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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하 13:1~13 떠나지 아니하고 2016. 8. 7

 

오늘 제목을 여로보암의 죄라고 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몇 주 전에 예후에 대하여 보면서 이 제목으로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러므로 떠나지 아니하고로 하였습니다만 제대로 제목을 붙이자면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아니하고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만 이 말씀이 세 번이나 나옵니다(2,6,11). 도대체 여로보암의 죄가 무엇인지 이 죄에서 그렇게 떠나지 못하는지 몇 주 전에도 보았지만 또 나오는 말씀이니 또 봐야 합니다. 지난주에 본 말씀은 여호야다 제사장이 교훈하는 동안에 요시아 왕이 정직하게 행하였으나 죽자 말자 원래대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늘 붙들지 않으면 그대로 멸망으로 가는 겁니다.

 

본문 1~4절입니다. “1 유다의 왕 아하시야의 아들 요아스의 제 이십삼 년에 예후의 아들 여호아하스가 사마리아에서 이스라엘 왕이 되어 십칠 년간 다스리며 2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이스라엘에게 범죄 하게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를 따라가고 거기서 떠나지 아니하였으므로 3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노하사 늘 아람 왕 하사엘의 손과 그의 아들 벤하닷의 손에 넘기셨더니 4 아람 왕이 이스라엘을 학대하므로 여호아하스가 여호와께 간구하매 여호와께서 들으셨으니 이는 그들이 학대받음을 보셨음이라

 

남 유다의 왕 아하시야의 아들 요아스 23년에 북 이스라엘은 예후의 아들 여호아하스가 왕이 되어 17년을 다스립니다. 그런데 그 왕에 대한 평가는 한마디로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습니다. 그 악을 행한 것은 북 이스라엘의 초대 왕 여로보암의 죄를 따라 간 것입니다. 북 이스라엘의 왕조가 반역과 반역으로 다섯 번이나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여호아하스는 왕의 순서로는 11번째 왕입니다. 그러함에도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못하였다고 합니다. 이러한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못한 것이 무엇인지 보겠습니다.

 

열왕기상 12:25~33절입니다. “25 여로보암이 에브라임 산지에 세겜을 건축하고 거기서 살며 또 거기서 나가서 부느엘을 건축하고 26 그의 마음에 스스로 이르기를 나라가 이제 다윗의 집으로 돌아가리로다 27 만일 이 백성이 예루살렘에 있는 여호와의 성전에 제사를 드리고자 하여 올라가면 이 백성의 마음이 유다 왕 된 그들의 주 르호보암에게로 돌아가서 나를 죽이고 유다의 왕 르호보암에게로 돌아가리로다 하고 28 이에 계획하고 두 금송아지를 만들고 무리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다시는 예루살렘에 올라갈 것이 없도다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올린 너희의 신들이라 하고 29 하나는 벧엘에 두고 하나는 단에 둔지라 30 이 일이 죄가 되었으니 이는 백성들이 단까지 가서 그 하나에게 경배함이더라 31 그가 또 산당들을 짓고 레위 자손 아닌 보통 백성으로 제사장을 삼고 32 여덟째 달 곧 그 달 열다섯째 날로 절기를 정하여 유다의 절기와 비슷하게 하고 제단에 올라가되 벧엘에서 그와 같이 행하여 그가 만든 송아지에게 제사를 드렸으며 그가 지은 산당의 제사장을 벧엘에서 세웠더라 33 그가 자기 마음대로 정한 달 곧 여덟째 달 열다섯째 날로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절기로 정하고 벧엘에 쌓은 제단에 올라가서 분향하였더라

 

자주 본 말씀이지만 또 봅니다. 여로보암의 죄가 무엇인지 보셔야 합니다. 왜 벧엘과 단에 금송아지를 만들고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의 성전이라고 합니까? 백성들이 남 유다의 예루살렘 성전에 갔다가 그들의 마음이 다윗의 집으로 돌아갈까봐서 염려한 것입니다. 결국 백성들의 마음을 자기에게 잡아 두기 위하여 가짜 성전을 만들고 가짜 신을 만들고 가짜 절기를 만들고 가짜 제사장을 세운 것입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이름은 애굽에서 구원하여 내신 여호와의 성전이라고 한 것입니다.

