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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상 16:21~34 성경과 역대지략(歷代誌略) 2015. 7. 26

 

열왕기를 보면 역대지략이라는 말이 자주 나옵니다. 열왕기 상하에서 33회 역대기에서 1회 느헤미야에서 1회 총 35회가 언급이 됩니다. 지금은 이 기록이 없지만 우리나라로 말하면 조선왕조실록과 같은 책입니다. 역대지략만이 아니라 야살의 책(10:13, 삼하1:18)도 있습니다. 성경에서 언급은 되지만 그 책은 없습니다. 그런데 역대지략이나 야살의 책은 세상의 사람들이 볼 때는 대단한 업적이 기록이 된 책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런 세상적인 업적들은 다른 책에 기록하여 버립니다.

 

다시 남북 왕조를 봅니다. 남쪽은 르호보암(17), 아비얌(3), 아사(41)에 북 왕조는 여로보암(22), 나답(2) 여기서 반역이 일어나 바아사(24), 엘라(2) 다시 반역이 일어나 시므리(7) 다시 반역이 일어나 오므리(12) 오므리의 아들 아합(22)입니다. 오늘은 오므리와 아합의 소개 정도가 됩니다. 오므리가 시므리를 죽이고 왕으로 추대되는데 시므리를 반대한 무리들은 디브니를 왕으로 삼으려고 합니다. 그래서 내전이 일어나서 오므리가 디브니를 이깁니다.

 

본문 21~24절입니다. “21 그 때에 이스라엘 백성이 둘로 나뉘어 그 절반은 기낫의 아들 디브니를 따라 그를 왕으로 삼으려 하고 그 절반은 오므리를 따랐더니 22 오므리를 따른 백성이 기낫의 아들 디브니를 따른 백성을 이긴지라 디브니가 죽으매 오므리가 왕이 되니라 23 유다의 아사 왕 제삼십일년에 오므리가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 십이 년 동안 왕위에 있으며 디르사에서 육 년 동안 다스리니라 24 그가 은 두 달란트로 세멜에게서 사마리아 산을 사고 그 산 위에 성읍을 건축하고 그 건축한 성읍 이름을 그 산 주인이었던 세멜의 이름을 따라 사마리아라 일컬었더라

 

오므리가 12년동안 왕이 되는데 6년은 디르사에게 다스리고 나머지 6년은 사마리아에서 다스립니다. 오므리라 북 이스라엘의 수도를 사마리아로 천도한 것입니다. 은 두 달란트로 세멜이라는 사람에게서 사마리아 산을 사서 성읍을 건축합니다. 천도는 국운이 달린 것입니다. 잘하면 흥하지만 잘못하면 나라가 망합니다. 그런데 오므리는 성공적인 천도를 합니다. 그래서 오므리의 아들들이 아합(22), 아하시야(2), 여호람(12)에 이르기까지 왕위가 사대나 이어집니다. 세상의 시각으로 보면 대단한 업적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러한 일들은 별것 아닌 것처럼 기타 속에 묶어 버리듯이 역대지략에 기록되었더라고 넘겨버립니다.

 

본문 27~28절입니다. “27 오므리가 행한 그 남은 사적과 그가 부린 권세는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28 오므리가 그의 조상들과 함께 자매 사마리아에 장사되고 그의 아들 아합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그의 권세와 그의 업적들이 얼마나 대단하였으면 모압의 비문에도 팔레스타인 땅을 오므리의 집이라고 기록되어있다고 합니다. 그 정도로 국력이 신장이 되고 사마리아가 강화된 것입니다. 그리고 아들의 결혼도 아버지가 주선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무역항을 끼고 있는 시돈의 왕 엣바알의 딸 이세벨을 며느리고 삼아서 외교정책도 탄탄히 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업적들을 역대지략으로 처리해 버립니다. 그러면 성경은 오므리를 어떻게 평가하고 있습니까? 단 한마디도 잘했다는 말씀이 없습니다.

