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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상 19:19~21 엘리사를 부르심 2015. 10. 18

 

지난 시간에 엘리야니즘에 대하여 살펴보았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다 하나님을 배반하고 바알과 아세를 섬기지만 자기 혼자 여호와 하나님을 섬긴다고 생각한 것이 엘리야니즘입니다. 자기만이 여호와를 향하여 열심히 일하고 있는데 하나님께서 끝까지 도와주시지 않으시자 화가 났습니다. 하늘에서 불이 내려 제단의 제물을 불태우듯이 세상을 그렇게 심판하지 않는 모습을 보고서 차라리 죽는 것이 낫겠다고 하였습니다.

 

마치 요나와 같은 모습입니다. 니느웨 성이 무너지지 않는 분풀이를 박 넝쿨이 시듦을 인하여 죽기까지 정당하다고 하는 요나입니다. 자기가 심지도 않고 기르지도 않은 박 넝쿨이 그늘이 되어줄 때에 좋다고 하다가 말라 죽자 분노하는 요나나 엘리야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에게도 소망이 있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이런 생각들을 하나님은 무너뜨리십니다. 그렇게 무너지게 하지 않고 천국에 데려다 놓으면 그곳에서도 자기 주장할 인간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이 역사 속에서 자기 것이라는 것이 하나도 남김없이 다 털려지게 됩니다. 이런 모습이 예수님을 주로 믿는 자들에게 필연적으로 일어납니다. 예수님이 만유의 주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고린도후서 10:4~6절입니다. “4 우리의 싸우는 무기는 육신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어떤 견고한 진도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모든 이론을 무너뜨리며 5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니 6 너희의 복종이 온전하게 될 때에 모든 복종하지 않는 것을 벌하려고 준비하는 중에 있노라이러한 복종이 성도에게는 이 역사 속에서 일어납니다. 그래서 모든 택하신 자들의 복종이 온전하게 될 때에 모든 복종하지 않는 것을 벌하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오늘 우리의 몸과 마음과 생각들이 정말 주 예수 그리스도께 복종이 되었습니까?

 

우선 지난번에 보았던 왕상 19:14~18절을 다시 봅니다. 봉독 엘리야 자기만 남았다고 하자 하나님은 남은 자 칠천을 남겨두셨다고 하시면서 이방 나라인 다메섹의 하사엘에게 기름을 붓고 북 이스라엘의 예후에게 기름을 붓고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으라고 합니다. 엘리야가 없어도 하나님은 이방 나라의 왕을 통해서 하나님의 일을 다 하실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하사엘의 칼을 피한 자는 예후가 죽일 것이며 예후의 칼을 피하는 자는 엘리사가 죽일 것이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대로 오늘 본문은 엘리사가 부르심을 입는 장면입니다.

 

오늘 본문을 봅니다. “19 엘리야가 거기서 떠나 사밧의 아들 엘리사를 만나니 그가 열두 겨릿소를 앞세우고 밭을 가는데 자기는 열두째 겨릿소와 함께 있더라 엘리야가 그리로 건너가서 겉옷을 그의 위에 던졌더니 20 그가 소를 버리고 엘리야에게로 달려가서 이르되 청하건대 나를 내 부모와 입 맞추게 하소서 그리한 후에 내가 당신을 따르리이다 엘리야가 그에게 이르되 돌아가라 내가 네게 어떻게 행하였느냐 하니라 21 엘리사가 그를 떠나 돌아가서 한 겨릿소를 가져다가 잡고 소의 기구를 불살라 그 고기를 삶아 백성에게 주어 먹게 하고 일어나 엘리야를 따르며 수종 들었더라

 