 

열왕기상 13:33~34절입니다. “33 여로보암이 이 일 후에도 그의 악한 길에서 떠나 돌이키지 아니하고 다시 일반 백성을 산당의 제사장으로 삼되 누구든지 자원하면 그 사람을 산당의 제사장으로 삼았으므로 34 이 일이 여로보암 집에 죄가 되어 그 집이 땅 위에서 끊어져 멸망하게 되니라여로보암이 거짓 성전에서 분향 할 때에 남쪽 유다에서 하나님의 선지자가 여로보암에게 경고를 하였습니다. 제단이 무너지고 여로보암의 손이 굳어지는 징조를 보고서도 그의 악한 길에서 떠나 돌이키지 못하였습니다. 이것이 죄가 되어 망하게 됩니다.

 

이러한 여로보암의 죄가 북 이스라엘의 모든 왕들에게 다 일어납니다. 예후조차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북 이스라엘에서 유일하게 하나님께 선한 마음을 품은 자가 여로보암의 아들 아비야입니다. 물론 이것이 하나님의 일방적인 은혜입니다. 어떻게 여로보암에게서 하나님께 선한 마음을 품은 아들이 태어날 수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이 아이는 왕자이지만 어려서 죽어버립니다(왕상14:1,13).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는 이 세상에서 빨리 죽습니다. 아벨도 에녹도 예수님도 빨리 죽었습니다. 여로보암의 죄가 가득한 세상에서 오래 사는 것이 복이 아닙니다.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못하는데 도대체 여로보암의 죄가 무엇입니까? 자신이 통치하고 있는 북 이스라엘의 백성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찾아 가는 길을 가로막아 자기에게로 향하여 한 것입니다. 이러한 죄는 사울 왕에게도 보게 됩니다. 사울 왕에게 사무엘 선지자가 올 때 까지 기다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적은 쳐들어왔고 백성들은 도망을 가고 있는데 사무엘은 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제사를 드리는 순간 그 때를 기다리고 있다가 등장하듯이 사무엘이 나타납니다.

 

사무엘상 13:8~15절입니다. “8 사울은 사무엘이 정한 기한대로 이레 동안을 기다렸으나 사무엘이 길갈로 오지 아니하매 백성이 사울에게서 흩어지는지라 9 사울이 이르되 번제와 화목제물을 이리로 가져오라 하여 번제를 드렸더니 10 번제 드리기를 마치자 사무엘이 온지라 사울이 나가 맞으며 1)문안하매 11 사무엘이 이르되 왕이 행하신 것이 무엇이냐 하니 사울이 이르되 백성은 내게서 흩어지고 당신은 정한 날 안에 오지 아니하고 블레셋 사람은 믹마스에 모였음을 내가 보았으므로 12 이에 내가 이르기를 블레셋 사람들이 나를 치러 길갈로 내려오겠거늘 내가 여호와께 은혜를 간구하지 못하였다 하고 부득이하여 번제를 드렸나이다 하니라 13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도다 왕이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왕에게 내리신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그리하였더라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위에 왕의 나라를 영원히 세우셨을 것이거늘 14 지금은 왕의 나라가 길지 못할 것이라 여호와께서 왕에게 명령하신 바를 왕이 지키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의 마음에 맞는 사람을 구하여 여호와께서 그를 그의 백성의 지도자로 삼으셨느니라 하고 15 사무엘이 일어나 길갈에서 떠나 베냐민 기브아로 올라가니라

 

여로보암의 죄와 사울의 죄가 같습니다. 백성들의 흩어짐을 면하기 위한 것입니다. 자기를 중심으로 백성들이 뭉쳐지기를 원한 것입니다. 이를 위하여 제사도 지내고 성전도 만들고 기도도 하면서 온갖 여호와 신앙과 비슷한 행위를 합니다. 그러면서 말로는 여호와 하나님을 위한다고 합니다. 이것이 여로보암의 죄라는 말씀입니다. 누가 이런 죄에서 떠날 수가 있겠습니까?

 

오늘 오전의 자기 부인과 연결되는 말씀입니다. 오늘날 이 땅의 교회들이 온갖 전도방법을 개발하고 교회 부흥을 말하지만 결국은 목사나 교인들이 자기들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모이고 흩어지기를 원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런 모습이 어떤게 나타납니까? 기복신앙, 번영신학, 신비주의, 금욕주의, 바른 교회 세우기, 세상에서 칭찬 받는 교회되기, 이런 식의 수많은 일들을 마치 여호와를 위하여 하는 것처럼 합니다. 그런데 그 마음 안에 여로보암의 마음과 사울의 마음이 없겠습니까? 우리가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못하는 모습이 우리의 모습입니다. 저는 십자가 복음을 말하는 곳도 틈새시장을 노리는 것이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만약 십자가 복음을 전하는 곳에 사람들이 몰려든다면 사람들은 십자가 복음도 흉내 낼 수 있는 것이 인간입니다.

