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하 28:1~15 너희는 범죄 함이 없느냐? 2011. 11. 19

 

8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의 형제 중에서 그들의 아내와 자녀를 합하여 이십만 명을 사로잡고 그들의 재물을 많이 노략하여 사마리아로 가져가니 9 그 곳에 여호와의 선지자가 있는데 이름은 오뎃이라 그가 사마리아로 돌아오는 군대를 영접하고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유다에게 진노하셨으므로 너희 손에 넘기셨거늘 너희의 노기가 충천하여 살륙하고 10 이제 너희가 또 유다와 예루살렘 백성들을 압제하여 노예로 삼고자 생각하는도다 그러나 너희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함이 없느냐 11 그런즉 너희는 내 말을 듣고 너희의 형제들 중에서 사로잡아 온 포로를 놓아 돌아가게 하라 여호와의 진노가 너희에게 임박하였느니라 한지라

 

본문 28:1~4절을 봅니다. 요담의 아들 아하스가 왕이 되었습니다. 자기 아버지와는 정 반대로 간 왕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다윗과 비교하고 있습니다. 1절에서 다윗과 같이 정직하게 행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남 유다의 왕이 북 이스라엘 왕들의 길로 갔다고 합니다. 북 이스라엘 왕들의 길이란 북 이스라엘의 처음 왕 여로보암부터 시작된 우상숭배를 한 것입니다. 유사 여호와 종교를 만들어 백성들을 마음을 여호와께로 향하지 못하게 한 것이 이스라엘 왕들의 길입니다. 힌놈의 아들 골짜기에서 우상에게 분향하고 심지어 자녀를 우상의 제단에 불태워 바칩니다.

 

5~7절입니다. 이러한 유다를 향하여 하나님은 심판하십니다. 아하스를 아람 왕의 손에 넘깁니다. 아람 왕이 많은 사람을 사로잡아 다메섹으로 포로로 끌어갔습니다. 이뿐 아니라 북 이스라엘의 베가가 남 유다에서 하루 동안에 용사 12만 명을 죽입니다. 에브라임의 용사 시그리는 유다 왕의 아들 마아세야와 궁내대신 아스리감과 총리대신 엘가나를 죽입니다. 우상숭배 하는 남 유다를 심판하시기 위하여 늘 우상 숭배하는 북 이스라엘로 심판을 하십니다. 예를 들어 북한이 남한을 공격하여 대승을 하였다면 남한의 교회 다니는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하박국서 1:13절입니다. 주께서는 눈이 정결하시므로 악을 차마 보지 못하시며 패역을 차마 보지 못하시거늘 어찌하여 거짓된 자들을 방관하시며 악인이 자기보다 의로운 사람을 삼키는데도 잠잠하시나이까유다가 비록 죄를 범하였다고 하지만 그러나 이방 나라에 의하여 우리가 심판을 받는 것이 옳으냐고 따집니다. 우리가 아무리 하나님을 잘 못 섬긴다고 하여도 절에 나가는 사람보다는 나은 대접을 받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수능시험의 점수가 세상의 우상숭배자보다 더 못하게 받게 하십니까? 이거 이러시면 영 섭섭합니다. 이런 마음이 우리에게 없습니까?

 

하박국 3:3:16~18절입니다. “16 내가 들었으므로 내 창자가 흔들렸고 그 목소리로 말미암아 내 입술이 떨렸도다 무리가 우리를 치러 올라오는 환난 날을 내가 기다리므로 썩이는 것이 내 뼈에 들어왔으며 내 몸은 내 처소에서 떨리는도다 17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18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포항의 지진 정도가 아니라 세상이 다 멸망하는 자리에서 무엇이 과연 기쁨입니까? 세상의 그 무엇이 없다고 하여도 여호와의 구원이 있다면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여호와의 구원이란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예수님이 왜 구원의 능력이 되는지 지금은 사람들이 모릅니다. 그러나 정말로 이 세상의 멸망의 순간에 그 위력이 드러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일어나는 사소한 지진으로 인하여 수능을 치고 못 치고 하는 것에 흔들릴 것이 아니라 정말로 크고 영원한 것을 붙드는 자들은 세상의 일들이 사소한 것이 됩니다.

 

히브리서 12:24~29절입니다. “24 새 언약의 중보자이신 예수와 및 아벨의 피보다 더 나은 것을 말하는 뿌린 피니라 25 너희는 삼가 말씀하신 이를 거역하지 말라 땅에서 경고하신 이를 거역한 그들이 피하지 못하였거든 하물며 하늘로부터 경고하신 이를 배반하는 우리일까보냐 26 그 때에는 그 소리가 땅을 진동하였거니와 이제는 약속하여 이르시되 )내가 또 한 번 땅만 아니라 하늘도 진동하리라 하셨느니라 27 이 또 한 번이라 하심은 진동하지 아니하는 것을 영존하게 하기 위하여 진동할 것들 곧 만드신 것들이 변동될 것을 나타내심이라 28 그러므로 우리가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받았은즉 2)은혜를 3)받자 이로 말미암아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지니 29 우리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심이라

 

