19절을 봅니다. “11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실 때에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로 지나가시다가 12 한 마을에 들어가시니 나병환자 열 명이 예수를 만나 멀리 서서 13 소리를 높여 이르되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14 보시고 이르시되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하셨더니 그들이 가다가 깨끗함을 받은지라 15 그 중의 한 사람이 자기가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와 16 예수의 발아래에 엎드리어 감사하니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라 17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18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하시고 19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더라

 

나병환자 열 명이 제사장에게 몸을 보이려고 가다가 고침을 받자 돌이켜 예수님께로 돌아와서 그 발아래 엎드려 감사를 한 사람은 한 명입니다. 이 사람은 사마리아 인입니다. 유대인들이 개 같은 이방인으로 취급하는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 열 명이 다 고침을 받았는데 나머지 아홉은 어디에 있느냐고 하십니다. 그들은 제사장들에게 몸을 보이고 완치 판정을 받은 후에 다시 유대사회로 복귀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 온 것이 아닙니다. 이때 예수님은 이 사람에게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고 합니다. 여기서 이 사람이 감사했기에 영혼의 구원을 받았다는 말을 합니다. 이것이 감사헌금을 했다는 말이 아니라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아본 것입니다. 이것이 구원입니다(17:3).

 

오늘날 대형교회들이 자기 교회의 성장 프로그램을 나누겠다고 대대적인 광고를 합니다. 특별새벽기도회를 잘 해서 교회가 성장하였다고 그 기술을 배우러 오라고 합니다. 제자 훈련을 잘해서, 생명사역을 잘해서, 두 날개를 잘해서 성장했으니 배우러 오라고 합니다. 자기들만 성장하려면 노하우를 전수하지 않겠지만 다른 교회를 섬긴다고 성장 기술을 배우라고 합니다. 저는 이런 모습을 보면서 교회가 은혜를 말하는 곳이 아니라 종교적인 테크닉으로 성장하는 곳임을 봅니다.

 

히스기야 왕에게 여러 이적이 나타난 것이 하나님의 은혜인데 하나님의 은혜가 떠나가 버리니 바로 자신의 보물과 무기고를 열어 자랑하는 것이 은혜에 보답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은혜에서 은혜여야 합니다. 은혜를 주셨지만 주께서 잠시라도 함께 하시지 않으시면 그 은혜를 자신의 행위로 바꿔치기 하는 인간들이 우리의 모습입니다. 만약 우리교회가 성장한 비결을 누가 배우로 온다고 하면 무엇을 말할까요? 19년 만에 약 50명이 약 200명으로 성장하였다면 누가 배우려고 올까요? 실패한 것이라고 볼 것입니다. 그런데도 이 정도라도 성장하려고 배우려고 온다면 무엇을 말해야 합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만 전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더딜지라도 성장은 한다고 말하면 이것이 틈새시장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슨 말을 해야 합니까?

 

고린도전서 15:8~11절입니다. “8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9 나는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라 나는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 받기를 감당하지 못할 자니라 10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11 그러므로 나나 그들이나 이같이 전파하매 너희도 이같이 믿었느니라

 

바울이 복음을 전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을 전한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들에게 보이시고 자기는 만삭되지 못하여 태어난 자기와 같은 자에게도 보이셨다고 하면서 자신이 어떤 사도보다 더 수고하였지만 내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가 헛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우리가 은혜에서 은혜로 나가지 않으면 그 끝은 인간의 공로로 나가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은혜로 구원받고 행위로 복 받고 상급받자는 이야기가 하나님의 은혜를 보답하는 것이 아니라 반역하는 행위가 됩니다.

 

이사야 55:1~3절입니다. 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2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이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며 배부르게 하지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내게 듣고 들을지어다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자신들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3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로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의 영혼이 살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영원한 언약을 맺으리니 곧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이니라

 

생명을 줄 수 없는 섞는 양식은 돈을 주고 삽니다. 그러나 생명의 양식은 너무 귀하기에 사람이 돈으로 살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목마른 자는 와서 돈 없이 값없이 먹으라고 합니다. 돈 없이 값없이 먹는 생명의 양식은 주님의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들으면 즐거움이 되고 영혼을 살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영원한 언약을 맺는 것이며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입니다.

 

로마서 4:1~8절입니다. “1 그런즉 1)육신으로 우리 조상인 아브라함이 무엇을 얻었다 하리요 2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 3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진 바 되었느니라 4 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이 은혜로 여겨지지 아니하고 보수로 여겨지거니와 5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하지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6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복에 대하여 다윗이 말한 바 7 )불법이 사함을 받고 죄가 가리어짐을 받는 사람들은 복이 있고 8 주께서 그 죄를 인정하지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으니라아브라함과 다윗이 받은 복입니다.

 

요한계시록 22:17~21절입니다. “17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18 내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증언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것이요 19 만일 누구든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20 이것들을 증언하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21 주 예수의 은혜가 2)모든 자들에게 있을지어다 아멘

 

성경의 결론이 값없이 생명수를 얻는 내용입니다. 여기에 더하거나 빼면 안 됩니다. 2017년을 은혜로 살았습니다. 마찬가지로 2018년도 은혜로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지금부터 영원히 은혜로, 그 십자가의 은혜로 사는 자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