 

다시 본문 1~4절을 봅니다. 예후의 아들 여호아하스가 사마리아에서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 17년간 다스렸지만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습니다. 그 악이 바로 여로보암의 죄를 따라가고 거기서 떠나지 아니하였다고 합니다. 이 땅의 정치도 사람들이 모이지 않으면 절대로 정권을 차지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어떻게 하든지 백성들의 마음을 얻고자 온갖 정책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언약의 백성들이기에 이러한 죄를 지으면 여호와께서 심판하십니다. 아람 왕 하사엘의 손과 그의 아들 벤하닷의 손에 여호와께서 넘기시는데 넘기십니다. 여기서 늘 섬기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여로보암의 죄를 짓기 때문입니다. 아람 왕이 이스라엘을 학대하니 여호아하스가 여호와께 간구합니다. 여호와께서 그들의 학대받음을 보시고 들으십니다.

 

본문 5절입니다. 여호와께서 이에 구원자를 이스라엘에게 주시매 이스라엘 자손이 아람 사람의 손에서 벗어나 전과 같이 자기 장막에 거하였으나여호아하스가 여호와께 기도하니 여호와께서 들어주십니다.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못할 때에 여호와께서 적을 통하여 학대를 당하게 합니다. 이렇게 되면 겨우 여호와께 기도하는 자가 여호아하스입니다. 여호아하스의 이름의 뜻은 여호와께서 붙들어주셨다는 뜻입니다. 여호와께서 붙들어주신다는 이름을 지은 사람은 그의 아버지입니다. 그러면 그의 아버지 예후가 자기 아들을 여호와께서 붙들어 주기를 원한다는 의미를 담은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붙들고 계시기에 죄에 대하여 책망이 따르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 간구하자 여호와께서 구원자를 주셔서 아람의 손에서 벗어나서 자기 장막에 거합니다. 그런데 5절 끝에 보시면 장막에 거하였으나그 다음에 무슨 말씀이 나오겠습니까?

 

본문 6절입니다. 그들이 이스라엘에게 범죄 하게 한 여로보암 집의 죄에서 떠나지 아니하고 그 안에서 따라 행하며 또 사마리아에 아세라 목상을 그냥 두었더라여호아하스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런 모습입니다.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날 수가 없는 이들이 바로 우리의 모습입니다. 우리가 언제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난 적이 있습니까? 하나님을 말하고 예수님을 말하고 성령님을 말하고 심지어 십자가를 말해도 결국 우리 안에는 나를 중심으로 내가 잘 되는 여로보암과 사울과 같은 그 마음을 우리가 가지고 있습니다. 여기서 떠나지 못합니다.

 

본문 7절입니다. 아람 왕이 여호아하스의 백성을 멸절하여 타작마당의 티끌 같이 되게 하고 마병 오십 명과 병거 열 대와 보병 만 명 외에는 여호아하스에게 남겨 두지 아니하였더라아람 왕이 여호아하스의 백성을 멸절하여 타작마당의 티끌 같이 되게 하였습니다. 너희가 원래 땅의 티끌임을 알라는 사랑의 매를 드신 것입니다. 그리하여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못하는 자들을 하나님께서 강제로 떠나게 하십니다. 왕에게 마병 오십 명과 병거 열대와 보병 만 명 외에는 남은 것이 없습니다. 적이 이들마저 진멸하지 않는 이유는 이렇게 남겨둠으로 조공을 받는 것이 그들에게 유익하기에 남겨둔 것입니다. 그러나 여호와의 일하심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렇게 하심으로 그들이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게 하십니다. 여로보암의 뜻은 백성의 수가 많다는 뜻입니다. 백성의 수가 많게 하려고 여호와께로 가지 못하고 하고 가짜 여호와께로 이끈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런 죄에서 돌이키게 하시려고 백성들의 숫자들을 줄여버리십니다. 힘을 의지할 것인지 하나님의 언약을 의지할 것인지 알게 하십니다. 우리에게도 늘 환난이 일어나는 것은 무엇을 의지해야 하는지 알게 하십니다.

 

본문 8~9절입니다. “8 여호아하스의 남은 사적과 행한 모든 일과 그의 업적은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9 여호아하스가 그의 조상들과 함께 자매 사마리아에 장사되고 그 아들 요아스가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여호아하스가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그러면 여호아하스가 지옥에 갔습니까? 이 여호아하스가 바로 우리라고 보시면 우리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우리도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못하는 자들입니다. 이런 자들을 여호와께서 어떻게 이끌어 가십니까? 환난을 당하게 하시고 힘을 다 빼 버립니다. 이렇게 되는 자들이 여호와께서 붙들어 주시는 자들입니다. 이런 하나님을 믿고 사시겠습니까?