여호와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세 사람에게 기름을 부으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처럼 엘리야는 엘리사에게 기름을 붓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겉옷을 엘리사 위에 던집니다. 그리고 하사엘은 엘리사가 그의 할 일을 대언합니다. 예후는 엘리사의 제자가 기름을 붓습니다. 그러므로 기름 부으라는 말씀은 꼭 기름을 부어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을 이루시겠다는 하나님의 뜻의 전달입니다. 오늘날도 기름부음 받은 종이라고 할 때에 특별히 목사를 지칭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목사도 노회에서 안수를 하지 기름을 바르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왜 기름부음을 받았다고 하는 것입니까? 주님께서 부르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목사만 부름을 받는 것이 아니라 모든 성도(聖徒)는 다 부르심을 받아야 합니다. 주님으로부터 부르심이 없이 교회당을 다니는 교인은 될 수 있지만 구별된 성도는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부름을 받은 증거가 무엇입니까?

 

우선 엘리사를 봅니다. 오늘 본문 19~20절에서 엘리사가 열두 겨릿소를 앞세우고 밭을 갈고 있습니다. ‘겨리는 두 마리의 소가 끄는 쟁기를 겨리라고 합니다. 그러면 열두 겨리이니 소가 스물네 마리입니다. 소 두 마리에 한 쟁기를 걸고 밭을 갈기에 사람이 밭을 가는 사람이 열두 명입니다. 이 소들이 다 엘리사의 집안의 소유라면 상당한 부자입니다. 다른 일꾼들을 앞장세우고 자신은 마지막인 열두 번째 겨리로 밭을 갈고 있는데 엘리야가 자기 겉옷을 엘리사에게 던집니다. 밭 갈다가 난데없이 엘리야의 겉옷이 덮쳐진 것입니다. 그러자 엘리사는 바로 소를 버려두고 엘리야에게 달려옵니다. 그리고는 자신이 부모와 작별하고 오겠다고 합니다.

 

겉옷이 자신에게 덮쳐진 것인데 소를 버려두고 엘리야를 따르겠다고 한 것입니다. 불가항력적인 부르심입니다. 그런데 엘리야의 말이 이상합니다. 돌아가라 내게 네게 어떻게 행하였느냐고 합니다. 이것은 그런 태도는 나를 따를 수 없다는 말인지 아니면 돌아가서 부모에게 작별하고 오라고 하는지 그 표현이 모호합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해석은 부모에게 작별하고 오라는 것으로 봅니다. 그 이유는 소 모는 기구로 소를 삶아 백성들에게 나누어주고 엘리야를 따라나섰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더 이상 돌아갈 수조차 없는 완전한 단절을 하고 엘리야를 따라 나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부르심의 모습입니다. 이러한 부르심을 찾아봅니다.

 

누가복음 9:61~62절입니다. “61 또 다른 사람이 이르되 주여 내가 주를 따르겠나이다마는 나로 먼저 내 가족을 작별하게 허락하소서 62 예수께서 이르시되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하시니라마태복음 8:18~22절과 평행구절입니다. 그런데 마태복음과 다른 말씀이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예수님을 스스로 따르고자 나서는 자들에 대하여 예수님은 그들의 태도를 분명히 하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엘리야가 엘리사를 부른 것은 엘리사의 선택이 아니라 일방적인 부르심입니다. 그러므로 엘리사가 쟁기를 잡고서 뒤를 돌아본 것이 아니라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바로 소를 버려두고 엘리야에게 나아왔으며 또한 소를 잡고 쟁기를 화목으로 삼아 소를 삶아서 백성에게 나누어줌으로 다시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과연 주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았습니까? 부르심을 받았다면 무엇을 버렸습니까? 우리가 주님의 부르심을 받고 주님을 믿고 따르는 것은 세상의 그 어떤 것들을 얻고자 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세상의 모든 것들을 다 버려두고 따르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지금까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무엇을 버렸습니까? 버리기는커녕 더욱 세상의 썩어질 것들을 더 달라고 하고 그런 것들을 비축하며 늘려가는 재미로 살지는 않았습니까? 그렇게 살고 있는데도 아무 일 없이 형통하십니까? 사생자 일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 9:23~25절입니다. “23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24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25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를 잃든지 빼앗기든지 하면 무엇이 유익하리요예수님을 믿고 따른다는 것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고 합니다. 십자가란 죽음입니다. 날마다 자신이 죽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아 예수님을 믿고 따라가는 길입니다. 이런 부르심이 과연 오늘 우리에게 있습니까?

