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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하 2:1~11 요단강을 건너 2015. 12. 20

 

우리가 어려서부터 교회서 배운 성경의 내용 중에 기억이 가장 남는 장면들 중에 몇 손가락에 들어갈 내용이 오늘 본문입니다. 엘리야가 회오리바람을 타고 하늘로 올라간 것입니다. 그리고 엘리야의 능력을 엘리사가 갑절을 원하였고 그 능력을 받기 위하여 엘리사가 끝까지 엘리야를 따라가서 그 능력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능력 있는 주의 종의 말을 듣고 간절히 간구하면 능력 있는 사역자가 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이런 식으로 배운 우리들은 오늘날도 이런 식으로 능력을 구하고 있는 자들이 수도 없이 많습니다.

 

그러나 과연 성경이 그러한 내용을 전하는 것입니까?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합니다. 그런데 이런 본문으로 우리가 간절히 구하면 능력을 받아 대단한 사역을 할 수 있다는 식으로 가르치고 우리는 또 그렇게 따라 하였습니다. 이런 영향을 받은 저의 이야기도 두 가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전에 말씀드린 적이 있지만 신학교를 가기 전에 복음이 무엇인지 조금 알았습니다. 신앙은 사람의 열심이 아니라 하나님의 열심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신학교를 다니면서 전도사 사역을 할 때에 능력을 달라고 구하였습니다. 두 번째 전도사 사역을 부산의 석포교회에서 할 때에 주일학교 교사만 50명이 되었습니다. 학생들은 평소에 2~3백 명이었습니다. 성경학교 때는 5~6백 명까지 모였습니다. 그런데도 양지 기숙사 뒤편의 기도하는 곳에 가서 열심히 기도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런 기도 중에 왜 능력을 받아야 하느냐는 자문이 일어난 것입니다. 결국 능력을 받아서 십자가에서 죽는 길로 가는 것이 아니라 목회 성공이라는 길로 가기 위한 능력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때부터 능력을 구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오늘 이 모양으로 살아갑니다.

 

이 본문을 볼 때 마다 또 하나의 사건이 생각이 납니다. 위의 이야기보다 좀 더 앞의 이야기입니다. 여름 휴가철에 한얼산 기도원에 집사람과 함께 간적이 있습니다. 하도 유명한 곳이라서 한번 가보았습니다. 저는 도저히 적응이 되지 않았습니다. 어떤 하얀 양복을 입은 사람이 강의를 하면서 엘리야와 엘리사 이야기를 합니다. 그리고 한참 설교하다가 자기의 양복 상의를 벗더니 청중석으로 던지며 갑절의 능력을 받으라고 합니다. 그러자 앞자리에 앉은 열 명이 넘는 사람들이 그 옷을 잡았습니다. 그러자 그 강사가 그 옷을 잡은 사람은 기도원 길 확장하는 공사에 백만 원씩 헌금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갑절의 축복을 받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이런 식의 이야기들이 아직도 통용되고 있다면 이것은 성경도 모르고 하나님의 능력도 모르는 것입니다.

 

본문 1~3절입니다. “1 여호와께서 회오리바람으로 엘리야를 하늘로 올리고자 하실 때에 엘리야가 엘리사와 더불어 길갈에서 나가더니 2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너는 여기 머물라 여호와께서 나를 벧엘로 보내시느니라 하니 엘리사가 이르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과 당신의 영혼이 살아 있음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겠나이다 하는지라 이에 두 사람이 벧엘로 내려가니 3 벧엘에 있는 선지자의 제자들이 엘리사에게로 나아와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오늘 당신의 선생을 당신의 머리 위로 데려가실 줄을 아시나이까 하니 이르되 나도 또한 아노니 너희는 잠잠하라 하니라

 

북 이스라엘에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는 자들이 그렇게 많았지만 하나님의 선지자 학교의 학생들을 상당히 있었습니다. 그들은 엘리야를 여호와께서 회오리바람으로 하늘로 올리고자 하시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길갈에서 엘리야가 엘리사와 함께 나갈 때에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길갈에 머물고 있으라고 합니다. 여호와께서 자신을 벧엘로 보낸다고 합니다. 그러자 엘리사는 여호와의 살아계심과 당신의 영혼이 살아 있음을 두고 맹세하니 당신을 떠나지 않겠다고 합니다. 이에 두 사람이 벧엘에 가니 벧엘에 있는 선지자의 제자들이 엘리사에게 나아와 여호와께서 당신의 선생을 당신의 머리위로 데려가실 것을 아느냐고 합니다. 그러자 엘리사가 나도 또한 아노니 너희는 잠잠하라고 합니다.

