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성설교 바로듣기]  [음성설교 다운받기]

열왕기상 20:31~43 사람은 망치고 2015. 11. 1

 

사람은 망치고 하나님은 이루시고제가 종종 인용하는 말입니다, 아브라함 요수아 헤셀의 책에서 나온 말입니다. 성경을 볼 때에 참으로 사람은 망치는 일만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 홀로 이루어내셔야 함을 잘 보여주는 표현입니다. 오늘 본문도 아합이 하나님께서 붙여주시는 적을 살려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붙여주시는 전쟁은 진멸하는 전쟁입니다. 그런데 아합이 자기를 위하여 적을 살려줌으로 하나님의 일을 망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일이 사람이 망친다고 망쳐지는 일은 없습니다. 오히려 이런 일을 통하여 인간의 죄가 어떤 것인지를 드러내시면서 여호와의 일은 여호와께서 이루내심을 보여줍니다.

 

지난주에 본 여호와께서 아합 왕에게 아람 군대를 붙여주신 것은 아합의 어떠한 공적이 결코 아닙니다. 아합은 온통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는 왕이었습니다. 엘리야 선지자가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 850명이 갈멜산에서 대결하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응답을 받은 엘리야의 하나님이 참 하나님이심을 보고서도 그는 여호와 하나님께로 돌이키지 않았던 왕입니다. 이러한 아합은 군대가 약 7천명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람의 벤하닷 왕의 군대는 십이만 칠천 명이 넘었습니다. 이런 전쟁에서 두 번이나 승리하게 된 것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 알려주시기 위한 전쟁이었습니다. 그런데 아합 왕은 어떻게 행동합니까?

 

지난주 보았던 28~30절을 다시 봅니다. “28 그 때에 하나님의 사람이 이스라엘 왕에게 나아와 말하여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에 아람 사람이 말하기를 여호와는 산의 신이요 골짜기의 신은 아니라 하는도다 그러므로 내가 이 큰 군대를 다 네 손에 넘기리니 너희는 내가 여호와인 줄을 알리라 하셨나이다 하니라 29 진영이 서로 대치한 지 칠 일이라 일곱째 날에 접전하여 이스라엘 자손이 하루에 아람 보병 십만 명을 죽이매 30 그 남은 자는 아벡으로 도망하여 성읍으로 들어갔더니 그 성벽이 그 남은 자 이만 칠천 명 위에 무너지고 벤하닷은 도망하여 성읍에 이르러 골방으로 들어가니라아합을 위한 승리가 아니라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아합에게 적을 붙여주신 것입니다. 여호와가 산의 신이며 골짜기의 신이 아니라고 하였기에 여호와는 전능하시며 무소부재하신 하나님을 보여주시기 위하여 아람 군대를 아합에게 붙여주신 것입니다.


오늘본문 31~34절입니다. “31 그의 신하들이 그에게 말하되 우리가 들은즉 이스라엘 집의 왕들은 인자한 왕이라 하니 만일 우리가 굵은 베로 허리를 동이고 테두리를 머리에 쓰고 이스라엘의 왕에게로 나아가면 그가 혹시 왕의 생명을 살리리이다 하고 32 그들이 굵은 베로 허리를 동이고 테두리를 머리에 쓰고 이스라엘의 왕에게 이르러 이르되 왕의 종 벤하닷이 청하기를 내 생명을 살려 주옵소서 하더이다 아합이 이르되 그가 아직도 살아 있느냐 그는 내 형제이니라 33 그 사람들이 좋은 징조로 여기고 그 말을 얼른 받아 대답하여 이르되 벤하닷은 왕의 형제니이다 왕이 이르되 너희는 가서 그를 인도하여 오라 벤하닷이 이에 왕에게 나아오니 왕이 그를 병거에 올린지라 34 벤하닷이 왕께 아뢰되 내 아버지께서 당신의 아버지에게서 빼앗은 모든 성읍을 내가 돌려보내리이다 또 내 아버지께서 사마리아에서 만든 것 같이 당신도 다메섹에서 당신을 위하여 거리를 만드소서 아합이 이르되 내가 이 조약으로 인해 당신을 놓으리라 하고 이에 더불어 조약을 맺고 그를 놓았더라

 

여호와께서 붙여주신 적을 아합이 왜 살려주는 것입니까? 벤하닷이 처음에 쳐들어 왔을 때에 얼마나 벌벌 떨었습니까? 나는 당신의 종이라고 하면서 시키는 대로 다 하겠다고 한 아합 입니다. 그런데 여호와께서 자기의 이름을 위하여 붙여주신 전쟁에서 승리하고 나니 여호와의 전쟁은 간곳이 없고 자기가 잘나서 이긴 줄로 아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합에게 자비를 요청하고 나오는 적을 살려주는 정도가 아니라 형제로 맞이합니다. 그러자 적들이 얼른 그 말을 받아서 벤하닷은 왕의 형제로 하자 아합이 벤하닷을 자기 병거에 올립니다. 이것은 형제로 맞이하는 모습입니다. 여호와께서 붙여주신 적을 형제로 맞이하는 것은 자기의 이름을 위한 것입니다.

