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더 8:1~9:16 역전(逆轉) 2018. 10. 21

 

15 모르드개가 푸르고 흰 조복을 입고 큰 금관을 쓰고 자색 가는 베 겉옷을 입고 왕 앞에서 나오니 수산 성이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고 16 유다인에게는 영광과 즐거움과 기쁨과 존귀함이 있는지라 17 왕의 어명이 이르는 각 지방, 각 읍에서 유다인들이 즐기고 기뻐하여 잔치를 베풀고 그 날을 명절로 삼으니 본토 백성이 유다인을 두려워하여 유다인 되는 자가 많더라

 

사람은 망치고 하나님은 이루시고제가 종종 쓰는 표현입니다. 유대인 랍비 아브라함 요수아 헤셀의 말입니다만 구약 성경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약속을 어깁니다. 그래서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왔습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자기 약속을 이루시는 것을 봅니다. 그러므로 모드드개와 에스더가 주인공이 아니라 단 한 번도 이름이 나오지 않는 여호와 하나님의 일하심을 보는 것이 에스더를 보는 중요한 시각입니다. 물론 다른 성경도 마찬가지입니다. 만물이 주에게도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가는 것을 믿는 것이 주 예수를 믿는 것입니다.

 

본문 8:1~2절입니다. 아하수에로 왕이 유다의 대덕 하만의 집을 에스더에게 줍니다. 에스더가 모르드개와 자신이 관계가 어떠한지 왕께 말함으로 모르드개가 왕 앞에 나옵니다. 모르드개가 자신의 목숨을 구한 것은 이미 알고 있기에 왕이 는 자기에게 어떻게 관계됨을 왕께 아뢰었으므로 모르드개가 왕 앞에 나오니 하만에게서 거둔 반지를 빼어 모르드개에게 줍니다. 에스더가 모르드개에게 하만의 집을 관리하게 합니다. 이로서 대적 하만을 이기고 역전이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아직 완성이 아닙니다. 하만이 왕의 칙령으로 명한 유대인을 죽이는 날이 남아 있습니다.

 

3~6절입니다. 에스더가 다시 왕 앞에 나가서 왕의 발아래 엎드려 구합니다. 왕이 에스더를 향하여 금 홀을 내밉니다. 에스더가 왕에게 말할 때에 늘 사용하는 표현으로 구합니다. “왕이 만일 즐거워하시며 내가 왕의 목전에 은혜를 입었고 또 왕이 이 일을 좋게 여기시며 나를 좋게 보실진대자신의 구함보다 왕의 허락이 중요함을 표현한 것입니다. 왕의 즐거워하시고 왕의 목전에 은혜를 입었고 왕이 이 일을 좋게 여기시며 왕이 나를 좋게 보신다면 허락하여 달라고 합니다. 그 간청은 하남이 자기 민족을 멸하려고 한 조서를 철회하여 달라고 합니다.

 

7~10절입니다. 왕이 에스더와 유다인 모르드개에게 명하기를 너희는 왕의 명의로 유다인에게 조서를 뜻대로 쓰고 왕의 반지로 인을 치라고 합니다. 왕의 이름을 쓰고 왕의 반지로 인친 조서를 철회를 할 수 없기에 대비책을 알아서 쓰라고 한 것입니다. 모르드개가 시키는 대로 서기관이 조서를 쓰고 아하수에로 왕이 통치하는 인도로부터 구스까지의 백이십칠 지방 유다인과 대신과 지방관과 관원에게 전합니다. 각 민족의 언어와 유다인의 문자와 언어로 쓰서 역졸들에게 전합니다.

 

11~13절입니다. 조서의 내용은 유다인들이 함께 모여 스스로 생명을 보호하여 유다인을 치려고 하는 자들과 그들의 처자를 죽이고 그 재산을 탈취하라고 합니다. 하만이 쓴 조서와 정 반대의 내용이 되는 것입니다. 왕의 조서는 철회가 되지 않기에 그 조서의 일을 방비할 뿐 아니라 그런 자들을 공격하라는 말로 왕의 조서를 내린 것입니다.

