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성설교 바로듣기]  [음성설교 다운받기]

열왕기상 22:1~28 누구의 말을 들을까? 2015. 11. 22

 

엘리야는 8501로 싸웠습니다. 바알과 아세라의 선지자 850명과 엘리야가 누가 불로 응답하는지 내기를 하여 엘리야가 이김으로 850명의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가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4001입니다. 400명은 궁중선지자로 불리는 왕의 권력에 아부하는 자들입니다. 이들의 대표는 시드기야이며 이와 대적하는 하나님의 선지자는 미가야 한 명입니다. 아합이 누구의 말을 듣겠습니까?

 

본문 1~4절입니다. “1 아람과 이스라엘 사이에 전쟁이 없이 삼 년을 지냈더라 2 셋째 해에 유다의 여호사밧 왕이 이스라엘의 왕에게 내려가매 3 이스라엘의 왕이 그의 신하들에게 이르되 길르앗 라못은 본래 우리의 것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우리가 어찌 아람의 왕의 손에서 도로 찾지 아니하고 잠잠히 있으리요 하고 4 여호사밧에게 이르되 당신은 나와 함께 길르앗 라못으로 가서 싸우시겠느냐 여호사밧이 이스라엘 왕에게 이르되 나는 당신과 같고 내 백성은 당신의 백성과 같고 내 말들도 당신의 말들과 같으니이다

 

아람과 이스라엘이 전쟁이 없이 삼년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면 약 3년 전에 전쟁이 있었다는 말입니다. 이 전쟁에서 이스라엘의 아합이 아람의 벤하닷을 이겼습니다. 전쟁에 승리하게된 것은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아합에서 적을 붙여주셨기에 이긴 싸움입니다. 그런데 아합은 벤하닷을 살려줍니다. 이때 벤하닷이 자기 아버지가 아합의 아버지에게서 빼앗은 땅을 다 돌려준다고 하였습니다(왕상20:34). 그런데 이 문제가 제대로 해결이 되지 않은 모양입니다. 그래서 남쪽 유다의 왕 여호사밧이 아합을 방문하였을 때에 아합이 함께 아람을 치지고 합니다. 그러자 여호사밧이 나는 당신과 같고 내 백성은 당신의 백성과 같고 내 말들도 당신의 말들과 같다고 합니다. 운명공동체라고 하는 것입니다. 남북이 이렇게 가까워진 것은 아합의 딸과 여호사밧의 아들이 결혼한 것입니다(왕하8:16~18). 그러니 사돈관계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남북이 잘 지내고 있습니다.

 

5절입니다. 여호사밧이 또 이스라엘의 왕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먼저 여호와의 말씀이 어떠하신지 물어 보소서여호사밧은 아합보다 신앙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아합의 제안에 동의는 하지만 여호와의 말씀이 어떠한지를 물어보라고 합니다. 그런데 아합은 여호와의 뜻과는 상관없이 자기의 뜻만 세웠기에 여호와의 말씀이 어떠한지 물어볼 생각도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여호사밧의 말을 듣고서 어쩔 수 없이 선지자를 부릅니다.

 

6~7절입니다. “6 이스라엘의 왕이 이에 선지자 사백 명쯤 모으고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길르앗 라못에 가서 싸우랴 말랴 그들이 이르되 올라가소서 주께서 그 성읍을 왕의 손에 넘기시리이다 7 여호사밧이 이르되 이 외에 우리가 물을 만한 여호와의 선지자가 여기 있지 아니하니이까아합이 모은 선지자 사백 여명에게 묻습니다.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 850명이 죽임을 당하고 나서 형식적이나마 여호와의 선지자라고 이름불리는 자들 4백 명 정도를 왕궁 선지자로 세운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므로 이들은 주의 이름으로 승리를 예언하면서 길라앗 라못으로 올라가라고 합니다. 왕의 비위를 맞추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호사밧은 아무리 봐도 미심쩍은 것입니다. 그래서 다른 선지자가 없는지 묻습니다. 여호사밧의 영적인 상태가 아합보다 낫기 때문입니다.