 

본문 4~6절입니다. “4 엘리야가 그에게 이르되 엘리사야 청하건대 너는 여기 머물라 여호와께서 나를 여리고로 보내시느니라 엘리사가 이르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과 당신의 영혼이 살아 있음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겠나이다 하니라 그들이 여리고에 이르매 5 여리고에 있는 선지자의 제자들이 엘리사에게 나아와 이르되 여호와께서 오늘 당신의 선생을 당신의 머리 위로 데려가실 줄을 아시나이까 하니 엘리사가 이르되 나도 아노니 너희는 잠잠하라앞의 읽은 본문과 패턴이 갔습니다만 장소가 달라집니다. 벧엘에서 여리고로 간다고 하면서 엘리사를 떼 놓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엘리사는 같은 말로 떠나지 않겠다고 합니다.

 

본문 6절입니다. 엘리야가 또 엘리사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너는 여기 머물라 여호와께서 나를 요단으로 보내시느니라 하니 그가 이르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과 당신의 영혼이 살아 있음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겠나이다 하는지라 이에 두 사람이 가니라같은 패턴이 세 번이나 반복이 됩니다. 이제 장소가 여리고에서 요단으로 바뀝니다.

 

본문 7~11절입니다. “7 선지자의 제자 오십 명이 가서 멀리 서서 바라보매 그 두 사람이 요단 가에 서 있더니 8 엘리야가 겉옷을 가지고 말아 물을 치매 물이 이리 저리 갈라지고 두 사람이 마른 땅 위로 건너더라 9 건너매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이르되 나를 네게서 데려감을 당하기 전에 내가 네게 어떻게 할지를 구하라 엘리사가 이르되 당신의 성령이 하시는 역사가 갑절이나 내게 있게 하소서 하는지라 10 이르되 네가 어려운 일을 구하는도다 그러나 나를 네게서 데려가시는 것을 네가 보면 그 일이 네게 이루어지려니와 그렇지 아니하면 이루어지지 아니하리라 하고 11 두 사람이 길을 가며 말하더니 불 수레와 불 말들이 두 사람을 갈라놓고 엘리야가 회오리바람으로 하늘로 올라가더라

 

우리가 잘 아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정말 이 내용이 무엇인지 잘 아십니까? 우리는 이 말씀을 보면서 제가 앞에서 든 두 가지의 예와 같이 자신의 목회 성공이나 아니면 자신이 대단한 능력을 받아서 하나님의 일을 멋지게 해보려고 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바로 탐심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말씀을 볼 때에 우리는 성경이 도대체 무엇을 증거 하고자 하는지 알고서 보아야 합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합니다(5:39). 그러므로 구약의 엘리야와 엘리사도 그리스도의 영이 임하여 그리스도를 증거 한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1:9~12절입니다. “9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10 이 구원에 대하여는 너희에게 임할 은혜를 예언하던 선지자들이 연구하고 부지런히 살펴서 11 자기 속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이 그 받으실 고난과 후에 받으실 영광을 미리 증언하여 누구를 또는 어떠한 때를 지시하시는지 상고하니라 12 이 섬긴 바가 자기를 위한 것이 아니요 너희를 위한 것임이 계시로 알게 되었으니 이것은 하늘로부터 보내신 성령을 힘입어 복음을 전하는 자들로 이제 너희에게 알린 것이요 천사들도 살펴보기를 원하는 것이니라선지자들이 그리스도의 영으로 그리스도의 고난과 그 후의 영광을 미리 증언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엘리야와 엘리사도 당연히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일을 지금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것입니까?

 

우선 장소를 봅니다. 제일 처음 출발한 장소가 길갈입니다. 길갈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하여 광야 40년을 지난 후에 요단강을 건넙니다. 요단강을 건너서 제일먼저 진을 친 곳이 길갈입니다. 이곳에서 할례를 행하면서 애굽의 수치가 굴러갔다고 하여 이름을 길갈이라고 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길갈에서 벧엘로 가고 여리고로 가서 요단강을 건넙니다. 벧엘은 야곱이 외삼촌 집으로 도망가다가 밤에 누워 잔 곳입니다. 그곳에서 하늘의 사닥다리를 본 곳이며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자리입니다. 벧엘에서 다시 여리고로 갑니다. 여리고는 약속의 땅으로 들어올 때에 처음 무너뜨린 성입니다. 이곳에서 요단강을 건너갑니다. 출애굽 하여 요단강을 건너왔는데 요단강을 건너서 승천하는 것이 엘리야의 마지막 사역입니다. 이를 통하여 무엇을 보여줍니까?

