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더 2:1~23 모르드개와 에스더 2018. 8. 26

 

5 도성 수산에 한 유다인이 있으니 이름은 모르드개라 그는 베냐민 자손이니 기스의 증손이요 시므이의 손자요 야일의 아들이라 6 전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에서 유다 왕 여고냐와 백성을 사로잡아 갈 때에 모르드개도 함께 사로잡혔더라 7 그의 삼촌의 딸 하닷사 곧 에스더는 부모가 없었으나 용모가 곱고 아리따운 처녀라 그의 부모가 죽은 후에 모르드개가 자기 딸 같이 양육하더라

 

지난주에 아하수에로 왕이 왕후 와스디를 폐위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아하수에로 왕 곧 크세르크세스 왕의 영토는 앗수르나 바벨론의 제국보다 훨씬 넓은 지역을 차지하였습니다. 그의 아버지 다리오는 폭압정치를 하였지만 아하수에로는 포용정책을 펼쳤습니다. 그러므로 민족을 따지지 않고 하만이나 모르드개와 같은 자들을 등용시키는 것입니다. 이런 배경에서 에스더서는 여호와 하나님에 대하여 한번 도 언급하지 않지만 어느 성경보다 더 세밀한 하나님의 섭리를 보여줍니다.

 

본문 1~4절입니다. 와스디를 폐위한 후에 아하수에로 왕의 노가 그칩니다. 와스디의 일과 그에 대한 조서를 생각하고 있을 때에 왕의 측근들이 왕을 위하여 아리따운 처녀를 구하여 와스디 대신 왕후를 삼으라고 합니다. 전국 각 지방의 관리를 명하여 아리따운 처녀 수산으로 모아 후궁으로 들여서 궁녀를 주관하는 내시 헤개의 손에 맡겨 준비하게 하도록 합니다.

 

5~7절입니다. 모르드개와 에스더의 족보가 나옵니다. 유다인 모르드개가 베냐민의 자손입니다. 베냐민 지파 기스의 증손이며 시므이의 손자이며 야일의 아들이라고 합니다. 기스는 사울의 아버지입니다(삼상9:2). 모르드개는 사울왕가의 후손입니다.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에서 유다 왕 여고냐와 백성을 사로잡아 갈 때에 모르드개도 함께 사로잡아 왔다고 합니다. 여고냐는 여호야긴이기에 이때 사로잡혀 왔다면 모르드개가 백세가 넘는 나이가 됩니다. 그러므로 모르드개의 집안이 사로잡혀온 것임을 보여줍니다. 에스더는 모르드개의 삼촌의 딸입니다. 그러므로 사촌 여동생인데 히브리식 이름은 하닷사입니다. 페르시아 이름은 에스더입니다. 에스더의 부모가 죽은 후에 사촌 오빠가 자기 딸처럼 양육을 하였습니다.

 

8~11절입니다. 왕의 조서와 명령이 반포되니 전국의 아름다운 처녀들이 수산 성으로 모여듭니다. 어떤 자들은 왕의 여자가 되고 싶어서 자원하여 온 자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에스더는 왕궁으로 이끌려 궁녀를 주관하는 헤개의 수하에 들어갔는데 헤개가 이 처녀를 좋게 보고 은혜를 베풀어줍니다. 여러 물품과 일용품과 일곱 궁녀를 주고 아름다운 처소로 옮긴 것입니다. 에스더는 자기 민족과 종족을 모르드개가 시킨 대로 말하지 않았습니다. 모르드개는 후궁 뜰 앞으로 왕래하면서 에스더의 안부를 알려고 합니다.