 

빌립보서 3장을 통하여 부르심을 입은 자의 모습을 보겠습니다. 1~3절입니다. “1 끝으로 나의 형제들아 주 안에서 기뻐하라 너희에게 같은 말을 쓰는 것이 내게는 수고로움이 없고 너희에게는 안전하니라 2 개들을 삼가고 행악하는 자들을 삼가고 몸을 상해하는 일을 삼가라 3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파라개들을 삼가라고 합니다. 개들이 어떤 자들입니까? 육체의 모양을 내려고 하는 자들입니다. 이 당시에 할례를 받은 자들이 예수님을 믿는 이방인들에게 할례를 행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참된 할례는 그런 몸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고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않는 우리가 곧 참된 할례파라고 하는 것입니다.

 

4~6절입니다. “4 그러나 나도 육체를 신뢰할 만하며 만일 누구든지 다른 이가 육체를 신뢰할 것이 있는 줄로 생각하면 나는 더욱 그러하리니 5 나는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6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거듭나지 못한 상태 곧 부르심을 입지 않았을 때는 자신도 어떤 바리새인들보다 못하지 않는 의로움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주님의 부르심을 받고 보니 그 모든 것이 다 해로운 것이며 배설물이라고 고백합니다.

 

7~9절입니다. “7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8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9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

 

우리가 예수님을 믿기 전에 좋다고 여긴 것들이 어떤 것들입니까? 사람들 마다 각자의 진리관이 있습니다. 선함과 아름다움의 기준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렇게 추구하던 것들이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해로운 것이며 배설물로 여겨졌습니까? 이 세상이 성공이라고 하고 복이라고 하는 그런 평가들이 똥으로 보이십니까? 아직도 그런 것들만 좋게 보인다면 정말 우리가 부름을 받았는지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주님의 부르심을 받았다면 부르심을 받기 이전의 가치관이 전복이 일어나야 합니다. 그뿐 아니라 반드시 새롭게 추구하는 방향이 나옵니다.

 

10~14절입니다. “10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11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12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13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금요일 성경공부 시간에도 나온 말씀입니다. 내가 주님을 붙잡은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나를 붙잡은 것입니다. 이제 내가 나의 목표를 세우고 가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갑니다. 그것이 부르심의 상입니다. 부르심의 상이라는 것이 하늘의 상급의 차등이 있다는 그런 말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상이라는 말씀입니다. 십자가 지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 그분이 우리의 상입니다. 그러므로 그 부활에 이르기 위하여 그 고난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그 죽음에 참여되는 자가 부활에 참여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입니다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이란 땅의 것과 대비하여 봅니다.

 

15~21절입니다. “15 그러므로 누구든지 우리 온전히 이룬 자들은 이렇게 생각할지니 만일 어떤 일에 너희가 달리 생각하면 하나님이 이것도 너희에게 나타내시리라 16 오직 우리가 어디까지 이르렀든지 그대로 행할 것이라 17 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받으라 그리고 너희가 우리를 본받은 것처럼 그와 같이 행하는 자들을 눈여겨보라 18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19 그들의 마침은 멸망이요 그들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그들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 20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21 그는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시리라

 

주의 부르심을 입은 자들은 반드시 세상과 단절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어서 세상의 성공이나 번영을 얻는다는 이야기 한다면 이들이 바로 십자가의 원수들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 주의 부르심을 입은 자들은 시민권이 하늘에 있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가 만물을 복종하게 할 수 있는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실 것입니다. 부르심을 입은 성도라면 반드시 세상과 단절이 일어나면서 그 영광의 날을 사모하면서 살아가게 됩니다.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