 

8~12절입니다. “8 이스라엘의 왕이 여호사밧 왕에게 이르되 아직도 이믈라의 아들 미가야 한 사람이 있으니 그로 말미암아 여호와께 물을 수 있으나 그는 내게 대하여 길한 일은 예언하지 아니하고 흉한 일만 예언하기로 내가 그를 미워하나이다 여호사밧이 이르되 왕은 그런 말씀을 마소서 9 이스라엘의 왕이 한 내시를 불러 이르되 이믈라의 아들 미가야를 속히 오게 하라 하니라 10 이스라엘의 왕과 유다의 여호사밧 왕이 왕복을 입고 사마리아 성문 어귀 광장에서 각기 왕좌에 앉아 있고 모든 선지자가 그들의 앞에서 예언을 하고 있는데 11 그나아나의 아들 시드기야는 자기를 위하여 철로 뿔들을 만들어 가지고 말하되 여호와의 말씀이 왕이 이것들로 아람 사람을 찔러 진멸하리라 하셨다 하고 12 모든 선지자도 그와 같이 예언하여 이르기를 길르앗 라못으로 올라가 승리를 얻으소서 여호와께서 그 성읍을 왕의 손에 넘기시리이다 하더라

 

아합이 여호사밧에게 말하기를 한 명 있기는 한데 그는 자기에게 흉한 일만 예언하기에 자기가 미워하는 자라고 합니다. 그러자 여호사밧이 그런 말을 하지 말라고 하면서 부르게 합니다. 그래서 내시를 보내어 미가야를 불러 오게 합니다. 그동안 시드기야와 4백여 명의 선지자들은 집단 예언을 하면서 기도 응답의 증거물로 철뿔을 만들어 와서 이렇게 전쟁하면 여호와께서 이긴다고 합니다. 아합과 여호사밧은 왕복을 입고 성문 어귀 광장의 왕좌에 앉아있습니다. 여기서 질문합니다. 여러분은 흉한 말을 하는 사람이 좋습니까? 여러분의 귀에 좋은 말을 해 주는 사람이 좋습니까? 그런데 지금 왕 앞에서 말을 해야 합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13~15절입니다. “13 미가야를 부르러 간 사신이 일러 이르되 선지자들의 말이 하나 같이 왕에게 길하게 하니 청하건대 당신의 말도 그들 중 한 사람의 말처럼 길하게 하소서 14 미가야가 이르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여호와께서 내게 말씀하시는 것 곧 그것을 내가 말하리라 하고 15 이에 왕에게 이르니 왕이 그에게 이르되 미가야야 우리가 길르앗 라못으로 싸우러 가랴 또는 말랴 그가 왕께 이르되 올라가서 승리를 얻으소서 여호와께서 그 성읍을 왕의 손에 넘기시리이다

 

미가야를 부르러 간 사람이 당신도 다른 선지자들처럼 왕에게 좋게 말하라고 합니다. 이 사람은 미가야를 아껴서 한 말로 보입니다. 바른 말을 해도 아합이 듣지도 않을 텐데 왕에게 나쁜 말을 해서 미움 받지 말고 좋은 게 좋은 것이 아니냐고 하면서 권한 것입니다. 그때 미가야 선지자는 여호와의 살아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여호와께서 내게 말씀하시는 그것을 말하겠다고 합니다. 그런데 아합 왕이 묻자 왜 거짓 선지자들처럼 여호와께서 왕의 손에 넘겨주실 것이라고 합니까? 아합은 무슨 말을 해도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않을 것이기에 조롱한 것입니다. 오래전에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는 어떤 목사는 아무리 복음을 전해도 알아먹지 못하는 것을 보고 헌금 많이 해서 복 받으라고 하였답니다. 얼마나 못 알아들었으면 그렇게 했겠느냐는 마음이 듭니다.

 

16~18절입니다. “16 왕이 그에게 이르되 내가 몇 번이나 네게 맹세하게 하여야 네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진실한 것으로만 내게 말하겠느냐 17 그가 이르되 내가 보니 온 이스라엘이 목자 없는 양 같이 산에 흩어졌는데 여호와의 말씀이 이 무리에게 주인이 없으니 각각 평안히 자기의 집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셨나이다 18 이스라엘의 왕이 여호사밧 왕에게 이르되 저 사람이 내게 대하여 길한 것을 예언하지 아니하고 흉한 것을 예언하겠다고 당신에게 말씀하지 아니하였나이까

 

아합이 미가야에게 진실한 것을 말하라고 합니다. 미가야가 진실을 말합니다. 목자 없는 양같이 다 흩어져서 각기 평안히 집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합니다. 전쟁에 패배한다는 말을 전합니다. 그러자 아합이 여호와의 말씀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목적에 사로잡혀 있기에 여호사밧에게 하는 말이 저 사람이 내게 대하여 길한 것은 예언하지 않고 흉한 것을 예언한다고 하지 않았느냐면서 괜히 시간만 낭비하고 찝찝한 소리를 들었다는 반응입니다. 아합은 지금 여호와의 말씀에 관심이 없습니다. 자기의 뜻에 하나님이 맞추어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상을 섬기는 자의 모습이며 이런 자들에게 4백 명이나 들러붙어서 왕에게 좋은 말을 해주고 자기들의 이익을 챙기는 자들이 거짓 선지자들입니다.

