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성설교 바로듣기]  [음성설교 다운받기]

열왕기상 21:1~28 죽이고 빼앗았느냐? 2015. 11. 15

 

지난주에 나봇의 포도원에 대한 말씀을 성경의 토지 제도와 연결하여 근대의 세계 역사와 대한민국의 토지제도 까지 살펴보았습니다. 오늘은 나봇의 포도원 사건 전체의 본문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무엇을 계시하시는지 보려고 합니다.

 

본문 1~4절입니다. “1 그 후에 이 일이 있으니라 이스르엘 사람 나봇에게 이스르엘에 포도원이 있어 사마리아의 왕 아합의 왕궁에서 가깝더니 2 아합이 나봇에게 말하여 이르되 네 포도원이 내 왕궁 곁에 가까이 있으니 내게 주어 채소 밭을 삼게 하라 내가 그 대신에 그보다 더 아름다운 포도원을 네게 줄 것이요 만일 네가 좋게 여기면 그 값을 돈으로 네게 주리라 3 나봇이 아합에게 말하되 내 조상의 유산을 왕에게 주기를 여호와께서 금하실지로다 하니 4 이스르엘 사람 나봇이 아합에게 대답하여 이르기를 내 조상의 유산을 왕께 줄 수 없다 하므로 아합이 근심하고 답답하여 왕궁으로 돌아와 침상에 누워 얼굴을 돌리고 식사를 아니하니

 

지난주에 읽은 본문입니다만 아합이 근심다고 답답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자신의 욕망이 하나님의 말씀에 의하여 막히니 근심하고 답답한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근심과 답답함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으로 근심하고 답답합니까? 나의 뜻이 이루어지지 않음에 근심하고 답답하십니까? 아마 거의 다 후자일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선지자들은 나와 같은 근심과 고통이 없는지 사람들에게 묻습니다.

 

예레미야 애가 1:12~14절입니다. “12 지나가는 모든 사람들이여 너희에게는 관계가 없는가 나의 고통과 같은 고통이 있는가 볼지어다 여호와께서 그의 진노하신 날에 나를 괴롭게 하신 것이로다 13 높은 곳에서 나의 골수에 불을 보내어 이기게 하시고 내 발 앞에 그물을 치사 나로 물러가게 하셨음이여 종일토록 나를 피곤하게 하여 황폐하게 하셨도다 14 내 죄악의 멍에를 그의 손으로 묶고 얽어 내 목에 올리사 내 힘을 피곤하게 하셨음이여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자의 손에 주께서 나를 넘기셨도다

 

예루살렘의 멸망을 목격하고서 탄식하는 예레미야의 고통입니다. 이러한 고통들이 자신을 보며 교회를 보면서 없습니까? 오늘 오전에 예수님은 예루살렘을 보시고 탄식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근심과 답답함은 나의 욕망을 이루지 못한 것이 아닙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분명히 막고 있지만 자기 욕망을 어떻게 해결합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이용하여 그 문제를 해결합니다. 겉으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처럼 말하지만 그 속에는 자기의 욕망을 위하여 하나님을 말씀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그 모습을 봅니다.

 

본문 5~10절입니다. “5 그의 아내 이세벨이 그에게 나아와 이르되 왕의 마음에 무엇을 근심하여 식사를 아니하나이까 6 왕이 그에게 이르되 내가 이스르엘 사람 나봇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네 포도원을 내게 주되 돈으로 바꾸거나 만일 네가 좋아하면 내가 그 대신에 포도원을 네게 주리라 한즉 그가 대답하기를 내가 내 포도원을 네게 주지 아니하겠노라 하기 때문이로다 7 그의 아내 이세벨이 그에게 이르되 왕이 지금 이스라엘 나라를 다스리시나이까 일어나 식사를 하시고 마음을 즐겁게 하소서 내가 이스르엘 사람 나봇의 포도원을 왕께 드리리이다 하고 8 아합의 이름으로 편지들을 쓰고 그 인을 치고 봉하여 그의 성읍에서 나봇과 함께 사는 장로와 귀족들에게 보내니 9 그 편지 사연에 이르기를 금식을 선포하고 나봇을 백성 가운데에 높이 앉힌 후에 10 불량자 두 사람을 그의 앞에 마주 앉히고 그에게 대하여 증거 하기를 네가 하나님과 왕을 저주하였다 하게하고 곧 그를 끌고 나가서 돌로 쳐 죽이라 하였더라

