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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상 15:9~24 나의 산당은? 2015. 7. 5

 

한결같은 사람이 좋습니까? 이랬다저랬다 하는 사람이 좋습니까? 모두가 한 결 같이 신실한 사람이 좋다고 할 것입니다. 그런데 나 자신은 한결같습니까? 신실(信實) 함이란 사람의 말에 열매가 있는 것입니다. 성실(誠實)도 말을 이루어 열매가 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사람은 식언(食言)하지 않는 사람이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만 식언(食言)하지 않으시고 신실하시며 성실하십니다.

 

민수기 23:19절입니다.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시고 인자가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치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치 않으시랴한글 개역에서는 식언치 않으시고거짓말하지 않으시고로 번역했습니다.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기에 식언치 아니하신다는 말씀을 반대로 인생은 인생이기에 식언을 한다는 말씀입니다. 신실하지 못한 이러한 모습을 아사를 통하여 보겠습니다.

 

본문 9~15절입니다. “9 이스라엘의 여로보암 왕 제이십년에 아사가 유다 왕이 되어 10 예루살렘에서 사십일 년 동안 다스리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마아가라 아비살롬의 딸이더라 11 아사가 그의 조상 다윗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여 12 남색하는 자를 그 땅에서 쫓아내고 그의 조상들이 지은 모든 우상을 없애고 13 또 그의 어머니 마아가가 혐오스러운 아세라 상을 만들었으므로 태후의 위를 폐하고 그 우상을 찍어 기드론 시냇가에서 불살랐으나 14 다만 산당은 없애지 아니하니라 그러나 아사의 마음이 일평생 여호와 앞에 온전하였으며 15 그가 그의 아버지가 성별한 것과 자기가 성별한 것을 여호와의 성전에 받들어 드렸으니 곧 은과 금과 그릇들이더라

 

엄청난 개혁을 합니다. 그래서 그의 조상 다윗과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였다고 합니다. 남색하는 자를 그 땅에서 쫓아내고 그의 조상들이 지은 모든 우상을 찍어 불살라버립니다. 심지어 태후인 마아가가 아세라 상을 만들었다고 폐위시켜 버리고 그 우상도 기드론 시냇가에서 불살라 버립니다. 일평생 온전하였으며 가가 그의 아버지가 성별한 것과 자기가 성별한 은과 금과 그릇들을 여호와의 성전에 받들어 드렸습니다. 그러나 다만 산당은 없애지 않았습니다. 도대체 산당이 무엇이기에 산당을 없애지 못한 것입니까?

 

예루살렘에 성전이 세워지기 까지는 여러 산당에서 여호와께 제사를 지냈습니다. 그런데 예루살렘에 성전이 세워지고 나서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산당에서 여전히 제사를 지낸 것입니다. 그런데 산당의 제사도 여호와 하나님께 드린다고 드린 제사였습니다. 성전이 세워지기 전에 사무엘도 솔로몬도 산당에서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전국에 산재하여 있는 산당들이 여호와의 제사와 바알과 아세라와 같은 우상제사와 혼합이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로는 여호와께 제사를 드린다고 하지만 그 속 내용은 가나안 원주민들과 주변 나라들의 우상숭배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이러한 산당을 다 제거한다는 것은 민간신앙을 송두리째 흔드는 것이기에 전 국민적 반발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러므로 개혁을 하여도 산당만은 남겨둔 것입니다. 그런데 엄청난 개혁을 한 아사가 산당을 남겨둔 것은 자신의 마음에도 산당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본문 16~22절입니다. “16 아사와 이스라엘의 왕 바아사 사이에 일생 동안 전쟁이 있으니라 17 이스라엘의 왕 바아사가 유다를 치러 올라와서 라마를 건축하여 사람을 유다 왕 아사와 왕래하지 못하게 하려 한지라 18 아사가 여호와의 성전 곳간과 왕궁 곳간에 남은 은금을 모두 가져다가 그 신하의 손에 넘겨 다메섹에 거주하고 있는 아람의 왕 헤시온의 손자 다브림몬의 아들 벤하닷에게 보내며 이르되 19 나와 당신 사이에 약조가 있고 내 아버지와 당신의 아버지 사이에도 있었느니라 내가 당신에게 은금 예물을 보냈으니 와서 이스라엘의 왕 바아사와 세운 약조를 깨뜨려서 그가 나를 떠나게 하라 하매 20 벤하닷이 아사 왕의 말을 듣고 그의 군대 지휘관들을 보내 이스라엘 성읍들을 치되 이욘과 단과 아벨벧마아가와 긴네렛 온 땅과 납달리 온 땅을 쳤더니 21 바아사가 듣고 라마를 건축하는 일을 중단하고 디르사에 거주하니라 22 이에 아사 왕이 온 유다에 명령을 내려 한 사람도 모면하지 못하게 하여 바아사가 라마를 건축하던 돌과 재목을 가져오게 하고 그것으로 베냐민의 게바와 미스바를 건축하였더라

