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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상 13장 여호와의 말씀대로 2015. 6. 7

열왕기상 13장은 여로보암의 죄를 책망하기 위하여 여호와의 말씀이 유다의 한 선지자에게 임합니다. 여호와의 말씀대로 북 이스라엘의 여로보암에게 가서 그 죄를 책망하고 돌아오다가 벧엘의 늙은 선지자의 말을 듣고 떡과 물을 먹은 후에 죽임을 당하는 일이 일어납니다. 이러한 일들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무엇을 말씀하시려고 하시는지 보아야 합니다. 이렇게 보려면 그 시대에 무엇을 말씀하셨는지를 보아야 하고 또한 오늘 이 시대에 우리에게 이 말씀은 무엇을 계시하고 있는지를 보아야 합니다.

 

1~10절을 봅니다. “1 보라 그 때에 하나님의 사람이 여호와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유다에서부터 벧엘에 이르니 마침 여로보암이 제단 곁에 서서 분향하는지라 2 하나님의 사람이 제단을 향하여 여호와의 말씀으로 외쳐 이르되 제단아 제단아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다윗의 집에 요시야라 이름 하는 아들을 낳으리니 그가 네 위에 분향하는 산당 제사장을 네 위에서 제물로 바칠 것이요 또 사람의 뼈를 네 위에서 사르리라 하셨느니라 하고 3 그 날에 그가 징조를 들어 이르되 이는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징조라 제단이 갈라지며 그 위에 있는 재가 쏟아지리라 하매 4 여로보암 왕이 하나님의 사람이 벧엘에 있는 제단을 향하여 외쳐 말함을 들을 때에 제단에서 손을 펴며 그를 잡으라 하더라 그를 향하여 편 손이 말라 다시 거두지 못하며 5 하나님의 사람이 여호와의 말씀으로 보인 징조대로 제단이 갈라지며 재가 제단에서 쏟아진지라 6 왕이 하나님의 사람에게 말하여 이르되 청하건대 너는 나를 위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 은혜를 구하여 내 손이 다시 성하게 기도하라 하나님의 사람이 여호와께 은혜를 구하니 왕의 손이 다시 성하여 전과 같이 되니라 7 왕이 하나님의 사람에게 이르되 나와 함께 집에 가서 쉬라 내가 네게 예물을 주리라 8 하나님의 사람이 왕께 대답하되 왕께서 왕의 집 절반을 내게 준다 할지라도 나는 왕과 함께 들어가지도 아니하고 이곳에서는 떡도 먹지 아니하고 물도 마시지 아니하리니 9 이는 곧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명령하여 이르시기를 떡도 먹지 말며 물도 마시지 말고 왔던 길로 되돌아가지 말라 하셨음이니이다 하고 10 이에 다른 길로 가고 자기가 벧엘에 오던 길로 되돌아가지도 아니하니라

 

이 본문에서 여호와의 말씀이라는 표현이 여섯 번이나 나옵니다. 여호와의 말씀으로 유다의 선지자가 북 이스라엘에게 올라가서 여호와의 말씀으로 외칩니다. 그 말씀의 내용은 다윗의 집에 요시야라 이름 하는 아들을 낳을 것인데 그가 여로보암이 지금 제단에 분향하는 그 제단 위에 그 제사장들을 제물로 바칠 것이며 사람의 뼈를 네 위에 사를 것이라고 합니다. 이 예언은 무려 삼백년 뒤의 일입니다. 여호와의 말씀대로 그 재앙이 일어납니다.

