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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상 12:1~24 말씀을 이루심 2015. 5. 17

 

오늘 본문은 솔로몬이 죽고 나서 이스라엘 나라가 남북으로 분리되는 내용입니다. 나라가 나누어지는 상황에서 인간들 각자의 욕망들이 어떻게 분출되는지를 보게 됩니다. 이러한 욕망들은 결국 자기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행동하게 됩니다. 나에게 이익이면 선으로 보고 손해가 되면 악으로 보고 행동하는 것입니다.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면서 행동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러한 인간들 안에서 자신의 뜻을 그대로 이루어가고 계십니다. 솔로몬의 범죄로 인하여 나라가 분리되리라는 말씀을 하신 여호와께서 그렇게 만들어 가십니다. 이를 통하여 인간의 죄가 무엇인지 드러내면서 동시에 하나님의 뜻이 어떠한지를 보여주십니다.

 

1~4. “1 르호보암이 세겜으로 갔으니 이는 온 이스라엘이 그를 왕으로 삼고자 하여 세겜에 이르렀음이더라 2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이 전에 솔로몬 왕의 얼굴을 피하여 애굽으로 도망하여 있었더니 이제 그 소문을 듣고 여전히 애굽에 있는 중에 3 무리가 사람을 보내 그를 불렀더라 여로보암과 이스라엘의 온 회중이 와서 르호보암에게 말하여 이르되 4 왕의 아버지가 우리의 멍에를 무겁게 하였으나 왕은 이제 왕의 아버지가 우리에게 시킨 고역과 메운 무거운 멍에를 가볍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우리가 왕을 섬기겠나이다

 

솔로몬이 죽고 르호보암을 왕으로 세웠습니다(왕상11:43). 그런데 왜 세겜에 가서 온 이스라엘이 그를 왕으로 삼고자 한 것입니까? 세겜은 나중에 북 이스라엘의 수도가 됩니다. 유다 지파 외에 온 이스라엘은 자신들이 왕을 세울 권리가 있다고 본 것입니다. 그 이유는 다윗에 유다지파 중심으로 헤브론에 있을 때에 사울이 죽었습니다. 그러자 사울을 따르던 이스라엘의 장로들이 다윗에게 와서 언약을 맺고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으로 삼은 것입니다(삼하5:3). 그러므로 유다지파 외의 사람들 중심으로 르호보암을 왕으로 인정하되 솔로몬 왕이 우리에게 시킨 고역과 메운 무거운 멍에를 가볍게 하면 우리가 왕을 세우겠다고 합니다.

 

이러한 하는 중심에는 솔로몬이 죽이려고 한 여로보암이 있습니다. 솔로몬이 죽고 나자 솔로몬이 죽이려고 했던 여로보암을 애굽에서 불러 왔습니다. 요즈음 식으로 말하면 민주화 운동을 하다가 외국으로 망명 갔다가 대통령선거 한다고 하니 모셔온 것입니다. 이 여로보암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르호보암에게 우리의 요구를 들어주면 왕으로 인정하겠다고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언약하신 그 왕위를 거부하는 행위가 됩니다. 물론 솔로몬이 과중한 노역을 시키고 세금을 많이 거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솔로몬이 왕궁과 성전을 지을 때는 백성들의 원망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함께 기뻐하였습니다(왕상8:66).

 

그러나 솔로몬이 이방인 아내들을 위하여 궁을 지어주고 이방인 아내들이 들여온 신들을 위하여 신전을 지어주면서 노역과 세금을 많이 매긴 것입니다. 이러한 솔로몬의 잘못으로 인하여 나라가 나누어지지만 이스라엘 백성들도 이런 기회를 통하여 자기들의 요구를 주장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르호보암이 즉답을 하지 않고 삼일 후에 오라고 합니다. 이러한 주장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참모들과 의논을 해 보기 위한 것입니다.

 

5~11. “5 르호보암이 대답하되 갔다가 삼 일 후에 다시 내게로 오라 하매 백성이 가니라 6 르호보암 왕이 그의 아버지 솔로몬의 생전에 그 앞에 모셨던 노인들과 의논하여 이르되 너희는 어떻게 충고하여 이 백성에게 대답하게 하겠느냐 7 대답하여 이르되 왕이 만일 오늘 이 백성을 섬기는 자가 되어 그들을 섬기고 좋은 말로 대답하여 이르시면 그들이 영원히 왕의 종이 되리이다 하나 8 왕이 노인들이 자문하는 것을 버리고 자기 앞에 모셔 있는 자기와 함께 자라난 어린 사람들과 의논하여 9 이르되 너희는 어떻게 자문하여 이 백성에게 대답하게 하겠느냐 백성이 내게 말하기를 왕의 아버지가 우리에게 메운 멍에를 가볍게 하라 하였느니라 10 함께 자라난 소년들이 왕께 아뢰어 이르되 이 백성들이 왕께 아뢰기를 왕의 부친이 우리의 멍에를 무겁게 하였으나 왕은 우리를 위하여 가볍게 하라 하였은즉 왕은 대답하기를 내 새끼 손가락이 내 아버지의 허리보다 굵으니 11 내 아버지께서 너희에게 무거운 멍에를 메게 하였으나 이제 나는 너희의 멍에를 더욱 무겁게 할지라 내 아버지는 채찍으로 너희를 징계하였으나 나는 전갈 채찍으로 너희를 징계하리라 하소서