 

19~23절입니다. “19 미가야가 이르되 그런즉 왕은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소서 내가 보니 여호와께서 그의 보좌에 앉으셨고 하늘의 만군이 그의 좌우편에 모시고 서 있는데 20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누가 아합을 꾀어 그를 길르앗 라못에 올라가서 죽게 할꼬 하시니 하나는 이렇게 하겠다 하고 또 하나는 저렇게 하겠다 하였는데 21 한 영이 나아와 여호와 앞에 서서 말하되 내가 그를 꾀겠나이다 22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어떻게 하겠느냐 이르되 내가 나가서 거짓말하는 영이 되어 그의 모든 선지자들의 입에 있겠나이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는 꾀겠고 또 이루리라 나가서 그리하라 하셨은즉 23 이제 여호와께서 거짓말하는 영을 왕의 이 모든 선지자의 입에 넣으셨고 또 여호와께서 왕에 대하여 화를 말씀하셨나이다

 

미가야 선지자가 아합 왕에게 천상회의의 결과를 알려줍니다. 여호와께서 누가 아합을 꾀어 길르앗 라못에 올라가서 죽게 할까 하니 한 영이 나아가서 자기가 아합을 꾀어 죽게 하겠다고 합니다. 그래서 거짓말 하는 영이 되어 모든 선지자들에게 있겠다고 합니다. 이 말을 들은 왕도 분노하지만 더 분노한 자들이 시드기야와 4백여 명의 선지자들입니다. 성경은 이들을 거짓선지자로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선지자라고 합니다. 그러면 그들이 거짓인지 아닌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지금 시드기야가 기도 응답을 받은 것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있습니다. 너무 분명한 응답을 받았습니다. 철 뿔을 만들어 공격하면 이긴다고 응답을 받은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응답이 거짓말 하는 영이 임하여 그렇게 된 것이라고 미가야가 말합니다. 오늘날도 기도 응답이나 계시를 받는다는 자들에게 당신이 거짓말 하는 영이 임한 것이라고 하면 어떤 반응을 보이겠습니까?

 

24~28절입니다. “24 그나아나의 아들 시드기야가 가까이 와서 미가야의 뺨을 치며 이르되 여호와의 영이 나를 떠나 어디로 가서 네게 말씀하시더냐 25 미가야가 이르되 네가 골방에 들어가서 숨는 그 날에 보리라 26 이스라엘의 왕이 이르되 미가야를 잡아 성주 아몬과 왕자 요아스에게로 끌고 돌아가서 27 말하기를 왕의 말씀이 이놈을 옥에 가두고 내가 평안히 돌아올 때까지 고생의 떡과 고생의 물을 먹이라 하였다 하라 28 미가야가 이르되 왕이 참으로 평안히 돌아오시게 될진대 여호와께서 나를 통하여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리이다 또 이르되 너희 백성들아 다 들을지어다 하니라

 

시드기야는 미가야의 뺨을 치면서 여호와의 영이 나를 떠나 어디로 가서 네게 말씀하시더냐고 합니다. 신사도 운동을 하거나 자신이 기도응답을 받았다고 하면서 터무니없는 말들을 하는 자들이 이 땅에 많습니다. 그런 자들에게 당신이 거짓말하는 영이 임하였다고 하면 그렇게 말하는 자를 악령이 들었다고 할 것입니다. 그런데 미가야 선지자가 시드기야에게 말하기를 네가 골방에 들어가서 숨는 그날에 보리라고 합니다. 전쟁에 패배하게 될 때에 너의 응답이 거짓임을 알 것이라고 한 것입니다. 그리고 왕도 화가 나서 미가야를 옥에 가두고 자신이 평안히 돌아올 때 까지 고생의 떡과 고생의 물을 먹이라고 합니다. 이때 미가야가 하는 말이 왕이 참으로 평안히 돌아오시게 된다면 여호와께서 자신을 통하여 말씀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하면서 백성들에게 다 들으라고 합니다. 우리는 결론을 이미 알고 있습니다. 미가야의 말대로 되었습니다. 이 말씀을 오늘 우리에게 어떻게 적용을 해야 합니까? 많은 설교자이든 청중이든 적용하기를 좋아합니다. 그러면 적용을 해 봅니다.

 

이사야 30:8~17절입니다. “8이제 가서 백성 앞에서 서판에 기록하며 책에 써서 후세에 영원히 있게 하라 9 대저 이는 패역한 백성이요 거짓말 하는 자식들이요 여호와의 법을 듣기 싫어하는 자식들이라 10 그들이 선견자들에게 이르기를 선견하지 말라 선지자들에게 이르기를 우리에게 바른 것을 보이지 말라 우리에게 부드러운 말을 하라 거짓된 것을 보이라 11 너희는 바른 길을 버리며 첩경에서 돌이키라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우리 앞에서 떠나시게 하라 하는도다아합이나 이스라엘 백성이나 오늘 우리들이나 이런 요구가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어떻게 됩니까? 이어지는 말씀을 봅니다.

