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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상 11:1~13 무엇을 사랑하는가? 2015. 5. 3

 

자유게시판에 곽 집사님이 소개한 그레고리 비일의 예배자인가, 우상숭배자인가?라는 책 소게 읽어보셨나요? 그 중 한 단락을 인용합니다. “이 책의 핵심 주장은, 성경에 나오는 우상숭배자는 그 우상을 닮는다는 것입니다. 이 책의 원제는 우리는 우리가 숭배하는 그 대상이 된다입니다.” 우상숭배는 그 우상을 닮을 수밖에 없는 것은 그 우상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부부가 오래 살면 닮는다는 말을 합니다. 사랑하지 않아도 닮아 가는데 사랑하면 얼마나 많이 닮겠습니까? 오늘 말씀에서 솔로몬이 무엇을 사랑했는지를 봅시다.

 

11:1~5. “1 솔로몬 왕이 바로의 딸 외에 이방의 많은 여인을 사랑하였으니 곧 모압과 암몬과 에돔과 시돈과 헷 여인이라 2 여호와께서 일찍이 이 여러 백성에 대하여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그들과 서로 통혼하지 말며 그들도 너희와 서로 통혼하게 하지 말라 그들이 반드시 너희의 마음을 돌려 그들의 신들을 따르게 하리라 하셨으나 솔로몬이 그들을 사랑하였더라 3 왕은 후궁이 칠백 명이요 첩이 삼백 명이라 그의 여인들이 왕의 마음을 돌아서게 하였더라 4 솔로몬의 나이가 많을 때에 그의 여인들이 그의 마음을 돌려 다른 신들을 따르게 하였으므로 왕의 마음이 그의 아버지 다윗의 마음과 같지 아니하여 그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 온전하지 못하였으니 5 이는 시돈 사람의 여신 아스다롯을 따르고 암몬 사람의 가증한 밀곰을 따름이라

 

솔로몬 왕이 바로의 딸 외에 이방의 많은 여인을 사랑하였습니다. 이방의 여자를 사랑하지 않았지만 국가를 위하여 정략적인 결혼을 한 것이 아니라 이방의 많은 여인을 사랑하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모압과 암몬과 에돔과 시돈과 헷 여인이라고 합니다. 솔로몬의 부귀가 최고의 정점이었을 때에 정략적인 결혼을 하지 않아도 작은 나라들이 수교(修交)를 요청해 올 것입니다. 고대의 가장 중요한 국가 간 수교는 혼인으로 묶는 것입니다. 그런데 솔로몬이 오히려 적극적으로 이방 여인들을 사랑했다고 합니다.

 

솔로몬이 왜 이랬을까요? 무엇이 부족합니까? 이미 앞에서 보았습니다만 솔로몬의 부귀영화는 누구도 따라올 수 없었습니다. 여기에 권력과 지혜까지 갖추었습니다. 이런 사람이 하는 일이 무엇일까요? 계속하여 새로운 재미를 찾아 나선 것입니다. 돈과 권력이 없으면 할 수 없는 일들을 솔로몬은 자기를 즐겁게 하려고 모든 것을 다 해본 것입니다. 전도서에 이미 잘 나옵니다만 세상 사람들이 즐겁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다 해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결론은 해아래 새것이 없으며 모든 것이 헛되다는 고백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솔로몬이 헛되며 의미 없다고 하는 것들을 해 보고 싶어 합니다. 이런 마음은 하나님을 사랑함이 없는 증거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미 가나안 원주민들과 서로 통혼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통혼하면 그들의 너희의 마음을 들려 그들의 신들을 따르게 할 것이라고 율법에서 이미 말씀하셨습니다(34:15~16). 그리고 솔로몬에게도 하나님께서 친히 두 번이나 말씀하셨습니다(3:5, 왕상 9:2). 그런데 솔로몬은 여호와의 말씀보다 그들을 사랑하였습니다. 그들의 수가 얼마나 많은지 후궁이 칠백 명이며 첩이 삼백 명이라고 합니다. 이것이 좀 과장 되었다고 보기도 합니다. 그 근거는 아가서 6:8절에서 왕비가 육십 명이요 후궁이 팔십 명이요 시녀가 무수하다는 말씀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숫자도 어마어마하게 많은 것입니다. 이들을 사랑하였기에 그들을 닮아간 것입니다. 그래서 그 사랑하는 여인들이 섬기는 신들을 따라간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무엇을 사랑하고 누구를 사랑합니까? 그 사람이 사랑하는 것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사람을 사귀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사람이 무엇을 말하고 무엇을 추구하는지 조금만 이야기를 해 보면 다 드러납니다. 영적인 유익이 없는 공허한 대화만 오고가는데도 그 자리에 앉아있다는 것은 자기 속에도 그것들을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사람의 눈치를 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영적인 유익이 없다면 일어서야 합니다. 솔로몬의 이런 이야기들을 보면서 오늘 우리는 무엇을 사랑하는지 돌아보라는 것입니다.