 

열왕기하 23:15~16절입니다. “15 또한 이스라엘에게 범죄 하게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이 벧엘에 세운 제단과 산당을 왕이 헐고 또 그 산당을 불사르고 빻아서 가루를 만들며 또 아세라 목상을 불살랐더라 16 요시야가 몸을 돌이켜 산에 있는 무덤들을 보고 보내어 그 무덤에서 해골을 가져다가 제단 위에서 불살라 그 제단을 더럽게 하니라 이 일을 하나님의 사람이 전하였더니 그 전한 여호와의 말씀대로 되었더라

 

요시야가 모든 산당들을 파괴하며 우상을 부수는 중에 여로보암이 벧엘에 세운 단과 산당도 헐어버린 것은 여호와의 말씀대로 된 것입니다. 삼백년 뒤에 일어날 일을 선지자가 전하고 삼백년 뒤에 여호와의 말씀대로 되었습니다. 이런 말씀을 보면서 세상의 모든 일들이 주의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배당에 이렇게 보여서 가장 많은 시간을 말씀을 보고 듣는 일에 사용하는 것입니다.

 

다시 본문의 1~10절의 말씀을 봅시다. 남 유다의 선지자가 북 이스라엘의 왕에게 와서 그가 만든 벧엘의 단에서 분향하고 있는 것을 보고 여호와의 말씀대로 전하자 여로보암이 선지자를 향하여 손을 펴서 잡으라고 하자 그 손이 곧 말라버립니다. 마른 것은 혈기가 돌지 않고 굳어진 것입니다. 그러자 왕이 선지자에게 여호와께 은혜를 구하여 손이 성하게 하여 달라고 합니다. 선지자가 여호와의 은혜를 구하자 손이 성하여집니다. 이때 여로보암 왕이 자기와 함께 가면 후대하겠다고 합니다. 왕은 이런 능력자를 옆에 두는 것도 좋다고 생각한 것이니다. 그래서 예물을 주겠다고 하지만 선지는 여호와의 말씀에 떡도 먹지 말고 물도 마시지 말고 왔던 길로도 가지 말고 돌아가라고 하였다고 하면서 왕의 집 절반을 준다고 해도 가지 않는다고 단호하게 말하며 돌아섰습니다. 왕의 제안에도 단호하게 거절하였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왜 이렇게 하셨을까요? 지금 북 이스라엘이 금송아지를 섬기고 있습니다. 당연히 심판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심판을 받을 곳에서 어떤 것도 먹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시편 1:1~2절입니다. “1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2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유다의 선지자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않습니다. 북 이스라엘의 왕의 제안도 거절합니다. 그들의 길에 서지 않고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도 않고 여호와의 말씀대로 돌아옵니다. 그런데 이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본문 11~19절입니다. “11 벧엘에 한 늙은 선지자가 살더니 그의 아들들이 와서 이 날에 하나님의 사람이 벧엘에서 행한 모든 일을 그에게 말하고 또 그가 왕에게 드린 말씀도 그들이 그들의 아버지에게 말한지라 12 그들의 아버지가 그들에게 이르되 그가 어느 길로 가더냐 하니 그의 아들들이 유다에서부터 온 하나님의 사람의 간 길을 보았음이라 13 그가 그의 아들들에게 이르되 나를 위하여 나귀에 안장을 지우라 그들이 나귀에 안장을 지우니 그가 타고 14 하나님의 사람을 뒤따라가서 상수리나무 아래에 앉은 것을 보고 이르되 그대가 유다에서 온 하나님의 사람이냐 대답하되 그러하다 15 그가 그 사람에게 이르되 나와 함께 집으로 가서 떡을 먹으라 16 대답하되 나는 그대와 함께 돌아가지도 못하겠고 그대와 함께 들어가지도 못하겠으며 내가 이곳에서 그대와 함께 떡도 먹지 아니하고 물도 마시지 아니하리니 17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이르시기를 네가 거기서 떡도 먹지 말고 물도 마시지 말며 또 네가 오던 길로 되돌아가지도 말라 하셨음이로다 18 그가 그 사람에게 이르되 나도 그대와 같은 선지자라 천사가 여호와의 말씀으로 내게 이르기를 그를 네 집으로 데리고 돌아가서 그에게 떡을 먹이고 물을 마시게 하라 하였느니라 하니 이는 그 사람을 속임이라 19 이에 그 사람이 그와 함께 돌아가서 그의 집에서 떡을 먹으며 물을 마시니라

 

