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라 4:1~24 성전 재건의 방해자들 2018. 3. 11

 

1 사로잡혔던 자들의 자손이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한다 함을 유다와 베냐민의 대적이 듣고 2 스룹바벨과 족장들에게 나아와 이르되 우리도 너희와 함께 건축하게 하라 우리도 너희 같이 너희 하나님을 찾노라 앗수르 왕 에살핫돈이 우리를 이리로 오게 한 날부터 우리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노라 하니 3 스룹바벨과 예수아와 기타 이스라엘 족장들이 이르되 우리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는 데 너희는 우리와 상관이 없느니라 바사 왕 고레스가 우리에게 명령하신 대로 우리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홀로 건축하리라 하였더니 4 이로부터 그 땅 백성이 유다 백성의 손을 약하게 하여 그 건축을 방해하되 5 바사 왕 고레스의 시대부터 바사 왕 다리오가 즉위할 때까지 관리들에게 뇌물을 주어 그 계획을 막았으며 6 또 아하수에로가 즉위할 때에 그들이 글을 올려 유다와 예루살렘 주민을 고발하니라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던 자들이 고국으로 돌아와서 성전을 재건하는 기초 공사를 한 것을 지난주에 보았습니다. 포로로 잡혀간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의 언약을 어김으로 잡혀갔지만 하나님은 자기 언약에 신실하시기에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하여 70년 만에 돌아오리라고 한 예언대로 돌아왔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방 왕 고레스를 감동시켜 예루살렘의 성전을 건축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감동을 받은 자들이 올라와서 성전을 재건하기 위하여 성전의 지대를 놓은 것을 보고 사람들은 울기도 하고 환호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성전 재건의 방해자들이 나타납니다.

 

본문 1~3절을 봅니다. 사로잡혔던 자들의 자손이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한다 함을 유다와 베냐민의 대적이 들었다고 합니다. 대적이라고 언급된 자들이 스룹바벨과 족장들에게 나아와 자기들도 함께 성전을 건축하게 해 달라고 합니다. 그러면 대적이 아니라 도와주는 자가 되는데 왜 대적이라고 합니까? 이들이 결국에는 대적하는 것으로 나타나지만 처음 접근할 때는 자기들도 성전을 건축하는 일에 함께 하겠다고 합니다. 그런데 스룹바벨과 족장들은 그들의 제안을 거절하면서 우리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는 일에 홀로 건축하겠다고 하면서 바사 왕 고레스의 명까지 언급하면서 그들을 성전 재건에 참여시키지 않습니다.

 

우리가 만약에 예배당을 건축한다고 합시다.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을 때에 상당한 재력가들이 와서 우리의 일에 참여한다면 거절하겠습니까? 환영하겠습니까? 하나님의 은혜라고 할렐루야 하면서 환영할 것입니다. 제가 극동방송국에 설교 녹음을 하려고 가는데 극동방송국 앞에 큰 공터가 비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누가 그 땅을 주겠으니 예배당을 지으라고 하면 마다하겠습니까? 그런데 스룹바벨과 그 족장들이 왜 성전 짓는 일에 참여하겠다는 자들을 거절하였습니까?

 

본문 2절입니다. 성전 건축에 참여하게 해 달라고 온 자들이 우리도 너희 하나님을 찾는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자신들은 앗수르 왕 에살핫돈이 우리를 이리로 오게 한 날부터 우리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린다고 합니다. 그러면 이들은 북 이스라엘이 앗수르에 멸망할 때에 앗수르 왕이 이주 정책을 시행하였습니다. 그래서 북 이스라엘의 사마리아는 이방인들과 함께 섞여 살게 됨으로 그들이 여호와를 섬긴다고 하였지만 혼합종교가 되어버렸습니다.

 

열왕기하 17:29~33절입니다. “29 그러나 각 민족이 각기 자기의 신상들을 만들어 사마리아 사람이 지은 여러 산당들에 두되 각 민족이 자기들이 거주한 성읍에서 그렇게 하여 30 바벨론 사람들은 숙곳브놋을 만들었고 굿 사람들은 네르갈을 만들었고 하맛 사람들은 아시마를 만들었고 31 아와 사람들은 닙하스와 다르닥을 만들었고 스발와임 사람들은 그 자녀를 불살라 그들의 신 아드람멜렉과 아남멜렉에게 드렸으며 32 그들이 또 여호와를 경외하여 자기 중에서 사람을 산당의 제사장으로 택하여 그 산당들에서 자기를 위하여 제사를 드리게 하니라 33 이와 같이 그들이 여호와도 경외하고 또한 어디서부터 옮겨왔든지 그 민족의 풍속대로 자기의 신들도 섬겼더라

 

앗수르 왕이 이민 정책을 펼쳐서 여러 민족을 사마리아에 살게 하였습니다. 그때 사자가 백성들을 헤치자 여호와의 신을 섬기지 않아서 이렇게 되었으니 제사장을 보내 달라고 앗수르 왕에게 요청합니다. 그래서 제사장이 와서 여호와 섬기는 것을 가르쳐 주니 그들이 각 나라의 우상을 섬기면서 여호와도 섬기는 혼합종교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참여를 거절한 것입니다.