 

솔로몬 왕이 바로의 딸 외에 이방의 많은 여인을 사랑하였습니다. 이방의 여자를 사랑하지 않았지만 국가를 위하여 정략적인 결혼을 한 것이 아니라 이방의 많은 여인을 사랑하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모압과 암몬과 에돔과 시돈과 헷 여인이라고 합니다. 솔로몬의 부귀가 최고의 정점이었을 때에 정략적인 결혼을 하지 않아도 작은 나라들이 수교(修交)를 요청해 올 것입니다. 고대의 가장 중요한 국가 간 수교는 혼인으로 묶는 것입니다. 그런데 솔로몬이 오히려 적극적으로 이방 여인들을 사랑했다고 합니다.

 

솔로몬이 왜 이랬을까요? 무엇이 부족합니까? 이미 앞에서 보았습니다만 솔로몬의 부귀영화는 누구도 따라올 수 없었습니다. 여기에 권력과 지혜까지 갖추었습니다. 이런 사람이 하는 일이 무엇일까요? 계속하여 새로운 재미를 찾아 나선 것입니다. 돈과 권력이 없으면 할 수 없는 일들을 솔로몬은 자기를 즐겁게 하려고 모든 것을 다 해본 것입니다. 전도서에 이미 잘 나옵니다만 세상 사람들이 즐겁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다 해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결론은 해아래 새것이 없으며 모든 것이 헛되다는 고백이었습니다.

 

6~8. “6 솔로몬이 여호와의 눈앞에서 악을 행하여 그의 아버지 다윗이 여호와를 온전히 따름 같이 따르지 아니하고 7 모압의 가증한 그모스를 위하여 예루살렘 앞 산에 산당을 지었고 또 암몬 자손의 가증한 몰록을 위하여 그와 같이 하였으며 8 그가 또 그의 이방 여인들을 위하여 다 그와 같이 한지라 그들이 자기의 신들에게 분향하며 제사하였더라

 

솔로몬이 여호와 앞에 악을 행한 것이 이방여인을 사랑하고 이방의 신들에게 분향하며 제사하였습니다. 이방의 신전을 예루살렘 앞산에 세웠습니다. 여호와의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 앞에 산당을 지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된 것은 그의 아버지 다윗이 여호와를 온전히 따름 같이 따르지 않았다고 합니다. 4절에서 그 아버지의 마음과 같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다윗도 많은 아내가 있었지만 간음하고 살인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솔로몬과 다윗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절대적인 평가로 보면 솔로몬이나 다윗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둘 다 죄인입니다. 그런데 다윗의 마음이란 하나님의 책망을 받고서 회개한 것입니다. 그 회개란 상한마음입니다.

 

시편 51:16~19절입니다. “16 주께서는 제사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드렸을 것이라 주는 번제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나이다 17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 18 주의 은택으로 시온에 선을 행하시고 예루살렘 성을 쌓으소서 19 그 때에 주께서 의로운 제사와 번제와 온전한 번제를 기뻐하시리니 그 때에 그들이 수소를 주의 제단에 드리리이다

 

다윗이 간음하고 살인한 후에 나단 선지자의 책망을 받고서 나온 찬송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제사와 번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고 합니다.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않으시는 것을 다윗이 알았습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주의 은택으로 시온에 선을 행하시고 예루살렘 성을 쌓아달라고 하는 것은 오직 주의 은택만이 성도의 소망임을 안 것입니다. 그런데 19절에서 그러면 의로운 제사와 번제와 온전한 번제를 기뻐하시고 수소를 주의 제단에 드린다는 말씀이 무엇입니까? 다시 제사를 드린다는 것이 아니라 주의 성령이 임하면 자기의 죄와 비참함을 알고 예수님을 믿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의로운 제사와 온전한 번제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이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10:1~10절입니다. “1 율법은 장차 올 좋은 일의 그림자일 뿐이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나 온전하게 할 수 없느니라 2 그렇지 아니하면 섬기는 자들이 단번에 정결하게 되어 다시 죄를 깨닫는 일이 없으리니 어찌 제사 드리는 일을 그치지 아니하였으리요 3 그러나 이 제사들에는 해마다 죄를 기억하게 하는 것이 있나니 4 이는 황소와 염소의 피가 능히 죄를 없이 하지 못함이라 5 그러므로 주께서 세상에 임하실 때에 이르시되 하나님이 제사와 예물을 원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나를 위하여 한 몸을 예비하셨도다 6 번제와 속죄제는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7 이에 내가 말하기를 하나님이여 보시옵소서 두루마리 책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것과 같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셨느니라 8 위에 말씀하시기를 주께서는 제사와 예물과 번제와 속죄제는 원하지도 아니하고 기뻐하지도 아니하신다 하셨고 (이는 다 율법을 따라 드리는 것이라) 9 그 후에 말씀하시기를 보시옵소서 내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셨으니 그 첫째 것을 폐하심은 둘째 것을 세우려 하심이라 10 이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지금까지 드린 말씀의 확정입니다. 그런데도 오늘날 예배를 마치 제사처럼 생각합니다. 그래서 용어도 새벽 제단을 쌓는다고 합니다. 예배당에 가는 것을 주의 제단에 간다고 합니다. 참으로 큰일 날 소리들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의 몸을 단번에 영원한 제사로 드리신 것을 무효화 하는 말들입니다. 그러니 그런 전통에 따른 말들 하나하나도 복음으로 다시 점검하여 사용하셔야 합니다. 이어지는 말씀을 봅니다.

