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위기 12:1~8 산모의 정결규례 2019. 3. 24

 

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여인이 임신하여 남자를 낳으면 그는 이레 동안 부정하리니 곧 월경할 때와 같이 부정할 것이며 3 여덟째 날에는 그 아이의 포피를 벨 것이요 4 그 여인은 아직도 삼십삼 일을 지내야 산혈이 깨끗하리니 정결하게 되는 기한이 차기 전에는 성물을 만지지도 말며 성소에 들어가지도 말 것이며 5 여자를 낳으면 그는 두 이레 동안 부정하리니 월경할 때와 같을 것이며 산혈이 깨끗하게 됨은 육십육 일을 지내야 하리라 6 아들이나 딸이나 정결하게 되는 기한이 차면 그 여인은 번제를 위하여 일 년 된 어린 양을 가져가고 속죄제를 위하여 집비둘기 새끼나 산비둘기를 회막 문 제사장에게로 가져갈 것이요 7 제사장은 그것을 여호와 앞에 드려서 그 여인을 위하여 속죄할지니 그리하면 산혈이 깨끗하리라 이는 아들이나 딸을 생산한 여인에게 대한 규례니라 8 그 여인이 어린 양을 바치기에 힘이 미치지 못하면 산비둘기 두 마리나 집비둘기 새끼 두 마리를 가져다가 하나는 번제물로, 하나는 속죄 제물로 삼을 것이요 제사장은 그를 위하여 속죄할지니 그가 정결하리라

 

오늘은 정결규례중 산모의 정결규례입니다. 1~5절은 남자 아이를 낳으면 7일은 월경할 때와 같이 부정할 것이며 8일째는 할례를 하라고 합니다. 할례의 언약은 이미 아브라함에게 하신 것입니다. 율법에서도 이 할례를 그대로 행하라고 합니다. 그리고 33일은 지내야 산혈이 깨끗하여 정결하게 된다고 합니다. 40일 동안은 성물을 만지지도 말며 성소에 들어가지도 못하게 합니다. 그런데 여자 아이를 낳으면 14일을 부정하게 되고 66일이 지내야 산혈이 깨끗할 것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남자 아이의 출생과 여자 아이의 출생에서 정결의 기간이 왜 배가 되는지 본문에서는 밝히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2천년 동안 교회가 여러 가지 해석을 하였습니다. 그 내용들을 다 소개할 수는 없고 다만 본문을 뜻을 알기 위하여 성경전체에서 해산을 살펴볼 것입니다.

 

아이를 낳았는데 왜 월경할 때와 같이 부정하다고 하는 것입니까?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신 후에 물고기와 새들도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하셨습니다(1:22). 땅에 기는 짐승도 여호와 보시기에 좋았다고 합니다(1:25). 그리고 사람을 만드시고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하셨습니다(1:28). 그런데 왜 인간의 출생을 월경과 같이 부정하다고 한 것입니까? 이러한 문제는 인간의 타락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오늘 오전 마가복음 7장의 말씀에서도 보았습니다만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은 사람의 마음에서 나옵니다. 사람마음의 생각과 계획이 어려서부터 항상 악합니다. 그 이유는 선악과 이후에 모든 인간의 의식과 결정들이 전부 이기적인 자기중심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선악과 이후 인간의 번성은 동시에 죄악의 번성을 이루게 됩니다. 이런 죄악의 번성은 먹든지 마시든지, 시집가고 장가가든지, 사고팔고 하든지 간에 모든 것을 자기를 중심으로 결정합니다. 이것이 죄악이 관영한 상태이기에 하나님께서 사람 지으심을 한탄하시고 물로 심판을 하십니다. 그러나 노아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습니다. 은혜를 입었기에 방주를 예비하였고 홍수 심판에서 살아남았습니다(6:8). 홍수 이후에도 하나님은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하십니다(9:1). 노아 홍수 후에 짐승을 사람의 식물로 허락하시면서 피 채 먹지 말라고 합니다. 피는 생명이기에 피를 흘리면 하나님께서 심판하시겠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땅에 피를 흘림이 땅을 더럽히는 것입니다.

 

창세기 4:8~12절입니다. “8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에게 3)말하고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을 쳐죽이니라 9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그가 이르되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 10 이르시되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 11 땅이 그 입을 벌려 네 손에서부터 네 아우의 피를 받았은즉 네가 땅에서 저주를 받으리니 12 네가 밭을 갈아도 땅이 다시는 그 효력을 네게 주지 아니할 것이요 너는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

 

노아 홍수 이전이지만 땅에 의인의 피를 흘림으로 저주가 임한 것입니다. 노아 홍수 후에도 땅에 피를 흘리면 동일합니다. 이렇게 사람의 피를 흘리는 것만이 아니라 여인의 생리가 왜 부정한 것입니까? 이미 아담과 하와의 타락 이후로 태어난 인간은 스스로 의로울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몸에서 나오는 모든 것들이 다 부정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 다 더럽다고 하신 것은 그것이 타락한 인간의 악한 생각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구약에서는 인간의 생리와 출산으로 인하여 흘러나오는 피만이 아니라 남자의 설정과 병으로 나오는 고름도 다 부정합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부정한 자가 아이를 낳아도 부정한 것입니다.