 

본문 25~26절입니다. “25 오므리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되 그 전의 모든 사람보다 더욱 악하게 행하여 26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모든 길로 행하며 그가 이스라엘에게 죄를 범하게 한 그 죄 중에 행하여 그들의 헛된 것들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노하시게 하였더라

 

성경은 여호와께서 보시는 시각입니다. 여호와는 하나님의 언약에 충성하느냐를 보십니다. 이스라엘의 율법으로 주어진 언약을 따라 사느냐 아니냐는 것입니다. 애굽에서 유월절 어린 양의 피로 구원하여 내신 여호와 하나님을 믿고 사느냐 세상의 힘을 믿고 사느냐는 것으로 평가하십니다. 그런데 오므리는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한 것입니다. 즉 우상을 섬기며 산 것입니다. 세상의 시각으로 보면 앞에서 본 대로 엄청난 업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여호와 보시기에는 그는 그 전이 모든 사람들보다 더 악하게 행하였다고 합니다. 지금까지의 왕들보다 더 악하게 행하여 여로보람의 길로 갔다고 합니다. 이것이 여호와께서 보시는 평가입니다.

 

본문 29~33절입니다. “29 유다의 아사 왕 제삼십팔년에 오므리의 아들 아합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니라 오므리의 아들 아합이 사마리아에서 이십이 년 동안 이스라엘을 다스리니라 30 오므리의 아들 아합이 그의 이전의 모든 사람보다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더욱 행하여 31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를 따라 행하는 것을 오히려 가볍게 여기며 시돈 사람의 왕 엣바알의 딸 이세벨을 아내로 삼고 가서 바알을 섬겨 예배하고 32 사마리아에 건축한 바알의 신전 안에 바알을 위하여 제단을 쌓으며 33 또 아세라 상을 만들었으니 그는 그 이전의 이스라엘의 모든 왕보다 심히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노하시게 하였더라

 

아합은 22년이나 이스라엘의 왕이 됩니다. 그런데 그의 평가는 그의 이전의 모든 사람보다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더욱 행하였다고 합니다. 계속 기록이 경신(更新)됩니다. 오므리가 이전의 왕들보다 더 악하다고 하는데 그 아들 아합은 오므리보다 더 악하다는 평가입니다. 아합의 아내 이세벨은 아예 그 아버지가 엣바알입니다. 그 뜻은 바알이 그와 함께 있다는 뜻입니다. 얼마나 바알숭배가 대단하였으면 왕의 이름을 그렇게 지었겠습니까? 이런 자의 딸과 결혼한 아합의 삶이 어떠할지 짐작이 되고도 남습니다. 아합의 이야기는 북 이스라엘 왕조에서 가장 많은 양이 기록됩니다. 그 이유는 엘리야 선지자와의 대결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아합도 그 역대지략에 기록이 됩니다. 왕상 22:39절입니다. 아합의 남은 행적과 그가 행한 모든 일과 그가 건축한 상아궁과 그가 건축한 모든 성읍은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상아로 침대를 만든 정도가 아니라 상아로 궁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많은 성읍을 건축하였습니다. 이러한 일들은 역대지략으로 넘겨버립니다. 여호와의 평가는 악을 행하였다고 합니다. 이러한 오므리와 아합의 시대에 여호와의 말씀은 정말로 희귀한 시대가 되었습니다. 바알을 섬기느라 하나님의 말씀은 도외시 하였습니다. 그 결과를 한 사건을 통하여 보여줍니다.

 

본문 34절입니다. 그 시대에 벧엘 사람 히엘이 여리고를 건축하였는데 그가 그 터를 쌓을 때에 맏아들 아비람을 잃었고 그 성문을 세울 때에 막내아들 스굽을 잃었으니 여호와께서 눈의 아들 여호수아를 통하여 하신 말씀과 같이 되었더라오므리와 아합의 연결지점에서 이 말씀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벧엘 사람 히엘이 여리고를 건축하다가 두 아들이 죽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제대로 선포가 되었다면 여리고성을 재건하려고 하지 않았을 텐데 아예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 되지도 않은 실정입니다. 온 나라가 바알숭배로 가득하니 여호와의 율법을 전하는 사람은 핍박을 받고 사라진 지경입니다. 그래서 이런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여호수아 6:26절입니다. 여호수아가 그 때에 맹세하게 하여 이르되 누구든지 일어나서 이 여리고 성을 건축하는 자는 여호와 앞에서 저주를 받을 것이라 그 기초를 쌓을 때에 그의 맏아들을 잃을 것이요 그 문을 세울 때에 그의 막내아들을 잃으리라 하였더라

