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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하 8:16~24 다윗을 위하여 2016. 5. 15

 

본문을 보기 전에 열왕기서가 언제 기록이 되었는지 그리고 이 열왕기를 처음 읽은 자들은 어디서 읽게 되었는지를 잠시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우리가 성경을 볼 때에 숲과 나무를 보듯이 해야 합니다. 숲만 보고 지나면 나무를 보지 못할 것이고 나무에만 집중하면 전체 숲을 보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세밀하게 나무를 보아가면서 전체의 숲을 한 번씩 조망을 하는 것입니다. 물론 나무를 보면서도 항상 성경전체의 핵심줄기인 하나님의 언약과 그 언약을 받은 자들의 불순종과 실패를 보면서 하나님의 언약은 하나님께서 이루어내심을 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는다는 것은 성경을 통하여 하나님의 약속을 하나님께서 이루어내신다는 것을 믿습니다. 그런데 그 약속의 중심은 예수 그리스도를 위한 것임이 오늘 본문에서도 밝혀집니다.

 

그러면 열왕기서는 언제 기록되고 언제 읽었을까요? 바벨론 포로로 잡혀가서 기록되고 읽은 것입니다. 그렇다고 우리나라의 조선왕조실록과 같은 역사순서를 따라 기록한 것은 아닙니다. 그런 기록은 역대지략에 따로 기록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역사서로 분류가 되는 성경도 단지 역사의 기록이 아니라 역사를 통한 하나님의 계시를 담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열왕기를 통하여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온 그들이 왜 나라가 망하게 되었는지를 돌아보게 합니다. 그런데 나라가 망하게 된 원인을 자신들에게 돌리는 자들은 극소수입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원망하고 조상들을 원망하고 있습니다. 조상들이 죄를 지어서 자신들이 이렇게 망했다고 합니다.

 

열왕기는 솔로몬의 왕으로 등극하는 장면으로 시작을 합니다. 화려한 왕궁과 성전을 짓고 그의 부귀와 지혜는 어떤 사람도 따라올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그런 나라가 솔로몬 사후에 남북으로 분단이 되고 북 이스라엘은 BC722년에 앗수르에 멸망하고 남 유다는 BC586년에 바벨론에 멸망한 것입니다. 이렇게 멸망함을 통하여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자들은 혼동이 왔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이방의 신들에게 진 것이냐는 신학적인 회의가 들었습니다. 하나님이 무능한 하나님이냐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서도 이들은 자신들의 죄를 알지 못합니다. 자신들의 조상들이 죄를 지어서 이렇게 고생을 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이러한 내용들은 에스겔서를 통하여 이미 살펴보았습니다. 이렇게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온 상황에서 열왕기는 기록되어 백성들에게 전하여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열왕기나 역대기는 역대지략에 기록되는 역사가 아니라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렇게 기록된 모든 성경은 무엇을 증거 하려고 하는 것입니까?

 

베드로후서 1:19~21절입니다. “19 또 우리에게는 더 확실한 예언이 있어 어두운 데를 비추는 등불과 같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이것을 주의하는 것이 옳으니라 20 먼저 알 것은 성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21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라베드로는 예수님의 영광을 친히 목격한 사람이지만 그보다 더 확실한 예언이 기록된 말씀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을 통하여 그 마음에 샛별이 떠오르기까지 주의하는 것이 옳다고 합니다. 그 샛별이란 그리스도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성경을 사사로이 풀면 안 된다는 말은 예수 그리스도 중심으로 풀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디모데후서 3:15~16절입니다. “15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1)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2)교육하기에 유익하니 17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성경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합니다(5:39).

 

이제 본문 16~17절을 봅니다. “16 이스라엘의 왕 아합의 아들 요람 제오년에 여호사밧이 유다의 왕이었을 때에 유다의 왕 여호사밧의 아들 여호람이 왕이 되니라열왕기에서 이렇게 북과 남 또는 남과 북의 관계를 함께 기록하는 이유는 그들이 어떤 환경에서 어떤 영향을 받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북 이스라엘은 아합의 아들 요람이 왕입니다. 남 유다는 여호사밧이 유다의 왕이었을 때에 그 아들 여호람이 왕이 됩니다. 이것은 여호사밧이 섭정을 하고 여호람을 왕으로 등극시킨 것입니다. 여호사밧은 상당히 정직하게 행하였지만 산당은 없애지 못하였습니다. 여호사밧은 모암과 암몬과 마온 사람들이 연합으로 쳐들어 왔을 때에 하나님께 기도하고 찬양함으로 적을 물리친 그 왕입니다. 이 전쟁의 승리로 엄청난 부귀를 가지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사방에 두려움을 주심으로 여호사밧의 나라는 평안하였습니다. 그런데도 북 이스라엘과 사돈관계를 맺은 것은 하나님을 의지하기보다 세상의 정치적 판단으로 자신의 부와 평안을 지키려고 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자기 아들을 아합의 딸 아달랴와 결혼을 시킨 것입니다. 이 아달랴의 악행은 나중에 나옵니다.