 

본문 10~13절입니다. “10 유다의 왕 요아스의 제 삼십칠 년에 여호아하스의 아들 요아스가 사마리아에서 이스라엘 왕이 되어 십육 년간 다스리며 11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이스라엘에게 범죄 하게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모든 죄에서 떠나지 아니하고 그 가운데 행하였더라 12 요아스의 남은 사적과 행한 모든 일과 유다 왕 아마샤와 싸운 그의 업적은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13 요아스가 그의 조상들과 함께 자매 이스라엘 왕들과 함께 사마리아에 장사되고 여로보암이 그 자리에 앉으니라

 

여호아하스가 죽고 자기 아들 요아스가 왕이 됩니다. 남 유다의 왕도 요아스이며 북 이스라엘의 왕도 요아스입니다. 동명이인입니다. 북 이스라엘의 요아스가 16년간 다스리는데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합니다. 그 죄는 여로보암의 모든 죄에서 떠나지 아니한 것입니다. 이 요아스가 죽고 나자 그 아들 여로보암이 북 이스라엘의 왕이 됩니다. 이 왕이 여로보암 2세입니다. 여로보암을 존경하니 자기 아들에게 그 이름을 붙이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세 번이나 나오는 말씀이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못하였다는 말씀입니다. 이런 자들이 어떻게 구원을 받겠습니까? 여호와께서 자기 이름의 영광, 자기 언약의 신실함, 곧 자기 아들의 희생의 공로를 위하여 이들을 붙들고 가십니다.

 

열왕기하 13:22~23절입니다. “22 여호아하스 왕의 시대에 아람 왕 하사엘이 항상 이스라엘을 학대하였으나 23 여호와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더불어 세우신 언약 때문에 이스라엘에게 은혜를 베풀며 그들을 불쌍히 여기시며 돌보사 멸하기를 즐겨하지 아니하시고 이 때까지 자기 앞에서 쫓아내지 아니하셨더라

 

여호아하스 왕이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못합니다. 그래서 아람 왕이 쳐들어와서 괴롭히면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구원자를 보내십니다. 그리하여 잠시 백성들이 자기들의 집에서 살게 되면 다시 여로보암의 죄로 돌아갑니다. 그 죄에서 떠나지 못하는 여호아하스 왕을 왜 구원하여 주십니까? 여호와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더불어 세우신 언약 때문에 이스라엘에 은혜를 베풀며 그들을 불쌍히 여기시며 돌보신 것입니다.

 

우리는 구약을 율법으로 봅니다. 그러나 율법의 수건이 걷어지면 구약에서도 복음을 보게 됩니다. 바울사도는 고린도후서 3장에서 새 언약의 일꾼이란 모세의 수건이 벗겨져야 한다고 했습니다. 새 언약으로 보니 구약에서도 복음이 증거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신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3:1~5절입니다. “1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 2 내가 너희에게서 다만 이것을 알려 하노니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이 율법의 행위로냐 혹은 듣고 믿음으로냐 3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 4 너희가 이같이 많은 괴로움을 헛되이 받았느냐 과연 헛되냐 5 너희에게 성령을 주시고 너희 가운데서 능력을 행하시는 이의 일이 율법의 행위에서냐 혹은 듣고 믿음에서냐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것은 성령으로 된 것입니다. 성령의 된 것은 육체의 능력인 율법의 행함이 아닌 복음을 듣고 믿음입니다. 이러한 예를 아브라함을 통하여 말씀합니다. 아브라함이 복음을 들었다고 합니다.

 

6~14절입니다. “6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을 그에게 의로 정하셨다 함과 같으니라 7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인 줄 알지어다 8 또 하나님이 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성경이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되 )모든 이방인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9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 10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에 있나니 기록된 바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모든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11 또 하나님 앞에서 아무도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이는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하였음이라 12 율법은 믿음에서 난 것이 아니니 )율법을 행하는 자는 그 가운데서 살리라 하였느니라 13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14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

 

구약의 내용을 이렇게 신약까지 연결하면 구약에서도 왜 인간이 은혜로만 의롭다 함을 받는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바울사도가 여기서 인용한 모든 내용들이 다 구약의 성경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못하는 그 죄, 그 저주를 누가 대신 받으신 것입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신 저주를 받으신 것입니다. 이것을 믿는 믿음이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이것이 아브라함의 복이며 오늘 이방인인 우리도 받는 복습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 이 놀라운 복음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만 오롯이 담겨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5:21)”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