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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상 18:41~45 엘리야의 기도 2015. 9. 13

 

지난주에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 850명과 엘리야 혼자의 기도 대결을 보았습니다. 850명이 하루 종일 기도하면서 몸을 칼로 찔러 피까지 흘리면서 부르짖었으나 응답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엘리야는 일분도 걸리지 않는 기도를 했습니다. 그 기도의 목적은 분명했습니다. 그 기도의 내용을 다시 봅니다.

 

왕상 18:36~37절입니다. “36 저녁 소제 드릴 때에 이르러 선지자 엘리야가 나아가서 말하되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이스라엘 중에서 하나님이신 것과 내가 주의 종인 것과 내가 주의 말씀대로 이 모든 일을 행하는 것을 오늘 알게 하옵소서 37 여호와여 내게 응답하옵소서 내게 응답하옵소서 이 백성에게 주 여호와는 하나님이신 것과 주는 그들의 마음을 되돌이키심을 알게 하옵소서 하매 38 이에 여호와의 불이 내려서 번제물과 나무와 돌과 흙을 태우고 또 도랑의 물을 핥은지라

 

엘리야의 기도는 자신의 사사로운 목적을 위한 것이 없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신 것과 엘리야가 주의 종인 것과 엘리야의 주의 말씀대로이 모든 일을 행하는 것을 알게 하여 달라고 합니다. 엘리야가 불로 응답하는 신이 참 신이라는 이 일도 여호와의 말씀대로 행하는 것입니다. 자기 임의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시는 것은 그들의 마음을 돌이키시고자 하시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하여 기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기도조차 자신의 기도가 아닙니다.

 

기도에 대하여 더 알고 싶으신 분은 2009년부터 약 2년간 수요일 저녁에 설교한 내용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기도라는 주제로 설교한 내용입니다. 그러면 성경에서 기도하고 간구하다는 그런 내용을 다 찾아보았습니다. 그 내용을 보면 우리가 얼마나 엉터리 기도를 하는지를 알게 되고 동시에 진짜 기도할 것이 무엇인지도 알게 될 것입니다. 그 중에 엘리야의 기도도 있습니다. 그때 인용한 내용을 다시 전합니다.

 

‘1907년 어게인 부산이라는 집회가 부산에서 있었습니다. 부산지역의 교회가 연합하여 부흥을 위하여 기도한 것입니다. 그 기도회를 인도하는 한 사람이 부산의 모든 사찰이 무너지게 해 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하지 못하여 부산의 어느 절에는 30만 명의 신도가 되었다고 하면서 그런 절들이 다 무너지도록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러자 수 천 명의 사람들이 합심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직도 부산의 절들은 건재합니다. 그리고 이 모임에 이명박 장로가 영상 축하 메시지를 보냈다고 불교계에서 말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가 절간이 되어버렸다면 어느 곳이 무너지겠습니까? 절이 무너지도록 기도한 것이 응답이 되려면 절이야 원래 그런 곳이니 하나님께서 내버려 두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교회는 그냥 두시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가 무너지지는 않습니다. 참된 교회라서 무너지지 않는 것이 아니라 요한계시록 22:11절 말씀대로 되기 때문입니다. “불의를 행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행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하게 하라주님 오시는 날까지 이렇게 가는 것입니다.

 

기도해서 불로 대적이 사라지게 되기를 원한 것은 예수님의 제자들도 그러하였습니다. 누가복음 9:51-56절입니다. “51 예수께서 승천하실 기약이 차가매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기로 굳게 결심하시고 52 사자들을 앞서 보내시매 그들이 가서 예수를 위하여 준비하려고 사마리아인의 한 마을에 들어갔더니 53 예수께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시기 때문에 그들이 받아들이지 아니 하는지라 54 제자 야고보와 요한이 이를 보고 이르되 주여 우리가 불을 명하여 하늘로부터 내려 저들을 멸하라 하기를 원하시나이까 55 예수께서 돌아보시며 꾸짖으시고2) 56 함께 다른 마을로 가시니라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는데 사마리아 사람들이 예수님을 영접하지 아니하는 것을 보고 요한이 하늘로서 불을 내려 다 멸하게 하기를 원하시느냐고 묻습니다. 예수님이 책망하십니다. 그 책망의 말씀을 다른 사본에서는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이르시되 너희는 무슨 정신으로 말하는지 모르는구나 인자는 사람의 생명을 멸망시키러 온 것이 아니요 구원하러 왔노라 하시고' 그래서 요한의 별명이 보아너게입니다. 우레의 아들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도 이런 모습이 다 있지요!