 

본문 17~18절입니다. “17 여호람이 왕이 될 때에 나이가 삼십이 세라 예루살렘에서 팔 년 동안 통치하니 18 그가 이스라엘 왕들의 길을 가서 아합의 집과 같이 하였으니 이는 아합의 딸이 그의 아내가 되었음이라 그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으나여호람이 예루살렘에서 팔년을 통치하는데 남 유다의 왕이 북 이스라엘 왕들의 길로 행하여 아합의 집과 같이 하였습니다. 왜 이렇게 가게 된 것입니까? 그 아버지 여호사밧이 아합의 딸 아달랴와 자기 아들을 결혼시켰기 때문입니다. 여호람이 왕이 되어서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다고 합니다. 그 악이란 바알숭배입니다. 이것은 단지 우상섬긴 것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스라엘의 왕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백성을 섬기는 직분입니다. 그런데 이방의 왕들은 자신의 왕권을 위하여 무슨 짓이든 다 합니다.

 

역대하 21:1~7절입니다. “1 여호사밧이 그의 조상들과 함께 누우매 그의 조상들과 함께 다윗 성에 장사되고 그의 아들 여호람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2 여호사밧의 아들 여호람의 아우들 아사랴와 여히엘과 스가랴와 아사랴와 미가엘과 스바댜는 다 유다 왕 여호사밧의 아들들이라 3 그의 아버지가 그들에게는 은금과 보물과 유다 견고한 성읍들을 선물로 후히 주었고 여호람은 장자이므로 왕위를 주었더니 4 여호람이 그의 아버지의 왕국을 다스리게 되어 세력을 얻은 후에 그의 모든 아우들과 이스라엘 방백들 중 몇 사람을 칼로 죽였더라 5 여호람이 왕위에 오를 때에 나이가 삼십이 세라 예루살렘에서 팔 년 동안 다스리니라 6 그가 이스라엘 왕들의 길로 행하여 아합의 집과 같이 하였으니 이는 아합의 딸이 그의 아내가 되었음이라 그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으나 7 여호와께서 다윗의 집을 멸하기를 즐겨하지 아니하셨음은 이전에 다윗과 더불어 언약을 세우시고 또 다윗과 그의 자손에게 항상 등불을 주겠다고 말씀하셨음이더라이런 여호람이 어떻게 됩니까?

 

이어지는 8~15절입니다. “8 여호람 때에 에돔이 배반하여 유다의 지배하에서 벗어나 자기 위에 왕을 세우므로 9 여호람이 지휘관들과 모든 병거를 거느리고 출정하였더니 밤에 일어나서 자기를 에워싼 에돔 사람과 그 병거의 지휘관들을 쳤더라 10 이와 같이 에돔이 배반하여 유다의 지배하에서 벗어났더니 오늘까지 그러하였으며 그 때에 립나도 배반하여 여호람의 지배 하에서 벗어났으니 이는 그가 그의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버렸음이더라 11 여호람이 또 유다 여러 산에 산당을 세워 예루살렘 주민으로 음행하게 하고 또 유다를 미혹하게 하였으므로 12 선지자 엘리야가 여호람에게 글을 보내어 이르되 왕의 조상 다윗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네가 네 아비 여호사밧의 길과 유다 왕 아사의 길로 행하지 아니하고 13 오직 이스라엘 왕들의 길로 행하여 유다와 예루살렘 주민들이 음행하게 하기를 아합의 집이 음행하듯 하며 또 네 아비 집에서 너보다 착한 아우들을 죽였으니 14 여호와가 네 백성과 네 자녀들과 네 아내들과 네 모든 재물을 큰 재앙으로 치시리라 15 또 너는 창자에 중병이 들고 그 병이 날로 중하여 창자가 빠져나오리라 하셨다 하였더라여호람의 악행을 인하여 여호와 하나님께서 치십니다. 전쟁으로 다 빼앗기고 자신도 병으로 죽게 됩니다.

