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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상 2:1~11 한나의 찬양   2013. 9. 1

 

지난주에 본 사무엘상 1장의 한나의 기도와 사무엘하 24장의 다윗의 기도를 비교하여 볼 필요가 있습니다. 한나와 브닌나의 갈등은 ‘있음’이 교만하여 ‘없음’을 공격하는 형태로 나타났습니다. 자신의 ‘있음’이 자신의 능력이 아니라면 겸손할 텐데 자신의 능력으로 자신의 의로 여기고 있기에 ‘없음’이 사랑받는 것을 견디지 못하여 공격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없음’이 결국 ‘있음’을 이기게 되고 그 결과는 오늘 본문의 찬양으로 연결이 됩니다. 이것이 사무엘서의 시작이라면 사무엘서의 마지막인 사무엘하 24장은 다윗 자신에게서 ‘있음’과 ‘없음’의 싸움이 일어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사무엘하 24:1절을 봅니다. “여호와께서 다시 이스라엘을 향하여 진노하사 그들을 치시려고 다윗을 격동 시키사 가서 이스라엘과 유다의 인구를 조사하라 하신지라” 다윗이 인구조사를 하게 된 것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향하여 진노하셨다고 합니다. 그 진노는 다윗의 말기에 아브라함에게 언약하신 땅을 다 차지하고 군사도 가장 많아진 때입니다. 이때 다윗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기 언약을 신실하게 이루어내신 것으로 여기지 않고 자기의 힘으로 이렇게 된 것인 양 교만해진 것입니다. 그래서 여호와께서 다윗을 격동시키심으로 인구조사를 하게 하였다고 합니다. 이렇게 보면 다윗이 인구조사를 한 것이 마치 하나님께서 하신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역대상 21:1절을 보면 사탄이 일어나 이스라엘을 대적하고 다윗을 충동하였다고 합니다. 이런 내용은 욥기서에서 사탄이 참소하고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으로 보시면 됩니다. 그리고 다윗이 사탄의 충동을 받아 인구조사를 한 것은 다윗의 마음에 그런 마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자기의 업적과 힘을 인구수로 과시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인구조사를 지시하자 요압장군은 하지 말라고 하면서 하나님께서 백성을 백배나 더하게 하실 것이라고 하였지만 다윗은 인구조사를 명령합니다. 약 10개월에 걸쳐 인구조사를 하였는데 칼을 들고 전쟁에 나갈 수 있는 자가 이스라엘이 팔십만 유다가 오십만 이었습니다.

 

이 보고를 받는 순간 자기 죄를 알고 자책하며 회개합니다. 이것이 무슨 죄가 되는지 알았습니다. 그러나 이 죄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나단 선지자를 통하여 세 가지 벌을 내리시는데 그 중에 하나를 택하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자비가 많으시기에 하나님의 손에 빠지기를 원한다고 하였을 때에 염병이 일어나 백성 칠 만 명이 죽었습니다. 이때 다윗이 기도하기를 내가 범죄 하였기에 나와 나의 아버지 집을 치시고 이 양 무리를 용서하여 달라고 하면서 아라우나의 타작마당에서 제사를 드림으로 재앙이 멈추었습니다. 사무엘서 시작은 한나의 없음과 브닌나의 있음이 대결을 벌이는데 끝부분에서는 다윗 안에서 있음과 없음의 싸움이 일어납니다.

 

오늘 우리도 늘 이 싸움이 일어납니다. 우리의 일상에서 어떤 싸움들이 일어납니까? 우리가 원래 아무 것도 없는 자들입니다. 우리는 다 땅의 티끌들입니다. 그 처음 자리를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생명에서 끊어져서 스스로 자신을 살려야 하기에 늘 있음의 삶을 추구하게 됩니다. 은혜로 사는 것이 아니라 자기 행위로 살아야 하기에 늘 있음을 추구하게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백성은 자기의 있음을 의지하지 못하게 하시기 위하여 그들의 있음을 털어버리십니다. 그 없음의 자리에서 무엇을 붙들게 하시는가 하면 우리의 영원한 뿔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만 의지하게 만들어 내십니다. 이러한 일들을 통하여 결국은 찬송하게 됩니다. 그래서 사무엘서 2장이 한나의 찬송이며 사무엘하 23장이 다윗의 찬송이 나옵니다.