 

“15 주 여호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가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가 돌이켜 조용히 있어야 구원을 얻을 것이요 잠잠하고 신뢰하여야 힘을 얻을 것이거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고 16 이르기를 아니라 우리가 말 타고 도망하리라 하였으므로 너희가 도망할 것이요 또 이르기를 우리가 빠른 짐승을 타리라 하였으므로 너희를 쫓는 자들이 빠르리니 17 한 사람이 꾸짖은즉 천 사람이 도망하겠고 다섯이 꾸짖은즉 너희가 다 도망하고 너희 남은 자는 겨우 산꼭대기의 깃대 같겠고 산마루 위의 기치 같으리라 하셨느니라잠잠히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기다리라고 합니다. 세상이 참으로 요란합니다. 그리스도가 여기에 있다 저기에 있다고 하는 시대입니다. 조용히 잠잠히 신뢰하는 것이 구원이며 힘을 얻습니다. 그런데 자기 힘으로 자기를 구원하려고 하는 자들이 다 심판을 받는 것입니다. 우리도 다 이러한 자들인데 여호와의 심판으로 겨우 남게 되는 것이 성도입니다.

 

디모데후서 4:1~4절입니다. “1 하나님 앞과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가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2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3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 4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리라

 

바울이 디모데에게 엄중하게 말합니다. 하나님 앞과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의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한다고 합니다. 사도신경으로 고백하는 내용들이 여기에 나옵니다. 우리가 정말 이 말씀을 믿습니까? 산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실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이 엄중한 말씀으로 명한 내용은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전하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바른 교훈을 받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아합과 마찬가지입니다. 귀가 가려져있습니다. 그래서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둡니다.

 

세상의 선생이라는 자들은 예수님을 가리키는 역할이며 중매쟁이의 역할입니다. 그런데 자기의 손아귀에 쥐려고 하면 다른 말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자기의 사욕을 따를 많은 스승을 둔다는 것은 자기들의 취향이 맞는 스승들을 찾아다니는 것입니다. 이런 자들은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는 것입니다. 지식적으로 탁월한 것, 현란하게 원어를 파자하면서 듣도 보도 못한 이야기를 따르는 것, 신비주의 금욕주의를 따르는 것, 직통계시를 받는 다는 곳에 몰려다니는 자들, 수도 없이 그렇게 몰려다니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때에 그 말씀이 거짓말 하는 영에 의하여 전하여 지는지 성령에 의하여 전하여지는지 어떻게 분별을 할 수가 있겠습니까? 믿음은 한 믿음이며 세례도 한 세례이며 성령도 한 성령이며 하나님도 한 분이시며 주님도 한분이십니다. 그러므로 한 영이 임한 사람이라면 전하는 사람이 거짓말을 하는지 진리를 말하는지 분명히 분별을 할 수가 있습니다. 거짓 선지자의 특징은 오늘 말씀에만 보아도 어떤 자들입니까? 사람의 사욕을 쫓도록 사람의 귀에 좋은 말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참된 선지자나 참된 복음을 전하는 자들은 사람을 좋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좋게 하는 자들입니다.

 

갈라디아서 1:6~10절입니다. “6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을 따르는 것을 내가 이상하게 여기노라 7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교란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게 하려 함이라 8 그러나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9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가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10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바울이 전한 복음은 은혜로 우리를 부르신 내용입니다. 그런데 은혜로 우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복음은 우리의 육체로 자랑할 것이 없게 됩니다. 우리의 그 어떤 행위로도 우리의 가치를 높일 수가 없게 만드는 것이 사도들이 전한 복음입니다. 그런데 바울이 복음을 전하고 다른 곳으로 가고 나니 갈라디아 교회에 행함을 강조하는 유대주의자들이 온 것입니다. 그러자 많은 사람들이 다른 복음에 훅하고 넘어간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본성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바울사도는 우리가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으라고 하면서 그 기준점을 제시합니다. 사람을 좋게 하고 사람을 기쁘게 하는 것이라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라고 합니다. 우리가 좋고 기쁜 것이 무엇입니까? 나의 가치가 높아지는 것입니다. 나의 자존심이 세워지는 것입니다. 나의 자랑거리가 많아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복음은 우리를 땅의 티끌이라고 합니다. 안개라고 합니다. 우리의 모든 자랑거리가 배설물이라고 합니다. 십자가 지신 예수 그리스도 만이 우리의 영원한 생명이며 복이며 상급입니다. 그분만이 나의 전부입니다. 이것이 실재가 되는 것이 복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