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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상 18:1~6 삼년 반과 주님의 돌보심 2015. 8. 23

 

1 많은 날이 지나고 제 삼년에 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너는 가서 아합에게 보이라 내가 비를 지면에 내리리라 2 엘리야가 아합에게 보이려고 가니 그 때에 사마리아에 기근이 심하였더라

 

엘리야 시대 때 가뭄이 얼마동안 있었습니까? 대부분 36개월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구약에서는 삼년 반이라는 말씀이 없습니다. 17:1절에서 수 년 동안 비가 오지 않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1절에서는 많은 날이 지나고 제 삼년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많은 날이라는 것이 삼년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삼년이라는 36개월이 꽉 채워진 만 3년일 수도 있고 13개월도 해수로 계산하면 3년이라고도 합니다. 그러면 엘리야 시대 때의 가뭄이 얼마나 계속된 것입니까? 구약에서는 정확한 개월 수가 없는데 신약에서 두 번 나옵니다.

 

누가복음 4:25절입니다. “25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엘리야 시대에 하늘이 삼 년 육 개월 간 닫히어 온 땅에 큰 흉년이 들었을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과부가 있었으되 26 엘리야가 그 중 한 사람에게도 보내심을 받지 않고 오직 시돈 땅에 있는 사렙다의 한 과부에게 뿐이었으며이 말씀은 사르밧 과부의 이야기에서도 보았습니다만 엘리야 때의 가뭄을 예수님께서 36개월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야보고도 36개월로 말했습니다(5:17~18). 그러면 대략 3년인가요? 정확하게 36개월인가요?

 

제가 왜 이 숫자를 말씀드리는가 하면 수요일 저녁에 다니엘서도 36개월에 대한 말씀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요한계시록에도 나옵니다. 이런 숫자를 가지고 기묘하게 풀어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이 기록될 때에는 오늘날 아라비아 숫자 개념보아 그 숫자가 말하는 성경 전체의 의미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러면 엘리야시대 때 36개월은 환난의 때입니다. 비가 오지 않은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언약을 어겼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언약을 어기면 비가 오지 않는다는 것이 언약의 조약에 포함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다른 성경에서 36개월이 왜 일어나는지 찾아보겠습니다.

 

다니엘 12:11절입니다. 매일 드리는 제사를 폐하며 멸망하게 할 가증한 것을 세울 때부터 천이백구십 일을 지낼 것이요

 

요한계시록 11:2~3절입니다. “2 성전 바깥마당은 측량하지 말고 그냥 두라 이것은 이방인에게 주었은즉 그들이 거룩한 성을 마흔두 달 동안 짓밟으리라 3 내가 나의 두 증인에게 권세를 주리니 그들이 굵은 베옷을 입고 천이백육십 일을 예언하리라

 

요한계시록 12:6절입니다. 그 여자가 광야로 도망하매 거기서 천이백육십 일 동안 그를 양육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곳이 있더라

 

요한계시록 13:5절입니다. 또 짐승이 과장되고 신성모독을 말하는 입을 받고 또 마흔두 달 동안 일할 권세를 받으니라

 

천이백구십일이나 천이백육십일이 약 36개월 곧 마흔 두 달입니다. 이러한 날짜의 특징들은 다 환난과 핍박을 말합니다. 그런데 이 환난의 날을 다른 곳에서 십일이라고도 하고 잠시라고도 합니다.

 

요한계시록 2:10일절입니다. 너는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에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

 

마태복음 24:21~22절입니다. “21 이는 그 때에 큰 환난이 있겠음이라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 22 그 날들을 감하지 아니하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나 그러나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 날들을 감하시리라

 

고린도후서 4:17~18절입니다. “17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18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다니엘서에서 날짜 계산이 좀 있습니다만 그 본문에서 보도록 하고 오늘은 삼년 반 곧 마흔 두 달이라는 기간은 성도가 당하는 잠시 받는 환난의 기간을 말합니다. 이것은 세대주의자처럼 시간계산 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찾아본 말씀전체를 통하여 삼년 반이라는 것은 성도의 일평생으로 봐야 합니다. 그래서 환난을 감하여 주신다는 말씀이나 십일이라고 제한하는 말씀을 보면 삼년 반이 성도가 땅에서 당하는 고난의 기간을 말합니다. 그런데 그러한 환난을 바울사도는 잠시라고 합니다. 그 잠시가 사도에게 평생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평생도 주님과 함께 잠시입니다. 그 환난의 기간이 이 땅의 모든 성도에게 있지만 이런 것들은 결국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이 우리에게 이루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보이는 것은 잠간이며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합니다. 저에게 이 말씀은 아주 큰 소망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으로 견뎌내는 것입니다. 물론 견딜힘도 주님이 주십니다만 이 땅에서 삶은 항상 환난이 닥치기 마련입니다. 그럴수록 성도는 영원을 사모하게 됩니다. 성도가 아닌 사람은 눈앞에 닥친 환난만 해결하면 되는 줄 알고 온 세상의 힘을 다 동원할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얼마나 피곤한 삶은 사는지 아합과 같은 삶을 사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1~2절입니다. “1 많은 날이 지나고 제 삼년에 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너는 가서 아합에게 보이라 내가 비를 지면에 내리리라 2 엘리야가 아합에게 보이려고 가니 그 때에 사마리아에 기근이 심하였더라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말씀하신 가뭄의 기간이 다 되었기에 비를 내리시기 위하여 엘리야를 아합에게 보냅니다. 바알과 아세라가 비를 주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여호와 하나님께서 비를 주시는 것을 알게 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36개월의 기근을 내리시고 아합에게 보내십니다. 그 때에 사마리아에 기근이 심합니다.