 

자문 결과 두 가지 제안이 나왔습니다. 솔로몬의 참모였던 노인들은 솔로몬 때 세금을 많이 거두고 노역을 시킨 것을 아는 자들입니다. 그래서 백성들을 섬기는 왕이 되라고 합니다. 그러면 백성들이 영원히 왕의 종이 되리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말을 르호보암이 버립니다. 그 이유는 왕이란 권세를 부리는 자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이방 나라의 왕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자기와 함께 자란 자들은 더 가중한 노역과 세금을 부과할 것이라고 말하라고 합니다. 이들의 모습을 보면 재벌 2세를 닮았습니다. 고생하지 않고 부와 권력을 가진 자들은 가난한 사람들의 사정을 알지 못합니다. 510일 이지(EG)그룹의 노동자 한 사람이 유서를 남기고 죽었습니다. 그 내용은 박지만 회장에게 당신이 기업을 아느냐며 당신이 일해서 그 어마어마한 재산을 모았느냐고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진정 인간다운 기업가다운 경영인이 되어달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르호보암이라면 누구의 자문을 받아들이겠습니까?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는 세상의 나라와 다른 제사장 나라의 역할을 해야 합니다. 어느 나라에도 없는 제사장 나라라는 것은 자기들의 힘과 권력으로 유지되는 나라가 아니라 대신 희생하는 자로 인하여 살아가는 것을 보여야 하는 나라입니다. 그런데 제사장 나라의 역할을 하지 못합니다. 세상 나라와 같아졌기에 나라가 망하게 됩니다. 그러나 망한 것이 끝이 아니라 참된 제사장의 나라가 어떤 것인지 예수님께서 보여주십니다.

 

12~14. “12 삼 일 만에 여로보암과 모든 백성이 르호보암에게 나아왔으니 이는 왕이 명령하여 이르기를 삼 일 만에 내게로 다시 오라 하였음이라 13 왕이 포학한 말로 백성에게 대답할새 노인의 자문을 버리고 14 어린 사람들의 자문을 따라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는 너희의 멍에를 무겁게 하였으나 나는 너희의 멍에를 더욱 무겁게 할지라 내 아버지는 채찍으로 너희를 징계하였으나 나는 전갈 채찍으로 너희를 징치하리라 하니라 15 왕이 이같이 백성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으니 이 일은 여호와께로 말미암아 난 것이라 여호와께서 전에 실로 사람 아히야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에게 하신 말씀을 이루게 하심이더라

 

르호보암이 노인들의 자문을 버리고 어린 사람들의 자문을 따라 그들에게 말합니다. 르호보암이 백성의 말을 듣지 않고 솔로몬보도 더욱 힘들게 권력으로 다스리겠다는 말을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일이 여호와께로 말미암아 난 것이라고 합니다. 전에 실로 사람 아히야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에게 하신 말씀을 이루게 하신 것입니다. 솔로몬처럼 하나님의 언약을 배반하면 나라가 이렇게 된다는 것을 미리 말씀하신 대로 지금 이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르호보암은 자기가 이런 결정을 하는 것이 자기 이익을 따른 결정이라고 해도 이런 일이 일어나도록 하신 것은 여호와 하나님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심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나라와 솔로몬이나 르호보암이나 또 여로보암을 앞세운 사람들의 각자의 나라개념을 책망하시는 것입니다.

 

16. 온 이스라엘이 자기들의 말을 왕이 듣지 아니함을 보고 왕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가 다윗과 무슨 관계가 있느냐 이새의 아들에게서 받을 유산이 없도다 이스라엘아 너희의 장막으로 돌아가라 다윗이여 이제 너는 네 집이나 돌아보라 하고 이스라엘이 그 장막으로 돌아가니라르호보암을 부인하는 것이 아니라 다윗을 부인하고 있습니다. 르호보암이 다윗의 손자이기는 하지만 다윗에게서 받을 유산이 없다고 한 것은 다윗 언약을 이해하지 못한 모습입니다. 솔로몬과 르호보암과 여로보암이 다 다윗의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긍휼입니다. 그런데 지금 긍휼은 간 곳 없고 새로운 왕이 나오면서 자기들의 이해타산에만 빠릅니다. 그래서 다윗과 무슨 관계가 있느냐고 나옵니다. 이런 모습은 세바의 반란과 비슷합니다.