벧엘에 한 늙은 선지자가 살고 있습니다. 그 아들들이 이 소식을 전하자 이 늙은 선지자가 나귀를 타고 유다에서 온 하나님의 선지자를 쫓아갑니다. 상수리나무 아래에 앉아있는 선지자를 만나서 확인하고서는 자기 집으로 가서 떡을 먹자고 합니다. 그러자 이 선지자는 왕에게 거절한 것처럼 여호와의 말씀으로 단호하게 거절합니다. 그런데 이 늙은 선지자가 나도 그대와 같은 선지자라고 하면서 천사가 여호와의 말씀으로 자신에게 말했다고 하면서 그를 집으로 데리고 가서 떡을 먹이고 물을 마시게 하라고 했답니다. 그러자 그 사람이 그와 함께 돌아가서 그의 집에서 떡을 먹으며 물을 마신 것입니다. 이것은 늙은 선지자가 속인 것입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속였는지에 대한 말씀은 없습니다. 왜 늙은 선지자가 속였을까요? 그리고 늙은 선지자의 말을 유다의 선지자는 왜 들었을까요? 왕의 제안도 거절한 사람인데 왜 늙은 선지자의 말을 들었을까요? 이런 내용은 추측해 보는 것입니다. 벧엘의 선지자가 늙었다는 것은 한때 선지자 노릇을 한 적이 있는 모양입니다. 그런데 선지자란 그 사람에게서 하나님의 말씀이 주어지고 선포될 때만 선지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주어지지 않으면 선지자가 아닙니다. 그러다가 늙었는데도 여전히 사람들은 선지자로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참된 선지자라면 여로보암의 죄악을 책망해야 하는데 자신은 그렇게 하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늙음의 증거이기도 한 것입니다. 늙어 가면 혁명보다 안정적인 것을 좋아합니다. 요즈음 애 늙은이 들이 많아서 직업을 구해도 거저 공무원이나 하겠다고 합니다. 이런 사회는 늙은 사회입니다. 그런데 유다에서 온 선지자가 왕을 책망하고 기적이 일어나고 단에 깨어졌다는 소식을 듣고 눈이 번쩍 뜨인 모양입니다. 어떻게 하든지 그 선지자를 만나서 교제를 하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자기 집으로 가자고 합니다. 그러자 유다에서 온 선지자가 가지 않으려고 하니 자기도 선지자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우리가 남이가 하는 식입니다. 우리가 다 같은 선지지라고 합니다. 그러자 그 말에 넘어갑니다. 유다에서 벧엘까지 와서 돌아가는데 하루 종일 떡도 물도 마시지 못하여 상수리나무 아래서 쉬고 있는데 같은 선지자라고 하면서 여호와의 말씀이라고 하니 그 말에 넘어간 것입니다.

 

오늘도 이런 식의 사람들이 많습니다. 자신이 여호와의 계시를 받았다고 하거나,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말씀하셨다고 하거나, 꿈에서 보여주셨다고 하면서 이러 저러한 일을 하라고 하는 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제가 만나본 사람들 가운데 그런 말을 듣고 그 말대로 행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더구나 그 사람이 평소에 아주 기도도 많이 하고 경건하게 사는 사람으로 보일 때에는 더욱 잘 넘어가게 됩니다. 이럴 때에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나님께서 나에게도 말씀하시면 그렇게 하겠다고 하면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는 것을 잘 분별하셔야 합니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성경을 통하여 무엇을 증거 하는지 똑 바로 알아야 합니다. 성경을 인용한다고 해서 그것이 다 하나님의 말씀이 아닙니다. 성경을 인용하면서 얼마든지 왜곡하는 것입니다. 모든 이단들이 다 성경에서 나옵니다. 그러므로 과연 성경이 무엇을 증거 하는지 똑 바로 알아야 합니다(5:39).