 

아사와 북 이스라엘의 바아사 사이에 일평생 전쟁이 있었습니다. 북 이스라엘의 바아사 왕이 북쪽 이스라엘 사람들이 남 유다로 가는 길목을 막기 위하여 예루살렘 위의 라마라는 교통요충지에 자기들의 요새를 건설한 것입니다. 르호보암 왕 때에도 북 이스라엘의 여로보암이 벧엘과 단에 금 송아지를 섬기게 하자 남으로 내려온 자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아사 왕 때도 북 이스라엘의 사람들이 남쪽 아사 왕에게로 온 자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바아사가 라마에 요새를 건설한 것입니다. 이렇게 된 배경을 봅니다.

 

역대하 15:1~19절을 봅니다. “봉독하나님의 영이 임한 오뎃의 아들 아사랴가 아사에게 여호와의 말씀을 전합니다. 그러자 아사가 선지자 오뎃의 말을 듣고 마음을 강하게 하여 모든 우상들을 제거합니다. 그리고 여호와의 제단을 재건합니다. 북 이스라엘의 사람들 중에 이 소식을 들은 자들이 아사의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오는 자가 많았습니다. 그러므로 남으로 가는 길목을 막기 위하여 북 이스라엘의 바아사 왕이 라마에 성을 건축합니다. 이때 아사가 여호와의 도우심을 구한 것이 아니라 아람 왕에게 성전의 은금을 보내서 이스라엘을 공격하게 합니다. 그래서 북 이스라엘을 아람이 공격하니 바아사는 물러가게 되고 아사는 라마를 건설하려던 재료를 가지고 게바와 미스바를 건축합니다. 아사가 이렇게 한 것이 바로 아사의 마음에 있던 산당입니다.

 

역대하 16:7~10절입니다. “7 그 때에 선견자 하나니가 유다 왕 아사에게 나와서 그에게 이르되 왕이 아람 왕을 의지하고 왕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지 아니하였으므로 아람 왕의 군대가 왕의 손에서 벗어났나이다 8 구스 사람과 룹 사람의 군대가 크지 아니하며 말과 병거가 심히 많지 아니하더이까 그러나 왕이 여호와를 의지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왕의 손에 넘기셨나이다 9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들을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 이 일은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은즉 이 후부터는 왕에게 전쟁이 있으리이다 하매 10 아사가 노하여 선견자를 옥에 가두었으니 이는 그의 말에 크게 노하였음이며 그 때에 아사가 또 백성 중에서 몇 사람을 학대하였더라

 

여호와를 의지하지 않고 아람 왕을 의지한 것을 하나님의 선견자 하나니가 책망을 하자 아사가 노하여 선견자를 옥에 가두어 버립니다. 이 선견자의 편을 든 몇 사람도 함께 학대하였습니다. 왜 이렇게 되었습니까? 오뎃의 말을 듣고 용기를 내었던 아사 왕이 전쟁의 승리로 평안을 얻었습니다. 그 평안이 계속되자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을 잊어버리고 자신의 힘과 능력으로 된 줄 착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북 이스라엘이 공격하자 전에 여호와의 도우심으로 북 이스라엘보다 더 큰 대군을 물리쳤는데 그것도 잊어버리고 아람 왕에게 도움을 청한 것입니다. 구스 사람과 룹의 군대가 어느 정도의 규모인지 봅니다.

 

역대하 14:8~15절입니다. 봉독 58만대 100만의 싸움에서 여호와의 도우심을 구하여 이긴 아사 왕입니다. 이러한 경험을 한 아사이지만 자기 안에 산당은 온전히 제거되지 못하였습니다.

 

본문 23~24절입니다. “23 아사의 남은 사적과 모든 권세와 그가 행한 모든 일과 성읍을 건축한 일이 유다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그러나 그는 늘그막에 발에 병이 들었더라 24 아사가 그의 조상들과 함께 자매 그의 조상들과 함께 그의 조상 다윗의 성읍에 장사되고 그의 아들 여호사밧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아사 왕이 늘그막에 발에 병이 났습니다. 그런데 여호와께 묻지 않고 의원에서 물었습니다.