남 유다가 여호와의 말씀을 거역하였습니다. 아하스 왕이 거역합니다. 그러자 왕의 아들만 죽는 것이 아니라 백성 12만 명이 죽고, 20만 명이 북 이스라엘에 포로로 잡혀갑니다. 아람 왕에게 포로로 잡혀간 자들의 숫자도 많은데 기록은 없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을 거역한 것이 모세의 법을 어긴 자들이 받은 모습을 구약을 통하여 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물며 하나님의 아들 그 새 언약의 피를 무시하고 배반하면 어떻게 되겠느냐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일어나는 세상의 흔들림은 흔들리지 않는 영원한 것만 우리에게 남기시려고 흔드시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요한계시록 6:12~17절입니다. “12 내가 보니 여섯째 인을 떼실 때에 큰 지진이 나며 해가 검은 털로 짠 상복 같이 검어지고 달은 온통 피 같이 되며 13 하늘의 별들이 무화과나무가 대풍에 흔들려 설익은 열매가 떨어지는 것 같이 땅에 떨어지며 14 하늘은 두루마리가 말리는 것 같이 떠나가고 각 산과 섬이 제 자리에서 옮겨지매 15 땅의 임금들과 왕족들과 장군들과 부자들과 강한 자들과 모든 종과 자유인이 굴과 산들의 바위틈에 숨어 16 산들과 바위에게 말하되 우리 위에 떨어져 보좌에 앉으신 이의 얼굴에서와 그 어린 양의 진노에서 우리를 가리라 17 그들의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능히 서리요 하더라부산 구역 밴드에서 이런 내용을 지진 후에 나누었습니다. 어린 양의 진노를 생각하시면 세상의 일들은 조족지혈(鳥足之血)에 불과합니다.

 

본문 8~15절입니다. 이스라엘이 대승을 하여 20만 명이를 포로로 잡고 재물을 많이 노략하여 사마리아로 갑니다. 그런데 여호와의 선지자 오뎃이 그들을 가로 막으면서 너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유다에게 진노하셔서 너희 손에 넘겼는데 너희의 노기가 충천하여 살육하고 예루살렘 백성을 압제하여 노예로 삼고자 하느냐고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형제를 노예로 삼으면 안 된다고 율법에 있습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너희는 여호와께 범죄 함이 없느냐고 합니다. 그러면서 포로를 돌려보내라고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여호와의 진노가 임박하다고합니다. 이 말을 들은 사람들 중에 백성의 지도자들이 선지자의 말을 듣고 포로들을 잘 보살펴서 돌려보냅니다. 이렇게 한 것은 너희는 여호와께 범죄 함이 없느냐는 선지자의 말씀 때문에 일어난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범죄 함이 없습니까? 남의 불행을 보면서 그 사람은 그럴만한 짓을 해서 그런 일이 일어났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런 사람은 아직도 자신의 죄가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입니다. 경주와 포항에 지진이 일어나는 것이 우리보다 범죄 함이 많아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세계 곳곳에 재해가 일어날 때에 그런 곳이 무슨 범죄가 많아서 그렇게 되었다고 말하는 목사들도 많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런 나라보다 더 많은 재앙이 쏟아져도 할 말이 없는 자들입니다. 북 이스라엘이 남 유다를 하루아침에 12만 명을 죽이고 20만 명을 포로로 잡아가면서 그들이 의로워서 승리한 것으로 착각하고 있기에 오뎃 선지자가 책망을 한 것입니다.

 

누가복음 13:1~5절입니다. “1 그 때 마침 두어 사람이 와서 빌라도가 어떤 갈릴리 사람들의 피를 그들의 제물에 섞은 일로 예수께 아뢰니 2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는 이 갈릴리 사람들이 이같이 해 받으므로 다른 모든 갈릴리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3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4 또 실로암에서 망대가 무너져 치어 죽은 열여덟 사람이 예루살렘에 거한 다른 모든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회개란 자신이 전적인 죄인임을 알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의지하는 것이 회개입니다. 이런 자들이 성령이 임한 자들입니다. 이들은 자신의 죄를 압니다. 자신이 자신의 기준으로 남과 비교평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눈으로, 하나님의 영으로, 거룩한 성령의 조명으로 자신을 보면 자신이 어떠한 죄인인지 드러나기에 그 어떤 죄인보다 자신이 죄인 중의 괴수임을 아는 자가 됩니다. 이런 자들에게 소망은 의인을 부르시기 위하여 오신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시기 위하여 오신 예수님만이 소망이 됩니다. 이런 자들은 비로소 십자가의 사랑을 알게 되고 믿게 됩니다.

 

요한복음 8:1~11절입니다. “1 예수는 감람산으로 가시니라 2 아침에 다시 성전으로 들어오시니 백성이 다 나아오는지라 앉으사 그들을 가르치시더니 3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음행중에 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가운데 세우고 4 예수께 말하되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5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6 그들이 이렇게 말함은 고발할 조건을 얻고자 하여 예수를 시험함이러라 예수께서 몸을 굽히사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7 그들이 묻기를 마지아니하는지라 이에 일어나 이르시되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시고 8 다시 몸을 굽혀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9 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양심에 가책을 느껴 어른으로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하나씩 하나씩 나가고 오직 예수와 그 가운데 섰는 여자만 남았더라 10 예수께서 일어나사 여자 외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여자여 너를 고발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11 대답하되 주여 없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라

 

너희 중에 죄 없는 먼저 돌로 치라고 말씀하신 주님의 말씀 앞에 아무도 현장에서 간음하다 잡혀온 이 여인을 정죄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모두 돌아가고 났을 때에 예수님은 이 여인에게 누가 너를 정죄하느냐고 묻습니다. 아무도 없다고 하자 예수님은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는다고 하시면서 다시를 죄를 범하지 말라고 합니다. 이 여인이 죽음의 현장에서 용서 받은 그 내용을 어떻게 잊을 수가 있겠습니까? 이 용서를 잊어버리고 자신과 남을 정죄하면서 사는 것이 죄가 됩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정죄함이 없다는 말씀이 복음이 되는 사람은 자신이 어떠한 죄인인지 아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자들에게 십자가의 사랑은 참으로 복음이 됩니다(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