 

사무엘상 1:1절입니다. “한나가 기도하여 이르되 내 마음이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내 뿔이 여호와로 말미암아 높아졌으며 내 입이 내 원수들을 향하여 크게 열렸으니 이는 내가 주의 구원으로 말미암아 기뻐함이니이다” 한나의 찬송이 시작됩니다. 여호와의 구원으로 인하여 자신의 뿔이 높아졌고 원수들을 향하여 입이 크게 열렸다고 합니다. 있음으로부터 공격받을 때에 없음인 한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기도하여 아이를 잉태하고 품에 안았을 때에 자신의 뿔이 높아졌고 원수에 대하여 큰 소리 칠 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이 아이를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임을 지난 주에 보았습니다.

 

그 근거가 바로 10절입니다. “여호와를 대적하는 자는 산산이 깨어질 것이라 하늘에서 우레로 그들을 치시리로다 여호와께서 땅 끝까지 심판을 내리시고 자기 왕에게 힘을 주시며 자기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의 뿔을 높이시리로다 하니라” 여호와를 대적하는 자가 사탄입니다. 사탄의 뜻이 대적자입니다. 그러므로 교만하여 높아진 모든 것들이 다 심판을 받을 것인데 여호와께서 자기 왕에게 힘을 주시며 자기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의 뿔을 높이신다고 하십니다. 기름 부음을 받은 왕 즉 메시아, 그리스도를 찬양하고 있습니다.

 

시편 2:1~12절입니다. “봉독” 여호와와 기름 부음 받은 자의 뿔을 하나님께서 높이시는데 세상은 이를 대적합니다. 이런 대적 자들을 철장으로 질그릇 부수듯이 부수어 버리실 것입니다. 이 시편의 성취를 사도행전 4:25~28절에서 봅니다. “25 또 주의 종 우리 조상 다윗의 입을 통하여 성령으로 말씀하시기를 어찌하여 열방이 분노하며 족속들이 허사를 경영하였는고 26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리들이 함께 모여 주와 그의 그리스도를 대적하도다 하신 이로소이다 27 과연 헤롯과 본디오 빌라도는 이방인과 이스라엘 백성과 합세하여 하나님께서 기름 부으신 거룩한 종 예수를 거슬러 28 하나님의 권능과 뜻대로 이루려고 예정하신 그것을 행하려고 이 성에 모였나이다”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자들과 그 나라들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멸망한 것입니다.

 

사무엘상 2:2~3절입니다. “2 여호와와 같이 거룩하신 이가 없으시니 이는 주 밖에 다른 이가 없고 우리 하나님 같은 반석도 없으심이니이다 3 심히 교만한 말을 다시 하지 말 것이며 오만한 말을 너희의 입에서 내지 말지어다 여호와는 지식의 하나님이시라 행동을 달아 보시느니라” 주 밖에 다른 이가 없습니다. 교만한 말을 하지 말라고 합니다. 교만은 항상 무언가 있다는 자들에게서 나옵니다. 아무 것도 없으면 교만할 것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습니다. 교만할 주제도 되지 못하면서 교만한 말과 오만한 말을 함부로 하고 다니는 자들이 우리 인생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지식의 하나님이시라고 그들의 행동을 저울에 달아보십니다. 우리 인생을 저울에 달면 어떻게 될까요?

 

시편 62:8~10절입니다. “8 백성들아 시시로 그를 의지하고 그의 앞에 마음을 토하라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 (셀라) 9 아, 슬프도다 사람은 입김이며 인생도 속임수이니 저울에 달면 그들은 입김보다 가벼우리로다 10 포악을 의지하지 말며 탈취한 것으로 허망하여지지 말며 재물이 늘어도 거기에 마음을 두지 말지어다” 성도가 시시로 의지하고 마음을 토하여야 할 분은 우리의 피난처이신 하나님입니다. 그러므로 포악하게 탈취하여 자기의 재물이 늘어나는 것에 마음을 두지 말라고 합니다. 아무리 그래도 그런 인생들을 저울에 달아보면 입김보다 가볍다는 말씀입니다. 인생 자체가 속임수인데 무슨 무게가 나가겠습니까?

 

다니엘 5:25~27절입니다. “25 기록된 글자는 이것이니 곧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이라 26 그 글을 해석하건대 메네는 하나님이 이미 왕의 나라의 시대를 세어서 그것을 끝나게 하셨다 함이요 27 데겔은 왕을 저울에 달아 보니 부족함이 보였다 함이요”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의 아들 벨사살이 자기 아버지가 예루살렘의 성전에서 약탈해 온 성전의 그릇으로 자기 잔치에서 술을 부어 마셨습니다. 이때 손가락이 나타나 벽에 글을 쓴 것이 이 말입니다. 왕의 나라 시대를 세어서 끝나게 하셨고 왕을 저울에 달아보니 부족하였다고 합니다. 그 당시 세계 최대의 제국인 바벨론의 왕도 저울에 달아보니 입김이라서 달아 지지가 않는 것입니다.