 

왕비 이세벨이 아합 왕에게 왜 근심하며 식사를 안 하느냐고 물으니 사실대로 말합니다. 그러자 이세벨이 당신이 이스라엘의 왕인데 그 모양이냐고 하면서 이세벨이 왕의 이름으로 편지를 쓰서 나봇이 사는 성읍에 장로들에게 편지를 보냅니다. 그 성읍에 금식을 선포하고 나봇을 높이 앉힌 후에 불량자 두 사람을 세워 나봇이 하나님과 왕을 저주하였다는 거짓 증인을 세워 돌로 쳐 죽이게 합니다. 종교적인 의식 절차를 거치지만 그 안에는 모함이 들어있습니다. 이런 모습들이 이스라엘에 일어나고 있다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을 버린 것입니다. 이런 세상에서 여호와의 말씀을 지키려고 한 나봇과 같은 자가 순교를 당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사용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봅니다. 이세벨도 이러한 하나님의 말씀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 말씀으로 나봇을 죽입니다.

 

레위기 24:13~16절입니다. “10 이스라엘 자손 중에 그의 어머니가 이스라엘 여인이요 그의 아버지는 애굽 사람인 어떤 사람이 나가서 한 이스라엘 사람과 진영 중에서 싸우다가 11 그 이스라엘 여인의 아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모독하며 저주하므로 무리가 끌고 모세에게로 가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슬로밋이요 단 지파 디브리의 딸이었더라 12 그들이 그를 가두고 여호와의 명령을 기다리더니 13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14 그 저주한 사람을 진영 밖으로 끌어내어 그것을 들은 모든 사람이 그들의 손을 그의 머리에 얹게 하고 온 회중이 돌로 그를 칠지니라 15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누구든지 그의 하나님을 저주하면 죄를 담당할 것이요 16 여호와의 이름을 모독하면 그를 반드시 죽일지니 온 회중이 돌로 그를 칠 것이니라 거류민이든지 본토인이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모독하면 그를 죽일지니라여호와의 이름을 저주하면 돌로 쳐 죽이는 이런 법을 이용하여 이세벨은 나봇을 죽인 것입니다.

 

본문 11~16절입니다. “11 그의 성읍 사람 곧 그의 성읍에 사는 장로와 귀족들이 이세벨의 지시 곧 그가 자기들에게 보낸 편지에 쓴 대로 하여 12 금식을 선포하고 나봇을 백성 가운데 높이 앉히매 13 때에 불량자 두 사람이 들어와 그의 앞에 앉고 백성 앞에서 나봇에게 대하여 증언을 하여 이르기를 나봇이 하나님과 왕을 저주하였다 하매 무리가 그를 성읍 밖으로 끌고 나가서 돌로 쳐 죽이고 14 이세벨에게 통보하기를 나봇이 돌에 맞아 죽었나이다 하니 15 이세벨이 나봇이 돌에 맞아 죽었다 함을 듣고 이세벨이 아합에게 이르되 일어나 그 이스르엘 사람 나봇이 돈으로 바꾸어 주기를 싫어하던 나봇의 포도원을 차지하소서 나봇이 살아 있지 아니하고 죽었나이다 16 아합은 나봇이 죽었다 함을 듣고 곧 일어나 이스르엘 사람 나봇의 포도원을 차지하러 그리로 내려갔더라이세벨이 나봇을 죽이고 아합에게 그 포도원을 차지하라고 하자 나봇의 포도원으로 갑니다.

 

본문 17~19절입니다. “ 17 여호와의 말씀이 디셉 사람 엘리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18 너는 일어나 내려가서 사마리아에 있는 이스라엘의 아합 왕을 만나라 그가 나봇의 포도원을 차지하러 그리로 내려갔나니 19 너는 그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네가 죽이고 또 빼앗았느냐고 하셨다 하고 또 그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개들이 나봇의 피를 핥은 곳에서 개들이 네 피 곧 네 몸의 피도 핥으리라 하였다 하라엘리야 선지자가 여호와의 말씀을 아합에게 전합니다. 네가 죽이고 빼앗았느냐고 하시면서 개들이 나봇의 피를 핥은 곳에서 네 피도 핥으리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이 말씀에 대한 아합의 태도가 어떻습니까?

