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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하 5:1~19 큰 용사이나 나병환자 2016. 2. 27

 

이 본문의 말씀을 읽어보시라고 주보에 미리 광고를 하였습니다. 읽어보신 분이나 아니면 이미 아는 내용이기에 이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이야기하실 분 이야기 해보시기 바랍니다. 대부분 인물설교는 그 인물의 잘한 점을 본받자고 하거나 잘못한 것은 본받지 말자는 식으로 설교를 합니다. 그러면 성경이 하나님의 계시가 아니라 세상을 빛낸 위인전기처럼 됩니다. 그러면 이방인 나아만이 이스라엘에 와서 병 고침 받는 일을 통하여 하나님은 무엇을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이스라엘을 고발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나서가 전도하자는 말이 아니라 니느웨의 회개를 통하여 이스라엘을 고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아만을 통하여 오늘 우리를 고발하고 책망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본문 1절입니다. “1 아람 왕의 군대 장관 나아만은 그의 주인 앞에서 크고 존귀한 자니 이는 여호와께서 전에 그에게 아람을 구원하게 하셨음이라 그는 큰 용사이나 나병환자더라아람 왕의 군대장관이 그 주인인 왕 앞에서 크고 존귀한 자라고합니다. 이렇게 된 것은 여호와께서 전에 그에게 아람을 구원하게 하셨다고 합니다. 나아만이 아람의 구원에 큰 공을 끼침으로 백성만이 아니라 왕에게도 총애를 받는 자가 된 것은 누가 이렇게 하신 것입니까?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나병환자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하신 것도 누가 하신 것입니까? 여호와 하나님께서 하신 것입니다. 이를 통하여 무엇을 계시하시는 것입니까?

 

여호와는 용사이십니다(15:3). 이스라엘은 용사이신 하나님의 군대입니다(삼상17:26). 그런데 이러한 이스라엘이 지금 나아만처럼 나병이 든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언약 안에 있으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대적의 대적이 되시지만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언약을 버리고 우상을 섬기게 되면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대적이 되십니다.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람의 군대장관 나아만을 통하여 아람을 구원하게 하시고 또 이스라엘을 공격하게 하여 포로로 잡아가는 일도 일어난 것입니다. 그런데 나아만이 나병이 듦을 통하여 이스라엘에서 포로로 잡아온 어린 소녀의 말을 듣게 하고 이스라엘로 고침을 받도록 보냄을 받습니다.

 

2~3절입니다. “2 전에 아람 사람이 떼를 지어 나가서 이스라엘 땅에서 어린 소녀 하나를 사로잡으매 그가 나아만의 아내에게 수종들더니 3 그의 여주인에게 이르되 우리 주인이 사마리아에 계신 선지자 앞에 계셨으면 좋겠나이다 그가 그 나병을 고치리이다 하는지라이스라엘의 왕으로부터 모든 백성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합니다. 나아만이 왕에게 나아갔을 때에 그는 옷을 찢으며 자신이 사람을 죽이고 살리는 하나님이냐고 합니다. 자신보고 살리고 죽이라고 한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살리고 죽이시는 분임을 아예 믿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데 포로로 잡혀온 이 어린 소녀는 하나님의 선지자를 신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선지자를 신뢰하는 어린 소녀는 포로로 잡혀와 있고 하나님의 약속을 배반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믿지도 않는 자가 왕이 되어 있습니다. 이름은 존귀하나 그 실상은 나병환자와 마찬가지입니다.

 

4~6절입니다. “4 나아만이 들어가서 그의 주인께 아뢰어 이르되 이스라엘 땅에서 온 소녀의 말이 이러이러하더이다 하니 5 아람 왕이 이르되 갈지어다 이제 내가 이스라엘 왕에게 글을 보내리라 하더라 나아만이 곧 떠날새 은 십 달란트와 금 육천 개와 의복 열 벌을 가지고 가서 6 이스라엘 왕에게 그 글을 전하니 일렀으되 내가 내 신하 나아만을 당신에게 보내오니 이 글이 당신에게 이르거든 당신은 그의 나병을 고쳐 주소서 하였더라나아만이 선지자에게로 바로 가지 않고 이스라엘 왕에게로 감으로 이스라엘 왕의 믿음 없음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7절입니다. “7 이스라엘 왕이 그 글을 읽고 자기 옷을 찢으며 이르되 내가 사람을 죽이고 살리는 하나님이냐 그가 어찌하여 사람을 내게로 보내 그의 나병을 고치라 하느냐 너희는 깊이 생각하고 저 왕이 틈을 타서 나와 더불어 시비하려 함인줄 알라 하니라이스라엘 왕이 아람 왕의 글을 읽고 보이는 반응이 이렇습니다. 앞에서 보았습니다만 포로로 잡혀간 어린 소녀는 하나님의 선지자를 말하는데 왕은 옷을 찢으며 이 일을 계기로 시비하려고 온 것이라고 봅니다. 이러한 이스라엘 왕의 모습이 하나님의 군대로 부름 받은 이스라엘이 나병이 든 것과 마찬가지의 모습입니다. 그 어떤 것을 할지라도 부정하게 되는 나병이 든 하나님의 군대 이스라엘의 모습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이 땅의 교회라고 하는 모습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8절입니다. “8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가 이스라엘 왕이 자기의 옷을 찢었다 함을 듣고 왕에게 보내 이르되 왕이 어찌하여 옷을 찢었나이까 그 사람을 내게로 오게 하소서 그가 이스라엘 중에 선지자가 있는 줄을 알리이다 하니라엘리사가 왕이 옷을 찢었다는 말을 듣고 나아만을 자기에게 보내라고 합니다. 그가 이스라엘 중에 선지자가 있는 줄을 알 것이라고 합니다. 나아만은 병 고침을 받기 위하여 이방 나라에서 선지자를 찾아 왔습니다. 그러면 선지자가 왕에게로 오든지 해서 자신을 고쳐주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선지자가 오지도 않도 사람을 보내 자기를 부르고 있습니다. 병을 고침받기 위하여 참고 선지자에게로 갑니다.