 

이어지는 16~20절을 봅니다. “16 여호와께서 블레셋 사람들과 구스에서 가까운 아라비아 사람들의 마음을 격동시키사 여호람을 치게 하셨으므로 17 그들이 올라와서 유다를 침략하여 왕궁의 모든 재물과 그의 아들들과 아내들을 탈취하였으므로 막내 아들 여호아하스 외에는 한 아들도 남지 아니하였더라 18 이 모든 일 후에 여호와께서 여호람을 치사 능히 고치지 못할 병이 그 창자에 들게 하셨으므로 19 여러 날 후 이 년 만에 그의 창자가 그 병으로 말미암아 빠져나오매 그가 그 심한 병으로 죽으니 백성이 그들의 조상들에게 분향하던 것 같이 그에게 분향하지 아니하였으며 20 여호람이 삼십이 세에 즉위하고 예루살렘에서 팔 년 동안 다스리다가 아끼는 자 없이 세상을 떠났으며 무리가 그를 다윗 성에 장사하였으나 열왕의 묘실에는 두지 아니하였더라

 

이것이 여호람의 일생입니다. 이 여호람이 구원을 받았을까요? 구원을 받지 못하였을까요? 이 여호람의 행위를 보면 지옥에 가는 것이 당연합니다. 어떻게 이런 자가 구원을 받을 수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우리는 이런 말씀을 보면서 여호람 처럼 살면 안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누가 여호람처럼 살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까? 우리는 살인을 하지 않았다고 하겠습니까? 그 형제를 미워하는 것이 살인이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요일 3:15). 그러면 우리는 우상숭배를 하지 않았다고 하겠습니까? 탐심이 우상숭배입니다(3:5). 우리가 말씀을 보면서 자신이 가장 악한 자의 자리에 있음을 아는 자가 은혜를 입은 사람입니다. 이런 자가 성령이 임한 사람입니다. 성령이 임하면 자신을 죄를 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말씀을 읽거나 듣는 자들은 나라가 완전히 망하여 포로로 잡혀온 상태입니다. 더 이상 내려갈 수 없는 비참한 상황에서 무슨 말씀이 보이겠습니까?

 

본문 19절입니다. 여호와께서 그의 종 다윗을 위하여 유다 멸하기를 즐겨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그와 그의 자손에게 항상 등불을 주겠다고 말씀하셨음이더라이 악한 여호람의 행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유다 멸하기를 즐겨하지 아니하신 이유는 다윗을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언약을 하실 때에 그의 자손에서 항상 등불을 주겠다고 말씀하신 그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여호람이든 유다든 다 멸망해야 하는데 멸망시키지 않은 것입니다. 오직 이들이 멸망하지 않는 이유는 단 한가지 하나님의 언약 때문입니다.

 

본문 20~24절입니다. “20 여호람 때에 에돔이 유다의 손에서 배반하여 자기 위에 왕을 세운 고로 21 여호람이 모든 병거를 거느리고 사일로 갔더니 밤에 일어나 자기를 에워싼 에돔 사람과 그 병거의 장관들을 치니 이에 백성이 도망하여 각각 그들의 장막들로 돌아갔더라 22 이와 같이 에돔이 유다의 수하에서 배반하였더니 오늘까지 그러하였으며 그 때에 립나도 배반하였더라 23 여호람의 남은 사적과 그가 행한 모든 일은 유다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24 여호람이 그의 조상들과 함께 자매 그의 조상들과 함께 다윗 성에 장사되고 그의 아들 아하시야가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여호람 때에 에돔이 배반합니다. 여호람이 모든 병거를 거느리고 사일로 갔는데 오히려 적들에게 포위당합니다. 그래서 여호람이 그 병거와 장관을 치니 이메 백성이 도망하여 각각 그들의 장막들로 돌아갔다고 합니다. 누가 이긴 것입니까? 에돔이 이긴 것입니다. 그러므로 에돔이 유다의 수하에서 벗어난 것입니다. 그의 나머지 행적들은 역대지략이 기록이 되었고 그의 조상들과 함께 자매 그의 조상들과 함께 다윗 성에 장사되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악한 왕이 다윗 성에 장사가 되었습니다. 왕실의 묘지에는 묻히지 못하였으나 다윗성에 장사가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열조에게로 돌아갔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악한 왕은 포로로 잡혀가서 죽든지 짐승의 밥이 되어도 마땅한데 어떻게 다윗 성에 장사가 되는 것입니까?

 

다윗을 위한 것이란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언약하신 그 언약을 신실하게 이루어내심을 말씀합니다. 다윗이 언약을 받았지만 간음하고 살인합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의 언약은 변함이 없습니다. 그를 징계하시지만 언약의 백성이기에 징계를 하실지언정 그 언약을 파기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자기 이름을 건 언약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다윗과 아브라함의 언약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가 오셨다고 신약 처음 절에서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다윗 자신도 하나님의 언약으로 구원을 받는 것처럼 이렇게 악한 여호람도 다윗 언약의 혜택을 받는 것입니다. 도대체 언약이 무엇이기에 그렇게 하시는 것입니까?