 

14~17절입니다. 왕의 어명이 급하게 전달되고 도성 수산에도 반포가 됩니다. 모르드개가 신분에 걸맞은 옷을 입고 와 앞에서 나오니 수산 성이 즐거이 부르며 기뻐합니다. 유다인에게 영광과 즐거움과 기쁨과 존귀함이 있습니다. 수산 궁만이 아니라 왕의 어명이 이르는 각 지방, 각 읍에서 유다인들이 즐기고 기뻐하여 잔치를 베풀고 그 날을 명절로 삼으니 본토 백성이 유다인을 두려워하여 유다인 되는 자가 많았다고 합니다. 자신들이 죽임을 당할 날이 완전하게 역전이 되어 오히려 유다인들을 두려워하면서 유다인이 되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이런 모습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할 때에 10가지 재앙이 애굽에 쏟아집니다. 이러한 재앙을 통하여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두려워한 애굽의 사람들이 보석을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내어주면서 빨리 가게 합니다(12:35,36). 그리고 여러 족속들이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출애굽을 합니다(12:38). 하나님의 일하심을 그들이 목격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에스더서는 하나님의 이름이 한 번도 나오지 않았지만 출애굽 때에 일어난 일처럼 유다인이 되는 자들이 나오는 것입니다.

 

본문 9:1~4절입니다. 아달월 곧 열두째 달 십삼일은 왕의 어명을 시행하게 된 날이라 유다인의 대적들이 그들을 제거하기를 바랐더니 유다인이 도리어 자기들을 미워하는 자들을 제거하게 된 날이 되었습니다. 완전히 역전이 된 날입니다. 모든 민족이 유다인들을 두려워하여 능히 막을 자가 없고 실세가 된 모르드개를 두려워하지 모두 유다인을 돕습니다. 모르드개의 명성이 퍼집니다.

 

5~10절입니다. 유다인들이 대적을 진멸합니다. 그 숫자들을 보고하는데 10절에서 함므다다의 손자요 유다인의 대적 하만의 열 아들을 죽였으나 그들의 재산에는 손을 대지 아니하였더라고 합니다. 재산을 약탈하기 위한 싸움이 아니라 여호와의 거룩한 전쟁을 집행한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앞에서도 보았습니다만 하나님의 구원을 방해하고 나선 아말렉 족의 심판이 이곳에서도 집행이 된 것입니다. 그들의 재산을 취하지 않음으로 사울의 실패가 여기서는 성취가 됩니다.

 

11~16절입니다. 유다의 대적들을 죽인 숫자를 왕에게 보고합니다. 그러자 왕이 수산에서 오백 명 죽였고 하만의 열 아들을 죽였으니 다른 지방에서는 어떠하였겠느냐고 하면서 그대의 소청이 무엇이냐고 묻습니다. 에스더가 왕이 좋게 여기신다면 수상에서 하루 더 행하여 하만의 열 아들의 시체를 나무에 매달게 하여 달라고 합니다. 왕이 그대로 허락하여 하만의 열 아들의 시채가 매달립니다. 여호수아가 가나안을 정복할 때에 대적하는 왕들을 나무에 매단 것처럼(8:29, 10:26), 대적들을 나무에 매달았습니다. 수산과 각 지방에서도 유다의 대적들을 멸하였습니다. 그 숫자가 칠만 오천 명이이나 되었지만 그들의 재산에는 손을 대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것은 재산을 약탈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을 대적하는 자들의 심판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사무엘상 15:1~3절입니다. “1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나를 보내어 왕에게 기름을 부어 그의 백성 이스라엘 위에 왕으로 삼으셨은즉 이제 왕은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소서 2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아말렉이 이스라엘에게 행한 일 곧 애굽에서 나올 때에 길에서 대적한 일로 내가 그들을 벌하노니 3 지금 가서 아말렉을 쳐서 그들의 모든 소유를 남기지 말고 진멸하되 남녀와 소아와 젖 먹는 아이와 우양과 낙타와 나귀를 죽이라 하셨나이다 하니