 

12~14절입니다. 준비된 처녀들이 차례대로 왕에게 나아갑니다, 그 준비 기간이 열두 달입니다. 여섯 달은 몰약 기름을 쓰고 여섯 달은 향품과 다른 물품을 써서 몸을 정결하게 한다고 합니다. 여기서 다른 물품이란 히브리어로 마찰이라는 단어입니다. 그러므로 얼굴만 예쁜 것이 아니라 전신마사지로 몸매도 다듬어야 합니다. 이렇게 일 년을 준비하여 왕에게 나갈 때에는 그가 구하는 것을 다 주어 왕궁으로 가지고 가게 하였습니다. 왕에게 잘 보이기 위하여 온갖 장식품을 달고 가게 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하루 밤을 보내고 나서 왕이 다시 부르지 않으면 평생 왕궁에서 궁녀로 보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의 조선시대도 그러하였습니다.

 

15~18절입니다. 드디어 에스더 차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에스더는 내시 헤개가 정한 것 외에 다른 것을 구하지 않습니다. 기본적으로 공급되는 물품 외에 하나도 구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자신을 더 치장하여 왕에게 돋보이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함에도 모든 자에게 사랑을 받았다고 합니다. 아하수에로 왕 칠 년에 왕 앞에 섭니다. 왕이 모든 여자보다 에스더를 더 사랑하므로 그가 모든 처녀보다 왕 앞에 더 은총을 얻었다고 합니다. 왕이 그의 머리에 관을 씌우고 와스디를 대신하여 왕후로 삼은 후에 왕이 에스더를 위하여 크게 잔치를 베풉니다. 그리고 모든 지방관과 신하들을 위하여 잔치를 베풀고 또 각 지방의 세금을 면제하고 큰 상을 주었습니다. 에스더 덕분에 세금이 면제되고 상을 받았으니 에스더의 왕후의 자리가 견고하여 진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내용을 보면서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까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에스더가 왜 모든 사람들의 눈에 좋게 보이는 것입니까? 단지 얼굴만 예쁘고 몸매만 좋다고 되는 일이 아닙니다. 페르시아 제국에 아름다운 여인들이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그들 중에 뽑고 뽑은 자들이 12개월 동안 얼굴과 몸매를 가꾸어 왕에게 나아갑니다. 그런데 에스더를 모든 여인보다 더 사랑했다고 합니다. 모든 처녀보다 왕 앞에 더운 은총을 입었다고 합니다. 이것은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님께서 움직인 것이라고 할 수 밖에 없습니다.

 

느헤미야 1:1절과 11절을 봅니다. “1 하가랴의 아들 느헤미야의 말이라 2 아닥사스다왕 제 이십년 기슬르월에 내가 수산궁에 있더니수산 궁의 아닥사스다 왕입니다. 아하수에로 다음의 왕이 아닥사스다 왕입니다. 이 아닥사스다 왕 때에 에스라와 느헤미야의 23차 귀환이 일어납니다. “11 주여 구하오니 귀를 기울이사 종의 기도와 주의 이름을 경외하기를 기뻐하는 종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오늘날 종으로 형통하여 이 사람 앞에서 은혜를 입게 하옵소서 하였나니 그 때에 내가 왕의 술 관원이 되었었느니라느헤미야가 왕의 술 맡은 관원으로 하나님께 기도하시를 이 사람 앞에서 은혜를 입게 하여 달라고 합니다. 그 기도 후에 왕이 느헤미야의 얼굴을 보고 질문하고 대답을 하여 3차 귀환을 주도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 하나님의 일하심을 믿는 자들은 에스더서를 통하여 하나님의 일하심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19~23절입니다. 에스더가 왕후가 되고 모르드개가 대궐 문에 앉았다고 합니다. 대궐문이란 재판이 열리는 장소입니다. 그러므로 모르드개가 왕후의 천거로 왕궁의 관직에 앉은 것입니다. 모르드개가 대궐 문에 앉았을 때에 문을 지키던 왕의 내시 빅단과 데레스 두 사람이 원한을 품고 아하수에로 왕을 암살하려는 음모를 꾸미는 것을 모르드개가 알고 왕후 에스더에게 알리니 에스더가 모르드개의 이름으로 왕에게 아룁니다. 왕이 조사하여 실증을 얻었으므로 두 사람을 나무에 달고 그 일을 왕 앞에서 궁중 일기에 기록하였지만 모르드개에 대한 포상은 없이 끝이 납니다.