 

시편 51:5절입니다. 내가 죄악 중에서 출생하였음이여 어머니가 죄 중에서 나를 잉태하였나이다다윗이 간음하고 살인한 후에 나단 선지자의 책망을 듣고 기록한 시편입니다. 자신은 목동으로서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고 바른 왕인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승승장구하고 나서 어느 정도 여유가 생겼을 때에 간음하고 살인하여도 그것을 죄로 알지도 못한 것입니다. 밧세바를 범하면서 정결하게 하고 동침을 합니다. 생리로 부정한 기간인 일주일을 지나고(15:19) 동침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밧세바 와의 아이는 틀림없는 솔로몬의 자식입니다. 이 죄악을 숨기려고 알리바이를 조성하려고 하였지만 실패하자 충성된 여호와의 전쟁을 하는 우리아의 손에 비밀편지를 들려 보내어 죽게 합니다. 이때 나단의 책망을 들은 후에 나온 고백이 모태 죄인임이라고 합니다. 이것이 다윗의 구원이 됩니다. 인간이 전적으로 죄인임을 알고 오직 주의 긍휼만을 의지할 때 의롭다 함을 얻습니다. 다음 주에 볼 나병환자가 정하게 되는 것과 바울의 고백들이 같은 것입니다.

 

이제 다시 본문을 보시면 왜 남자 아이를 낳으면 40일을 지나야 하고 여자 아이를 낳으면 80일을 지나야 하는지에 대하여 생각해 보겠습니다. 남자 아이는 난지 팔일 만에 할례가 있습니다. 그런데 여자아이는 이런 할례가 없으니 그 기간을 배로 잡았다고 보기도 합니다. 그리고 40일은 성경에서 많이 나옵니다. 모세의 시내산 40, 12정탐꾼의 가나안 정탐 기간 40, 예수님의 금식 40일 등으로 연결하여 분리와 고난과 연결시키기도 합니다. 그러면 왜 여자 아이의 출산은 80일이 되어야 하느냐에 대하여 할례가 없다는 것과, 여자가 선악과를 먼저 먹었다는 것으로도 말을 합니다. 그런데 하와가 선악과를 먼저 먹었다는 말씀 후에 해산함으로 구원을 얻는다고 합니다.

 

디모데전서 2:11~15절입니다. “11 여자는 일체 순종함으로 조용히 배우라 12 여자가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노니 오직 조용할지니라 13 이는 아담이 먼저 지음을 받고 하와가 그 후며 14 아담이 속은 것이 아니고 여자가 속아 죄에 빠졌음이라 15 그러나 여자들이 만일 정숙함으로써 믿음과 사랑과 거룩함에 거하면 그의 해산함으로 구원을 얻으리라

 

이 말씀은 아담과 하와의 타락사건과 연결이 됩니다만 이 당시의 배경도 있습니다. 영지주의 자들 중에 주로 여자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이런 자들의 주장은 미혹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따르면서 혼인을 금하고 어떤 음식물을 먹지 말라고 하는 것입니다(딤전4:1~5). 이런 자들을 경계하면서 공식적인 자리에서 여자가 잠잠하라고 한 것입니다. 그러나 신약에서 여 집사들의 활약이 많이 드러나고 있습니다(16).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서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입니다(3:28). 주 안에서는 남자 없이 여자만 있지 않고 여자 없니 남자만 있지 않다고 하면서 여자가 남자에게서 난 것 같이 남자도 여자로 말미암아 났다고 하면서 모든 것이 하나님께 났다고 합니다(고전11:11,12).

 

그러므로 해산함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것은 여자에게만 국한 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문자대로 본다면 결혼하지 않는 여인이나 결혼하여도 해산을 못한 여인을 구원을 얻지 못한다는 말이 됩니다. 그러므로 여자가 조용히 하고 남자를 주관하지 않고 해산함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것을 문자적으로만 해석할 수는 없습니다. 위에서 본 고린도전서와 갈라디아서의 말씀을 보면 남자와 여자가 하나님께 나온 자로서 그리스도안에서 하나라고 본다면 그리스도가 남편이며 교회는 여자로 봐야 합니다. 그러므로 해산함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것은 진리의 복음을 듣고 믿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복음을 전하여 믿게 된 자를 자기의 자녀라고 하며 해산을 한다고 합니다.