 

본문 4~7절입니다. 성전 재건에 참여하고자 한 자들이 순수하였다면 이러한 거절의 말을 듣고서 받아들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다른 의도가 있었기에 거절함의 말을 듣고서는 유다 백성의 손을 약하게 하여 그 건축을 방해한 것입니다. 방해하기 위하여 고레스로부터 다리오가 즉위할 때 까지 관리들에게 뇌물을 주어 성전 건축을 막고 또 아하수에로가 즉위할 때에는 왕에게 글을 보내어 성전 건축을 고발합니다. 그들이 아닥사스다 왕에게 글을 올릴 때에 아람문자로 올렸습니다.

 

본문 8~16절입니다. 봉독자기들이 성전을 함께 짓자고 하다가 거절을 당하자 바로 아닥사스다 왕에게 고발을 하면서 이 민족은 옛날부터 패역한 성읍이기에 고대의 역사서를 잘 살펴보라고 한 것입니다. 남 유다 말기에 바벨론을 반역한 왕들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말할 뿐 아니라 성전이 건축되면 세금을 거두지 못할 것이며 강 건너편 왕의 영지가 없어질 것이라고 합니다. 이 고발장을 받은 왕이 신하들에게 명하여 역사를 살펴보았습니다.

 

본문 17~24절을 봅니다. “봉독 아닥사스다 왕이 이 고발장을 읽어보고 신하들에게 명하여 역사 자료를 살펴보니 실제로 그런 일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한 때는 큰 왕이 있어서 강 건너편 곧 유프라테스 강 건너편 지역이 그 왕에게 조공과 관세와 통행세를 다 바쳤다는 기록을 보고서는 성전 공사를 중단시킨 것입니다. 이 큰 왕이란 다윗과 솔로몬 시대입니다. 이러한 역사 자료를 찾아보고서는 그 성전 재건이 약 15년간 중단이 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성전 중단 된 것만 말하는 것이 아니라 고레스와 아하수에르와 아닥사스다 왕 때의 성벽의 방해까지 언급이 됩니다. 이러한 방해로 인하여 성벽의 완성까지는 지난주에 본 대로 약 백년이 걸립니다.

 

그러면 이러한 방해가 왜 일어나는 것입니까? 지난주에 성전 재건의 기초가 시작되는 내용을 보면서 구약 성전의 완성과 증축과 헤롯 성전의 무너짐과 예수 그리스도의 몸 된 성전까지 전체적인 내용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성전 재건이 시작되었으면 순조롭게 완성이 되는 것이 하나님의 일하심과 은혜로 보이는데 왜 이런 방해가 나오는 것입니까? 드러난 이유는 스룹바벨과 족장들이 사마리아와 이미 기존에 살고 있는 토호세력이 된 자들의 도움을 거절함으로 방해를 받은 것입니다. 스룹바벨과 족장들은 이런 방해를 예상하였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들을 제외시켜 버린 것은 성전 재건에 혼합 종교가 들어오는 것을 막은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성전은 무엇이며 성전 건축을 방해하는 세력이 무엇입니까? 요한복음 2:20~22절입니다. “20 유대인들이 이르되 이 성전은 사십육 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 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냐 하더라 21 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22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야 제자들이 이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 성경과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믿었더라예수 그리스도의 육체가 성전입니다.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한 성도가 성전입니다.

 