 

그 이유는 다음에 나오는 내용을 염두에 두었을 것입니다. 완전히 패배한 왕을 살려줌으로 자신에게 올 이익을 생각한 것입니다. 자기의 이름만이 아니라 실제적인 이익도 노린 것입니다. 이것을 벤하닷이 모를 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자기 아버지가 아합 왕의 아버지에게서 빼앗은 성읍을 다 돌려줄 것이며 또 자기 아버지가 사마리아에 그 이름으로 도로를 만든 것처럼 아합 왕도 다메섹에 아합 이름의 도로를 만들라고 합니다. 요즈음도 유명 인사들의 이름으로 거리를 조성하고 있습니다만 이 말을 들은 아합은 벤하닷과 조약을 맺고 풀어줍니다. 이러한 아합을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통하여 책망하십니다.

 

본문 35~37절입니다. “35 선지자의 무리 중 한 사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그의 친구에게 이르되 너는 나를 치라 하였더니 그 사람이 치기를 싫어하는지라 36 그가 그 사람에게 이르되 네가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아니하였으니 네가 나를 떠나갈 때에 사자가 너를 죽이리라 그 사람이 그의 곁을 떠나가더니 사자가 그를 만나 죽였더라 37 그가 또 다른 사람을 만나 이르되 너는 나를 치라 하매 그 사람이 그를 치되 상하도록 친지라

 

선지자의 무리 중 한 사람이 그의 친구에게 자기를 치라고 합니다. 그냥 치라고 한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말씀을 그의 친구에게 전한 것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으로 나를 치라고 하였는데 이 선지자 친구가 농담으로 여겼는지 친구를 치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여호와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치라고 하셨을까 하는 마음으로 친구 선지자를 치지 않은 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래서 치라고 한 선지자가 말하기를 네가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아니하였으니 네가 나를 떠나갈 때에 사자가 너를 죽일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 말대로 그 선지자는 사자가 죽였습니다. 그가 또 다른 사람을 만나 자기를 치라고 합니다. 이 사람은 그 사건을 알았는지 모르지만 선지자를 상하도록 칩니다.

 

이 사건이 왜 일어나는 것입니까? 결국 아합에게 말씀하시기 위하여 이렇게 하신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치라고 하신 것을 아합은 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아합이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음으로 마치 선지자의 친구가 사자에게 찢겨 죽듯이 아합이 심판을 받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또 그렇게 침을 당한 채로 아합에게 가서 여호와의 말씀을 전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면 여호와의 선지자들을 여호와의 뜻을 드러내기 위한 소품들에 불과합니다. 단지 친구를 치지 않았다고 사자에게 찢겨 죽은 것을 통하여 여호와의 말씀의 엄중함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평소에 얼마나 여호와의 말씀을 롯의 사위들처럼 농담으로 여기고 있습니까!

 

이 말씀을 보면서 저에게 적용을 해 봅니다. 목사가 설교를 하면서 교인들의 눈치를 보면 안 된다고 봅니다. 하나님께서 책망하라고 하시는 부분은 책망을 해야 합니다. 치라고 하면 쳐야 합니다. 그런데 목사가 교인들의 눈치를 보면서 제대로 전하지 못하면 그 사람은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은 자가 됩니다. 목사가 교회의 사람들의 눈치를 보는 경우는 헌금을 많이 하는 경제력이 있는 사람이든지 아니면 친족들이 많은 사람들의 눈치를 본다면 그 사람들 비위를 거스르는 설교를 못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살려면 사람의 눈치 보지 않고 담대하게 복음 전하도록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본문 38~40절입니다. “38 선지자가 가서 수건으로 자기의 눈을 가리어 변장하고 길 가에서 왕을 기다리다가39 왕이 지나갈 때에 그가 소리 질러 왕을 불러 이르되 종이 전장 가운데에 나갔더니 한 사람이 돌이켜 어떤 사람을 끌고 내게로 와서 말하기를 이 사람을 지키라 만일 그를 잃어버리면 네 생명으로 그의 생명을 대신 하거나 그렇지 아니하면 네가 은 한 달란트를 내어야 하리라 하였거늘 40 종이 이리 저리 일을 볼 동안에 그가 없어졌나이다 이스라엘 왕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스스로 결정하였으니 그대로 당하여야 하리라