 

그러면 왜 여인의 생리나 산혈이 부정하다고 하는 것입니까? 그 이유는 타락한 이후의 인간들에게서는 모든 것이 부정하기 때문입니다. 오전에 본 말씀과 연결이 됩니다. 사람의 마음의 생각과 계획이 항상 악합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속죄가 필요합니다. 남자 아이를 낳든지 여자 아이를 낳든지 속죄의 제사를 드리는 것이 산모의 정결규례의 결론입니다. 제가 종종 말씀을 드리지만 죄인이 죄인을 낳았습니다. 그래서 죽고 죽는 족보입니다. 이 죽음의 족보를 끝내시고 생명의 족보를 이루시는 분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로 거듭나게 하시는 것입니다.

 

창세기 3:15~16절입니다. “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16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16절에서는 여자가 해산의 고통이 더하여 진다고 합니다. 그런데 15절에서는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한다고 합니다. 이러한 여자의 해산을 통하여서 그리스도가 뱀을 이기시는 복음을 전합니다. 그런데 여자가 아이를 낳은 것이 죽음의 고통을 수반하지만 구원이 일어나는 일이 놀랍습니다.

 

이사야 49:13~17절입니다. “13 하늘이여 노래하라 땅이여 기뻐하라 산들이여 즐거이 노래하라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을 위로하셨은즉 그의 고난당한 자를 긍휼히 여기실 것임이라 14 오직 시온이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나를 버리시며 주께서 나를 잊으셨다 하였거니와 15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16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너의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나니 17 네 자녀들은 빨리 걸으며 너를 헐며 너를 황폐하게 하던 자들은 너를 떠나가리라

 

심판 받은 이스라엘을 향하여 하나님은 구원을 약속하시는 내용입니다. 아이를 낳은 여인이 그 젖먹이를 어찌 잊겠느냐고 합니다. 그런데 인간은 그 젖먹이를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않겠다고 하시는 여호와의 구원을 출산과 모성애보다 더한 하나님의 긍휼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긍휼이라는 단어가 자궁이라는 단어에서 나온 말입니다. 하나님의 그 사랑이 여인이 잉태하여 아들을 낳는 그 사랑보다 더한 사랑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너는 내 아들이라 내가 오늘 너를 낳았다는 그 말씀들이 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자기 아들을 낳으시는 내용입니다(2:7, 13:33, 1:5). 또한 내 사랑하는 아들이며 내 기뻐하는 자라는 말씀도 예수 그리스도에게 임한 말씀입니다(3:17, 17:5, 벧후1:17). 그러므로 해산함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것은 하나님과 예수님과 성령님의 일입니다. 우리는 그 하나님이 일을 믿음으로 거듭나는 것이기에 단번에 해산으로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이사야 66:7~12절입니다. “7 시온은 진통을 하기 전에 해산하며 고통을 당하기 전에 남아를 낳았으니 8 이러한 일을 들은 자가 누구이며 이러한 일을 본 자가 누구이냐 나라가 어찌 하루에 생기겠으며 민족이 어찌 한 순간에 태어나겠느냐 그러나 시온은 진통하는 즉시 그 아들을 순산하였도다 9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아이를 갖도록 하였은즉 해산하게 하지 아니하겠느냐 네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해산하게 하는 이인즉 어찌 태를 닫겠느냐 하시니라 10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들이여 다 그 성읍과 함께 기뻐하라 다 그 성읍과 함께 즐거워하라 그 성을 위하여 슬퍼하는 자들이여 다 그 성의 기쁨으로 말미암아 그 성과 함께 기뻐하라 11 너희가 젖을 빠는 것 같이 그 위로하는 품에서 만족하겠고 젖을 넉넉히 빤 것 같이 그 영광의 풍성함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리라 12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내가 그에게 평강을 강 같이, 그에게 뭇 나라의 영광을 넘치는 시내 같이 주리니 너희가 그 성읍의 젖을 빨 것이며 너희가 옆에 안기며 그 무릎에서 놀 것이라하나님의 구원을 해산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이런 해산을 어떻게 이루십니까?

 

요한복음 16:19~22절입니다. “19 예수께서 그 묻고자 함을 아시고 이르시되 내 말이 조금 있으면 나를 보지 못하겠고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 하므로 서로 문의하느냐 20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는 곡하고 애통하겠으나 세상은 기뻐하리라 너희는 근심하겠으나 너희 근심이 도리어 기쁨이 되리라 21 여자가 해산하게 되면 그 때가 이르렀으므로 근심하나 아기를 낳으면 세상에 사람 난 기쁨으로 말미암아 그 고통을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느니라 22 지금은 너희가 근심하나 내가 다시 너희를 보리니 너희 마음이 기쁠 것이요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으리라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로 이루실 구원을 해산으로 비유하여 말씀하십니다.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과 같은 내용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믿는 것이 거듭남입니다.