 

히브리서 10:11~18절입니다. “11 제사장마다 매일 서서 섬기며 자주 같은 제사를 드리되 이 제사는 언제나 죄를 없게 하지 못하거니와 12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13 그 후에 자기 원수들을 자기 발등상이 되게 하실 때까지 기다리시나니 14 그가 거룩하게 된 자들을 한 번의 제사로 영원히 온전하게 하셨느니라 15 또한 성령이 우리에게 증언하시되 16 주께서 이르시되 그 날 후로는 그들과 맺을 언약이 이것이라 하시고 내 법을 그들의 마음에 두고 그들의 생각에 기록하리라 하신 후에 17 또 그들의 죄와 그들의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하셨으니 18 이것들을 사하셨은즉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 드릴 것이 없느니라

 

이 내용을 다윗은 자신의 범죄와 용서를 통하여 알았던 것입니다. 물론 주의 영으로 인하여 알게 되었기에(벧전 1:11) 주께서 원하시는 것이 상한 심령임을 말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다윗의 마음입니다. 이 마음과 같지 않으면 아무리 성전을 화려하게 짓고 그 앞에서 헤아릴 수도 없는 제물을 드려도 아무 소용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이 땅의 교회의 현실은 다윗의 마음을 원하는 것이 솔로몬의 부귀영화를 원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이방여인을 사랑하는 간음이라는 말씀입니다.

 

9~13. “9 솔로몬이 마음을 돌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떠나므로 여호와께서 그에게 진노하시니라 여호와께서 일찍이 두 번이나 그에게 나타나시고 10 이 일에 대하여 명령하사 다른 신을 따르지 말라 하셨으나 그가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지 않았으므로 11 여호와께서 솔로몬에게 말씀하시되 네게 이러한 일이 있었고 또 네가 내 언약과 내가 네게 명령한 법도를 지키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반드시 이 나라를 네게서 빼앗아 네 신하에게 주리라여호와 하나님께서 두 번이나 솔로몬에게 경고하셨지만 그가 마음을 돌이키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그 나라를 빼앗아 네 신하에게 줄 것이라고 합니다.

 

12~13. “12 그러나 네 아버지 다윗을 위하여 네 세대에는 이 일을 행하지 아니하고 네 아들의 손에서 빼앗으려니와 13 오직 내가 이 나라를 다 빼앗지 아니하고 내 종 다윗과 내가 택한 예루살렘을 위하여 한 지파를 네 아들에게 주리라 하셨더라

 

당장이라도 왕위를 빼앗고 나라를 망하게 하여도 할 말이 없는 솔로몬이지만 다윗과 여호와께서 택한 예루살렘을 위하여 한 지파를 네 아들에게 줄 것이라고 합니다. 이로 인하여 나라가 솔로몬 사후에 나누어집니다. 솔로몬의 최고의 부귀영화의 자리에서 그 마음이 무엇을 사랑했는지가 드러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평소에 원하는 세상의 것들로 부족함이 없게 되는 그 상태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 속한 것을 사랑하는 탐심이라는 우상숭배입니다. 이런 모습을 어떻게 심판하시는지 선지자를 통하여 보겠습니다.

 

이사야 2:5~9절입니다. “5 야곱 족속아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빛에 행하자 6 주께서 주의 백성 야곱 족속을 버리셨음은 그들에게 동방 풍속이 가득하며 그들이 블레셋 사람들 같이 점을 치며 이방인과 더불어 손을 잡아 언약하였음이라 7 그 땅에는 은금이 가득하고 보화가 무한하며 그 땅에는 마필이 가득하고 병거가 무수하며 8 그 땅에는 우상도 가득하므로 그들이 자기 손으로 짓고 자기 손가락으로 만든 것을 경배하여 9 천한 자도 절하며 귀한 자도 2)굴복하오니 그들을 용서하지 마옵소서

 