 

사무엘상 4~10절입니다. “4 용사의 활은 꺾이고 넘어진 자는 힘으로 띠를 띠도다 5 풍족하던 자들은 양식을 위하여 품을 팔고 주리던 자들은 다시 주리지 아니하도다 전에 임신하지 못하던 자는 일곱을 낳았고 많은 자녀를 둔 자는 쇠약하도다 6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스올에 내리게도 하시고 거기에서 올리기도 하시는도다 7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 8 가난한 자를 진토에서 일으키시며 빈궁한 자를 거름더미에서 올리사 귀족들과 함께 앉게 하시며 영광의 자리를 차지하게 하시는도다 땅의 기둥들은 여호와의 것이라 여호와께서 세계를 그것들 위에 세우셨도다 9 그가 그의 거룩한 자들의 발을 지키실 것이요 악인들을 흑암 중에서 잠잠하게 하시리니 힘으로는 이길 사람이 없음이로다 10 여호와를 대적하는 자는 산산이 깨어질 것이라 하늘에서 우레로 그들을 치시리로다 여호와께서 땅 끝까지 심판을 내리시고 자기 왕에게 힘을 주시며 자기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의 뿔을 높이시리로다 하니라”

 

모든 것들이 다 역전이 일어납니다. 이것은 여호와께서 죽이시기도 하시고 살리시기도 하시며 높이시기도 하시며 낮추시기도 하시기 때문입니다. 스올에 내리시기도 하시고 올리시기도 하시며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십니다. 그러므로 여호와를 대적하는 자는 산산이 깨어질 것입니다. 여호와를 대적하는 자란 앞에서도 보았습니다만 교만한 자들입니다. 교만이란 자기의 있음을 힘으로 삼고 자랑하는 자들입니다. 이런 자들이 영원한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깨어질 것입니다.

 

사무엘상 2장의 한나의 찬송과 사무엘하23장의 다윗의 찬송의 같은 부분을 옮겨보겠습니다. 여호와는 반석, 땅의 기둥들은 여호와의 것, 여호와께서 우레로 적을 무찌름, 여호와께서 겸손한자를 구원하시고 거만한 자를 낮추심, 여호와께서 그의 종들의 발을 지키심, 그를 의지하는 자를 힘으로 띠를 띠우심, 그의 기름부음 받은 자를 형통케 하심, 적으로부터 구원, 스올에 대한 언급입니다. 이런 찬송과 결부되는 또 하나의 찬송을 봅니다.

 

누가복음 1:46~55절입니다. “46 마리아가 이르되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 47 내 마음이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하였음은 48 그의 여종의 비천함을 돌보셨음이라 보라 이제 후로는 만세에 나를 복이 있다 일컬으리로다 49 능하신 이가 큰 일을 내게 행하셨으니 그 이름이 거룩하시며 50 긍휼하심이 두려워하는 자에게 대대로 이르는도다 51 그의 팔로 힘을 보이사 마음의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고 52 권세 있는 자를 그 위에서 내리치셨으며 비천한 자를 높이셨고 53 주리는 자를 좋은 것으로 배불리셨으며 부자는 빈 손으로 보내셨도다 54 그 종 이스라엘을 도우사 긍휼히 여기시고 기억하시되 55 우리 조상에게 말씀하신 것과 같이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영원히 하시리로다 하니라”

 

한나와 다윗과 마리아의 찬양에서 공통점을 보게 됩니다. 그러므로 이런 찬송은 거저 한 개인의 찬송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영으로 인하여 부른 찬송이기에 이들은 선지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이들을 통하여 계시를 보여주신 것입니다. 이러한 찬송의 공통점은 여호와의 언약이 그의 기름 부으심을 입은 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어 내실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십자가 에서 아무 것도 없이 달리신 예수, 저주 받아 죽은 그 예수를 주와 그리스도로 믿는 다는 것은 사람으로는 불가능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택하신 자들로 하여금 예수님을 믿게 하십니다. 그런데 여기에 해당되는 자들은 주께서 얼마나 마음을 낮추시는지 여러분들이 일상적인 삶에서 경험하게 되실 것입니다. 그렇게 낮추어지실 때에 이것이 십자가를 바라보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이며 사랑인줄 아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