 

지금 이스라엘은 온통 우상숭배로 가득합니다. 이런 곳에서 그리스도의 영이 임한 선지자가 요단강을 역으로 건너가서 승천함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과 승천을 함께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베들레헴에 태어나셨지만 헤롯이 죽이려고 하여 아기 때에 애굽으로 가십니다. 헤롯이 죽고 나서 돌아오셔서 나사렛에서 사십니다. 이 모든 일들이 다 성경에 기록된 대로 하신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복음을 전하셨지만 본토에 살면서 아브라함의 후손이라고 하는 자들이 오히려 예수님을 배척합니다. 세례요한이 예수님을 증거 하다가 옥에 갇혔는데 예수님은 요한의 잡힌 소식을 듣고 갈릴리로 가 버리십니다.

 

마태복음 4:12~17절입니다. “12 예수께서 요한이 잡혔음을 들으시고 갈릴리로 물러가셨다가 13 나사렛을 떠나 스불론과 납달리 지경 해변에 있는 가버나움에 가서 사시니 14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일렀으되 15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과 요단 강 저편 해변 길과 이방의 갈릴리여 16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치었도다 하였느니라 17 이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이르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시더라

 

엘리야가 요단 강 건너편에서 승천하여 버립니다. 그런데 예수님도 요단 강 건너편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엘리야가 길갈에서 벧엘로 여리고로 요단강을 건넘으로 출애굽 하여 가나안으로 들어간 것을 거꾸로 나오는 것을 통하여 지금 이스라엘이 심판의 자리가 되었음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이렇게 승천한 엘리야가 모세와 함께 예수님을 만나는 자리가 누가복음 9장에 나옵니다.

 

누가복음 9:28~31절입니다. “28 이 말씀을 하신 후 팔 일쯤 되어 예수께서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고 기도하시러 산에 올라가사 29 기도하실 때에 용모가 변화되고 그 옷이 희어져 광채가 나더라 30 문득 두 사람이 예수와 함께 말하니 이는 모세와 엘리야라 31 영광중에 나타나서 장차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을 말할새모세와 엘리야가 예수님과 함께 영광중에 나타나서 예수님께서 장차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을 말씀합니다. 그런데 이 사건을 본 제자들이 너무 좋아서 여기서 초막 셋을 짓고 있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제자들을 산 아래로 내려가게 하십니다. 다시 할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엘리사도 엘리야의 승천을 보고서 다시 이스라엘로 들어옵니다. 엘리사도 역시 무슨 일을 하는 것입니까? 이스라엘이 왜 심판을 받아야하는지를 보여주면서 별세해야 함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역이 힘든 사역입니다. 그래서 본문 9절을 보시면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무엇을 원하느냐고 하였을 때에 당신에게 임한 성령이 하시는 역사가 갑절이나 내게 있게 하여 달라고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생각하는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엄청난 사역을 하겠다는 그런 탐심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당신이 핍박의 길을 간 그 길을 가기 위하여서는 나의 힘과 능력으로 안 되니 당신에게 임한 그 성령의 임하심이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갑절이라는 것은 장자의 몫이 갑절입니다. 이스라엘의 장자는 혈통의 서열보다 희생하는 자가 장자입니다. 그러므로 수많은 제자들이 있지만 자신의 스승 엘리야가 간 그 희생의 길로 가겠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대하여 엘리야가 10절에서 답하기를 네가 어려운 일을 구한다고 합니다. 이것은 성령이 갑절이나 역사하는 그것이 어렵다는 말이 아닙니다. 성령이 임하는 것은 사람이 구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기에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러면 무엇이 어렵다는 말입니까? 하나님의 성령이 임하여 가야 하는 그 길이 어렵다는 말입니다. 그런 어려운 길을 가겠느냐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는 말이 나를 네게서 데려가시는 것을 네게 보면 그 일이 네게 이루어질 것이지만 그렇지 않으면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두 사람이 길을 가는데 불 수레와 불 말들이 두 사람을 갈라놓고 엘리야는 회오리바람으로 하늘로 올라간 것입니다.