 

에스겔 36:16~20절입니다. “16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17 인자야 이스라엘 족속이 그들의 고국 땅에 거주할 때에 그들의 행위로 그 땅을 더럽혔나니 나 보기에 그 행위가 월경 중에 있는 여인의 부정함과 같았느니라 18 그들이 땅 위에 피를 쏟았으며 그 우상들로 말미암아 자신들을 더럽혔으므로 내가 분노를 그들 위에 쏟아 19 그들을 그 행위대로 심판하여 각국에 흩으며 여러 나라에 헤쳤더니 20 그들이 이른바 그 여러 나라에서 내 거룩한 이름이 그들로 말미암아 더러워졌나니 곧 사람들이 그들을 가리켜 이르기를 이들은 여호와의 백성이라도 여호와의 땅에서 떠난 자라 하였음이라결국 남 유다가 멸망하여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와 있습니다. 에스겔은 포로로 잡혀가서 이 말씀을 여호와께로부터 받습니다. 이스라엘의 행위로는 이렇게 멸망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그러나가 있습니다.

 

21~28절입니다. “21 그러나 이스라엘 족속이 들어간 그 여러 나라에서 더럽힌 내 거룩한 이름을 내가 아꼈노라 22 그러므로 너는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이스라엘 족속아 내가 이렇게 행함은 너희를 위함이 아니요 너희가 들어간 그 여러 나라에서 더럽힌 나의 거룩한 이름을 위함이라 23 여러 나라 가운데에서 더럽혀진 이름 곧 너희가 그들 가운데에서 더럽힌 나의 큰 이름을 내가 거룩하게 할지라 내가 그들의 눈앞에서 너희로 말미암아 나의 거룩함을 나타내리니 내가 여호와인 줄을 여러 나라 사람이 알리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24 내가 너희를 여러 나라 가운데에서 인도하여 내고 여러 민족 가운데에서 모아 데리고 고국 땅에 들어가서 25 맑은 물을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하게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 숭배에서 너희를 정결하게 할 것이며 26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1)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2)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27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28 내가 너희 조상들에게 준 땅에서 너희가 거주하면서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라

 

이스라엘 백성들을 여호와의 언약을 배반하고 여호와의 이름을 더럽힌 일 외에는 한 일이 없습니다. 그래서 나라가 망하여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자기의 이름을 위하여 이들을 돌이켜 주십니다. 새 영을 주시고 새 마음을 주시면 그제야 자신들의 구원이 자신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의 자기 이름을 위한 구원인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와서 성전을 재건하고 제사가 회복되었지만 그러나 아직은 새 언약의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새 언약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서 맺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의 체결에 있어서 누가 가해자로 등장을 합니까? 하나님의 언약을 받았다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해자가 되어 예수 그리스도를 살해합니다. 이제 더욱 분명하여 집니다. 이스라엘 역사를 통하여 하나님의 언약이 어떻게 세워지고 이루어지는지 아주 분명하여집니다.

 

이미 구약에서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언약을 어기고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힌 일 밖에는 한 일이 없습니다. 여호람이 다른 사람이 아니라 오늘 우리의 모습입니다. 우리도 우리의 이익을 위하여 형제들도 살해하는 자들입니다. 자기에게 이익이 된다면 어떤 우상이라도 다 끌어들이는 자들입니다. 결혼을 해도 믿음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소유를 보는 것입니다. 그런 우리들이 언감생심 천국이라니요! 가당치도 않는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자들 가운데 하나님께서 택하시고 불러내신 자들은 이제 한 가지를 알게 됩니다. 구원이란 나의 이름과 나의 영광을 위한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그 십자가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한 구원임을 알고 믿게 되는 자들이 언약의 백성들입니다. 이런 자들은 더 이상 자기 이름에 연연할 이유가 없습니다. 이 땅에 사는 한 자기 이름에 관심을 두지 않을 수 없겠지만 그러나 언약의 백성이라면 점점 자기 이름은 삭제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만 그 사람에게 새겨지면 됩니다.

 

요한계시록 14:1절입니다. 또 내가 보니 보라 어린 양이 시온 산에 섰고 그와 함께 십사만 사천이 서 있는데 그들의 이마에는 어린 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더라십사만 사천 온전히 구원받은 자들, 곧 큰 환난 가운데 예수의 피로 씻어 흰 옷을 입은 무리들의 이마에는 자신의 이름이 아니라 어린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는 자들입니다. 내 이름만을 위하여 사는 자들이 이제 나의 이름이 뭉개지고 지워지고 어린 양의 이름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기록되는 자들이 언약 백성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이란 우리의 이름을 위한 구원이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을 위한 구원 곧 일찍 죽임 당한 어린 양, 새 언약을 위한 구원만 있을 뿐입니다. 이런 자들은 구원하심이 보좌에 계신 이와 어린 양께 있다고 찬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