 

3~4절입니다. “3 아합이 왕궁 맡은 자 오바댜를 불렀으니 이 오바댜는 여호와를 지극히 경외하는 자라 4 이세벨이 여호와의 선지자들을 멸할 때에 오바댜가 선지자 백 명을 가지고 오십 명씩 굴에 숨기고 떡과 물을 먹였더라아합이 왕궁 맡은 자 오바댜를 부릅니다 오뱌다라는 이름은 여호와의 종이라는 뜻입니다. 이 사람이 여호와를 지극히 경외하는 사람입니다. 여호와를 지극히 경외하는 모습은 자신의 목숨을 걸고 선지자 백 명을 오십 명씩 굴에 숨겨 떡과 물을 준 것입니다. 기근이 심한 시절에 이런 행위가 왕과 이세벨에게 발각이 되면 목숨을 잃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런데 아합이 가장 신임하는 사람이 오뱌다입니다.

 

이런 사람이 하나님께서 남겨두신 7천명에 해당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이름도 없이 동굴에 숨어서 떡이나 먹는 사람들도 역시 하나님의 남겨두신 자들에 해당이 됩니다. 이들에게 오뱌다가 떡을 먹였다고 하는데 이 먹였다는 단어와 같은 단어가 17:4절의 까마귀를 통하여 엘리야를 먹였다는 단어와 17:9절의 사르밧 과부를 통하여 먹였다는 단어와 같습니다. 그러므로 기근의 시절에도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을 돌보신다는 말씀입니다. 세상의 환난의 날을 두려워 마시고 하나님의 돌보심을 믿으면 됩니다.

 

5~6절입니다. “5 아합이 오바댜에게 이르되 이 땅의 모든 물 근원과 모든 내로 가자 혹시 꼴을 얻으리라 그리하면 말과 노새를 살리리니 짐승을 다 잃지 않게 되리라 하고 6 두 사람이 두루 다닐 땅을 나누어 아합은 홀로 이 길로 가고 오바댜는 홀로 저 길로 가니라

 

아합이 오뱌댜를 불러서 이 땅의 모든 물 근원과 모든 내로 가자고 합니다. 비와 바람을 주고 풍요와 다산을 준다는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지만 기근을 어떻게 할 수가 없습니다. 물 근원과 내를 찾으며 혹 꼴을 얻을까 하는 것입니다. 꼴이란 짐승이 먹을 풀을 말합니다. 풀이 없어서 말과 노새가 다 죽게 될 정도로 기근이 심합니다. 그래서 두 사람이 다닐 땅을 나누어 아합은 홀로 이 길로 가고 오바댜는 홀로 저 길로 갑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의 언약을 버리고 풍요와 다산을 준다는 바알과 아세라를 섬긴 결과가 이러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을 돌보고 계십니다. 그런데 오늘날은 이런 기근보다 더욱 심한 영적인 기근입니다. 먹을 양식이나 마실 물이 없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입니다. 오늘 이 땅의 36개월의 환난이 다른 것이 아닙니다. 말씀을 듣지 못한 환난입니다. 우리가 정말로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으로 목말라 하십니까? 모든 사람들이 경제가 어렵다는 말을 합니다. 그러나 과연 먹을 것이 없습니까? 어제 오후 설교 준비 중에 어떤 집사님이 떡을 해 오신다고 하면서 다른 분이 하는 사람이 없는지 물어보았습니다. 제가 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쌀이 여유가 있다고 합니다. 우리가 어렵다고 생각하는 가정도 쌀이 남아돕니다. 무엇이 기근입니까? 무엇이 환난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을 아는 사람은 소망이 있습니다. 그런 분들은 참으로 영원한 생명의 말씀만으로 기뻐할 것입니다. 모퉁이 돌 선교회에서 보내는 소식지에 보면 성경책 한 권 얻기를 수 십 년을 기다렸다가 성경책을 한권 받아들고서는 그렇게 기뻐하는 모습을 종종 전하고 있습니다. 성경이 넘쳐나서 들고 다니기도 귀찮아하는 이 시대입니다. 성경을 찾을 필요도 없이 프로젝트로 다 보여줍니다. 홍수 때에 마실 물이 없다는 말처럼 이 땅에서는 풍요와 다산으로 인하여 영적 기갈을 당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썩는 양식이 아닌 썩지 않는 양식을 위하여 살아가는 성도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썩지 아니할 양식은 하나님이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먹고 마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이 세상에서 어떤 환난의 때를 당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자기 생명의 말씀으로 돌보고 계십니다. 그 믿음으로 환난의 시대를 살아내시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