 

역대하 16:11~14절입니다. “11 아사의 처음부터 끝까지의 행적은 유다와 이스라엘 열왕기에 기록되니라 12 아사가 왕이 된 지 삼십구 년에 그의 발이 병들어 매우 위독했으나 병이 있을 때에 그가 여호와께 구하지 아니하고 의원들에게 구하였더라 13 아사가 왕위에 있은 지 사십일 년 후에 죽어 그의 조상들과 함께 누우매 14 다윗 성에 자기를 위하여 파 두었던 묘실에 무리가 장사하되 그의 시체를 법대로 만든 각양 향 재료를 가득히 채운 상에 두고 또 그것을 위하여 많이 분향하였더라

 

아사가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다윗과 같이 온전하였다고 하지만 다만 산당을 없애지 못하였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선지자 오뎃의 말을 듣고 용기를 내어 개혁을 하였지만 산당을 제거 못한 것은 아사 안에 산당이 들어있었다고 보아야 합니다. 그 산당이란 결국 나를 위한 산당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지 못하고 자기 머리를 의지한 것입니다. 그래서 바아사의 공격을 아람 왕의 힘을 빌려서 물리치고 자신의 발에 병이 들었을 때에 여호와께 구하지 않고 의원에게 구한 것입니다. 이 말씀을 가지고 병원에 가지 말고 하나님께 기도하라는 사람도 있습니다만 그런 이야기가 아닙니다. 아사 왕에게 들어있는 산당을 보자는 것입니다.

 

에스겔 16:13~16절입니다. “13 이와 같이 네가 금, 은으로 장식하고 가는 베와 모시와 수놓은 것을 입으며 또 고운 밀가루와 꿀과 기름을 먹음으로 극히 곱고 형통하여 왕후의 지위에 올랐느니라 14 네 화려함으로 말미암아 네 명성이 이방인 중에 퍼졌음은 내가 네게 입힌 영화로 네 화려함이 온전함이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15 그러나 네가 네 화려함을 믿고 네 명성을 가지고 행음하되 지나가는 모든 자와 더불어 음란을 많이 행하므로 네 몸이 그들의 것이 되도다 16 네가 네 의복을 가지고 너를 위하여 각색으로 산당을 꾸미고 거기에서 행음하였나니 이런 일은 전무후무하니라

 

에스겔 16장은 태어나면서부터 거리낌을 받아 탯줄도 자르지 못한 상태에서 버려진 계집아이를 예루살렘으로 봅니다. 이런 계집아이를 하나님께서 불쌍히 여기셔서 구원하시고 왕후로 만들어 놓았더니 하는 짓이라고는 우상숭배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것으로 자기를 위하여 각색으로 산당을 꾸미고 거기에서 행음하였다고 합니다. 이러한 일들이 이스라엘의 문제가 아니라 오늘 우리 안의 산당들입니다. 이 산당들을 아사가 없애지 못한 것처럼 우리 안에 산당들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 산당들은 얼마나 교묘한 방법으로 자리 잡고 있는지 도무지 무너뜨려지지가 않습니다. 이 산당은 끊임없는 자기 합리화로 나갑니다.


미가서 1:1~5절입니다. “1 유다의 왕들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 시대에 모레셋 사람 미가에게 임한 여호와의 말씀 곧 사마리아와 예루살렘에 관한 묵시라 2 백성들아 너희는 다 들을지어다 땅과 거기에 있는 모든 것들아 자세히 들을지어다 주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대하여 증언하시되 곧 주께서 성전에서 그리하실 것이니라 3 여호와께서 그의 처소에서 나오시고 강림하사 땅의 높은 곳을 밟으실 것이라 4 그 아래에서 산들이 녹고 골짜기들이 갈라지기를 불 앞의 밀초 같고 비탈로 쏟아지는 물 같을 것이니 5 이는 다 야곱의 허물로 말미암음이요 이스라엘 족속의 죄로 말미암음이라 야곱의 허물이 무엇이냐 사마리아가 아니냐 유다의 산당이 무엇이냐 예루살렘이 아니냐

 

야곱의 허물이 사마리아이며 유다의 산당이 예루살렘이라고 합니다. 즉 북 이스라엘의 수도 사마리아나 남 유다의 수도 예루살렘이 다 산당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밝아버리신다고 합니다. 그러면 불 앞의 밀초 같이 녹아져 내리며 비탈로 쏟아지는 물 같이 흘러내리고 말 것입니다. 이 말씀대로 북 이스라엘도 남 유다도 다 멸망하였습니다. 멸망의 이유는 그들 안에 있는 산당들 때문입니다. 오늘날 이 땅에 자기를 위한 욕망의 산당들이 가득합니다. 절이나 성당이나 교회당이나 온갖 세상의 보암직한 것들이 전부 산당들입니다. 이러한 산당에서 어떻게 스스로 벗어날 수가 있겠습니까?

 

민수기 23:19절입니다.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시고 인자가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치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치 않으시랴하나님께서 산당들을 파괴하여 버리심을 이스라엘 역사를 통하여 보여주셨습니다. 오늘날도 여호와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 안에 있는 산당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부수어 내십니다. 성도는 자기 안의 산당들이 무너지는 경험을 역사 속에서 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빈손 들고 십자가를 붙들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