사도행전 7:46~51절입니다. “46 다윗이 하나님 앞에서 은혜를 받아 3)야곱의 집을 위하여 하나님의 처소를 준비하게 하여 달라고 하더니 47 솔로몬이 그를 위하여 집을 지었느니라 48 그러나 지극히 높으신 이는 손으로 지은 곳에 계시지 아니하시나니 선지자가 말한 바 49 )주께서 이르시되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등상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짓겠으며 나의 안식할 처소가 어디냐 50 이 모든 것이 다 내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냐 함과 같으니라 51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너희도 너희 조상과 같이 항상 성령을 거스르는도다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할 때에도 하나님은 사람이 지은 집에 거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왕상8:27). 다만 하나님의 이름을 두신 곳으로 하나님께서 보아주시기를 간구하였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인간이 하나님을 위하여 집을 지을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스데반 집사가 이사야 선지자의 말씀을(66:1) 인용하여 설교를 하니 유대인들이 견딜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더구나 너희가 오리라고 한 그 선지자를 죽였다고 하였습니다. 그렇게 스데반이 죽는 것을 옳다고 한 사울이 그 현장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울이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무엇이 성전인지를 밝히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3:16~17절입니다. “16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17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2)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여기서 성전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성령이 임한 자가 성전입니다. 그러므로 이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실 것이라고 합니다. 성전을 더럽히는 것이 무엇입니까? 고린도 교회에 만연하였던 음행입니다. 그런데 음행이라는 것은 성적인 타락만 음행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부정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0:28~29절입니다. “28 모세의 법을 폐한 자도 두세 증인으로 말미암아 불쌍히 여김을 받지 못하고 죽었거든 29 하물며 하나님의 아들을 짓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가 당연히 받을 형벌은 얼마나 더 무겁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약속을 다 이루심으로 만들어 내시는 성전은 건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흘리신 언약의 피로 산 성도들입니다. 이러한 성전으로 삼기 위하여 성령을 부어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이 임하시면 은혜를 알게 됩니다. 은혜의 성령의 임하게 되면 하나님의 아들의 언약의 피의 가치를 알게 됩니다. 이들이 그리스도의 몸 된 성전입니다.

 

사도행전 20:28~32절입니다. “28 여러분은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 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그들 가운데 여러분을 감독자로 삼고 3)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느니라 29 내가 떠난 후에 사나운 이리가 여러분에게 들어와서 그 양 떼를 아끼지 아니하며 30 또한 여러분 중에서도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따르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날 줄을 내가 아노라 31 그러므로 여러분이 일깨어 내가 삼 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 32 지금 내가 여러분을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에 부탁하노니 그 말씀이 여러분을 능히 든든히 세우사 거룩하게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

 

교회의 감독이 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바울사도가 에베소 교회 장로들이 헤어지면서 그들에게 부탁한 내용입니다.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떼를 위하여 삼가라고 합니다. 삼가라는 것은 주의하라는 말입니다. 오늘 오전의 말씀으로 비추어보면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성령께서 교회의 감독 장로 목자 목사를 세우신 것은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신 것이라고 합니다. 이보다 더 중요한 목사의 일은 없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떠나고 나면 외부에서 사나운 이라기 와서 양 떼를 헤칠 자들이 올 것이라고 합니다. 외부에서만이 아니라 내부에서도 나오는데 동일하게 바울의 복음을 들른 자들 안에서도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따르게 하려고 어그러지는 말을 하는 자들이 나올 것을 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주님과 은혜의 말씀께 부탁한다고 하면서 감독들에게 부탁을 하고 떠납니다.

 

누가 참된 성전을 방해하는 자들인지 요한복음과 고린도전서와 사도행전과 히브리서를 통하여 살펴보았습니다. 예수님의 피로 만들어지는 그리스도의 몸 된 성전을 말하지 않고 건물로 된 성전을 말하면서 다윗이 이루지 못한 성전을 우리가 지음으로 전무후무한 복을 받자고 말하는 자들과 그들의 말을 듣고 자기 욕심을 따라 가는 자들이 참된 성전 건축의 방해자들입니다.

 

구약의 성전을 재건할 때에 방해자들이 나오지만 결국 성전이 재건이 됩니다. 그러므로 방해를 받는 과정도 꼭 필요한 것입니다. 그 방해받는 과정을 통하여 가짜들이 걸러져 나갑니다. 외부의 방해자들만이 아니라 내부에서 외부의 방해자들과 동조하는 자들도 나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몸으로 지어져 가고 있는 과정 속에서도 이런 일들이 일어날 것입니다. 참된 성전 곧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만들어지는 진짜 성전을 방해하는 세력이 외부에서도 나올 것이고 내부에서도 나올 것입니다. 그러나 그 어떠한 방해가 있어도 하나님의 자기 성전은 이미 완성이 된 것입니다. 이미 완성된 그 성전을 이 역사 속에서 찾아내고 계시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6:35~40절입니다. “3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36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나를 보고도 믿지 아니하는도다 하였느니라 37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 38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39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40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자신의 몸을 참된 생명의 떡이라고 합니다. 자신의 피를 참된 생명수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을 먹고 마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먹고 마신다는 것은 성찬식을 통하여 말씀하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일고 듣고 그 말씀으로 살아가는 것이 예수님을 먹고 마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영생을 얻기 위하여 예수님께 스스로 오는 자가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 오는 자가 있다는 것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수님께서 보내시는 자들입니다. 이들을 예수님은 내쫓지 않으시고 받아주십니다. 이 일을 위하여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아버지께서 주신 자를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으시고 다 찾아내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십자가로 완료되었기에 어떤 방해가 있어도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고 다 찾아내시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그 안에 그가 우리 안에 사는 것이 성전의 완성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