 

그러면 엘리야의 기도와 불로 응답하는 내용은 무엇인지 찬찬히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기도하면서 사찰이 무너지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그 사찰이 바로 오늘날 교회의 모습이 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바알을 섬기는 자들의 기도의 행태를 보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오늘날 이 땅의 교회나 기도원이라는 곳에서 행하여지는 기도회와 별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물론 말로는 여호와 하나님을 부르고 예수님 성령님을 다 부릅니다. 놀랍게도 언약대로 일하시는 하나님, 살아계신 하나님을 다 부릅니다. 그런데 바알을 위하여 비는 기도와 어떻게 닮아있는지 보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5년 전에 엘리야의 기도에서 본 내용입니다. 기도를 마치 나의 정성을 바치면 응답받는 것처럼 하는 그런 기도가 바알과 아세라에게 기도하는 것과 같다는 말씀입니다. 이런 기도에 비하여 엘리야의 기도는 하나님께서 알려주신 내용을 그 언약을 따라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불로 응답하여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는 선지자들을 다 죽였습니다. 그리고 이제 비가 오도록 기도합니다.

 

오늘 본문 41절입니다. 엘리야가 아합에게 이르되 올라가서 먹고 마시소서 큰 비 소리가 있나이다아직 하늘에 구름 한 조각 없는데 큰 비 소리가 있다고 합니다. 그러면 엘리야는 비가 오도록 기도하지 않아도 비가 올 것입니다. 그런데 왜 비가 오도록 일곱 번이나 기도하는 것입니까? 우리는 엘리야의 이 기도를 보면서 하늘에서 불로 응답하게 하시는 하나님께 기도하여 앞에서 인용한 대로 절간이 사라지도록 기도하자고 하거나 비가 오도록 간절히 기도하자고 합니다.

 

저도 엘리야의 기도에 대한 설교를 많이 들어보았습니다. 엘리야의 기도 자세가 땅에 꿇어 엎드려 그의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었다고 합니다. 이런 기도의 자세가 나오려면 금식해야 한다고 합니다. 얼마나 금식을 했으면 자기 무릎 사이에 머리가 들어가겠느냐고 하면서 금식하며 간절히 부르짖으면 기도에 응답하여 주신다고 합니다. 대부분의 기도를 말하는 자들이 이렇게 말합니다. 간절히 금식하면서 끈질기게 기도하여 응답을 받자고 합니다. 그런데 하늘에서 불이 내려오는 것은 일분도 걸리지 않았는데 왜 비가 오도록 기도하는 것은 이렇게 일곱 번이나 기도하는 것입니까?

 

지금 엘리야가 하는 일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하실 일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늘에서 불로 응답하기 전에 이미 비가 온다는 말씀을 엘리야는 들었습니다. 왕상 18:1절입니다. 많은 날이 지나고 제 삼년에 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너는 가서 아합에게 보이라 내가 비를 지면에 내리리라비를 내려 주신다는 말씀을 듣고 아합을 만납니다. 그리고 오늘 말씀에도 큰 비의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곱 번이나 무릎을 꿇고 기도한 것은 비를 누가 내리는지 보여주는 것입니다.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는 자들의 기도를 듣고 불로 응답하거나 비를 내리는 것이 아니라 엘리야의 하나님 곧 여호와의 하나님이심을 백성들에게 알려주는 것입니다.