 

사무엘이 사울에게 아말렉을 진멸하라고 하였지만 아각 왕을 살려왔고 좋은 짐승 떼들을 진멸하지 않고 약탈하여 온 것입니다. 그런데도 사울은 말하기를 하나님께 제사하려고 그랬다고 합니다. 나중에는 백성들이 그렇게 하자고 변명합니다. 이때 사무엘이 말한 유명한 말이 하나님께서 제사보다 순종을 원하신다고 하신 것입니다(삼상15:22). 이로 인하여 사올 왕이  버림을 받습니다. 이 말은 왕의 직분을 잃는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은 사울이 실패하여도 다시 그 후손으로 하여금 진멸전쟁을 이루어 내십니다. 모르드개가 사울의 아버지 기스의 후손입니다(2:5). 하나님의 구원을 방해하고 나선 아말렉족의 후손들이 진멸되고 나자 잔치를 합니다

 

본문 17~19절입니다. “17 아달월 십삼일에 그 일을 행하였고 십사일에 쉬며 그 날에 잔치를 베풀어 즐겼고 18 수산에 사는 유다인들은 십삼일과 십사일에 모였고 십오일에 쉬며 이 날에 잔치를 베풀어 즐긴지라 19 그러므로 시골의 유다인 곧 성이 없는 고을고을에 사는 자들이 아달월 십사일을 명절로 삼아 잔치를 베풀고 즐기며 서로 예물을 주더라역전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유다인들이 진멸당할 날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이름이 한 번도 나타나지 않는 에스더서에서 하나님은 너무나 놀랍고 정확하게 섭리하셔서 원수를 멸하시고 자기 백성을 구원하신 것입니다.

 

창세기 3:15절입니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아담의 타락 이후에 하나님은 이런 약속을 주셨습니다. 여자의 후손과 뱀의 후손의 전쟁입니다. 그런데 항상 공격을 뱀이 먼저 합니다. 그런데 뱀의 공격은 여자의 후손의 발꿈치를 상하게 하겠지만 여인의 후손은 그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전쟁이 성경의 거대한 전쟁입니다. 이러한 모든 전쟁의 승리를 예수님께서 십자가로 이루신 것입니다.

 

골로새서 2:14~15절입니다. “14 우리를 거스르고 불리하게 하는 법조문으로 쓴 증서를 지우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15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2)무력화하여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셨느니라십자가의 승리는 우리를 불리하게 하고 거스르는 율법을 지우시고 제하여 버리시고 십자가에 못 박은 것입니다. 그 뿐 아니라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력화하여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신 것입니다. 통치지들과 권세들이란 사탄의 권세들을 무력화 하여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신 것입니다. 하만의 세력이 드러나고 모르드개를 달고자 한 그 나무에 달리듯이 사탄의 권세들도 십자가에서 패배한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역사 속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히브리서 2:8~9절입니다. “8 만물을 그 발아래에 복종하게 하셨느니라 하였으니 만물로 그에게 복종하게 하셨은즉 복종하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어야 하겠으나 지금 우리가 만물이 아직 그에게 복종하고 있는 것을 보지 못하고 9 오직 우리가 천사들보다 2)잠시 동안 못하게 하심을 입은 자 곧 죽음의 고난 받으심으로 말미암아 영광과 존귀로 관을 쓰신 예수를 보니 이를 행하심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려 하심이라

 

만물이 예수님의 발 앞에 복종하여야 하겠지만 아직 이 역사 속에서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눈에 보이는 세상보다 성경의 계시를 믿고 삽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로 이미 모든 만물이 그에게 복종된 것이 보이지 않아도 이미 이루어진 것을 믿는 자들이 믿음의 사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이미 역전이 일어났고 승리하셨음을 믿는 믿음이 세상을 이깁니다(요일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