 

요한복음 16:7~8절입니다. “5 지금 내가 나를 보내신 이에게로 가는데 너희 중에서 나더러 어디로 가는지 묻는 자가 없고 6 도리어 내가 이 말을 하므로 너희 마음에 근심이 가득하였도다 7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8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요한복음 14장부터 예수님께서 떠나신다고 하십니다. 그러자 제자들이 근심이 많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떠나심으로 성령이 오시기에 떠나는 것이 유익하다하고 하십니다. 우리가 보는 오늘 본문의 엘리야와 엘리사의 이야기가 예수님의 이 이야기와 다른 이야기가 아닙니다. 구약의 선지자들이 그리스도의 영으로 이런 일을 함으로 지금 예수님께서 이루실 일을 미리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엘리야의 승천으로 엘리사가 성령의 일하심이 임하듯이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부활하셔서 승천하심으로 성령이 임한 것입니다. 그러면 엘리야는 언제 죽은 것이 상징되는 것입니까? 요단강을 건넌 것입니다. 물속에 들어갔다가 나오는 것은 홍해에서도 세례라고 합니다. 그러면 요단강은 약속의 나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엘리야는 그 약속의 땅에서 역으로 요단강을 건너는 것입니다. 이것이 별세입니다. 우리에게도 성령이 임하면 이 세상에서 별세를 꿈꾸게 됩니다. 교회로 오셨다면 교회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으로 별세를 꿈꾸는 것입니다. 엘리야를 승천을 본 엘리사에게 성령의 역사가 일어난 것처럼 예수님의 승천으로 성령을 보내셔서 제자들이 사역합니다. 그런데 엘리사가 사역하는 것도 죄에 대한 책망과 심판임을 다음 주에 보겠습니다.

 

다시 본문 10절을 봅니다. 네가 어려운 일을 구한다고 합니다. 이것은 성령이 하시는 역사가 갑절이나 내게 있게 하여 달라는 말에 대한 엘리야의 말입니다. 이것은 위에서 본대로 예수님의 승천과 성령을 부어주심을 통하여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이 가신 그 십자가의 길을 간 것처럼 제자들도 그 길로 가게 되는 것입니다. 엘리야가 간 그 길을 엘리사가 가게 됩니다. 그런데 엘리사가 이 길을 제대로 알고 그 영감을 갑절이나 구하였을까요? 물론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겉옷을 던져주면서 제자로 불렀습니다. 그리고 다른 선지자들도 엘리야의 승천을 짐작하고 있었던 것은 이들도 은사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어렵다는 길이 무엇인지 예수님의 제자들을 통하여 보겠습니다.

 

마태복음 20:21~28절입니다. “20 그 때에 세베대의 아들의 어머니가 그 아들들을 데리고 예수께 와서 절하며 무엇을 구하니 21 예수께서 이르시되 무엇을 원하느냐 이르되 나의 이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명하소서 22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내가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그들이 말하되 할 수 있나이다 23 이르시되 너희가 과연 내 잔을 마시려니와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내가 주는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누구를 위하여 예비하셨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 24 열 제자가 듣고 그 두 형제에 대하여 분히 여기거늘 25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그들을 임의로 주관하고 그 고관들이 그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26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아야 하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27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28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엘리야가 성령의 역사를 갑절이나 구하는 엘리사에 한 말이 예수님의 이 말과 겹쳐지고 있습니다. 너희가 구하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한다고 하면서 내가 주는 잔을 마시겠느냐고 합니다. 그러자 제자들이 마시겠다고 합니다. 그 때 예수님은 그 잔을 마신다면 마시겠지만 그러나 내 좌우에 앉는 것은 내 아버지께서 예비한 자들에게 주어질 것이라고 합니다. 이들이 예수님을 따르고자 하는 마음이 사라질 내용입니다. 그러면서 예수님께서 이 말씀의 결론을 예수님이 마시는 잔은 십자가의 길이며 죽음의 길입니다. 이 길이 엘리야는 어려운 길임을 알기에 엘리사에게 말한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 우리는 성령의 충만함을 구하시겠습니까? 자신이 능력을 받아서 사람들에게 환영을 받고 인정을 받는 그런 성령의 은사를 구하신다면 이것은 다른 영을 구하는 것입니다. 사탄도 얼마든지 표적과 능력을 보여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엘리야가 승천을 통하여 엘리사에게 전달되는 능력은 고난과 핍박과 죽음의 길입니다. 이것이 능력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 승천하셔서 제자들에게 부어주신 그 성령도 예수님이 가신 그 죽음의 길로 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참된 하나님 나라의 능력은 섬김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으로부터 영원히 섬김을 받는 자들입니다. 이런 자들이 함께 모인 곳에는 그 섬김의 능력으로 인하여 서로 섬기는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6:2절입니다.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이러한 천국을 우리의 모임에서 부분적이나마 맛을 보기를 원합니다. 그리할 때에 영원하고 완전한 섬김의 나라 그 아들의 나라를 더욱 사모하여 요단강을 건너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