 

본문 42~45절입니다. “42 아합이 먹고 마시러 올라가니라 엘리야가 갈멜 산꼭대기로 올라가서 땅에 꿇어 엎드려 그의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고 43 그의 사환에게 이르되 올라가 바다쪽을 바라보라 그가 올라가 바라보고 말하되 아무것도 없나이다 이르되 일곱 번까지 다시 가라 44 일곱 번째 이르러서는 그가 말하되 바다에서 사람의 손 만한 작은 구름이 일어나나이다 이르되 올라가 아합에게 말하기를 비에 막히지 아니하도록 마차를 갖추고 내려가소서 하라 하니라 46 여호와의 능력이 엘리야에게 임하매 그가 허리를 동이고 이스르엘로 들어가는 곳까지 아합 앞에서 달려갔더라

 

일곱 번을 기도하였습니다. 일곱이란 성경에서 언제나 완전함을 말합니다. 그러면 일곱 번을 기도하였다는 것은 엘리야가 완전하게 기도하였기에 비가 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다는 말씀입니다. 아합을 만나기 전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비를 주신다는 그 약속을 믿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엘리야의 기도를 야고보서에서 어떻게 증언하는지 보겠습니다. 엘리야의 기도만이 아니라 기도가 무엇인지 말씀하고 있습니다.

 

야고보서 5:7~절입니다. “7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께서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8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건하게 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 9 형제들아 서로 원망하지 말라 그리하여야 심판을 면하리라 보라 심판주가 문 밖에 서 계시니라 10 형제들아 주의 이름으로 말한 선지자들을 고난과 오래 참음의 본으로 삼으라 11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이시니라기도는 인내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기다리는 것이 기도입니다.

 

이어지는 12절입니다. 내 형제들아 무엇보다도 맹세하지 말지니 하늘로나 땅으로나 아무 다른 것으로도 맹세하지 말고 오직 너희가 그렇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렇다 하고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라 하여 정죄 받음을 면하라기도할 때에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맹세하는지 모릅니다. 서원을 하면서 기도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맹세를 하지 말라고 합니다. 이 말씀은 마태복음 5장에서 살펴본 내용입니다. 우리가 머리카락 하나 희고 검게도 못하는 자들이 무슨 맹세를 하면서 기도를 하느냐는 책망입니다.

 

13~16절입니다. “13 너희 중에 고난당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찬송할지니라 14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그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그를 위하여 기도할지니라 15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받으리라 16 그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백하며 병이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

 

기도는 죄와 연관이 있습니다. 기름을 바르고 기도하라고 하니 부산에서 어떤 목사가 기름을 바르고 기도하였다고 합니다. 기름을 바른다는 것은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증거 하면서 죄를 서로 고백하며 병이 낫기를 기도하라고 합니다. 의인의 간구는 역사 하는 힘이 크다고 합니다. 그러면 이런 병이 도대체 무슨 병일까요? 왜 교회의 장로를 청하는 것입니까? 단지 육체적인 질병만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죄에서 돌이키는 것입니다. 기도의 목적이 죄에서 돌이키는 것입니다.

 

17~20절입니다. “17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그가 비가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 년 육 개월 동안 땅에 비가 오지 아니하고 18 다시 기도하니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맺었느니라 19 내 형제들아 너희 중에 미혹되어 진리를 떠난 자를 누가 돌아서게 하면 20 너희가 알 것은 죄인을 미혹된 길에서 돌아서게 하는 자가 그의 영혼을 사망에서 구원할 것이며 허다한 죄를 덮을 것임이라

 

엘리야의 기도의 결론입니다. 엘리야가 우리와 성정(性情)이 같은 사람이지만 비가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년 육 개월 동안 땅에 비가 오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언약의 땅에서 언약을 배반하면 비가 오지 않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언약을 따라 기도하니 비가 오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시 기도하니 비가 왔다는 것은 엘리야의 기도는 하나님의 언약이 어떻게 이루어지를 보여주는 계시 전달의 기도입니다.

 

그러므로 기도에 대한 결론이 19~20절입니다. 너희 중에 미혹되어 진리를 떠난 자를 돌아서게 하는 것입니다. 엘리야가 기도한 것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돌이키시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렇게 죄의 미혹된 길에서 돌아서게 하는 자가 그의 영혼을 사망에서 구원할 것이며 허다한 죄를 덮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엘리야의 기도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죄인을 돌이키게 하심을 알게 하는 기도입니다. 오늘도 성령님과 예수님은 자기 백성을 위하여 쉬지 않고 기도하심으로 우리가 주께로 돌이킬 수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