 

사무엘하 20:1~2. “1 마침 거기에 불량배 하나가 있으니 그의 이름은 세바인데 베냐민 사람 비그리의 아들이었더라 그가 나팔을 불며 이르되 우리는 다윗과 나눌 분깃이 없으며 이새의 아들에게서 받을 유산이 우리에게 없도다 이스라엘아 각각 장막으로 돌아가라 하매 2 이에 온 이스라엘 사람들이 다윗 따르기를 그치고 올라가 비그리의 아들 세바를 따르나 유다 사람들은 그들의 왕과 합하여 요단에서 예루살렘까지 따르니라

 

다윗의 압살롬의 반역이 실패로 돌아가고 다윗이 궁으로 돌아오는 중에 세바가 나팔을 불며 백성들을 선동합니다. 우리는 다윗가 나눌 분깃이 없으며 이새의 아들에게사 받을 유산이 우리에게 없다고 하면서 각각 장막으로 돌아가라고 합니다. 그러자 온 이스라엘이 다윗 따르기를 그치고 세바를 따라 갑니다. 이미 북 이스라엘의 나누어질 조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언약하신 것에는 관심이 없고 우리가 남이가 하는 방식으로 이합집산을 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오늘날 교회도 분쟁이 일어나면 반드시 이런 모습으로 나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중심이 모아지는 것이 아니라 누가 우리 편이냐는 편 가름이 나오게 됩니다. 특히 교회에서의 편 가름은 끝이 없습니다. 항상 자기편이 진리편이라고 우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17~20. “17 그러나 유다 성읍들에 사는 이스라엘 자손에게는 르호보암이 그들의 왕이 되었더라 18 르호보암 왕이 역군의 감독 아도람을 보냈더니 온 이스라엘이 그를 돌로 쳐죽인지라 르호보암 왕이 급히 수레에 올라 예루살렘으로 도망하였더라 19 이에 이스라엘이 다윗의 집을 배반하여 오늘까지 이르렀더라 20 온 이스라엘이 여로보암이 돌아왔다 함을 듣고 사람을 보내 그를 공회로 청하여 온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았으니 유다 지파 외에는 다윗의 집을 따르는 자가 없으니라

 

유다 성읍들에 사는 이스라엘 자손에게는 여로보암이 그들의 왕이 됩니다. 이스라엘 자손이란 벌써 유다지파와 분리된 이스라엘의 10지파를 말합니다. 이런 일을 보고서 르호보암이 역군의 감독 아도람을 보냅니다. 역군이란 백성들을 징집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온 이스라엘이 그를 돌로 쳐 죽입니다. 이것을 보고 르호보암이 급히 수레에 올라 예루살렘으로 도망을 갑니다. 솔로몬시대 때 노역과 세금으로 고생을 했는데 그 왕이 싫다고 분리되어 나간 자들에게 역군을 보냈으니 이들의 분노로 돌로 친 것입니다. 그러자 온 이스라엘이 여로보암을 왕으로 삼고 유다 지파 외에는 다윗의 집을 따라는 자가 없었다고 합니다. 유다 지파는 물론 다윗의 지파이기에 함께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베냐민 지파가 유다와 함께 하게 되는 것은 지역적인 관계도 있습니다만 이렇게 되는 것도 하나님께서 이미 말씀하신 대로 일어난 일입니다(11:36).

21~24. “21 르호보암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유다 온 족속과 베냐민 지파를 모으니 택한 용사가 십팔만 명이라 이스라엘 족속과 싸워 나라를 회복하여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에게 돌리려 하더니 22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님의 사람 스마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23 솔로몬의 아들 유다 왕 르호보암과 유다와 베냐민 온 족속과 또 그 남은 백성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24 여호와의 말씀이 너희는 올라가지 말라 너희 형제 이스라엘 자손과 싸우지 말고 각기 집으로 돌아가라 이 일이 나로 말미암아 난 것이라 하셨다 하라 하신지라 그들이 여호와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따라 돌아갔더라

 

르호보암이 이스라엘 족속과 싸우기 위하여 군대를 모집합니다. 그러나 베냐민 지파까지 포함하여 십팔만 명을 소집하여 온 이스라엘을 르호보암에게로 돌리려고 합니다. 이때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님의 사람 스마야에게 임합니다. 북 이스라엘과 싸우지 말고 각기 집으로 돌아가라고 합니다. 이 일이 나로 말미암아 난 것이라고 합니다. 나라가 나누어지는 것인 여호와의 말씀대로 이루어진 일이기에 이것을 다시 봉합하여 하나로 만들지 말고 돌아가라고 합니다. 이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따라 돌아갔다고 합니다. 그러면 이들이 여호와의 말씀을 듣고 순종을 잘 하여 이렇게 되었습니까? 이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할 수 없도록 그들의 마음을 움직인 것입니다. 이러한 일들을 통하여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계시하시려고 하시는 것입니까?