 

본문 20~22절입니다. “20 그들이 상 앞에 앉아 있을 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그 사람을 데려온 선지자에게 임하니 21 그가 유다에서부터 온 하나님의 사람을 향하여 외쳐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에 네가 여호와의 말씀을 어기며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내리신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고 22 돌아와서 여호와가 너더러 떡도 먹지 말고 물도 마시지 말라 하신 곳에서 떡을 먹고 물을 마셨으니 네 시체가 네 조상들의 묘실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니라

 

함께 식사를 하는 중에 여호와의 말씀이 벧엘의 늙은 선지자에게 임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선지자란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는 자가 선지자가 됩니다. 지금 남 유다의 선지자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지 않는 것은 이제 너는 잘렸다는 것입니다. 마치 엘리 제사장에게 여호와의 말씀이 임하지 않고 사무엘에게 여호와의 말씀이 임한 것처럼 방금까지 선지자였지만 여호와의 말씀대로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잘린 것입니다. 그래서 늙은 선지자가 여호와의 말씀을 전합니다. 네게 여호와의 말씀을 어기며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내리신 명령을 지키지 않았으니 네 시체가 네 조상들의 묘실에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하였습니다.

 

본문 23~28절입니다. “23 그리고 자기가 데리고 온 선지자가 떡을 먹고 물을 마신 후에 그를 위하여 나귀에 안장을 지우니라 24 이에 그 사람이 가더니 사자가 길에서 그를 만나 물어 죽이매 그의 시체가 길에 버린바 되니 나귀는 그 곁에 서 있고 사자도 그 시체 곁에 서 있더라 25 지나가는 사람들이 길에 버린 시체와 그 시체 곁에 선 사자를 보고 그 늙은 선지자가 사는 성읍에 가서 말한지라 26 그 사람을 길에서 데리고 돌아간 선지자가 듣고 말하되 이는 여호와의 말씀을 어긴 하나님의 사람이로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하신 말씀과 같이 여호와께서 그를 사자에게 넘기시매 사자가 그를 찢어 죽였도다 하고 27 이에 그의 아들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나를 위하여 나귀에 안장을 지우라 그들이 안장을 지우매 28 그가 가서 본즉 그의 시체가 길에 버린바 되었고 나귀와 사자는 그 시체 곁에 서 있는데 사자가 시체를 먹지도 아니하였고 나귀를 찢지도 아니하였더라 29 늙은 선지자가 하나님의 사람의 시체를 들어 나귀에 실어 가지고 돌아와 자기 성읍으로 들어가서 슬피 울며 장사하되 30 곧 그의 시체를 자기의 묘실에 두고 오호라 내 형제여 하며 그를 위하여 슬피우니라 31 그 사람을 장사한 후에 그가 그 아들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죽거든 하나님의 사람을 장사한 묘실에 나를 장사하되 내 뼈를 그의 뼈 곁에 두라 32 그가 여호와의 말씀으로 벧엘에 있는 제단을 향하고 또 사마리아 성읍들에 있는 모든 산당을 향하여 외쳐 말한 것이 반드시 이룰 것임이니라

 

사자가 유다의 선지자를 찢어 죽였는데 시체를 먹지도 않고 그 선지자가 타고 간 나귀도 해치지 않고 사자가 그냥 시체 곁에 서 있는 것입니다. 참으로 기이한 일입니다. 나귀가 사자를 보고 달아나지도 않고 사자도 그 곁에 서 있는 것입니다. 이일을 여호와께서 하신 것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을 어긴 선지자를 심판하신 것입니다. 이 이야기를 늙은 선지자가 듣고서 그 시체를 나귀에 실어와서 자기 성읍에서 슬피 울며 장사합니다. 그리고 그 시체를 자기 묘실에 장사하고 자기 아들들에게 자기도 죽으면 그 선지자 곁에 장사하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가장 중요한 말이 32절입니다. 그가 여호와의 말씀으로 벧엘에 있는 제단을 향하고 또 사마리아 성읍들에 있는 모든 산당을 향하여 외쳐 말한 것이 반드시 이룰 것이라고 합니다. 이 늙은 선지자가 이제 선지자가 된 것입니다. 이 말씀대로 요시야 시대에 그 선지자가 전한 여호와의 말씀이 성취가 되었습니다. 삼백년 뒤에 요시야 왕이 벧엘을 더럽게 하는 중에 이 선지자들 이야기가 나옵니다.