 

20절 상반 절입니다. 아합이 엘리야에게 이르되 내 대적자여 네가 나를 찾았느냐아합이 엘리야를 향하여 자신의 대적자라고 합니다. 이럴 때 쓰는 말이 적반하장(賊反荷杖)이라는 말을 써야합니다. 도둑이 오히려 매를 든다는 말입니다. 아합이 엘리야를 대적하는 것이며 엘리야를 대적하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히려 아합은 엘리야를 향하여 자신을 대적하는 자라고 합니다. 이때 엘리야가 답합니다.

 

20절 하반 절에서 36절입니다. 대답하되 내가 찾았노라 네가 네 자신을 팔아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으므로 21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재앙을 네게 내려 너를 쓸어버리되 네게 속한 남자는 이스라엘 가운데에 매인 자나 놓인 자를 다 멸할 것이요 22 또 네 집이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집처럼 되게 하고 아히야의 아들 바아사의 집처럼 되게 하리니 이는 네가 나를 노하게 하고 이스라엘이 범죄 하게 한 까닭이니라 하셨고 23 이세벨에게 대하여도 여호와께서 말씀하여 이르시되 개들이 이스르엘 성읍 곁에서 이세벨을 먹을지라 24 아합에게 속한 자로서 성읍에서 죽은 자는 개들이 먹고 들에서 죽은 자는 공중의 새가 먹으리라고 하셨느니라 하니 25 예로부터 아합과 같이 그 자신을 팔아 여호와 앞에서 악을 행한 자가 없음은 그를 그의 아내 이세벨이 충동하였음이라 26 그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쫓아내신 아모리 사람의 모든 행함 같이 우상에게 복종하여 심히 가증하게 행하였더라이것이 엘리야의 답변입니다.

 

27~29절입니다. “27 아합이 이 모든 말씀을 들을 때에 그의 옷을 찢고 굵은 베로 몸을 동이고 금식하고 굵은 베에 누우며 또 풀이 죽어 다니더라 28 여호와의 말씀이 디셉 사람 엘리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29 아합이 내 앞에서 겸비함을 네가 보느냐 그가 내 앞에서 겸비하므로 내가 재앙을 저의 시대에는 내리지 아니하고 그 아들의 시대에야 그의 집에 재앙을 내리리라 하셨더라

 

위의 책망의 말씀을 들은 아합의 태도입니다. 이것이 아합의 진정한 회개의 모습일까요? 옷을 찢고 굵은 베로 몸을 동이고 금식하며 굵은 베에 누우며 풀이 죽은 것입니다. 나봇의 포도원을 차지 못하여 근심하고 답답해 한 모습이나 별 다를 바 없습니다. 그런데 이것도 여호와 하나님께서 겸비함으로 보십니다. 그래서 아합 집안의 재앙을 저의 시대에 내리지는 않는다고 하십니다. 아합 집안의 재앙은 위의 심판의 말씀대로 일어납니다만 아합시대에는 집안 전체가 멸망하지 않습니다. 이런 내용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무엇을 원하시는 것인지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빼앗고 죽인 자라도 회개하면 용서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사무엘하 12:7~9절입니다. “7 나단이 다윗에게 이르되 당신이 그 사람이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이르시기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왕으로 기름 붓기 위하여 너를 사울의 손에서 구원하고 8 네 주인의 집을 네게 주고 네 주인의 아내들을 네 품에 두고 이스라엘과 유다 족속을 네게 맡겼느니라 만일 그것이 부족하였을 것 같으면 내가 네게 이것 저것을 더 주었으리라 9 그러한데 어찌하여 네가 여호와의 말씀을 업신여기고 나 보기에 악을 행하였느냐 네가 칼로 헷 사람 우리아를 치되 암몬 자손의 칼로 죽이고 그의 아내를 빼앗아 네 아내로 삼았도다

 