 

9~12절입니다. “9 나아만이 이에 말들과 병거들을 거느리고 이르러 엘리사의 집 문에 서니 10 엘리사가 사자를 그에게 보내 이르되 너는 가서 요단강에 몸을 일곱 번 씻으라 네 살이 회복되어 깨끗하리라 하는지라 11 나아만이 노하여 물러가며 이르되 내 생각에는 그가 내게로 나와 서서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그의 손을 그 부위 위에 흔들어 나병을 고칠까 하였도다 12 다메섹 강 아바나와 바르발은 이스라엘 모든 강물보다 낫지 아니하냐 내가 거기서 몸을 씻으면 깨끗하게 되지 아니하랴 하고 몸을 돌려 분노하여 떠나니

 

아람이 이스라엘보다 훨씬 강한 나라입니다. 이스라엘의 왕도 쩔쩔매는 아람의 군대장관 나아만이 하나님의 선지자를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엘리사는 나와 보지도 않고 그의 사자를 통하여 말하기를 너는 요단강에 몸을 일곱 번 씻으라고 합니다. 그러면 네 살이 회복될 것이라고 합니다. 드디어 나아만의 분노가 폭발합니다. 자기 몸의 병으로 포로로 잡혀온 어린 소녀의 말을 듣고 왔지만 왕도 자신을 영접하는데 선지자는 얼굴도 보이지 않고 요단강에 씻으라고 한 것입니다. 나아만의 생각은 선지자가 직접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그의 손을 그 부위 위에 흔들어 나병을 고칠 것으로 생각한 것입니다. 그런데 자기 나라의 강물보다 못한 요단강에 씻으라고 하니 그럴 바에 자기 나라의 더 좋은 강에서 씻겠다고 하면서 분노하여 떠납니다.

 

13~14절입니다. “13 그의 종들이 나아와서 말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여 선지자가 당신에게 큰 일을 행하라 말하였더면 행하지 아니하였으리이까 하물며 당신에게 이르기를 씻어 깨끗하게 하라 함이리이까 하니 14 나아만이 이에 내려가서 하나님의 사람의 말대로 요단 강에 일곱 번 몸을 잠그니 그의 살이 어린 아이의 살 같이 회복되어 깨끗하게 되었더라

 

여기서도 나아만의 종들이 강권합니다. 이보다 더 큰일을 하라고 해도 하여야 할 것인데 강물에 씻으라고 한 것을 해보자고 한 것입니다. 그래서 강물에 일곱 번 몸을 잠그니 그의 살이 어린 아이의 살 같이 회복이 되어 깨끗하게 되었습니다. 이 소문은 이스라엘 전역에 파다하게 퍼질 것입니다. 이 소식을 통하여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무엇을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왜 요단강에서 씻어야 하며 왜 일곱 번이나 몸을 담그라고 하였는지 이스라엘 백성들이라면 알아채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어린 양의 피의 능력으로 건너게 됩니다. 광야에서 하나님의 언약을 받습니다. 그 언약의 돌 판을 넣은 법궤를 멘 제사장들이 요단강에 들어서자 그 강물이 끊어져서 약속의 땅에 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지금 그 언약을 배반하였습니다. 이들에게 하나님은 이방인 나아만을 통하여 이스라엘에게 언약을 상기시키고 있습니다. 너희가 홍해를 건너고 요단강을 무엇으로 건너왔는지 생각하라는 말씀입니다. 이방인 장군도 요단강에 일곱 번 몸을 씻으니 그 나병이 깨끗해 졌다는 것을 통하여 이스라엘을 고발하고 있습니다. 나아만이 율법의 규례대로 행하지는 않습니다만 요단강에 몸을 일곱 번 담갔다가 나오는 것은 나병환자가 정결하게 될 때에 일곱 번 피를 뿌리는 것과 연상이 되는 내용입니다.