 

우리는 각자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는 자들이지만 하나님의 말씀대로만 이루어짐을 보여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위한다고 하는 생각들이 르호보암이나 여로보암이나 그를 따르는 백성들이나 같습니다. 결국 나의 만족과 유익을 위하여 이합집산을 하는 것이지 여호와의 말씀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나라는 어떻게 이루어내시는 것입니까? 솔로몬이나 르호보암이나 여로보암처런 자기 권력으로 백성을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백성을 섬기는 왕이 오셔야 합니다. 다윗은 역시 자기 힘으로 군림하려다가 매를 맞고서 상한 심령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긍휼을 입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는 긍휼의 나라이지 힘의 나라가 아닙니다. 세상의 권력으로 다스리는 나라가 결코 아닙니다.

 

마태복음 20:20~28. “20 그 때에 세베대의 아들의 어머니가 그 아들들을 데리고 예수께 와서 절하며 무엇을 구하니 21 예수께서 이르시되 무엇을 원하느냐 이르되 나의 이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명하소서 22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내가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그들이 말하되 할 수 있나이다 23 이르시되 너희가 과연 내 잔을 마시려니와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내가 주는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누구를 위하여 예비하셨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 24 열 제자가 듣고 그 두 형제에 대하여 분히 여기거늘 25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그들을 임의로 주관하고 그 고관들이 그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26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아야 하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27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28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지금까지 구약의 르호보암과 여로보암의 이야기들의 결론이며 해석이 이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어떤지를 보여줍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은 아직 르호보암이나 여로보암의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한 자들입니다. 이들에게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가 어떤 나라인지 말씀하시고 그 말씀하신 바를 이루어 내신 것이 십자가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오신 것은 섬김을 받으려고 하시는 것이 아니라 섬기려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기 위하여 오신 것입니다. 이 나라의 백성들이라면 다 섬기는 자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누가복음 17:3~10. “3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만일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경고하고 회개하거든 용서하라 4 만일 하루에 일곱 번이라도 네게 죄를 짓고 일곱 번 네게 돌아와 내가 회개하노라 하거든 너는 용서하라 하시더라 5 사도들이 주께 여짜오되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 하니 6 주께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라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어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 7 너희 중 누구에게 밭을 갈거나 양을 치거나 하는 종이 있어 밭에서 돌아오면 그더러 곧 와 앉아서 먹으라 말할 자가 있느냐 8 도리어 그더러 내 먹을 것을 준비하고 띠를 띠고 내가 먹고 마시는 동안에 수종들고 너는 그 후에 먹고 마시라 하지 않겠느냐 9 명한 대로 하였다고 종에게 감사하겠느냐 10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

 

형제가 죄를 범하면 경고하고 회개하면 용서하라고 합니다. 하루에 일곱 번이라도 죄를 짓고 일곱 번 네게 돌아와 회개하노라고 하면 용서하라고 합니다. 일곱 번이란 완전한 용서를 말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인간에게 불가능합니다. 우리는 한번 두 번 헤아리고 있으면 기억을 하고 있기에 용서 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용서는 기억조차 하지 않으시는 완전한 용서입니다(31:34, 8:12, 10:17). 이 말씀을 들은 사도들이 깜짝 놀라서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여 달라고 합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죽도록 충성하고서도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이 무익한 종이라고 하는 것이 믿음이라는 말씀입니다.

 

이 믿음이 있습니까? 내가 죽도록 충성하고서도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인 무익한 종이라고 하는 곳이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죽도록 충성하기는커녕 하나님의 나라는 일한 것이 없이 은혜로 들어가는 나라라고 말하면서 자기를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고 쾌락 사랑하기를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고 있다면 이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와 상관이 없는 사람입니다. 항상 배우지만 진리의 지식에 이르지 못하는 자들입니다(딤후3:1~7). 그러므로 우리는 더욱 믿음을 더하여 달라고 기도하여야 합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이기에 정말 믿음의 선물을 받으면 자신이 충성하고서도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인 무익한 종이라는 고백이 나올 것입니다. 이런 고백을 통하여 세상 나라와 다른 하나님의 나라를 맛보게 됩니다. 이러한 내용들이 하나님께서 자신의 말씀을 친히 이루어내시는 결과로 자기 백성에게 부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