 

이 말씀이 선포되고 백성들이 알았더라면 여리고 성을 재건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히엘이라는 사람이 여리고 성을 재건하려고 터를 쌓을 때 맏아들 아비람이 죽고 성문을 세울 때 막내아들 스굽을 잃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된 것은 여호와께서 눈의 아들 여호수아를 통하여 하신 말씀대로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알았든지 몰랐든지 상관없이 하나님의 자기의 말씀대로 이루어가십니다. 이것이 불공평하다고 생각하십니까? 하나님을 모른다고 핑계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모든 말씀을 자기의 자녀들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라고 하셨습니다.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야 합니다. 세상 만물이 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말씀을 도외시 한 것을 핑계할 수 없습니다.

 

로마서 1:18~25절입니다. “18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나나니 19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들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그들에게 보이셨느니라 20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21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22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 23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 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24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버려 두사 그들의 몸을 서로 욕되게 하게 하셨으니 25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 아멘

 

어떤 사람도 핑계할 수가 없습니다. 사람들 마다 하나님을 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우상으로 바꾸어버린 것입니다. 오늘날 이 땅의 교회들이 하나님을 안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이야기 합니다. 그런데 그 영광이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썩어질 것들이 아닙니까? 불에 타면 사라질 것들이 아닙니까? 아무리 거대한 건물을 짓고, 귀신을 쫒아내도, 능력을 행하였다고 할지라도 피조물을 조물주 보다 거 경배하고 섬기는 모습으로 나가는 것이 다 하나님의 진노를 쌓고 있는 것입니다.

 

열왕기 식으로 말하면 이런 것들은 다 역대지략에 기록될 내용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것은 성경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사람들의 보기에 보암직한 내용들은 쓰레기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외적으로 드러나는 업적만이 아니라 자기 의로움이라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것들은 십자가를 지신 주님 앞에서 배설물입니다. 믿음이란 역대지략에 기록될 내용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내용을 봅니다.

 

히브리서 11:24~26절입니다. “24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하고 25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26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모세 당시에 세상 최고의 나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더 큰 재물로 여겼습니다. 이것은 상 주심을 바라본 것입니다. 이 상이 무엇일까요? 세상적인 것이 결코 아닙니다. 이 상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되는 영원한 생명입니다. 이것을 믿음 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믿음이란 주님께서 은혜로 주신 믿음이 주체가 되어 이렇게 만들어 내십니다.

 

시편 90:1~12절입니다. “1 주여 주는 대대에 우리의 거처가 되셨나이다 2 산이 생기기 전, 땅과 세계도 주께서 조성하시기 전 곧 영원부터 영원까지 주는 하나님이시니이다 3 주께서 사람을 티끌로 돌아가게 하시고 말씀하시기를 너희 인생들은 돌아가라 하셨사오니 4 주의 목전에는 천 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 순간 같을 뿐임이니이다 5 주께서 그들을 홍수처럼 쓸어가시나이다 그들은 잠깐 자는 것 같으며 아침에 돋는 풀 같으니이다 6 풀은 아침에 꽃이 피어 자라다가 저녁에는 시들어 마르나이다 7 우리는 주의 노에 소멸되며 주의 분내심에 놀라나이다 8 주께서 우리의 죄악을 주의 앞에 놓으시며 우리의 은밀한 죄를 주의 얼굴 빛 가운데에 두셨사오니 9 우리의 모든 날이 주의 분노 중에 지나가며 우리의 평생이 순식간에 다하였나이다 10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11 누가 주의 노여움의 능력을 알며 누가 주의 진노의 두려움을 알리이까 12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

 

모세의 시편으로 되어 있습니다. 모세는 120세를 살았는데 왜 인생이 70이며 강건하면 80이라고 하였습니까? 모세의 일평생을 보면 역대지략에 담겨질 내용들은 바로의 공주의 아들로 자란 40년일 것입니다. 그런데 광야 40년을 보낸 40년을 바로왕의 공주의 영광들을 빼 내는 기간입니다. 늙은 모세로 하여금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여 내는 나머지 40년의 기간은 하나님의 손에 들린 기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인생의 날을 계수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역대지략에 기록될 그런 세상의 업적이 아니라 십자가 지신 예수님과 함께 조용히 동행 하는 인생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