주께서 야곱 족속을 버리신 이유는 이방의 풍속이 가득하며 그들과 언약하였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7절을 보시면 솔로몬 시대를 말하고 있습니다. 은금이 가득하고 보화가 무한하며 그 땅에 마필이 가득하고 병거가 무수하다고 합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솔로몬보다 훨씬 후대의 사람이지만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이 추구하는 바가 솔로몬의 그 시대와 동일하다고 보는 것입니다. 당연히 오늘 이 시대와도 동일합니다. 그렇게 부국강병을 세상의 것들로 추구한 결과 그 땅에 우상이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그 우상을 경배하며 천한다고 절하며 귀한 자도 굴복하기 그들을 용서하지 말아달라고 간구합니다. 이것이 선지자의 기도입니다. 엘리야도 36개월 동안 비가 오지 않도록 기도하였습니다. 우상숭배의 땅에 비가 오는 것은 언약대로 시행되지 않는 것이기에 여호와께 기도하여 비가 오지 않게 한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의 예수님 외에 다른 것으로 가는 것을 보고 이렇게 기도하시겠습니까? 어떤 분은 남편이 예수님을 알기 위하여 남편의 사업이 망하더라도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다고 기도를 했는데 정말 사업이 어려워지니 겁이 나더라는 말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날이 있습니다.

 

이사야 2:10~22절입니다. “10 너희는 바위틈에 들어가며 진토에 숨어 여호와의 위엄과 그 광대하심의 영광을 피하라 11 그 날에 눈이 높은 자가 낮아지며 교만한 자가 굴복되고 여호와께서 홀로 높임을 받으시리라 12 대저 만군의 여호와의 날이 모든 교만한 자와 거만한 자와 자고한 자에게 임하리니 그들이 낮아지리라 13 또 레바논의 높고 높은 모든 백향목과 바산의 모든 상수리나무와 14 모든 높은 산과 모든 솟아 오른 작은 언덕과 15 모든 높은 망대와 모든 견고한 성벽과 16 다시스의 모든 배와 모든 아름다운 조각물에 임하리니 17 그 날에 자고한 자는 굴복되며 교만한 자는 낮아지고 여호와께서 홀로 높임을 받으실 것이요 18 우상들은 온전히 없어질 것이며 19 사람들이 암혈과 토굴로 들어가서 여호와께서 땅을 진동시키려고 일어나실 때에 그의 위엄과 그 광대하심의 영광을 피할 것이라 20 사람이 자기를 위하여 경배하려고 만들었던 은 우상과 금 우상을 그 날에 두더지와 박쥐에게 던지고 21 암혈과 험악한 바위 틈에 들어가서 여호와께서 땅을 진동시키려고 일어나실 때에 그의 위엄과 그 광대하심의 영광을 피하리라 22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그의 호흡은 코에 있나니 셈할 가치가 어디 있느냐이렇게 분명한 말씀이 이미 선포되었습니다. 그런데도 우상을 따라 가시겠습니까? 그 결국이 어떻게 되는지 말씀을 봅니다.

 

요한계시록 6:9~17절입니다. “9 다섯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보니 하나님의 말씀과 그들이 가진 증거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제단 아래에 있어 10 큰 소리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고 참되신 대주재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갚아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 하나이까 하니 11 각각 그들에게 흰 두루마기를 주시며 이르시되 아직 잠시 동안 쉬되 그들의 동무 종들과 형제들도 자기처럼 죽임을 당하여 그 수가 차기까지 하라 하시더라 12 내가 보니 여섯째 인을 떼실 때에 큰 지진이 나며 해가 검은 털로 짠 상복 같이 검어지고 달은 온통 피 같이 되며 13 하늘의 별들이 무화과나무가 대풍에 흔들려 설익은 열매가 떨어지는 것 같이 땅에 떨어지며 14 하늘은 두루마리가 말리는 것 같이 떠나가고 각 산과 섬이 제 자리에서 옮겨지매 15 땅의 임금들과 왕족들과 장군들과 부자들과 강한 자들과 모든 종과 자유인이 굴과 산들의 바위 틈에 숨어 16 산들과 바위에게 말하되 우리 위에 떨어져 보좌에 앉으신 이의 얼굴에서와 그 어린 양의 진노에서 우리를 가리라 17 그들의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능히 서리요 하더라

 

어린 양의 진노의 날이 이르기 전에 성도는 이 세상에서 목 베임을 당합니다. 목 베임을 당한다는 것은 내가 주인 되어 살면서 나를 사랑하면서 살았던 것들이 날아가고 예수님이 나의 머리가 되시고 주인이 되어서 사시는 것입니다. 이 일이 성도에게 일어남으로 내가 사랑하는 것들이 부수어지고 하나님의 사랑이 내 안에 담기는 것이 성도가 가는 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하나님의 사랑의 확증입니다(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