 

오늘 본문 6~8절을 봅니다. 아들을 낳았거나 딸을 낳았거나 간에 여인이 정결하게 되는 기간을 마치고 나서 양을 번제로 집비둘기 새끼나 산비둘기 새끼를 속죄제로 드리게 합니다. 양을 드릴 형편이 못 되면 산비둘기 새끼 두 마리나 집비둘기 새끼 두 마리를 가져가서 하나는 번제물로 하나는 속죄 제물로 삼으라고 합니다. 번제는 속죄의 의미보다 감사의 의미로 볼 수가 있습니다만 아이를 낳아도 반드시 속죄를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속죄는 짐승의 피가 아니라 하나님이 아들이 자기 피로서 속죄를 이루셔야 단번에 영원히 거룩함을 얻게 됩니다(10:10).

 

누가복음 2:22~24절입니다. “21 할례 할 팔 일이 되매 그 이름을 예수라 하니 곧 잉태하기 전에 천사가 일컬은 바러라22 )모세의 법대로 정결예식의 날이 차매 아기를 데리고 예루살렘에 올라가니 23 이는 주의 율법에 쓴 바 )첫 태에 처음 난 남자마다 주의 거룩한 자라 하리라 한 대로 아기를 주께 드리고 24 또 주의 율법에 말씀하신 대로 )산비둘기 한 쌍이나 혹은 어린 집비둘기 둘로 제사하려 함이더라

 

모세의 법대로 했다는 것은 예수님이 남자 아이 이기에 40일이 지나서 성전에 가서 어린 집비둘기 둘로 제사합니다. 한 마리는 번제로, 한 마리를 속죄제로 드립니다. 이것을 보면 요셉과 마리아가 가난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양을 드릴 형편이 되지 못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왜 예수님을 낳았는데도 속죄의 제사를 드려야 하는 것입니까? 예수님은 성령으로 잉태되어 죄가 없으신 분이신데 말입니다(4:15,요한일서 3:5). 그 이유는 죄를 알지도 못하시는 분을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시기 위한 것입니다(고후5:21).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에 오심으로 구원을 이루어내시는 것을 해산의 정결규례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1:15~18절입니다. “15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16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속지 말라 17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18 그가 그 피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따라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

 

죄인인 인간이 무언가를 생산하는 것은 욕심입니다. 그 욕심이 잉태하여 죄를 낳고 뇌가 장성하니 사망을 낳게 됩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인간들이 모여서 만들어내는 모든 문명이나 문화라는 것들이 다 불에 태워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이 땅의 문명이나 문화를 건설하는 자들이 아니라 이 땅에 속한 것들이 멸망할 것들이라고 하면서 온갖 좋은 은사과 온전한 선물은 위로부터 곧 빛들의 아버지로부터 내려오는 것이라고 전하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 아버지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습니다. 이 세상에 속한 것은 다 상대적입니다. 빛과 어두움, 선과 악, 높음과 낮음 이러한 모든 차별들이 없는 곳이 아버지의 나라입니다. 그 나라에 들이시기 위하여 하나님은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는 낳으셔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아들의 성육신이며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죄인들과 연합이 되셔서 속죄하시고 부활하심으로 의롭다고 하십니다.

 

베드로전서 1:22~23절입니다. “22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23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24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25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우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것이 아니라 진리의 말씀 곧 영원한 복음입니다.

 

갈라디아서 4:19~20절입니다. “19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 20 내가 이제라도 너희와 함께 있어 내 언성을 높이려 함은 너희에 대하여 의혹이 있음이라복음을 전하는 것은 마치 해산하는 것과 같습니다. 바울이 갈라디아에 복음을 전하고 다른 곳으로 복음을 전하려고 갔습니다. 그런데 갈라디아 교회에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 들어오니 그들에게로 넘어가는 것입니다. 다른 복음은 땅에 들어붙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부정한 것이기에 땅에서 떼어 하늘을 보게 하는 것이 바울이 전한 복음입니다.

 

빌립보서 3:17~21절입니다. “17 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 받으라 그리고 너희가 우리를 본받은 것처럼 그와 같이 행하는 자들을 눈여겨보라 18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19 그들의 마침은 멸망이요 그들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그들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 20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21 그는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시리라복음으로 해산 된 자들의 삶의 방향성입니다.