 

선지자가 맞은 얼굴을 수건으로 가리고 왕에게 나아가 판결을 요청합니다. 자신이 전쟁의 포로를 대신 맡은 것으로 말합니다. 만약 그를 잃어버리면 자신의 생명으로 대신 하든지 아니면 은 한 달란트를 내어야 한다는 약속을 하고 그 포로를 맡았는데 자신이 볼일 보는 동안 없어져 버렸다고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왕에게 묻습니다. 왕은 네가 결정하였으니 그대로 당하여야 한다고 합니다. 마치 다윗을 책망하는 나단 선지자처럼 비유로 왕의 죄악을 들추어내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붙여주신 자를 너의 이익을 위하여 놓아주었으니 네가 책임져야 한다는 말씀을 비유로 전한 것이지만 알아듣지를 못합니다.

 

본문 41~43절입니다. “41 그가 급히 자기의 눈을 가린 수건을 벗으니 이스라엘 왕이 그는 선지자 중의 한 사람인 줄을 알아본지라 42 그가 왕께 아뢰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멸하기로 작정한 사람을 네 손으로 놓았은즉 네 목숨은 그의 목숨을 대신하고 네 백성은 그의 백성을 대신하리라 하셨나이다 43 이스라엘 왕이 근심하고 답답하여 그의 왕궁으로 돌아가려고 사마리아에 이르니라

 

왕의 그 말을 들은 선지자가 수건을 벗으니 선지자인줄 아합이 압니다. 그리고 여호와의 말씀을 듣습니다. 방금 선지자가 왕에게 들은 말 그대로 하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멸하기로 작정한 사람을 네 손으로 놓았으니 네 목숨의 그의 목숨을 대신하고 네 백성은 그의 백성을 대신하리라고 전합니다. 이스라엘 왕이 근심하고 답답하여 그의 왕궁으로 돌아가려고 사마리아에 이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루신 일을 인간이 얼마나 망치는지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사람이 왜 여호와의 일을 망치고 있습니까? 자기의 이름과 자기의 이익을 위한 것으로 망치고 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성의 멸망 때에 여호와의 말씀을 농담으로 여긴 사위들이나 불타는 성읍을 뒤로 돌아본 롯의 처나 오늘 우리나 별 다를 바 없지 않습니까! 정말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습니까? 정말 사람의 눈치 보지 않고 자신의 이름과 이익을 생각하지 않고 여호와의 말씀에 순종하십니까?

 

제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은 과연 우리가 누구의 말에 충성해야 되는지를 보라고 말씀을 드립니다. 내가 속한 어떤 단체에서 왕따를 당하여도 과연 우리가 누구의 말을 들어야 하는지를 생각하자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어떤 특정한 사람의 사상과 논리에 사로잡히게 되면 그 사람의 종이 됩니다. 그런 사람들이 그 사람을 계속하여 추종하면 그 사람은 원하지 않아도 교주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특정한 어떤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숨겨져 있는 본능들입니다. 우리 가운데도 얼마든지 자기의 말로 사람들을 이끌어 갈 소지가 있는 자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다만 환경과 여건이 주어지지 않아서 그렇지 얼마든지 나올 수가 있습니다.

 

사도행전 20:28~31절입니다. “28 여러분은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 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그들 가운데 여러분을 감독자로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느니라 29 내가 떠난 후에 사나운 이리가 여러분에게 들어와서 그 양 떼를 아끼지 아니하며 30 또한 여러분 중에서도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따르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날 줄을 내가 아노라 31 그러므로 여러분이 일깨어 내가 삼 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 32 지금 내가 여러분을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에 부탁하노니 그 말씀이 여러분을 능히 든든히 세우사 거룩하게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

 

바울사도가 에베소 교회 장로들과 헤어지면서 부탁한 내용입니다. 하나님의 피로 값 주고 산 교회에서 동일하게 바울이 전한 복음을 들었는데 그 중에서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따르게 하는 자들이 나올 것이라고 합니다. 물론 외부에서도 이리가 올 것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사람들은 망치는 자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피로 값을 주고 산 교회는 주님과 그 은혜의 말씀이 든든히 세워 가십니다. 그러므로 복음 전하는 자들은 광야의 외치는 소리입니다. 복음의 분명한 나팔은 하나님의 피 곧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값 주고 사는 교회만이 참된 교회라고 증거하고 그 나팔 소리들은 조용히 사라져 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아무리 망쳐도 하나님은 자기 일을 십자가로 다 이루시고 그 이루심을 지금 이 역사 속에서 빈틈없이 펼쳐가고 계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