 

레위기 14:5~7절입니다. “5 제사장은 또 명령하여 그 새 하나는 흐르는 물 위 질그릇 안에서 잡게 하고 6 다른 새는 산 채로 가져다가 백향목과 홍색 실과 우슬초와 함께 가져다가 흐르는 물 위에서 잡은 새의 피를 찍어 7 나병에서 정결함을 받을 자에게 일곱 번 뿌려 정하다 하고 그 살아 있는 새는 들에 놓을지며

 

나병환자가 정결하게 되었을 때에 새 두 마리를 잡아서 한 마리는 흐르는 물위에서 잡은 새의 피를 찍어 정결함을 받은 자에게 일곱 번 뿌리고 한 마리는 놓아주는 것입니다. 이것은 나병환자가 나음을 입은 것은 정결한 짐승의 피 뿌림의 희생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피를 일곱 번 뿌리는 것은 언약궤 위에도 대 제사장이 일 년에 한번 대 속죄일에 피를 일곱 번 뿌립니다. 그런데 나병환자는 이렇게 피 뿌림만 받는 것이 아니라 정결하게 되고 나서 제사장의 위임 식 때 행하는 의식을 또 해야 합니다.

 

레위기 14:14~17절입니다. “14 제사장은 그 속건제물의 피를 취하여 정결함을 받을 자의 오른쪽 귓부리와 오른쪽 엄지손가락과 오른쪽 엄지발가락에 바를 것이요 15 제사장은 또 그 한 록의 기름을 취하여 자기 왼쪽 손바닥에 따르고 16 오른쪽 손가락으로 왼쪽 손의 기름을 찍어 그 손가락으로 그것을 여호와 앞에 일곱 번 뿌릴 것이요 17 손에 남은 기름은 제사장이 정결함을 받을 자의 오른쪽 귓부리와 오른쪽 엄지손가락과 오른쪽 엄지발가락 곧 속건제물의 피 위에 바를 것이며

 

오른쪽 귓부리와 엄지손가락과 엄지발가락에 바르게 합니다. 이것은 제사장 위임 식 때에 하는 일입니다(8:22~24). 그러면 나병환자가 정결함을 입는 것은 정결한 짐승의 피 뿌림을 입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러므로 나병환자가 정결함을 입는 것은 단지 짐승의 피를 바르는 것만이 아니라 제사장에게 합류됨을 보여줍니다. 제사장의 희생으로 나병마저 정결함을 입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규례를 아는 이스라엘 백성이라면 이방인 나아만 장군이 나병을 요단강에 몸을 일곱 번 씻음으로 정결하게 됨을 보면서 자신들이 회개하여야 합니다. 자신들이 어린 양의 피와 제사장의 희생으로 살아가는 자들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그런 언약은 사라지고 바알과 아세라의 우상만 가득한 이스라엘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이스라엘을 나아만을 통하여 고발합니다.

 

누가복음 4:27~30절입니다. “27 또 선지자 엘리사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나병환자가 있었으되 그 중의 한 사람도 깨끗함을 얻지 못하고 오직 수리아 사람 나아만뿐이었느니라 28 회당에 있는 자들이 이것을 듣고 다 크게 화가 나서 29 일어나 동네 밖으로 쫓아내어 그 동네가 건설된 산 낭떠러지까지 끌고 가서 밀쳐 떨어뜨리고자 하되 30 예수께서 그들 가운데로 지나서 가시니라

 

예수님께서 희년을 이루시기 위하여 오셨다는 말씀을 하시는데 사람들이 믿지를 않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엘리야 시대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과부가 있었지만 사렙다 과부에게만 보냄을 받았고 엘리사 시대 때 이스라엘에 많은 나병환자가 있었지만 나아만 사람만 고침을 받았다는 말씀을 하시자 예수님이 자라나신 나사렛 사람들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합니다. 그러므로 나아만 사람의 이야기를 예수님께서 하심으로 이스라엘의 믿음 없음을 고발하고 있습니다. 이로 인하여 죽이려고 한 것입니다. 이런 이스라엘의 모습이 나병환자가 된 모습입니다. 예수님 앞에 나와서 고침을 받아야 하는데 오히려 예수님을 죽이려고 합니다. 이것이 죄인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병 고침을 받은 나아만은 어떻게 합니까?