빼앗고 죽인 것은 아합이나 다윗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나단의 책망을 듣고 처절한 회개의 기도를 합니다. 시편 51편에서 보면 자신이 죄악 중에 잉태하였으며 죄를 먹고 마시며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죄를 대신하여 죽을 자가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이것이 아합과 다윗의 차이점입니다. 그러므로 아합이나 다윗이나 동일한 죄인입니다. 아합이 우상숭배를 많이 하였다고 해도 빼앗고 죽이는 일은 같은 것입니다. 동일한 사건을 통하여 거저 자기 살기 위한 금식과 회개의 모습인지 아니면 근원적인 자기 부인이 일어나는지를 보여줍니다. 오늘 오전에도 다윗은 이 사건을 통하여 왜 일한 것이 의롭다 함을 받는 그 복 불법이 사함을 받고 죄가 가려짐을 받는 자가 복이 있다는 것을 고백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아합의 모습입니까? 다윗의 모습입니까? 아합은 자기 살기 위하여 금식도 하고 굵은 베옷도 입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그런 형식적인 모습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원하시는 것이 상한심령임을 알았습니다. 이것이 은혜를 입은 자의 모습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어떤 모습입니까? 우리는 빼앗고 죽이지 않았습니까?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얼마나 많은 것을 빼앗고 죽이며 살아온 지 아십니까? 우리는 원래 없는 자들이었습니다. 땅이 티끌입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이 몸을 유지하느라고 얼마나 많이 빼앗고 죽이면서 살아왔습니까?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이런 자각으로 채식만 한다고 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런 자들은 빼앗고 죽이지 않습니까? 아닙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발 딛고 사는 한 빼앗고 죽이며 사는 인생입니다.

 

마태복음 21:33~41절입니다. “33 다른 한 비유를 들으라 한 집 주인이 포도원을 만들어 산울타리로 두르고 거기에 즙 짜는 틀을 만들고 망대를 짓고 농부들에게 세로 주고 타국에 갔더니 34 열매 거둘 때가 가까우매 그 열매를 받으려고 자기 종들을 농부들에게 보내니 35 농부들이 종들을 잡아 하나는 심히 때리고 하나는 죽이고 하나는 돌로 쳤거늘 36 다시 다른 종들을 처음보다 많이 보내니 그들에게도 그렇게 하였는지라 37 후에 자기 아들을 보내며 이르되 그들이 내 아들은 존대하리라 하였더니 38 농부들이 그 아들을 보고 서로 말하되 이는 상속자니 자 죽이고 그의 유산을 차지하자 하고 39 이에 잡아 포도원 밖에 내쫓아 죽였느니라 40 그러면 포도원 주인이 올 때에 그 농부들을 어떻게 하겠느냐 41 그들이 말하되 그 악한 자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은 제 때에 열매를 바칠 만한 다른 농부들에게 세로 줄지니이다

 

아합도 다윗도 우리도 여기에 다 포함되는 자들입니다. 소작농 주제에 주인의 아들을 죽여 버린 자들이 자기 자신임을 자각하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들은 자들이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이 자기들을 향하여 하신 말씀인 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어지는 말씀을 보시면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1:42~46절입니다. “42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성경에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이것은 주로 말미암아 된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하도다 함을 읽어 본 일이 없느냐 43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너희는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 44 이 돌 위에 떨어지는 자는 깨지겠고 이 돌이 사람 위에 떨어지면 그를 가루로 만들어 흩으리라 하시니 45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예수의 비유를 듣고 자기들을 가리켜 말씀하심인 줄 알고 46 잡고자 하나 무리를 무서워하니 이는 그들이 예수를 선지자로 앎이었더라

 

자신들은 율법을 지키며 의롭게 살았다고 하는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의 이 말씀을 듣고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자신들이 예수님 앞에서 빼앗고 죽인 자들로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포도원은 이스라엘이며 포도원 주인은 하나님입니다. 그리고 소작을 받은 품꾼들은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들의 손에 의하여 살해 당하셔야 합니다. 그 이유는 시편 118:22절의 말씀이 성취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도들이 전한 복음의 핵심은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그 예수를 하나님께서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다고 하셨습니다. 이 선포 앞에 돌로 들어 치는 자들과 회개하는 자로 나누어집니다. 오늘 우리는 이 말씀 앞에 어떤 자로 서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