 

에스더 2장을 보면서 모세오경을 아는 사람이라면 요셉의 이야기가 생각날 겁니다. 요셉이 감옥에서 술 맡은 관원과 떡 맡은 관원의 꿈을 해몽하여 줍니다. 그 꿈의 해석대로 술 맡은 관원장이 복직 되었지만 요셉을 잊어버린 것입니다. 그때처럼 모르드개가 왕을 암살하려고 한 자를 고발하여 그들을 처리하였지만 모르드개는 아무른 보상도 없이 왕궁 일지에만 기록되고 그대로 지나가게 됩니다. 요셉 때에는 만 2년 후에 바로 왕의 꿈을 해석하라는 명령에 의하여 술 맡은 관원장이 요셉을 기억하여 추천하고 요셉은 일약 총리로 발탁이 됩니다. 그런데 모르드개가 나중에 하만과의 대결이 있을 때에 아하수에로 왕이 잠이 오지 않아서 궁중일기를 읽게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모르드개의 일을 듣고 포상을 하기 위하여 신하를 부를 때에 하만이 와 있었던 것입니다.

 

사람의 기억이 사람 마음대로 되지 않습니다. 두 사람이 동일한 사건을 경험하여도 두 사람의 기억이 다릅니다. 요셉 때의 일이나 모르드개의 일이나 간에 그 공로를 모르고 넘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본인은 억울할 것입니다. 요셉은 2년 동안 감옥에서 얼마나 답답했을까요? 그런데 그 전에 술 맡은 관원장이 요셉을 기억하였다면 그냥 풀려날 수는 있었겠지만 자기 민족을 구원하는 일에는 쓰임을 받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물론 이런 가정은 필요 없습니다만 하나님의 섭리를 보려고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하심을 사람은 예측 할 수가 없습니다.

 

시편 10516~23절입니다. “16 그가 또 그 땅에 기근이 들게 하사 그들이 의지하고 있는 양식을 다 끊으셨도다 17 그가 한 사람을 앞서 보내셨음이여 요셉이 종으로 팔렸도다 18 그의 발은 차꼬를 차고 그의 몸은 쇠사슬에 매였으니 19 곧 여호와의 말씀이 응할 때까지라 그의 말씀이 그를 단련하였도다 20 왕이 사람을 보내어 그를 석방함이여 뭇 백성의 통치자가 그를 자유롭게 하였도다 21 그를 그의 집의 주관자로 삼아 그의 모든 소유를 관리하게 하고 22 그의 뜻대로 모든 신하를 다스리며 그의 지혜로 장로들을 교훈하게 하였도다 23 이에 이스라엘이 애굽에 들어감이여 야곱이 함의 땅에 나그네가 되었도다

 

요셉이 처음 감옥에 갇히는 것도 억울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를 통하여 술 맡은 관원 장을 만나고 꿈을 해석해 줍니다. 그런데도 2년을 옥살이를 하는 것은 여호와의 말씀이 응할 때까지 여호와께서 그를 단련하신 것입니다. 이 말씀을 믿는다면 억울할 일이 없습니다. 때가 되어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은 하나님께서 요셉을 애굽의 총리로 세워 자기 백성을 보호하시기 위한 장치입니다.

 