 

15~16절입니다. “15 나아만이 모든 군대와 함께 하나님의 사람에게로 도로 와서 그의 앞에 서서 이르되 내가 이제 이스라엘 외에는 온 천하에 신이 없는 줄을 아나이다 청하건대 당신의 종에게서 예물을 받으소서 하니 16 이르되 내가 섬기는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그 앞에서 받지 아니하리라 하였더라 나아만이 받으라고 강권하되 그가 거절하니라나아만이 병 고침을 받고 나서 엘리사의 하나님 곧 이스라엘의 ᄒᆞ님이 참된 신임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예물을 엘리사에게 드리려고 하자 엘리사가 거절합니다. 왜 거절하는 것입니까? 참된 신은 사람에게 선물을 받지 않는 것을 보여줍니다. 모든 거래와 흥정이 통하지 않는 하나님이라는 것을 엘리사는 나아만과 이스라엘과 오늘 우리에게도 보여줍니다.

 

사도행전 17:22~25절입니다. “22 바울이 아레오바고 가운데 서서 말하되 아덴 사람들아 너희를 보니 범사에 종교심이 많도다 23 내가 두루 다니며 너희가 위하는 것들을 보다가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긴 단도 보았으니 그런즉 너희가 알지 못하고 위하는 그것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 24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25 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이심이라나아만의 종교성은 자신들의 신에게 정성을 바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그런 하나님이 아니심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바울사도가 그리스 아테네에서 복음을 전한 내용과 엘리사가 나아만의 선물을 받지 않는 것과 같은 맥락의 내용입니다. 그러자 나아만이 엘리사에게 요청합니다.

 

본문 18~19절입니다. “17 나아만이 이르되 그러면 청하건대 노새 두 마리에 실을 흙을 당신의 종에게 주소서 이제부터는 종이 번제물과 다른 희생제사를 여호와 외에 다른 신에게는 드리지 아니하고 다만 여호와께 드리겠나이다 18 오직 한 가지 일이 있사오니 여호와께서 당신의 종을 용서하시기를 원하나이다 곧 내 주인께서 림몬의 신당에 들어가 거기서 경배하며 그가 내 손을 의지하시매 내가 림몬의 신당에서 몸을 굽히오니 내가 림몬의 신당에서 몸을 굽힐 때에 여호와께서 이 일에 대하여 당신의 종을 용서하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니 19 엘리사가 이르되 너는 평안히 가라 하니라 그가 엘리사를 떠나 조금 가니라

 

선물을 받지 않는 엘리사에게 이스라엘의 흙을 가지고 가서 자신은 오직 그 흙 위에서 여호와께만 번제와 희생제물을 드리겠다고 합니다. 이스라엘 땅의 흙을 가지고 간 것은 이스라엘의 하나님만 섬기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이스라엘은 단과 벧엘에서 금송아지를 섬기고 있습니다. 이러한 이스라엘을 나아만을 통하여 고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청을 합니다. 왕이 림몬의 산당에 몸을 굽힐 때에 나아만의 손을 의지하기에 그것을 용서하여 달라고 합니다. 신부 절 시키는 사람이 함께 절하듯이 그런 행위를 용서하여 달라고 합니다. 그러자 엘리사가 평안히 가라고합니다. 이를 통하여 지금 이스라엘이 상태가 어떤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산상수훈을 마치시고 제일 먼저 고쳐주신 자가 나병환자입니다. 그때 이런 말씀을 드렸습니다. 산상수훈을 통하여 자신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아니 그 속까지 온통 나병환자로 드러나야 예수님께 전적으로 고침을 요청하는 것이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래서 전신이 나병으로 퍼지면 정하다는 판단을 제사장이 하게 하였습니다(13:13). 이것은 우리의 상식으로 말이 안 되는 것입니다. 어떻게 나병이 다 퍼지면 정하게 되는 것입니까? 그것은 자신이 전신에 나병이 퍼짐으로 예수님께 나아가야 하는 것이며 그런 자를 예수님은 자신이 그 부정함을 짊어지심으로 자기에게 나아온 자를 깨끗하게 하여 주시는 것을 보여주십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방인 나아만과 같은 자가 자신의 나병을 알고서 엘리사에게 오는 것은 포로로 잡혀간 어린 소녀의 말을 들었습니다. 전에 성경의 번역은 계집종입니다. 포로로 잡혀와 종으로 집안일을 돌보는 어린 아이를 통하여 엘리사에게 나아오는 것은 그가 존귀하고 큰 용사이지만 나병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을 믿게 되는 것은 우리가 나아만처럼 나병환자임을 그것도 전신에 나병환자임을 아는 자만이 예수님을 믿게 됩니다. 이것이 우리의 힘과 능력이 아님을 나아만을 통하여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나 오늘 우리나 간에 자신의 나병이 든 모습을 나아만을 통하여 봐야 합니다. 그리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그 피 뿌림 속에 들어가야 온전한 정결함을 입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