 

열왕기하 23:17~20절입니다. “17 요시야가 이르되 내게 보이는 저것은 무슨 비석이냐 하니 성읍 사람들이 그에게 말하되 왕께서 벧엘의 제단에 대하여 행하신 이 일을 전하러 유다에서 왔던 하나님의 사람의 묘실이니이다 하니라 18 이르되 그대로 두고 그의 뼈를 옮기지 말라 하매 무리가 그의 뼈와 사마리아에서 온 선지자의 뼈는 그대로 두었더라 19 전에 이스라엘 여러 왕이 사마리아 각 성읍에 지어서 여호와를 격노하게 한 산당을 요시야가 다 제거하되 벧엘에서 행한 모든 일대로 행하고 20 또 거기 있는 산당의 제사장들을 다 제단 위에서 죽이고 사람의 해골을 제단 위에서 불사르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더라

 

요시야 왕이 남 유다와 벧엘의 선지자의 예언대로 벧엘의 제단에 대하여 여호와의 말씀대로 다 행한 후에 어떤 무덤의 비석을 본 것입니다. 늙은 선지자가 비석에 유다에서 온 선지자가 한 말을 기록하게 하여 세웠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요시야 왕에게 말하기를 벧엘의 제단에 대하여 행하신 이 일을 전하기 위하여 왔던 하나님의 사람 묘실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그 뼈를 그대로 두라고 합니다. 무덤의 뼈를 벧엘의 제단 위에 불사름으로 제단을 부정하게 하는데 그 과정에서 남 유다에서 온 선지자의 뼈와 늙은 선지자의 뼈는 그대로 두라고 합니다. 그 선지자들이 불순종하여 죽임을 당하였지만 그 선지자가 전한 여호와의 말씀은 그들이 뼈가 되어도 이루어진다는 여호와의 말씀의 엄중함을 보여줍니다.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여로보암은 어떻게 합니까? 자기 손이 말랐다가 회복되고 제단이 깨어짐을 목격합니다. 그리고 그 선지자가 이스라엘 땅에서 떡과 물을 먹고 마심으로 사자에게 찢겨 죽은 소식을 틀림없이 다 들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악한 길에서 돌이키지 아니하고 다시 일반 백성을 산당의 제사장으로 삼되 누구든지 자원하면 그 사람을 산당의 제사장으로 삼았으므로 이 일이 여로보암 집에 죄가 되어 그 집이 땅 위에 끊어져 멸망하게 되었습니다.

 

여로보암이 유다에서 온 선지자가 우상 숭배하는 이스라엘 땅에서 떡을 먹고 물을 마셨다고 사자에게 찢겨 죽는 모습을 보면서 회개를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 집안이 멸망합니다. 황금송아지를 벧엘과 단에 만들어놓고서 제사를 지내면서 자기를 위한 종교를 만든 것입니다. 이름은 애굽에서 구원하여 내신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하지만 그 종교는 결국 자기를 위한 종교입니다. 자기의 왕권을 굳건하게 하는 우상숭배의 제단일 뿐입니다. 그것을 책망하기 위하여 여호와의 선지자가 와서 경고하였습니다. 그리고 여호와의 말씀을 조금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사자에게 찢겨 죽는 모습을 보고서도 회개하지 아니한 모습이 여로보암의 죄입니다.

 

이러한 여로보암의 죄가 오늘 우리에게는 없습니까? 예수님의 십자가를 말하면서도 거저 나를 구원해주고 나에게 복을 주는 나 중심의 십자가로 보이십니까? 종교성에서 벗어났기에 이제 내 마음대로 살아도 되는 그런 십자가는 아닙니까? 예수님의 십자가는 나의 죽음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에 나의 죽음이 없다면 우리는 십자가마저 우리의 우상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은 반드시 십자가에 함께 못 박습니다.

 

갈라디아서 2:20절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날마다 우리는 죽음에 넘겨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으로 사는 길입니다. 이것이 여호와의 말씀대로 성도에게 일어나는 현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