지금 모르드개와 에스더에게 일어나는 일의 모습이 요셉의 모습과 흡사합니다. 에스더가 왕후가 되는 것과 모르드개가 왕을 시해하려는 자를 고발한 사건들이 왕궁 일지에는 기록이 되지만 어떤 포상도 없이 묻힌 것입니다. 그런데 나중에 왕이 잠이 오지 않아서 일기를 읽게 하는데 하필 그 장면이 모르드개의 이야기를 읽게 되는 것은 절묘한 타이밍입니다. 누가 이렇게 하는 것입니까?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구하여 내시는 일에는 한 치의 빈틈도 없는 것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더 보겠습니다. 에스더가 왕궁에서 허락하는 기본적인 것 외에는 일체의 장식을 하지 않고 왕에게 나갑니다(2:15). 열두 달을 준비하여 왕에게 나가는데 왕의 눈에 들기 위하여 눈에 뛰는 장식품 하나라도 더 붙이고 가든지, 아니면 특별한 향수를 뿌리고 갈 것인데 그런 짓을 하지 않고 갑니다. 아하수에로 왕을 예수님이라고 생각해 봅시다. 기분 나쁘신 분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도 됩니다만 우리가 주님 앞에 나갈 때에 다른 것 꾸미지 않고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7:9~14절입니다. “9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나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10 큰 소리로 외쳐 이르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하니 11 모든 천사가 보좌와 장로들과 네 생물의 주위에 서 있다가 보좌 앞에 엎드려 얼굴을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여 12 이르되 아멘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권능과 힘이 우리 하나님께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하더라 13 장로 중 하나가 응답하여 나에게 이르되 이 흰 옷 입은 자들이 누구며 또 어디서 왔느냐 14 내가 말하기를 내 주여 당신이 아시나이다 하니 그가 나에게 이르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요셉이나 모르드개나 에스더는 참으로 큰 환난을 당한 자들입니다. 형들에게 팔려서 종이 된 요셉입니다. 모르드개는 유다 땅에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온 사람의 후손입니다. 에스더는 그렇게 포로로 잡혀온 사람들 가운데서도 더욱 불행하게 부모를 일찍 잃고서 사촌 오빠의 집에서 자랐습니다. 그러므로 이들이 주님 앞에 나올 때에 어떤 모습으로 나오겠습니까? 온갖 자신의 공력으로 치장하고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큰 환난에서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개 한 자들입니다.

 

이어지는 15~17절입니다. “15 그러므로 그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고 또 그의 성전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기매 보좌에 앉으신 이가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시리니 16 그들이 다시는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도 아니하리니 17 이는 보좌 가운데에 계신 어린 양이 그들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라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살아갈 수 있는 것은 다른 옷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오직 어린 양의 피에 씻은 자들만이 그 보좌 앞에 설 수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19:6~10절입니다. “6 또 내가 들으니 허다한 무리의 음성과도 같고 많은 물 소리와도 같고 큰 우렛소리와도 같은 소리로 이르되 할렐루야 주 우리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가 통치하시도다 7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의 아내가 자신을 준비하였으므로 8 그에게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도록 허락하셨으니 이 세마포 옷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 9 천사가 내게 말하기를 기록하라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은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고 또 내게 말하되 이것은 하나님의 참되신 말씀이라 하기로 10 내가 그 발 앞에 엎드려 경배하려 하니 그가 나에게 말하기를 나는 너와 및 예수의 증언을 받은 네 형제들과 같이 된 종이니 삼가 그리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 경배하라 예수의 증언은 예언의 영이라 하더라

 

에스더서에 10번의 잔치가 열립니다(1:3,5,9. 2:18. 3:15. 5:4~8. 7:1~9. 8:17. 9:17,18,19). 그런데 어떤 잔치는 자신의 영광을 자축하기 위하여 잔치를 엽니다. 그러나 모르드개와 에스더의 잔치는 원수를 주님의 구원을 기뻐하는 잔치입니다. 요셉이나 모르드개나 에스더가 다 환난을 통과합니다. 성도는 이 세상을 살아가는 과정이 눈물골짜기 더듬으면서 가는 것입니다. 그 과정을 통하여 어리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개한 자들이 어린 양의 혼인잔치에 청함을 받는 복된 자들입니다. 오직 그리스도로 옷 입어야 합니다. 이 옷에 다른 것을 장식하면 안 됩니다.

 

요한계시록 22:14절입니다. 자기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그들이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받으려 함이로다성경의 마지막 복입니다. 오늘 오전의 말씀으로 하면 회개하고 복음을 믿는 것이 이 모습입니다. 우리에게 입혀진 의의 옷에다가 나의 행위로 더럽히지 않는 것이 자기 두루마기를 빠는 것입니다. 이 복이 임하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